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62
62화
후우웅, 턱!
가브는 진 와이번 테라가 하늘로 치솟다가 멈춰 서는 때에 생기는 반동을 이용하여 단번에 등판에 달라붙었다.
한 손으로 테라의 어깻죽지를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띠에 꽂힌 단검을 꺼내어 놈의 몸에 찔렀다.
팍, 팍, 팍, 퍽!
선천적으로 가벼워야 하는 하늘을 나는 마물임에도 가죽의 단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많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같은 곳을 정확히 찔러 간신히 가죽을 뜯어냈지만 칼날은 한 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푹!
가브는 있는 힘껏 다시 한번 단검을 찔러 넣었다.
이제야 절반만큼 들어갔다.
안에 들어찬 근육도 단단한 것이다.
가브는 주먹을 쥐고 마치 망치로 못을 두드리듯이 단검을 내려쳐 더욱 깊숙이 박았다.
키이에에에!
그 통증에 진 와이번 테라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가브를 떨어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악력이 호랑이의 치악력과 맞먹는 가브는 마치 자석처럼 놈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
케헥! 케헥! 키햐아!
테라가 발광을 하는 사이 가브는 단검을 하나 더 박아 넣었다.
총 세 개의 단검으로 가브와 테라의 몸이 이어져 있는 것이다.
이대로 붙어 있으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등에 붙어 있는 이상 가장 위협적인 발톱으로는 어쩌지 못한다.
가브는 천 주머니보다 안쪽에 멘 중검을 뽑아 들었다.
와이번의 기다란 목은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다.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가죽만 잘라 내면 된다.
“하압!”
가브는 중검으로 테라의 목을 세게 내려쳤다.
팍! 팍, 퍽!
중검은 단검과는 달리 그 무게와 중력의 힘으로 인해 금세 가죽에 생채기를 만들어 냈다.
키야아악!
진 와이번 테라도 그것을 느꼈는지 갑자기 긴 목을 돌려서 가브를 물려고 했다.
머리가 돌아가 방향감각을 잃어 몸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탁! 탁 탁!
자신의 날갯죽지도 같이 물어뜯을 생각으로 덤벼들자, 가브는 그곳을 잡았던 손을 놓고 공격을 피했다가 다시 달라붙어 검을 휘두르는 묘기를 보였다.
그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대원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사, 사람이냐……. 진짜.”
“누구네 군주님이냐? 이제 하다 하다 하늘을 날아다니시네.”
그들은 손 놓고 그저 감탄만 연발했다.
“어, 어어!”
그때 진 와이번 테라가 시야에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저 멀리 깎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것 봐라?’
가브는 갑자기 머리를 돌리더니 전속력으로 절벽을 향해 날아가는 테라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벽에 등을 부딪칠 심산인 것이다.
오래 살았다고 보통 머리가 아니다.
후웅!
테라는 벽에 가까워졌을 때 날개를 비스듬히 펼치며 몸을 확 뒤집어 등이 벽을 향하게 했다.
가브는 그 타이밍에 손을 놓고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테라와 가브의 몸이 절벽에 강하게 부딪쳤다.
쿠와아아앙!
산사태라도 일어날 것처럼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여기저기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때맞춰 내려간 덕분에 놈의 몸에 짓눌려 터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놈과 같은 속도로 절벽에 부딪친 충격은 순간 눈이 멀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하였다.
“큽, 큭, 커헉.”
후우우우웅-.
테라도 만만치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같이 바닥에 떨어져 죽는가 싶더니 20여 미터를 두고 갑자기 다시 중심을 잡았다.
가브도 오크 힘줄로 만든 밧줄을 잡아당기며 간신히 위로 올라탔다.
“읍, 크억.”
등에 올라서자마자 그는 바로 뜨거운 피를 토해 냈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시야는 뿌옇다.
그러나 테라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저 평탄하게 앞으로만 날아가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가브는 숨을 멈추고 그 위에서 일어섰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때려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 같았지만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척.
중검을 두 손으로 쥐고, 뿌연 시야로 놈의 목에 난 상처 부위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내려친다.
수걱!
키이에에에엑!
가브는 이미 가죽이 뜯겨 나간 곳을 정확히 내려쳤다.
진 와이번 테라의 목이 절반 넘게 잘리며 공중에서 검붉은 피가 콸콸 쏟아졌다.
놈은 더 이상 어떤 울음소리도, 날갯짓도 하지 않았다.
