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73
73화
“11번! 너만 믿는다!”
“10번 뭐냐, 처음 보는 몸맨데? 투구 좀 벗어 봐!”
“11번! 11번! 11번!”
“3번도 꽤 강해 보이네.”
앞전 회 차 우승자는 가장 마지막 번호를 받는다.
그는 가브가 전에 베팅했던 5번 검투사로, 현재 11번을 달고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오늘 유독 열기가 넘치네요. 이 분위기를 몰아 바로 1회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빨리 다 죽여 버려라!”
1회전의 상대는 전과 마찬가지로 느릿하게 나오는 좀비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온 출전자들은 어렵지 않게 좀비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같은 4호실을 쓰던 35번, 검투사 번호 6번 여인은 이미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꺄아아악!”
까득, 까드득!
그녀는 제대로 도망쳐 다니지도 못하고 좀비에게 얼굴 가죽을 물어뜯겼다.
다음 차례인 니메는 마치 먼저 죽은 여인의 복수를 하듯이 도끼를 격렬하게 휘둘러 좀비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 드디어 세실리아의 차례가 되었다.
“구울 두 마리를 힘겹게 이길 정도의 실력, 그 이상을 보이지 마라.”
세실리아는 가브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검을 들었다.
그녀는 방패 없는 한손검에 가벼운 경갑을 입었다.
-캬하아아.
두꺼운 철문이 위로 느리게 올라가고, 두 발이 뭉개진 좀비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세실리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놈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로열로 올라가기 위한 척도는 외모, 지식, 순결. 그중에서 제일은 강함이다. 실력을 감추며 강함의 점수를 많이 받으려면…… 연기가 필요해.’
세실리아가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자 귀족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뭐 하냐! 무서워서 소변이라도 지렸나!”
“움직여! 움직여!”
“뒈질 거면 그 투구 좀 벗고 뒈져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야유가 쏟아지는 동안 좀비가 세실리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캬악!
좀비는 갑자기 두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동시에 세실리아가 오른발을 뒤로 옮기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쿵.
좀비가 세실리아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하고 지나가 바닥에 엎어졌다.
놈의 머리통은 가로로 절반이 잘려 뇌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세실리아는 건조한 눈으로, 꿈틀거리는 놈의 등에 검을 내리찍었다.
푹.
반전은 언제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와아아아!”
“오, 뭐야. 깔끔한데?”
“여전사 탄생?”
“잠깐, 나 누구한테 걸었지? 아 씨, 죽은 애잖아.”
고작 좀비지만 기대치가 낮은 여인이 기대 이상의 경기를 보여 주자 귀족들이 열광했다.
세실리아를 끝으로 1회전이 종료되었다.
1회전에서 살아남은 검투사는 여덟 명이었으나 2회전 출전자는 두 명이 줄어들어 여섯 명이 나왔다.
둘은 좀비에게 물려 대기 시간에 사망한 것이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시간, 니메는 한 명 한 명 시체가 되어 돌아오자 손을 덜덜 떨었다.
“젠장. 이제 좀 있으면 내 차롄데, 나…… 살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다.
세실리아는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고는 손을 뻗어 니메의 턱을 잡았다.
그녀는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세실리아를 바라보았다.
“구울이 네 얼굴을 갈아 버린 놈이라고 생각해.”
“어? 아…… 그 개새끼…….”
니메는 단순했다.
금세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는 것을 보며 세실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곧 니메의 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구울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대기실로 돌아온 니메의 눈동자에는 아직 죽음을 각오한 비장함이 담긴 상태였다.
세실리아는 그녀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릴게!”
세실리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투기장에 들어섰다.
드드드드.
육중한 철문이 천천히 올라간다.
이번 상대는 철문이 끝까지 올라가기 전에 투기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쿵, 쿵, 쿵.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거구의 구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보자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뭐야? 저거 7번 아니야?”
“7번이다! 어쩐지 안 나온다 싶더니, 구울 됐구먼.”
“이야, 7번을 이렇게 다시 보네. 저 여자 불쌍해서 어떡하냐.”
귀족들이 7번이라고 부르는 구울은 투기장에서 두 번이나 살아남았던 자로, 마지막에 우승을 앞두고 상처를 입어 구울이 된 자였다.
