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57
57화
‘귀신같이 찾아온다.’
가브는 이 말을 듣고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위치 추적 마법.’
생명체에게만 쓸 수 있고, 기한도 거리도 한정적이며 대상이 죽으면 사라지는 마법이다.
난이도가 낮다고는 하나 무려 마법이다.
만약 마법이 맞는다면 이 도적 무리의 수장은 대륙에 백 명도 되지 않는 귀한 마법사라는 뜻이다.
마법은 가장 생존율이 높은 수장 격 사내에게 썼을 것이다.
죽어서 마법이 풀리면 그 무리를 버리는 식으로 운영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10킬로미터 이내에서만 위치를 알 수 있다고 들었다.
넓다면 넓지만 본래의 수사망보다는 훨씬 줄어들었다.
바뀌는 것은 없다.
가브는 짐을 챙기고 말에 올라탔다.
“체무아 경.”
“예! 남작님.”
“레멜리오 자작님에게 전달하여 동원 가능한 사병들을 전부 끌고 와야 한다.”
체무아는 살짝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네. 그…… 정말 마법사일까요?”
마법사는 그 이름만으로 두려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체무아는 가브와 십인대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지만 마법사라는 인외 등급의 존재를 상대하는 건 별개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가브는 거짓을 살짝 보태었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도 모든 가능성을 대비하는 것이 좋으니.”
“예, 알겠습니다.”
“하늘 잘 보고 있고.”
“예, 폭죽이 안 터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래야겠지.”
폭죽, 사해 전용 비폭처럼 수십 미터 상공에서 터지며 빛을 발하는 물건이다.
비폭보다 소리도 크고 눈에 잘 띄어 적들에게도 알릴 가능성이 크지만, 비폭이 없으니 아쉬운 대로 레멜리오 자작에게 지원을 받았다.
마법사가 있는 도적 무리라면 질적으로나 수적으로나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인원으로는 소탕하는 과정에서 위험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니 위치만 확인하고 지원군을 데려와 단번에 소탕할 계획이지만, 피치 못할 경우에는 폭죽을 터트려 긴급 지원을 받기로 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이럇!”
체무아는 사병 둘과 함께 레멜리오성으로 향했다.
가브는 남은 사병들과 위케리스 십인대를 이끌고 서문 너머에 있는 거대한 산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5인 1조로 여덟 개 조를 편성하여 광범위하게 수색에 들어갔다.
수색을 시작한 지 반나절쯤 지났을 때, 위케리스가 조장인 곳에서 반응이 나왔다.
“각하, 여길 보십시오.”
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다른 곳보다는 완만하고 나무가 적은 숲길, 그곳에 수풀이 일정하게 넘어져 있는 흔적이 보였다.
“마차군.”
이렇게 길도 나지 않은 곳에 마차를 무리하게 끌고 오는 것은 안쪽에 목적이 있다는 것, 가브는 손을 들어 다른 조에 신호를 보내고는 흔적을 따라 바로 걸음을 옮겼다.
가브가 앞장서서 가던 중에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오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그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주먹을 쥐었다가 양옆으로 휘적거렸다.
수신호를 알아들은 위케리스 십인대는 재빨리 양옆 수풀로 몸을 숨겼다.
그 뒤의 사병들도 눈치껏 몸을 숨겼으나 몇 명이 어리둥절해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들의 소리를 들은 무리는 흠칫하며 멈춰 섰다.
“잠깐, 무슨 소리 들렸지?”
“추적? 젠장, 튀어!”
한 눈치 빠른 사내가 병사들을 발견하고 크게 외치며 뒤돌아서 달렸다.
말을 탄 자들도 서너 명 있었지만 말 머리를 돌리는 것 때문에 조금 더 늦었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가브는 바로 튀어 나가며 외쳤다.
“잡아!”
“예, 각하!”
“잡아라!”
가장 뒤에 이제 막 말 머리를 돌린 사내 한 명이 보인다.
