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숲의 암살자, 인간 사냥꾼, 웨어울프의 별명이다.
한번 표적으로 삼으면 죽기 전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습성을 알았다면 11번은 협공을 포기하고 니메를 밀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실리아는 니메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엎드려!”
니메는 세실리아의 말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바닥에 몸을 웅크림과 동시에 그 위로 서늘한 기운이 스쳐 갔다.
퍽!
“큭!”
웨어울프 구울은 니메를 뛰어넘어 11번 사내의 어깨를 꿰뚫었다.
생각지 못한 마물에 당황했어도 전 회 차 우승자다.
사내는 그사이 두 손으로 웨어울프의 앞발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웨어울프의 완력은 적당히 단련된 병사와 비슷하다.
-크르르.
“이, 이봐! 나 좀 도와줘! 지금이 기회잖아!”
11번은 점점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감각에 절규했다.
타다닥.
그의 말대로 움직임이 제한된 기회를 세실리아가 놓칠 리가 없다.
그녀의 가벼운 발소리를 들은 웨어울프 구울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아, 안 돼애!”
텁! 푹!
웨어울프 구울의 날카로운 이빨에 11번의 머리통 절반이 잘렸다.
동시에 놈의 뒤통수에 세실리아의 검이 박혔다.
-크하악!
놈은 머리가 관통된 상태에서도 발악을 하듯이 앞발을 뒤로 휘둘렀다.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발톱에 긁혀도 시독에 중독될까?’
고민은 짧았다.
시독을 극복하는 모습보다는 지금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는 몸놀림을 보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헙.”
세실리아는 검을 놓고 뒤로 튕기듯이 굴렀다.
웨어울프 구울은 아직 삼키지 않은 11번의 머리통을 뱉어 내고는 그녀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케헥, 케헥.
무기가 없으면 놈을 상대할 수 없다.
검과 작은 방패를 쥐고 있는 11번의 시체는 그 너머에 있다.
‘도망 다니면서 기회를 노려야 하나……. 도망칠 수는 있을까?’
뇌가 관통되었지만 어떤 움직임이 제한되었는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던 중, 옆에서 니메가 튀어나왔다.
“이야아!”
그녀는 세실리아가 쥐여 준 창을 길게 뻗었다.
위협을 느낀 웨어울프 구울은 몸을 틀어 앞발을 휘둘렀다.
푹, 콰직!
니메의 창이 웨어울프 구울의 옆구리에 꽂히자마자 놈이 창대를 부러트렸다.
창을 잡고 있던 니메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굴렀다.
-크하악!
놈은 옆구리에 꽂혀 있는 창끝을 보고는 분노의 포효와 함께 넘어져 있는 니메에게 덤벼들었다.
“꺄악!”
웨어울프 구울의 발톱이 니메를 찢어발기기 직전, 놈의 대가리에 꽂혀 있던 검이 쑥 빠지더니 바로 목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즈즈즈즈-.
놈의 대가리가 미끄러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몸도 순간 멈췄다가 목적 없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빠져.”
세실리아는 니메의 뒷덜미를 움켜잡아 저 멀리 치우고는 여유롭게 웨어울프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쿠웅!
웨어울프 구울이 넘어가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미쳤다, 10번!”
“멋있다! 예쁘다!”
“쟤 뭐야? 썅, 내가 산다! 내 호위병으로 써야겠다!”
세실리아와 니메는 엄청난 환호 속에서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검투사들은 목숨을 걸지만 그들에게는 무료한 삶에 작은 여흥을 주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이백열한 배.’
가브는 세실리아와 함께 살아남은 니메에게 100골드를 베팅했다.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니메나 세실리아에게 베팅한 이들은 몇 명 없는 듯했다.
배당율이 높은 것을 보면 그마저도 소액일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 베팅으로 하나의 성을 건설할 만큼의 골드를 얻었다.
‘투기장 한 회에 판돈은 최소 2만 골드 이상…….’
가브는 지금 보이는 귀족들의 이름과 직책을 대부분 알고 있다.
이들이 한 달에 천 골드씩 소비할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다.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고 있을 로열 귀족들의 돈이다.
가브는 니메를 부축하며 들어가는 세실리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 * *
투기장 대기실, 니메는 바닥에 천천히 앉으며 신음을 흘렸다.
“흐으…….”
