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쾅!
“또 털렸다고?”
작은 집무실을 호통 소리가 꽉 채웠다.
그 크기에 비해 호화로운 금붙이가 많이 보인다.
“네……. 그게, 이번에는 마드리아 마을이…….”
“이런 썅! 그 도적 새끼들 진짜! 아오!”
새드 레멜리오 자작은 육중한 몸을 일으켜 의자를 치고 새 모양 금장식을 바닥에 내려뜨리려다가 멈추었다.
“그 새끼들을 진짜……. 어떡하지?”
“각하…… 그, 왕비님께 한번 부탁하시는 건…….”
“안 돼, 안 돼. 저번에도 했는데 또 어떻게……. 누님이 이젠 나 쓸모없다고 내칠지도 몰라. 하……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똑똑.
“뭐야?”
그의 날카로운 대답에 집무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얼굴을 살짝 들이민 기사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뭐? 누군데? 오늘 약속 없지 않아?”
“가츠 아이드 남작이라고 합니다.”
“남작? 아니 뭔 약속도 없이 찾아오고 지랄이지?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도적 건 관련해서 말씀을 나누시고 싶답니다.”
스윽.
새드 레멜리오는 바로 집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래서 어디에 계신데? 잘 모시고 있고? 싸움은 잘하게 생겼어?”
“예, 접객실에서 극진히 대접 중입니다…….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귀하신 분들인데 직접 가서 맞이해야지. 가자.”
“예, 주군.”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방글방글 미소를 띠며 접객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레멜리오성의 접객실은 호화스러웠다.
바닥에는 왕을 상징하는 붉은색 카펫이 넓게 깔려 있고, 벽에는 노란빛을 띠는 검과 방패, 금으로 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자작이 부릴 수 있는 사치를 최대로 부리는 느낌이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아이드 남작, 반갑소!”
얼굴은 반들거리고 배는 불뚝 나온 새드 레멜리오 자작은 사람 좋은 미소로 가브에게 다가와 두 손을 펼쳤다.
가브는 예의상 일어나 맞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포옹을 당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날 찾아오고, 역시 아직 세상은 아름답소! 오늘 아이드 남작과 만나게 해 주신 네비아 신께 감사드리오!”
“네비아 신께 감사를…….”
“앉으시오! 앉아, 앉아! 여봐라! 후하게 차려 와라!”
“괜찮습니다.”
“아이고, 아니오. 앞에 두고 먹고 싶은 만큼만 드시오. 남으면 버리면 되지. 하하하!”
내성은 아무리 귀족의 신분을 증명해도 사병들과 함께 들어올 수 없다.
성주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가브는 레멜리오에게 말하여 위케리스 십인대를 접객실로 불러들였다.
“어…… 그러니까, 이 인원이 전부란 말이오?”
열 명, 가브를 포함하여 열한 명이라는 말에 레멜리오의 얼굴에 실망감이 짙게 비쳤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부류다.
“예.”
“아…… 그…… 작은 힘이라도 이렇게 도움을 준다니 감사히 받겠소. 하지만 알다시피 요즘 그놈들 잡으려고 하두 돈을 쏟아부어서 보상은 많이 못 주는데…….”
처음과 달리 지금은 등받이에 등이 바짝 붙어 있다.
눈빛도 피하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되니 아예 가 줬으면 하는 마음도 엿보인다.
가브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깍지를 끼며 진중하게 말했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이 해결될 경우 제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상이 필요 없다는 말에 레멜리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는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뒷말을 알아듣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아, 아하~! 그럼, 그럼!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가 원 없이 알리겠소! 이래 봬도 나 아주 발이 넓어!”
그는 의자를 젖히더니 한쪽 발을 들어 올려 보여 주기까지 했다.
가브는 이후 레멜리오 자작과 그의 기사 체무아에게 도적 건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들었다.
“아주 신출귀몰한 놈들이오! 쳐들어왔다 싶어 가 보면 다 털고 튀었으니까.”
“마드리아 마을은, 대기하고 있던 자경단이 갔을 때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생존자들 말로는 실력도 귀신처럼 대단하다고 하더이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에 휩싸여 이미 꽤 많은 인원이 자작령을 떠났습니다.”
정보를 종합해 보면 도적들은 보통 삼사십 명 정도의 인원으로, 빠르게 물품이나 화폐만 약탈하고 빠진다.