가브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말의 엉덩이를 밟고 사내의 뒷덜미를 낚아채었다.
그러고는 낙하하며 사내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직! .
“끄악!”
가브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다음 말을 향해 달려갔다.
아직 가속도가 붙지 않아 따라잡기는 쉬웠다.
타닥.
단숨에 말안장 높이까지 뛰어오른 가브는 말에 타고 있는 사내의 등을 밟고 한 발 더 앞으로 뻗어 말 머리를 발판 삼아 날아올랐다.
그의 몸은 지상에서 4미터 가까이 떠올랐다.
“어어-.”
“우아…….”
그 묘기에 가까운 몸놀림에, 뒤따르던 십인대 대원들은 순간 멍하니 구경만 하다가 위케리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히이이잉!
쿠궁!
머리를 밟힌 말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말에 탄 사내도 덩달아 비틀거리다가 낙마하여 뒤따라온 사병들에게 잡혔다.
퍽, 퍽! 털썩.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브가 지나가는 길에 있던 사내들이 픽픽 쓰러진다.
“저게 정말 사람이냐?”
“우리 편인 게 참 다행이야.”
“다행이지.”
가브는 가장 앞장서 가는 놈만 먼저 잡기 위하여 달리며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몸통 박치기를 하거나 등을 밟으며 지나쳤다.
속도도 거의 줄어들지 않는 행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뒤의 대원들이 수상한 사내들을 포박하기에는 충분했다.
총 열다섯 명, 탈출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복장이나 짐, 분위기로 보아 지금까지 쫓던 도적들과는 다른 부류로 보였다.
“이거 왜 이러는 거요! 도적들이오? 우릴 풀어 주시오!”
이마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악한다.
가브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마주했다.
“도적들은 어디 있지?”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도적이라뇨?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왜 도망쳤지?”
“그, 그야 그쪽들이 하두 무섭게 쫓아오니까.”
“어디로?”
“어디긴 뭘 어디요? 그냥 반대편으로 달렸지 뭐…….”
뚜둑, 뚜둑.
가브는 목 관절을 풀고는 허리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나?”
“에?”
사내는 지금까지 눈치로 먹고살았다.
그는 가브와 눈을 마주한 순간 주마등이 스치며 지옥 불에 살짝 발을 담그고 나왔다.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제가 도적 무리의 본거지로 편히 모시겠습니다.”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가브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 흡족해하며 턱짓했다.
“앞장서.”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흉터 사내는 손만 묶인 채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말을 타고도 도망을 못 갔으니 감히 도망칠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았다.
‘도착만 해 봐라. 니네들 다 통구이로 만들어 주마.’
툭.
“쓸데없는 생각 말고 가.”
“예! 옙! 당연하죠, 나리.”
사내는 마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가브를 보고 흠칫 놀라며 앞장섰다.
사삭, 사사삭.
가브는 귀를 쫑긋하며 발을 멈추었다.
수풀 소리가 부자연스럽고 공기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포위?’
의심의 순간에도 수풀 스치는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가브는 뒤돌아서며 소리쳤다.
“후퇴!”
“후퇴!”
“후퇴!”
가브가 멈추자마자 이상함을 느낀 위케리스는 재빠르게 복명복창을 하며 뒤로 빠졌다.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과과과과광!
“으아악!”
“크하아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브가 있던 자리에 마치 거대한 마물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땅거죽이 솟아났다.
그 자리에 있던 길잡이와 그의 동료들은 하늘 높이 떠올라 여기저기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치거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파동이 매우 강하여 멀쩡한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마……법!”
“마법이라니!”
병사들은 가브의 말에 희박한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그사이 사방에서 가죽갑옷을 입은 무리가 튀어나왔다.
그 수는 대충 보아도 몇 배는 넘는 듯했다.
가브는 저 멀리 칼로 깎아 낸 듯한 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절벽으로!”
“절벽으로!”
