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뚝, 뚝, 털썩.
어두운 밤, 연병장 한가운데에서 게스기가 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수고했다. 이것으로 기본 훈련은 끝이다.”
“기본…….”
가브의 훈련은 혹독했다.
이틀 만에 남은 자들이 떨어져 나가며 게스기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혼자라고 해도 훈련 과정에 변화는 없었다.
게스기는 반쯤 감긴 눈을 들어 힘없이 물었다.
“위케리스…… 십인대 선배들도 이런 훈련을 거친 겁니까?”
가브는 고개를 들어 달을 보며 답했다.
“그때는 처음이라, 조금 더 격했지.”
“하, 하하.”
게스기는 지금까지 겪어 본 결과, 눈앞의 이 무적 같은 존재가 헛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더 힘든 훈련을 십인대 모두가 버텨 냈다는 것이다.
속마음은 항상 우위에 있던 게스기는 부끄러워졌다.
위케리스 십인대는 전부터 재수 없을 정도로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다.
“숙소는 이제부터 십인대와 같이 써라.”
“예…… 예? 아, 옙! 각하!”
원수나 다름없던 십인대와 함께 지내라는 말에 게스기는 좌절했다.
게스기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위케리스 십인대의 숙소로 향했다.
끼익.
가자마자 10 대 1로 몰매를 맞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열었다.
대원 중에 가장 키가 작은 케라트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 대장! 신입 왔어요!”
“신입? 뭐 하냐, 빨리빨리 안 들어오고.”
게스기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빠르게 표정을 풀며 들어섰다.
위케리스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야, 게스기, 네가 우리 대원이 될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나도. 저기 토벌대가 빼 간 의뢰만 몇 개였더라?”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신기하네, 신기해.”
“닥쳐, 막내.”
게스기는 온몸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네, 징글징글한 게스기! 우리 십인대 열한 번째 대원이 된 걸 축하한다!”
“환영합니다~.”
“휘유~.”
조촐한 환영이었지만 게스기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는 얼떨떨하게 배정받은 자리에 짐을 넣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케리스는 다른 대원과 주먹질을 하며 장난을 치고 있고, 누워서 자는 대원도 있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는 대원도 있다.
구석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대원은 덩치가 가장 커서 눈에 잘 띄었다.
토벌 때 몇 번 마주쳤던 자로, 괴력의 소유자다.
그 모습에 게스기의 옆자리인 케라트가 설명을 보탰다.
“쟤? 발튼 경이 목표래. 혼자 쓸데없이 라이벌 의식 갖고 저러고 있어.”
“그, 그래…….”
게스기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주축이 됐던 토벌대와는 다른 분위기다. 자유분방하고, 대원들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보인다.
어색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대장이 아니라는 것, 따르는 부하가 없다는 것은 의외로 기분을 좋게 했다.
게스기는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되었다.
* * *
아이드 성 연병장, 발튼과 멜론이 사병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사병들은 힘든 훈련 중에도 어딘가를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연병장 구석,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의 미인이 오랫동안 서성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가씨, 여기 언제까지 계실 겁니까?”
“아, 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심심하잖아.”
제이니는 확 미간을 찌푸리며 허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호위 기사지만 아직도 검을 들지 못한다.
“열심이죠?”
갑자기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에 제이니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이엘이었다.
“아, 에…….”
“처음이었어요.”
“에? 뭐, 뭐가……요.”
“떨어진 케이크, 주워 먹으라고 할 때, 그런 모멸감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이엘은 몸소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모멸감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건…… 그, 음…….”
“덕분에 이제는 그것보다 덜한 것은 쉽게 참아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곱게 컸던 거죠.”
“어…… 그렇구…….”
“그래도 제이니 씨를 평생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누가 시켰든지 마지막으로 실행에 옮긴 건 본인이잖아요?”
이엘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온탕과 냉탕을 1초 만에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에, 예……. 죄, 죄…….”
“여기 생활은 할 만해요?”
“네, 후……. 편하게 해 주고, 음식도 맛있고…….”