속도가 생명이라서 그런지 여자는 납치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작령의 주민은 현재 1할 가까이 빠져나갔고, 두려움에 경제도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상태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내 둘은 마치 다른 아이에게 맞고 와서 형에게 이르는 아이들 같았다.
가브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을 중지시켰다.
“잠시, 이곳은 누구의 영지입니까?”
가브가 자작령이 그려진 지도의 한 곳을 검지로 가리켰다.
도적 떼가 자주 출몰하는 마을들 너머의 영지였다.
“거긴 세베아 백작님의 영지입니다.”
“세베아 백작령도 도적 떼의 피해를 입었소?”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곳과 워낙 교류를 하지 않아서…….”
“백작님과는 평소 사이가 어떻습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레멜리오 자작은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뀌었다.
“흥,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콧대만 높은 작자지.”
체무아가 가브에게 가까이 다가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속삭였다.
“주군은 친한 분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작위가 더 높은 귀족들하고는.”
“그렇군요.”
가브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손을 들어 엑스가 쳐진 곳을 찍었다.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베베수……. 한번 털렸던 곳을 왜?”
“이들은 약탈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엥? 그게 무슨……?”
가브는 그들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영지 약화. 지도상 가장자리에 있는 영지에서 자주 벌어지는 계략이다.
해당 영지의 치안이나 경제를 악화시켜 가까이 붙은 영지로 영주민들이 이주하게 만들거나, 영지를 통째로 삼키는 방식이다.
가장자리 영토를 부여받은 영주는 무슨 일만 터지면 기본적으로 영지 약화를 의심하는데, 이들의 표정을 보니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듯하다.
“그럴 수가…….”
“모든 게 딱 들어맞는구먼! 이익! 그 콧수염만 긴 변태 영감이! 당장 쳐들어가서……!”
가브는 한 손을 들어 쉽게 흥분한 그를 진정시켰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도적의 수장을 잡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 후…… 그렇지. 고맙소, 고마워.”
* * *
가브는 십인대를 이끌고 그날 바로 베베수 마을로 이동했다.
레멜리오 자작도 체무아와 사병 서른 명을 가브에게 붙였다.
“경비가 너무 느슨하거나 사병이 많이 보이면 의심을 살 수 있소. 곳곳에 숨어서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신경 쓰시오.”
“예, 남작님. 편히 대해 주십시오.”
“그래, 호각 잊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먼저 도적 무리를 발견하면 호각을 불어 위치를 알리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틀 뒤, 베베수 마을 서쪽에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 삐이이!
“도적! 도적의 습격이다!”
절반 이상이 말을 탄 도적들은 사방에서 호각 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하며 몸을 돌렸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젠장! 함정이다! 퇴각해!”
“퇴각!”
도적들은 들어왔던 길인 서문으로 다시 말 머리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사병들은 기동력이 달려 눈앞에서 그들을 놓치기 일쑤였다.
도적 무리의 대장은 마을 밖을 의미하는 서문에 가까워지자 안심하며 고개를 돌려 뒤쫓는 사병들을 보았다.
“크크큭 맨날 그렇게 쫓아와 봐라! 우리가 잡……!”
그때 그는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쿠웅!
찌릿한 충격이 온몸을 관통하고, 숨이 턱 막혀 온다.
시야가 순간 암전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인지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길목에 굵은 밧줄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다른 부하들의 말도 그것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밧줄은 5미터 간격으로 세 개나 더 설치되어 있었다.
“끄윽, 다들 정신 차리고 날 따라와!”
도적이라도 대장은 대장, 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부하들을 이끌었다.
서문에는 이미 많은 사병들이 몰려 있었다.
그는 경로를 틀어 좁은 길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으로 조금 들어가자 다섯 명의 사병과 마주쳤다.
도적들은 기사만 파견되어 있지 않다면 사병들보다 실력이 우위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돌진은 거침이 없었다.
“뚫어!”
“죽여 버려!”
“와아아아아!”
도적들과 사병들이 마주하기 10미터 전, 사병 중 한 명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그들에게 던졌다.
촤악!
선두에 선 도적 대장은 반사적으로 동그란 그것을 검으로 베었다.
쉽게 잘려 나간 그것은 동시에 새하얀 가루를 사방에 퍼트렸다.
“읍, 뭐야!”