머릿수도 최소 다섯 배 이상 차이가 나고 마법을 직접 눈으로 봤으니 사기도 꺾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가브가 날고뛴다고 해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끝없는 후퇴보다는 포위를 당하지 않기 위해 절벽에 등을 주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처적, 척.
절벽에 도착하자 위케리스 십인대는 가브의 생각을 읽고 바로 뒤돌아서 전투를 준비했다.
다른 병사들은 몇몇이 절벽을 오르려다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주 검을 들었다.
적의 수는 많지만 전에 보인 그들의 활약에 이상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후퇴할 수 없는 절벽에 등을 대고 검을 드니 금세 비장한 기운이 솟아난다.
가브는 중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한 걸음 옮기며 입을 열었다.
“폭죽 터트리고, 마법은 신경 쓰지 마. 한 명당 다섯 명만 베면 승리한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차분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병사들의 가슴을 울렸다.
꽤 먼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왔음에도 그에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계산법이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승리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와아아아아!”
“다 죽여 버려!”
포위에 실패한 도적들은 한 무리가 되어 무섭게 달려왔다.
그러나 절벽을 등지고 비장한 눈으로 맞이하는 가브와 병사들을 보고는 급격히 멈춰 서며 주춤거렸다.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뭐 하고 있어, 이 멍청한 것들아! 다 쳐 죽여!”
마법사다. 그는 오랜만의 전투에 흥분하여 항상 후방에 있어야 한다는 철칙도 잊고 전열에 튀어나와 있었다.
“에잇, 비켜! 이 새끼들아!”
마법사는 그 말을 몸소 실행하기 위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손에는 파란 불길이 천천히 모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주춤거리던 도적들이 다시 무기를 추켜들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래! 우리에게는 마법사가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각하 만세!”
“다 죽여 버려!”
“와아아아아!”
“쳐라!”
가브는 백여 명이 달려오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허리춤에서 손가락 길이만 한 암기를 꺼내어 마법사에게 던졌다.
팅!
“허업!”
마법사는 자신의 미간 바로 앞에서 튕겨 나가는 암기를 보고는 기겁하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덕분에 지금까지 모았던 화염구는 다시 대기로 흩어져 버렸다.
그사이 가브와 대원들은 도적 무리와 맞붙었다.
퍼벅, 퍽, 퍽, 챙, 채앵!
마법사와 함께 온 도적들은 일반적으로 궁핍한 마을 주민들이 도적으로 변절한 자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전에 마을 아래에서 잡은 자들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녔다.
푸욱! 챙, 채앵!
“아우!”
위케리스는 눈앞의 도적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가 그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다른 도적의 검을 힘겹게 쳐 내었다.
일당백이라고 자부하는 십인대 대원들도 모두 비슷한 모양새다.
혼자서 세 명 이상을 맡기가 힘들 정도의 기술과 힘을 지니고 있다.
레멜리오의 사병들은 한 명도 간신히 상대하고 있다.
그나마 가브가 홀로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기에 버티는 것이다.
나무와 수풀이 많은 숲이었지만 하나의 입구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완전히 난전이 되었다.
“젠장, 젠장! 왜 안 터져!”
위케리스 십인대의 대원 케라트는 가장 키가 작지만 가장 빠른 자다.
그래서 연락이나 특수 임무를 자주 맡는다.
그는 구석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중이다.
그때 위케리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케라트! 아직이야?”
케라트는 벌떡 일어나서 위케리스를 보며 대답했다.
“대장! 이거 아무래도 불발탄 같습니다!”
퍼벙!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폭죽이 뒤늦게 터졌다.
폭죽이 향한 방향에는 위케리스가 있었다.
그의 갑옷에 불꽃이 머물렀다가 터지는 것을 보고 케라트는 당황을 금치 못하여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허, 이 시팔.”
“야, 이 개새끼야!”
펑!
그사이 하나가 더 터진다.
케라트는 허망한 눈으로 땅바닥에서 빛나는 불빛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돌연 폭죽을 내팽개치고 허리춤에서 팔뚝 길이의 중단검 두 개를 꺼내어 들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 죽여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