제이니는 지금이 24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이엘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허틀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서 딴청을 피우고 있다.
‘저 개새끼가.’
“제이니 씨는 싫어하는 게 뭐예요?”
“싫어하는 거요? 음…… 운동?”
“저는 사실 빵순이거든요. 그런데 케이크는 이제 싫어졌어요. 쳐다보기도 싫어요. 다 발로 뭉개 버리고 싶어.”
‘집에 가고 싶다.’
제이니가 속으로 오열을 하고 있을 때, 저 뒤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이 영지의 영주 가츠 아이드 남작이었다.
영주의 등장에, 훈련을 하던 사병들은 물론 교관들도 자세를 고쳐 잡으며 시선을 집중했다.
저벅저벅저벅.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가브가 걸어가는 방향은 다름 아닌 제이니와 이엘 쪽이었다.
제이니는 그 무서운 가브가 반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가브를 뒤늦게 발견한 이엘은 강아지처럼 쪼르르 가서 반겼다.
“오라버니 오셨어요?”
“그래.”
허틀도 다급히 달려와서 그에게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마치 충신과도 같았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제이니는 그런 허틀을 째려보았지만 그는 못 본 척 무시했다.
슥.
가브는 이엘을 지나쳐 제이니에게 팔뚝 크기의 검은 상자를 내밀었다.
제이니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 이게 뭐예요?”
“인질 생활은 끝났다. 돌아가서 크레스 남작에게 전해. 계약 선물이다.”
제이니는 약간 허탈해져 헛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아, 아…… 돌아가야지. 맞다. 그, 바로 내쫓을 건가요?”
이상한 질문이다. 가브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답했다.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네!”
제이니의 목소리는 당찼다.
* * *
진 와이번 테라를 토벌한 지 세 달째 되었을 때, 드워프 칼슨의 호출이 왔다.
가죽갑옷이 완성된 것이다.
이번에는 만들 때마다 주는 것이 아니라 다섯 벌이 모두 완성되고 나서 불렀다.
칠흑처럼 검은 가죽은 빛도 빨아들여 그 마감 선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가죽이 매우 단단하고 질겨 끝부분을 전부 실로 꿰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칼슨은 은은한 은색을 띠는 미스틸을 녹여 끝을 칠했다.
보통 가죽이었으면 생각도 못 할 마감 방식이었다.
“경화 처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금방 됐지, 아니었음 한 달은 더 걸렸을걸.”
“와…… 바로 입어 봐도 됩니까?”
“어마어마하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칼슨의 고개가 끄덕여짐과 동시에 달려들어 가죽갑옷을 착용했다.
맞춤형이기에 몸에 착 감기듯이 딱 맞았다.
갑옷이라기보다는 마치 연회에 입고 갈 만한 정복으로 보였다.
세실리아에게는 따로 가죽 스커트에 허벅지까지 오는 부츠를 만들어 주었다.
무릎 부분만 운신이 편하도록 잘랐다가 날개의 피막으로 이어 붙였다.
세실리아는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그 자리에서 바로 착용했다.
“흠, 흠.”
그녀는 코로 숨을 거칠게 내쉬며 갑옷의 앞뒷면을 살폈다.
침착한 그녀가 흥분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것이다.
칼슨은 발튼을 힐끔 보았다가 가브와 눈을 마주쳤다.
가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슨은 무언가를 덮어 놓은 천을 걷었다.
그러자 단순한 모양의 양날도끼 두 자루가 나왔다.
양손도끼보다는 조금 작고, 손도끼보다는 큰 애매한 크기의 도끼다.
검보다는 철퇴나 도끼를 자주 애용하는 발튼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응? 이건 뭐요?”
“보면 모르나, 도끼.”
“아하…… 근데 누구 거요?”
“니 거.”
“예?”
칼슨은 도끼 하나를 들어 발튼에게 보이며 설명했다.
“도낏자루는 뼈, 손잡이는 가죽을 둘렀고 도끼날은 내가 직접 공수해 온 순도 높은 미스틸 9할에 아디움 1할을 섞은 거다. 네깟 놈이 이걸로 바위를 뿌수든 오크 대가리를 뿌수든 뭔 짓을 해도 못 망가트려.”