“큽, 콜록!”
장내는 옅은 안개가 낀 듯이 뿌옇게 변했고, 기세 좋게 돌진하던 도적들은 목의 고통을 호소하며 기침을 해 댔다.
“케헥! 비, 비겁한 새끼들이!”
캐마산, 캐마라는 꽃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 것을 칭한다.
캐마 꽃에는 매운 통증을 느끼게 하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캐마산을 적에게 뿌리고 전투력이 떨어진 틈을 타 공격을 하는 것이 코볼트들의 주 전투 방식이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가면 그 강렬한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고통이 덜하다.
도적들이 복면을 하고 왔다면 효과가 덜했겠지만 다행히도 모두 맨얼굴이었다.
가브는 목에 걸쳐 놓았던 복면을 코 위로 올려 쓰고 도적들에게 달려갔다.
그 뒤로 복면을 올려 쓴 대원들도 함께 덤벼들었다.
슥, 서걱, 푹, 푹!
캐마산 가루가 워낙 적었기에 도적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가브와 대원들을 상대했다.
그러나 도적들의 예상과는 달리 실력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막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살갗이 베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새빨간 피가 허공에 흩뿌려져 하얀 가루를 가라앉혔다.
“아, 오…….”
뒤늦게 도착한 체무아와 사병들은 그 난전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길만 막고 있었다.
아군이 밀리면 어떻게든 들어가겠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체무아는 멍한 눈으로 그 난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브는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격을 피하고 나중에 생기는 빈틈에 미리 검을 찔러 넣었다.
체무아는 저 움직임이 얼마나 높은 경지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이 본 검사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당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다른 십인대원들도 수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라면 질 리가 없다는 단호한 눈빛을 하고 노련하게 도적들을 제압하고 있다.
‘자신감의 근원이…… 이거였던가?’
든든한 뒷배도, 넘치는 돈도 아닌 압도적인 무위.
‘고작 남작인데…….’
그때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을 느낀 도적 대장이 다급히 외쳤다.
“큭, 빠져! 빠져, 뒤로!”
“뒤로!”
뒤쪽에 몇 배는 더 많은 사병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도적들이었다.
그때 가브가 벽을 타고 도적들을 넘어가 안쪽 깊숙이 있던 대장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쳤다.
퍽!
“꺼윽!”
대장은 그 즉시 옆으로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었다.
여섯 번의 습격 중에 처음으로 도적을 완벽히 소탕, 체무아는 이 소식을 어서 레멜리오 자작에게 전하고 싶었다.
스물두 명의 도적 중에 열 명이 죽고 나머지는 사로잡았다.
가브는 그들을 우물이 있는 광장에 일렬로 무릎을 꿇리고 눈을 안대로 가렸다.
도적은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이웃이 내일 칼을 들고 와서 도적질을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마을 주민이 도적이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에는, 단기적이지만 이만큼 자극적인 방법도 없다.
“여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게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라.”
도적들은 가브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바로 선택하지 못했다.
눈이 가려져 있어 누가 무슨 선택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때 한 도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처, 처자식이 저에겐 더 소중합니다!”
그의 외침을 기점으로 다른 도적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저는 노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목숨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다시 찾아온 적막, 두 숨을 내쉴 때까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공기가 찢어졌다.
서걱서걱.
눈이 가려진 도적들은 어떤 선택을 했든지 벌벌 떨었다.
분명 누군가가 죽어 나가는 것은 확실한데 어떤 선택을 한 쪽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대장 도적은 자신의 얼굴에 온기가 남아 있는 피가 흩뿌려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차가운 금속이 턱 끝에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두 손을 올려 싹싹 빌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턱.
가브는 그의 안대를 검으로 끊었다.
그는 옆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이 모두 일어섰던 자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금처럼 다행일 때는 없었다.
“네놈들 대장은 어디 있지?”
“그, 그게…… 모, 모릅니다. 진짜 정말 모릅니다! 그쪽에서 항상 찾아옵니다. 저희가 어디 있든지 귀신같이 알아내서 명령만 전달하고 갑니다……. 제발, 살려 주십쇼!”
가브는 두려움이 가득 담긴 그의 눈동자를 살펴보았다.
두려움을 품고는 거짓을 고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발언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어디 있든지 귀신같이 알아서 온다라…….’
가브는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고는 바로 검을 검집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