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49
49화
기사 케빌은 가브의 발아래를 보며 경악했다.
그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는 2미터는 될 법한 크기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우거라니…….’
알레시아 숲에서 오우거가 나타난 적은 손에 꼽는다.
게다가 기사 시험 전에는 현역 기사들이 한차례 토벌에 나서서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제거한다.
토벌 이후 그 며칠 사이에 오우거가 알레시아 숲으로 넘어왔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아니, 토벌대가 발견하고 정리한 놈의 발자국일 수도 있지.’
쿵.
케빌의 생각을 바로 반박해 주는 잔잔한 떨림.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붉은달 기사라고 해도 혼자서 오우거를 잡는 것은 무리다.
그의 머릿속에 예비 기사들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쿠웅.
“반영됩니까?”
케빌은 재차 반복된 굉음과 물음에 가브의 눈을 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 그는 마치 오우거를 놓칠까 봐 대답을 촉구하는 듯했다.
케빌은 그 이상한 현상에 홀린 듯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말을 해 줬다.
“……된다.”
“좋습니다. 조원분들, 저는 이제 오우거를 사냥할 겁니다. 저와 함께 도발을 이끌 한 분만 있다면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도발 맡으실 분 계십니까?”
기사 케빌처럼 상상도 못 했는데 갑자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을 하니 두려움이 조금 걷히는 조원들이었다.
그중 가브와 비슷한 연령의 여인이 한 손을 들었다.
가브 다음으로 고득점인 조원으로, 180에 가까운 장신에 온몸에는 근육이 꽉 들어차 있어 여전사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녀는 짧은 한손검과 팔뚝에 끼워 고정시키는 단방패를 들고 있었다.
“세 번 잡아 봤습니다.”
“세 번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조원들은 석궁이나 활, 투창 같은 원거리 무기로 우리가 왼쪽 발에 있으면 오른쪽, 오른쪽에 있으면 왼쪽 발목을 공격해 주십시오.”
“진짜로 오우거를 잡는다고요?”
“그, 그게 다입니까?”
“시기가 적절하면 가끔 근거리로 치고 빠져도 됩니다. 하지만, 절대 욕심내시면 안 됩니다.”
가브의 목소리와 눈빛이 금세 차갑고 단호하게 변했다.
그 묵직한 카리스마에 조원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웅.
가브는 발소리가 난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다시 기사 케빌을 보며 조금 빠르게 말을 이었다.
“케빌 경께서는 오우거 주변에 마물이 있으면 처리해 주십시오. 오우거는 저희 힘만으로 잡겠습니다.”
“하…… 뭐, 그러지.”
안전을 위해 파견된 권위 높은 기사를 오우거 토벌의 잔가지 처리로 사용한다. 건방지면서도 효율적인 생각이다.
케빌은 권태롭던 시험에 호기심과 자극이 생겨 가브의 계획을 따라 보기로 했다.
케빌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가브는 지체 없이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바삭바삭.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밟혀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그러나 가브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오우거의 발자국을 보고 가장 먼저 조원들의 기량을 추측했다.
개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가장 약한 자도 나름 기사 시험 응시자라고 2급 해수 정도의 체력을 보였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오랜 수련을 거친 일곱 명, 가브는 오우거를 잡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전력으로 판단했다.
오우거 사냥에 동의는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
위험을 동반한 미지의 도전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망설임으로 바뀌어 시간이 지체된다.
설득하여 사냥에 나서더라도 충분히 두려움을 먹고 시작하기에 움직임이 둔해질 수 있다.
쿵!
어느새 나무 사이로 나무인지 다리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굵직한 오우거의 다리가 보였다.
가브는 중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지금 이곳의 지형을 기억해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무에 막혀 도망을 못 치는 일이 없도록!”
“예, 예!”
“예, 조장!”
조원들은 가브의 말투가 바뀐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군기가 바짝 들어 대답했다.
“나르크는 여기서 대기!”
“예, 조장!”
여전사 나르크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외치는 모습에 놀랐다.
케빌은 단번에 분위기를 몰고 정신을 휘어잡는 가브의 모습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며 주변을 훑었다.
“그으아아아아!”
포식자 앞에서 감히 숲의 고요함을 깨트리는 소리, 겁에 질리지 않고 오히려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인간.