구울은 생전의 힘을 그대로 발휘하기 때문에 강했던 자일수록 위험하다.
귀족들은 7번이 전에 보였던 실력을 기억하고 벌써부터 세실리아의 죽음을 점쳤다.
-크르르.
7번 구울은 다른 놈들과는 달리 마치 지능이 있는 것처럼 바로 달려들지 않고, 맹수처럼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세실리아를 노려보았다.
척.
세실리아가 검을 비틀어 날을 세우자, 놈은 얼굴을 확 일그러트리며 바닥을 박찼다.
-크하악!
거구임에도 달려오는 속도가 빠르다.
세실리아는 자세를 낮추고 검을 놈에게 겨눈 채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만만치 않은 놈이야. 적당한 실력으로 잡으려면…… 하체를 공략한다.’
전투는 상대가 본래 예상했던 타이밍을 비틀수록 빈틈이 생긴다.
세실리아는 황소처럼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구울에게 마주 달려가다가 몸을 확 낮추었다.
스걱, 쿠웅!
가죽옷 하나 걸치지 않은 구울의 살은 생전보다 더 베기가 쉽다.
세실리아가 지나가자 구울은 한쪽 발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우오!”
“뭐야, 저거! 사기 아냐?”
“누가 전문가를 잡아넣었어?”
“와아아!”
깔끔한 일격에 환호가 들려왔다.
그녀에게 베팅한 귀족은 없지만 의외의 재미를 제공한 것에 대한 보답이다.
거구의 구울은 바로 뒤돌아서 자신의 잘린 발목을 신경질적으로 치워 버리고 두 팔로 성큼성큼 기어 왔다.
세실리아와 가까워지자 놈이 한 손은 바닥을 지탱하고 한 손을 뻗었다.
-크으아!
세실리아는 전처럼 놈을 기다리다가 완벽한 타이밍에 발을 뒤로 빼며 검을 사선으로 올려 쳤다.
슥.
그녀를 향해 뻗은 놈의 팔이 떨어지고.
서걱.
다시 검을 내리치자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세실리아는 목이 잘린 상태에서도 더 가까이 다가오는 구울을 피해 옆으로 한 걸음 옮기며 놈의 등에 검을 꽂았다.
푹!
-키으으…….
7번 구울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다.
“와아아아!”
“10번 뭐야! 10번 뭐야, 저 언니!”
“미쳤네. 저놈을 저렇게 깔끔하게? 이번 우승자 확정이네.”
“개싸움에 늑대가 끼었어.”
“다음 회 차는 무조건 쟤다.”
경기 결과에 귀족들은 충격과 아쉬움을 느끼며 세실리아에 대해 한마디씩 던졌다.
세실리아는 끝나지 않는 환호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에는 전 회 차 우승자인 11번과 근육질의 3번, 그리고 니메가 남았다.
마지막 차례인 11번이 입구에서 세실리아와 마주했다.
“갔다 와서 나랑 얘기 좀 할까?”
대기실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들어오는 문, 하나는 투기장으로 나가는 철창문이다.
출전자들은 대부분 철창문에 달라붙어 다른 자들의 경기를 참관한다.
11번은 세실리아의 상대였던 구울이 인간이었을 적에 같은 숙소를 썼기에 그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세실리아의 깔끔한 승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꺼져.”
“음, 혹시 3회전이 뭔지 모르나? 이제 우리가 협동해야 살아남는다고.”
전 회 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1번 한 명뿐이다.
그가 다른 출전자를 미끼로 삼고 우승한 것은 귀족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3회전의 두려움이 있는 니메가 세실리아의 옆에 붙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녀와서, 얘기해 보죠.”
11번은 니메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세실리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발을 돌렸다.
“그래야지.”
11번이 나가고, 니메는 자리에 앉아 주먹을 반복적으로 쥐며 중얼거렸다.
“살 수 있다, 살 수 있어. 한 번만 더 버티면 돼.”
세실리아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구석에 놓인 창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걸로 거리만 벌려.”
“아, 응. 알겠어.”
니메는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세실리아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를 하게 되었다.
11번은 구울을 재빨리 처리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는 뺨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얘기 좀 해 볼까?”
그는 대기실에 있는 검투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자신의 계획을 빠르게 털어놓았다.