중심을 완전히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가브는 중검을 내던지고 서로를 잇고 있는 허리띠를 다급히 풀었다.
타닥!
그리고 테라의 등판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쉬이이익!
날아오른 것은 순간의 착각일 뿐, 가브는 테라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브는 재빨리 등을 더듬어 천 주머니의 아랫부분에 달린 줄을 잡아당겼다.
찌지지직.
그러자 천 주머니가 찢어지며 안에 있던 얇고 넓은 천이 바람을 품으면서 순식간에 펼쳐졌다.
그 끝부분은 주머니와 밧줄 여섯 개로 이어져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속도를 감해 주는 역할로, 가브가 직접 설계하여 재봉사에게 맡긴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그때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진 와이번 테라의 몸체가 수십 채의 집들을 부수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하늘의 왕이 추락하자, 그제야 지금의 현실적이지 않던 전투가 현실이었음을 깨달으며 대원들이 기뻐했다.
“우아아아아아!”
“진 와이번이 잡혔다!”
“가츠 아이드 남작님 만세!”
“남작님 만세!”
대원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지만 가브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속도를 감해 주기는 하지만 워낙 낮은 곳에서 펼쳐 바람을 충분히 타지 못했다.
그래서 바닥과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쿠웅!
가브가 떨어질 때에도 꽤나 큰 소리가 울렸다.
발튼과 위케리스, 대원들 몇 명이 기겁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헙!”
“허억! 각하!”
낙하 지점에는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라 시야가 혼탁했다.
발튼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척, 저벅, 척, 저벅.
흙먼지 사이로,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주구운!”
“아이드 각하!”
발튼은 단숨에 달려가서 가브를 안았다.
그 강력한 괴력에 가브는 신음을 흘리며 그를 간신히 밀쳤다.
“후, 내 검이나 찾아봐.”
“예? 예! 당장 찾아오겠습니다!”
가브가 와이번 테라에게 매달린 시점부터 눈을 떼지 않았던 발튼은 바로 검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넌 와이번 사체 챙기고.”
“예! 각하! 얘들아, 가자!”
가브의 명령에 위케리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대원들과 함께 진 와이번 테라의 추락 지점으로 향했다.
와이번은 발견되는 것도 귀한 만큼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모두 큰돈이 되었다.
달려가는 대원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
위케리스는 가장 마지막으로 가다가 뒤돌아서 게스기를 보았다.
‘이분이, 바로 내가 모시는 군주다.’
위케리스는 뿌듯함 가득한 표정으로 엄지를 한번 추켜세우고는 다시 발을 떼었다.
“아…….”
“와…….”
“어…….”
게스기와 그의 대원들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가브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게스기의 말대로 와이번을 네 마리나 잡은 토벌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자부심도 강했던 그들이었다.
나름대로 경험도 쌓인 전문가들이기에, 가브가 지금 해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게스기는 처음 만날 때와 동일한 가브의 무미건조한 눈을 마주하자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위케리스가…… 전신을 모시는구나!’
궁정 남작 데브리도 어느새 나와서 가브와 테라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어, 어떻게…… 저걸 혼자서……?”
슥.
그때 게스기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휙 돌아서더니, 검을 뽑아 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대원들도 검을 들고 데브리 남작에게 덤벼들었다.
“야, 이 개새끼야! 그냥 와이번이라면서! 우리가 충분히 잡는다며!”
“대장! 죽은 동료들처럼 이 남작도 여덟 조각을 냅시다!”
무섭게 달려드는 대원들을 보고 데브리는 뒷걸음질을 치며 소리쳤다.
“자, 자, 잠깐!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분명 우리가 확인했을 때는 진 와이번이 아니었다니까!”
“닥쳐, 이 새끼야! 야! 꽉 잡아, 이거 혀부터 자른다!”
대원들은 데브리의 양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게스기는 정말로 그의 혀를 잘라 버리려는 듯이 검을 추켜들었다.
“그거 내려놔.”
부산스러운 현장을 단번에 적막하게 만드는 목소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지금 국왕보다 더 무게 있었다.
게스기는 순간 자신이 여기까지 오면서 가브에게 이죽거렸던 상황이 떠올랐다.
그는 손을 덜덜 떨면서 천천히 뒤돌아섰다.
“이, 이, 이자는…….”
“그자는, 내가 이놈을 잡은 걸 왕궁에 가서 증명해야 된다.”
