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6
6화
가려진 후드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얼굴은 여인처럼 하얗고 턱이 갸름하다. 진한 화장과 툭 튀어나온 목젖은 그가 여인인지 사내인지 가늠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죽여어어!”
하얀 로브를 입은 자가 가브를 보며 표독스럽게 소리치자, 사방에서 조심스럽게 조여 오던 사병들이 검을 추켜들며 덤벼들었다.
가브의 눈에 보이는 네 명 모두 장검과 한손방패로 무장했고, 목까지 감싸는 체인메일을 입고 있다.
아래층에서 마주쳤던 자들과는 격이 다른 장비다.
다다다다닥.
뒤에서는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압박해 왔다.
가브는 차갑게 머리를 가라앉히며 가장 가까운 사병에게 중검을 찔렀다.
가브의 공격이 들어오는 박자는 오묘하다. 발이나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막아야 하는데, 예상과는 다른 타이밍에 들어온다.
푹.
사병의 살과 체인메일이 닿는 턱과 목 사이에 중검이 쑤욱 들어갔다. 사병은 한손방패로 그제야 중검을 막으려고 휘둘렀지만 팔에 힘이 없다.
가브는 검을 뽑음과 동시에 반대로 휙 돌며 다른 사병이 내려치는 장검을 피하고, 검의 손잡이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
콰직.
사병은 코뼈가 함몰되는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가브는 그의 배를 발로 밀어 그 뒤에 덤벼드는 사병에게 보내고 심장을 힘껏 찔렀다.
푸욱!
체인메일은 베는 공격에는 우수한 방어력을 보이지만 찌르기에는 그다지 방어율이 좋지 않다.
거기에 가브의 힘과 중검의 견고함이 더해져 사병의 심장은 한번에 꿰뚫렸다.
그러나 그 뒤에 있는 사병의 심장까지는 꿰지는 못했다. 가브는 옆에서 달려오는 마지막 한 명을 무시하며 앞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팍, 푹!
동료의 몸을 붙잡은 채 속수무책으로 뒷걸음질을 치던 사병은 결국 기둥에 부딪쳤고, 동시에 가브의 검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압!”
가브는 두 심장을 꿴 검을 거칠게 뽑으며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은 사병에게 휘둘렀다.
텅!
사병이 한손방패로 검을 막음과 동시에 목을 찔러 왔다. 한손검방 기술의 기본기지만 막는 타이밍과 찌르는 방향이 적절하면 가장 까다로운 수다.
가브는 사병의 검 끝이 지척에 다가왔을 때, 검을 안쪽으로 당기며 손잡이로 그것을 쳐 냈다.
슥.
아슬아슬하게 쳐 낸 사병의 장검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가브는 관성에 따라 자신에게 오는 사병의 목에 어느새 꺼낸 기형단검을 쑤셔 박았다.
푹.
“꺽, 꺼윽.”
가브는 아직 떨고 있는 사병의 몸을 밀어 단검을 뽑았다. 그 뒤로 로브를 입은 사내가 바로 덮쳐 왔다.
“이이이야아!”
턱.
가브는 그의 단검을 든 팔목을 손쉽게 잡아채고, 바깥쪽으로 한 바퀴 돌렸다.
으드득.
“끼이야아아악!”
가브는 듣기 싫은 초고음의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두 팔을 뒤로 꺾어 붉은 줄로 감고,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는 베라카를 어깨에 들쳐 업고 계단으로 향했다.
처적, 척척.
계단 입구에서부터 네 개의 창날이 가브를 맞이했다. 가브는 바로 하얀 로브를 입은 사내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사내는 창날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끄아아! 아파! 나 아파아! 비켜! 비켜, 이 버러지들아!”
역시 이자가 데비오 소엘이 맞았다. 팔을 살짝만 비틀어도, 귀하게 자란 덕에 효과는 좋았다.
대충 보아도 열이 넘는 사병들이 주춤주춤 물러난다.
2층 복도까지 내려가자 양쪽 끝에 창문이 보였다. 한쪽에는 사병이 둘만 있다. 등을 보이면 언제든 찌를 기세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려는 한심한 귀족에게 충성심이 높은 것이 아니라, 놓쳤을 경우에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이 두려운 것이다.