발튼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는 홀린 듯이 도끼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은 육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마, 마, 만져 봐도 됩니까?”
칼슨은 들고 있던 도끼를 휙 던졌다.
발튼은 몸을 던지며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았다.
“이, 이런 것을……. 아, 아름답다…….”
“니네 영주가 요청한 거야. 넌 맨날 맨손으로 싸워서 보기 싫다고.”
발튼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두 손을 펼치고 가브에게 달려갔다.
“주군!”
턱.
그 상태로 안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이 분명하여, 가브는 한 발을 그의 가슴팍에 대어 막았다.
“그거 지금 못 쓴다. 다시 내려놔.”
“예, 예에?”
발튼의 나라 잃은 표정에 칼슨이 도끼를 빼앗으며 설명을 이었다.
“이거 봐, 날도 안 서 있잖아. 영주가 니네 무기 다 아디움으로 덧입히란다. 녹이는 날 맞춰서 무기 잘 다듬어서 가져올 생각이나 해. 이 도끼도 그때 완성되는 거야.”
“옙! 감사합니다, 못생긴 할배! 주군! 이 발튼, 죽는 날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아, 시끄러.”
발튼은 웬일로 세실리아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랫동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날 밤, 십인대의 숙소.
끼익.
문이 열리며 위케리스가 들어왔다.
그는 칼슨의 작업실에서부터 가죽갑옷을 벗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 달라붙는 가죽갑옷의 멋들어진 모습에 대원들은 소리를 내질렀다.
“이게 뭐야!”
“이런 젠장! 겁나게 멋있잖아!”
“미쳤네, 미쳤어. 이게 갑옷이야, 연회복이지?”
“와…… 하…… 와…….”
위케리스는 대원들이 다가와서 갑옷을 매만지자 손을 휘휘 저었다.
“어허, 손때 탄다. 조심히, 손 씻고 와서 만져.”
“나도 한 번만 입어 볼래.”
“안 돼. 나 이거 입고 잘 거다.”
“그러다 헐어요, 대장.”
“닥쳐.”
게스기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직접 보니 부러움과 질투심이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시팔, 조금만 더 일찍 들어올걸. 저게 내 것이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얘네는 내갑이라도 있지…….’
게스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케리스는 한창 행복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갑옷을 벗어 한쪽에 고이 걸어 놨다.
그리고 어떤 상자를 꺼내더니 게스기에게 다가왔다.
“신입, 입대 선물이다.”
“어, 엉? 에?”
지금까지의 생각이 모조리 날아간 게스기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상자를 다급히 열었다.
안에는 새까만 내갑이 고이 접혀 있었다.
위케리스의 내갑을 준 것이다.
일단 둘 다 체형이 비슷하고 내갑 자체가 신축성이 좋아서 웬만하면 다 맞는다.
뚝, 뚝.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징그럽게?”
“흐으……. 가, 감사합니다…….”
게스기는 내갑을 안고 닭똥 같은 눈물을 한참이나 흘렸다.
* * *
가브는 그레이의 연회에 두 번 더 참석하였다.
그들의 생각에 조금씩 동조하자 더더욱 극단적인 비유를 들며 인간이 이 판테르 대륙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곳에 다녀온 날에는 정말로 인간이 마물보다도 더 해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뇌가 자연스럽고 강했다.
사전에 그레이 남작에 대해 의심이 없고, 그저 선하고 신사다운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신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별장과는 별개인가?’
이대로 자연스럽게 접근이 불가능하다면 그 수상한 별장에 잠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세 번째 연회가 끝날 때 그레이가 새로운 초대장을 주었다.
검은색 바탕에 금테를 두른 초대장이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분들에게만 드리는 초대장입니다. 꼭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브는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고 마차로 들어가 바로 확인했다.
[9월 17일 깊은 밤, 에르디 마을 북동쪽, 15-7 베기스의 마구간]가브는 마을 이름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