오랫동안 포식자로만 살아왔던 오우거는 그 모습에 광분을 느끼며 허리를 숙여 두 팔로 대지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주먹부터 팔꿈치까지 3미터에 달하는 넓은 면 두 개가 바닥을 찍자, 주변 돌가루와 나뭇잎, 흙먼지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넓게 비산했다.
그 어마어마한 괴력에 방금 전까지 전의를 다잡았던 조원들의 마음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오우거는 자신의 팔에 그 건방진 인간이 걸리지 않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흙먼지와 나뭇잎이 가라앉을 때, 그 사이를 뚫고 튀어 오르는 무언가를 보았다.
푸욱.
-쿠으에에엑!
오우거의 피부는 밀도가 높은 고무와도 같아 매우 질기고 단단하다. 그러나 얇고 연약한 부위가 하나 있다.
바로 눈꺼풀이다. 그 안의 눈도 크기만 클 뿐 경도는 인간의 눈과 같아서 오우거 공략으로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쓴다.
‘눈알을 관통시켜 뇌까지 찌른다.’
뇌에 출혈이 일면 제아무리 오우거라고 해도 재생할 수 없다.
츄아악!
가브는 오우거의 손을 피해 중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걸죽한 녹색 피가 놈의 눈에서부터 질질 흐른다.
‘운이 좋군.’
오우거 공략은 일반적으로 한쪽 발목을 베어 내 넘어지게 만든 후에 목을 베거나 눈알을 찔러 뇌출혈을 일으키는 것이다.
석궁으로 눈을 노리는 방법도 있지만, 10미터에 근접한 초대형 마물답게 눈알 크기도 30센티가 넘어 위험을 무릅쓰고 가까이 붙어 명중을 시켜도 화살이 뇌까지 파고들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의 공략이 거의 유일한데, 운 좋게도 바로 치명타를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리석게 보자마자 흥분하여 몸을 숙인 것을 보면,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보지 않은 놈이 분명하다.
-쿠하아아아!
콰직, 콰직, 콰지지직!
놈은 한쪽 눈을 감은 채로 다가오며 두 팔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 광분한 팔에 걸리는 것들은 나무든 바위든 모두 부서져 나갔다.
가브는 놈의 한쪽 시야에 보이게 움직이며 뒤로 빠졌다.
보조 도발을 맡은 나르크는 침착하게 조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오우거를 유인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대체…… 저 사람은?’
대련 시험에서는 원 위에서 약한 상대들만 잘 고르면 쉽게 20점을 따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붉은달 기사단원 케빌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태도부터 자신을 놀래더니, 오우거를 잡자는 어이없는 발언과 함께 처음 겪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이윽고 홀로 몸을 날려 오우거의 눈에 검까지 박아 넣었다.
나르크는 이런 사람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형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분이었어.’
‘이런 미친, 고작 예비 기사 주제에 저 상황에서 오우거의 눈을 찔렀다고?’
각자가 비슷한 의미로 놀람을 금치 못할 때, 가브의 외침이 상념을 깨웠다.
“나르크! 장기전으로! 조원들은 더 퍼져!”
“옙! 조장!”
“예, 대장!”
조원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대장이라고 칭하는 이도 둘이나 있었다.
가브는 오우거와 마주 보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나르크가 도발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가브를 기점으로 오우거와 나르크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가 이번 토벌의 관건이기에 바로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때.
척.
오른발 뒤꿈치에 단단한 나무뿌리가 걸리는 것이 느껴진다. 조원들에게 조심하라고 해 놓고 정작 자신이 걸린 것이다.
중심을 잃고 뒤로 기울어지는 사이, 거대한 그림자가 몸 전체를 뒤덮는다. 2미터짜리 발바닥이 빠른 속도로 덮쳐 온다.
“제길!”
가브는 뒤로 허리를 완전히 꺾은 상태에서 왼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가브의 몸이 공중에서 두 바퀴 돌고 바닥을 구른다.
그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오우거의 발이 애꿎은 바닥을 찍었다.
콰앙!
바로 주먹이 꽂히면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몸을 일으켰을 때, 아직 들리지 않은 놈의 발목에 진녹색 혈선이 그어지는 것이 보였다.
치이이익.
깔끔한 위치, 적당한 깊이. 나르크는 단방패의 이점을 이용해 두 손으로 한손검을 잡고 오우거의 발목을 베었다.