스슥, 스슥.
가브는 벽에 붙어 게걸음으로 조금씩 이동하다가, 데비오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검을 고쳐 잡았다.
“이런 주인에게서 벗어나게 해 준 걸 고마워해라.”
“안 돼!”
서걱.
가브는 서슴없이 데비오의 목을 긋고 등을 발로 차 사병들이 많은 곳으로 떠민 뒤, 한 손으로 베라카의 다리를 단단히 잡으며 사병이 둘밖에 없는 곳으로 달려갔다.
“비켜!”
타인의 피를 뒤집어쓴 가브의 성난 포효와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사병 둘은 제대로 덤벼들지도 못했다. 창은 겨누고 있으나 그 끝에 힘이 없다.
터엉!
가브는 두 개의 창대를 중검으로 강하게 쳐 내고 한 명을 몸통으로 밀치며 창문을 향해 달렸다.
“잡아!”
“석궁을 쏴!”
가브는 중검을 먼저 창문 밖으로 던지고 거의 동시에 난간을 밟고 높이 날아올랐다.
베라카까지 업고 있었지만 5미터쯤 떨어져 있는 담장 위에 가뿐히 올라섰고, 바로 그 아래로 고민 없이 뛰어내렸다.
터덩, 텅.
바닥에 착지하기 직전, 눈앞에 튕겨 올라오는 자신의 중검이 보인다. 검신은 이쪽을 향해 있고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힘들다.
푹.
덕분에 충격 완화도 시키지 못하고, 어깨를 검에 찔렸다. 자칫하면 기껏 구해 온 베라카가 검에 꼬치가 될 뻔했다.
“큭, 시팔.”
가브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검을 보았다가 저택 안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절뚝거리며 달렸다.
히잉, 히잉!
다행히 인근에 묶어 둔 말이 마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있다. 바로 말에 올라타 박차를 가했다.
이히잉!
다닥, 다그닥, 다그닥.
가속도가 붙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에게도 말이 있지만 마차와 분리를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것이다.
* * *
그렇게 숲을 한 시간쯤 달렸을 때, 입안이 메말라 쩍쩍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추워.”
가브는 그 힘겹고 낯익은 목소리에 바로 말을 멈춰 세우고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베라카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저택에서 멀어지는 데만 신경 쓰느라 베라카가 옷을 전혀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었다.
“깼군.”
“가브, 나 되게 무서웠었…….”
“꿈이다.”
“그, 그래요?”
가브는 대답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가죽옷을 벗고 안의 천 옷까지 벗었다.
조각 같은 근육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흉터가 빼곡한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슥.
“우…… 냄새.”
불평하는 베라카에게 천 옷을 거침없이 씌우고, 자신은 가죽옷만 다시 입었다.
윗도리만 입혔지만 체격 차이가 많이 나서 원피스 같은 모양새다.
가브는 혼자 만족하며 다시 말을 몰았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베라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거예요?”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일단 꿈이라고 우긴 것은 통하지 않았다는 건 알겠다.
“그래.”
“아하, 집…… 휴.”
깊은 곳에서부터 뱉어 내는 안도의 한숨, 납치를 당하고 흑마법의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도 의외로 담대하다.
“배고프지는 않…….”
쿠웅.
가브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입을 다급히 다물고 소리에 집중했다.
“왜 그래요?”
“쉿.”
쿵.
두 번째 들려왔을 때는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굳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잎이 비정상적으로 흔들린다.
드드드드.
바로 베라카를 안아 들고 말안장을 박차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앙!
동시에 위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내려와 말을 찍었다.
말은 그 한 방에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육포가 되었고, 가브는 공격을 한 대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우거……!”
-그으으어어어.
크기 10미터, 주먹 크기만 황소만 한 초대형 마물 오우거의 등장이다. 놈의 포효만으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내장이 뒤집히는 느낌이다.
놈은 짓눌린 말의 사체를 번쩍 들어 올려 신경질적으로 찢어발기고는 가브의 뒤를 쫓았다.
쿵, 쿠웅!
나무를 부수고 쓰러트리며 오는 오우거의 속도는 베라카를 안고 있는 가브를 금세 따라잡을 것만 같았다.
가브는 달리면서 베라카에게 외쳤다.