게스기는 가브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금세 내리깔고는 검을 내렸다.
몸은 만신창이에 다리를 절고 있어도 그에게서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아, 알겠습니다.”
그의 대원들이 팔을 놔주자 데브리는 재빨리 가브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드 남작님! 이 일은 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왕궁에도 우리 남작님의 눈부신 활약을 똑똑히 전하겠습니다!”
가브는 그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 같이 잡았다고 하시오. 그렇게 합시다.”
“예? 아, 아, 예. 알겠습니다! 남작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요!”
가브 혼자서든, 서른 명 남짓한 인원이든 진 와이번을 잡았다고 하면 명성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것이다.
데브리 남작은 전보다 더 가브를 극진히 대하며 일을 마무리했다.
* * *
데브리 남작은 진 와이번 테라의 대가리를 마차에 싣고 왕궁으로 귀환했다.
왕궁의 귀족들은 테라가 진 와이번으로 각성했다는 것에 놀랐고, 그것을 서른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잡았다는 것에 더 놀라워했다.
데브리가 가츠 아이드 남작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은 가츠 아이드 남작이라는 귀족을 뇌리에 새기고, 더불어 같이 왔던 마물 사냥꾼 게스기의 토벌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몇몇 귀족들은 진 와이번의 사체가 모두 가츠 아이드 남작에게 넘어갔다는 말에 입맛을 다시며 씁쓸해했다.
데브리 남작이 다시 아이드 성을 찾아왔을 때는 어깨가 한껏 추켜올라 가 있었다.
그의 뒤에 따라오던 마차 안에는 테라의 대가리와 함께 금은보화가 잔뜩 담겨 있었다.
“……와이번 테라는 평화로웠던 한 마을을 죽음의 폐허로 만들었던 주범으로, 이 극악한 마물을 처리해 준 것에 큰 감사를 표한다. 이에 테라 마을을 남작령에 귀속시키고, 가츠 아이드 남작은 자작 위로 승격을 명한다.”
“감사합니다.”
데브리는 왕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접어 가브에게 건넸고, 가브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것을 받았다.
1년은커녕 남작 위를 받은 지 세 달 만에 자작으로 올라섰다.
가브는 마치 자신이 내리는 것처럼 뿌듯해하는 데브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데브리 남작.”
데브리는 순간 눈앞의 괴물 같은 남작이 안 그래도 어려운데 자기보다 위인 자작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것은 썩 어울렸다.
“예, 예! 아이드 자작님.”
“난 이런 변방에서 나고 자라서 가까운 귀족이 없소. 남작이 많이 도와줘야 하오.”
“당연하지요! 자작님처럼 훌륭하신 분이라면 제가 더 환영입니다!”
가브는 그에게 식사 대접을 하면서 이번 일을 왕궁에 널리 알리도록 청했다.
왕궁에서 일하는 것치고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기에 몇 번이나 말해야 했다.
그날 밤, 가브는 아이드 성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곱게 무두질된 진 와이번의 가죽과 뼈가 보관되어 있었다.
진 와이번의 생고기는 첫날에 모두 발골 하여 팔았다.
그것만으로도 무려 6천 골드를 얻었다.
가브는 그 앞에 의자를 끌고 가서 앉아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와이번은 수십 마리 잡아 보았지만 진 와이번은 가브도 처음이었다.
스윽.
날개를 거둬 보니 그 가운데에 팔뚝만 한 돌 하나가 영롱한 빛깔을 냈다.
강력한 마물의 몸에서만 가끔 발견된다는 신의 광물 ‘아디움’이다.
자연에서 발견 가능한 현존 최고의 광물이라 불리는 미스틸보다 강도가 두 배나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가브도 전에 진 오크를 잡고 주먹만 한 아디움을 얻어 지금 지닌 중검을 만들 때 섞은 적이 있다.
가만히 사체에서 얻은 물품들을 바라보니 물욕이 없는 가브도 뿌듯함을 느꼈다.
돈이 있어도 얻기 힘든 보물들이다.
하나하나가 전장에서 목숨 보존과 연관된다.
그러나 직접 겪어 봤듯이 가죽은 상당히 견고하고 뼈는 밀도가 굉장히 높아 가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가브의 혼잣말에, 어둠이 일렁이며 가느다란 곡선을 지닌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자는 알지 않겠습니까?”
세실리아의 대답에 가브는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보자.”
“예, 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