-크허어어엉!
덕분에 놈의 목표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르크를 보는 시간은 벌었다.
“오른쪽 위주로!”
“예!”
가브는 나르크와 함께 시야가 제한적인 오우거의 오른쪽으로 돌며 발목 살을 야금야금 파먹었다.
뇌출혈이 있지만 저 정도 출혈량으로는 죽을 때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 전에 위기를 느껴 도망칠 수도 있다.
그 전에 발목을 자르거나 치명상을 한 번 더 입혀야 한다.
푹, 푹, 서걱!
조원들은 가브와 나르크의 숙련된 움직임에 두려움을 걷어 내고 사전에 얘기했던 대로 발목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오우거를 잡은 경험이 없을 뿐, 그들의 화살과 검은 숙련된 마물 사냥꾼들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정확했다.
-쿠아아아악!
오우거는 돌연 포효를 내지르더니 왔던 방향으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항상 포식자로 살아왔던 놈은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혼란을 느꼈다.
머리는 어지러워지고, 시야는 점점 뿌옇게 변하며, 고작 한 발로 짓누르면 터지는 인간 따위가 한 대도 맞지 않고 점점 자신의 살을 파먹는 경험은 매우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어엇! 도, 도망간다!”
“다 잡힌 놈이 도망친다!”
“안 돼!”
오우거의 오른쪽 발목은 거의 덜렁거리고 왼쪽도 뼈가 훤히 드러나 있어, 최소 한 시간은 지나야 회복이 될 것으로 보였다.
타다다닥.
가브는 아무 말 없이 바로 놈의 뒤를 바짝 쫓았다.
보폭에서 대여섯 배는 차이가 나지만 그 속도는 비슷했다.
그는 달리면서 등에 멘 작은 석궁을 꺼내어 허리띠에 달린 희한한 모양의 화살을 장착하고는 놈의 등에 쐈다.
팍!
작은 화살은 당연하게도 오우거의 살가죽을 뚫지 못하고 목 언저리 피부에 얄팍하게 꽂혔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공격이었기에 조원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같이 따라붙던 나르크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오크 힘줄?”
화살 끝에서부터 가브에게까지 파랗고 가는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것을 봤음에도 무슨 생각인지 의문이 들었을 때,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지직!
시야가 온전치 못한 오우거가 굵직한 나무에 너덜거리는 발을 처박은 것이다.
본래는 나무가 부러져 날아가야 했으나, 이번에 부러진 것은 오우거의 오른발이었다.
쿠우우우웅!
중심을 잃은 오우거는 앞으로 고꾸라지다가 바닥을 두 손으로 짚고, 무릎으로 기어서 계속해서 도망쳤다.
그때, 눈으로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이, 이게 무슨!”
“헐…….”
“형님! 위험합니다!”
가브가 한 손으로 줄을 당기며 오우거의 종아리에 올라타 허벅지를 뛰어올라, 등을 등산하듯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푹.
화살이 박혀 있는 목 언저리까지 올라간 가브는 망설임 없이 중검을 깊이 찔러 넣었다.
그것에 반응한 오우거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몸을 뒤집었다.
꼼짝없이 바닥에 깔려 쥐포가 될 상황, 그 짧은 순간에 가브는 검을 뽑으며 반쯤 고개를 돌린 오우거의 이빨을 잡고 위로 튀어 올라 남은 한쪽 눈에 중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그아아아악!
오우거는 몸이 떨릴 만큼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쳤다.
퍼어억!
공기를 찢는 듯한 굉음을 끝으로 장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나르크와 린 바레스를 포함한 조원들이 어떻게 된 상황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왔다.
오우거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마치를 세수하듯이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세로 멈춰 있다.
그리고, 그 손등 위에 한 남자가 우뚝 올라서 있었다.
왕처럼 군림해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조원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오우거가…….’
‘이렇게…….’
“약했나……?”
“뭐?”
“아, 아닙니다, 대장!”
저 멀리서 지켜보던 기사 케빌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땀이 흥건하다. 자신이었다면 과연 오우거를 저렇게 잡을 수 있었을까?
‘가츠 아이드, 가츠 아이드…….’
기사 케빌의 뇌리에 그의 이름이 깊게 박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