“뛸 수 있겠나?”
“엡, 네!”
“동쪽으로 가라! 마을에 도착하면 자경단에게 붙어 있어!”
“가브는?”
“뛰어!”
가브는 동쪽을 검지로 가리키며 베라카를 던지듯이 내려 주었다. 그녀는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아는지라 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빌어먹을!’
가브는 중검을 뽑아 들며 뒤돌아서 오우거를 향해 달렸다.
보통 오우거보다 1.5배는 더 큰 놈을 정면으로 마주하니 살이 떨린다.
오우거는 그 무시무시한 괴력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인데, 회복 능력도 트롤과 비견될 만큼 뛰어나기 때문에 석궁이나 쇠뇌가 있더라도 혼자 놈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놈의 속도를 일시적으로 줄이고 멀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쿠웅.
놈이 한 걸음에 4미터씩 쭉쭉 나가니 금세 가까워졌다.
오우거는 어마어마한 체중 때문에 발목을 거의 틀지 않는다.
그래서 오우거 토벌대가 꾸려지면 가장 먼저 몸체 크기에 따른 보폭의 최대치와 최저치를 계산하는 법을 배운다.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은 원거리로 빼고, 계산이 느린 사람도 원거리로 빼고, 몸이 느린 사람도 원거리로 빼고, 마지막에 남는 극소수의 인원이 근거리에서 발목을 베며 도발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브는 열 번의 토벌에서 아홉 번이 도발조장 역할이었다.
쿵.
오른발이 바닥에 닿고 왼발이 쳐들린다. 오른발과 마주하거나 그 이상 옆으로 가면 왼발에 밟히지 않는다.
그러나 발목이 잘 꺾이지 않아도 놈은 상대를 밟으려고 한다. 왼발은 필시 가까이에 떨어질 것이다.
쿵!
이때가 공격 타이밍이다.
가브는 중검을 추켜올리며 바로 옆에 떨어진 오우거의 왼쪽 발목을 힘껏 베었다.
츄아아악!
놈의 발목에 혈선이 길게 그어지며 진녹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두꺼운 가죽이 한번에 이 정도로 찢기는 것을 누군가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가브가 기사 못지않게 수련을 했다는 증거다.
놈이 몸을 돌릴 때는 발의 방향이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섣부른 접근은 금지다.
“석궁이라도 있었으면.”
-크으아아아!
놈은 화가 잔뜩 났는지 몸을 반쯤 돌렸을 때 허리를 비틀며 팔을 들어 올렸다.
주먹으로 내려찍는 것은 발과는 달리 뻗을 때 도착 지점을 예측해야 하는데, 덩치에 맞지 않게 빨라서 가장 위험한 공격이다.
가브는 놈이 주먹을 뻗음과 동시에 반대편으로 몸을 날리며 한 바퀴 굴렀다.
콰앙!
“읏.”
그러나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었다. 그 면적이 워낙 넓어서, 검 끝이 범위에 걸려 손아귀를 찢으며 벗어나 땅바닥에 박혔다.
그사이 놈의 발목은 벌써 출혈이 멈추고 실시간으로 상처가 아물고 있다.
같은 곳을 한 번 더 베어서 깊은 상처를 남겨야만 놈에게서 살아서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
가브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놈의 손바닥이 들어 올려지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검을 뽑으며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후웅.
오우거는 가브를 잡기 위해 손바닥을 옆으로 쓸었고, 놈의 새끼손가락 끝이 가브의 등을 스쳤다.
퍼억.
가브는 황소가 전속력으로 부딪친 듯한 충격을 느끼며 저 멀리 날아갔다.
콰앙!
그의 몸은 나무에 부딪쳐서야 멈췄다.
“커헉.”
숨이 턱 막히며 시야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그때,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직!
동시에 방금 전까지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가 놈의 발에 으스러졌다.
어느새 놈의 발목은 상처가 거의 다 아문 반면 가브의 몸 상태는 최악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울컥 올라온다.
사람 기준으로는 조금 힘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초대형 마물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로 생사가 오가는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젠장…… 이 세상은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어…….”
그때, 귓가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구두, 두구두, 두구두.
말발굽 소리, 별장 방향이다. 가브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적이 희망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