3회전 시작까지는 10분밖에 시간이 없었다.
“구울이 지금 머릿수보다 더 많이 나올 거야, 나 때 둘이 남았는데 세 마리가 나왔으니까, 이번에는 최소 다섯에서 여섯 마리라는 거지.”
“여, 여섯 마리…….”
니메가 두려움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에 11번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개싸움이 되면 이겨도 뒈지는 거야, 물리지 않고 이기려면 일단 들어가자마자 다 흩어져. 그럼 놈들도 흩어지겠지? 그중에 한 마리 이상 붙은 사람은 싸우지 말고 빙빙 돌아. 다른 사람이 구울을 처리하고 나서 지원을 하고. 쉽지?”
생전의 달리기 속도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구울을 상대로 갑옷을 입고 빙빙 돌아라, 이 말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의 계획은 그럴싸해 보였다.
니메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3번 사내는 주먹을 꽉 쥐며 11번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고맙다. 너랑 같이 살아남아서 다행이야.”
“무슨, 끝나고 다시 여기서 만나자고.”
11번의 말에 3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댕 댕 댕.
드디어, 3회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살아남은 네 명은 비장한 기운을 풍기며 무대에 들어섰다.
“와아아아!”
“네 명 너무 많다!”
“재밌겠다아!”
“얼른 다 뒈져 버려!”
평생 품위와 명예에 목숨을 거는 귀족들이 가면 하나 썼다고 그들이 천박하다 여기는 말들을 차지게 뱉어 내는 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세실리아는 관중석을 빠르게 훑으며 가브와 찰나 눈을 마주하고는 마물이 나오는 철문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미 다른 검투사들은 11번이 말했던 계획처럼 서로 최대한 떨어진 상태였다.
드드드드드.
철문이 올라가는 소리에 검투사들은 절로 긴장하며 무기를 꽉 쥐었다.
“음…….”
문이 반쯤 열렸는데도 구울 한 마리도 튀어나오지 않아 귀족들은 물론 검투사들도 의아함을 느꼈다.
3번 사내가 게걸음으로 한 발씩 가까이 다가가며 어둠으로 가득한 철문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때 안에서 붉은 안광이 순간 번뜩였다.
“빠져!”
세실리아의 외침과 동시에 철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닥에 발을 딛지도 않고 다섯 걸음은 될 법한 거리를 단번에 좁혀 왔다.
푸욱!
3번은 뒷걸음질도 치지 못하고 배에 여섯 개의 구멍이 뚫렸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웨어…….”
“울프?”
짙은 회색빛 털을 온몸에 두르고, 앞발에는 세 개의 발톱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
그 길이는 성인의 팔뚝만큼 길었다.
-캬우으!
웨어울프는 배에 발톱을 쑤셔 넣은 3번을 번쩍 들어 올려 양쪽으로 두 앞발을 벌렸다.
촤아악!
3번의 몸이 찢어지며 허공에 붉은 피가 비산한다.
웨어울프는 그것을 그대로 뒤집어쓰며 낮게 울었다.
“뭐, 뭐야.”
“저게…… 여기서 왜 나와?”
놈은 일반적인 웨어울프와 달랐다.
드문드문 주먹 크기만큼 빠져 있는 털, 여기저기 찢어진 가죽, 광기와 굶주림이 가득한 눈.
‘웨어울프 구울…….’
같은 인간이 아닌 마물을 구울로 만드는 것은 사령술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신으로 국가를 뒤흔들 수 있는 대마법사급의 능력을 지녀야만 가능하다.
술사와 다른 개체는 곱절의 마나와 특별한 술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흑마법사들은 경악했지만, 모르는 자들은 그저 조금 더 신기해했다.
세실리아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구울이 여섯 마리면 지금 내보이기로 한 실력으로는 높은 확률로 상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으, 으악! 오지 마!”
그러나, 사람은 예측과 다른 돌발 상황에는 대부분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감에 찼던 11번도 마찬가지였다.
웨어울프 구울에게 20미터 남짓한 투기장은 매우 좁아 보였다.
놈은 이미 독 안에 든 쥐를 보듯이 천천히 11번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11번은 얼어붙어 있는 니메에게 달려가 그녀의 등을 웨어울프에게 떠밀었다.
“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