그녀는 발목이 바깥쪽으로 꺾여 있고, 뺨에는 얕게 두 줄의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세실리아는 그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입 벌려.”
니메는 사파이어처럼 파랗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만 봐. 본다고 치료되는 것도 아니고.”
“…….”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라서 모르지만, 보편적으로 구울의 손톱에 긁히면 시독에 중독된다.
아직 환부와 혓바닥도 변색되지 않았다.
바로 성수를 뿌린다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목숨은 똥처럼 여기는 이들이 비싼 성수로 치료를 해 줄 리가 만무하다.
저벅저벅저벅.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니메의 안색이 변했다.
세실리아는 그녀의 멱살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까이했다.
“니 얼굴 갈아 버린 귀족, 특징이 뭐야?”
니메의 얼굴에서 방금 전에 느낀 두려움이 사라지고, 세실리아에게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면 뭐 해, 어차피 죽는데.”
니메가 힘없이 세실리아의 손을 치웠다.
이어서 뒷문이 열리며 검은 가면이 자신의 기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투기장을 빛내 주신 두 검투사분께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모시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기사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검은 가면은 세실리아를 먼저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분은 특실로, 이분은…… 치료실로.”
세실리아와 니메는 숙소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헤어졌다.
그때 니메의 얼굴에는 투기장을 갈 때보다 강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세실리아는 강철로 된 중문을 지나 검은 가면과 떨어지기 전에 물었다.
“치료실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녀가 처음 하는 질문에 검은 가면이 눈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는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회색이었다.
“치료가 될 겁니다. 몸도, 정신도.”
그의 대답에 세실리아는 니메를 앞으로 볼 수 없을 것임을 짐작했다.
세실리아가 안내된 특실은 가장 안쪽의 철창으로 된 문이 아닌 검은 철문으로 된 방이었다.
욕실이 안쪽에 딸려 있는 구조나 크기는 4호실과 동일했다.
그러나 나무 침대와 옷장,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고 한쪽 벽면에는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장이 있었다.
욕실에는 쇠로 된 아령과 창, 검, 도끼, 방패 등이 있어 수련이 가능했다.
“다음 달까지 마음껏 누려라.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배식구로 넣어질 것이다.”
끼익, 쿵.
“후.”
철문이 닫히자 세실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철문은 팔뚝 크기의 배식구 외에는 안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3주 만에 홀로, 완벽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개인 공간에 들어선 것이다.
세실리아는 원래 입고 왔던 옷에서 가브가 챙겨 준 도구들을 꺼내어 몸 곳곳에 부착했다.
이제 점수가 반영될 최소한의 가치는 증명했다.
앞으로 두 번의 우승을 더 할 때까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녀는 바로 가벼운 차림으로 욕실에 들어가 단련을 시작했다.
항상 전투에 바로 임할 수 있게, 기감은 예민하게 세워 둘 것이다.
* * *
세상에 어둠이 짙게 깔린 깊은 밤, 특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두마차가 어둠을 뚫고 달리고 있다.
스슥.
돌연 그곳에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사람이라면 바닥에 뒹구는 소리가 들려야 인지상정이건만, 그것은 마차 바퀴 소리에 묻혀서인지 아무런 소리도 남기지 않았다.
마부는 마차가 가벼워졌음을 느꼈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대로 아이드 성으로 향했다.
마차가 지나간 자리의 골목 어귀, 감출 수 없는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을 냈다.
스스슥.
검은 인영, 가브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어둠을 찾아다니며 이동했다.
그가 다다른 곳은 에르디 마을 구석에 있는 낡은 여관이었다.
그는 버젓이 열려 있는 여관 문이 아니라 벽을 타고 2층 가장 끝에 있는 방의 창문으로 들어섰다.
터덕.
“어이쿠, 깜짝이야.”
“오셨습니까.”
꽤 넓은 방 안에는 발튼과 위케리스, 그리고 완전무장을 한 특무대가 있었다.
“별일은 없고?”
“예, 오사리바와 케라트는 망을 보러 나갔습니다. 오셨으니까 불러들이겠습니다.”
가브가 신호를 보내면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게 대기 중인 것이다.
“그래, 이제…….”
그때 발튼이 머뭇거리다가 한 걸음 다가오며 가브의 말을 끊었다.
“그, 주군. 세실리아 경은…….”
가브는 시선을 들어 발튼을 보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 일 없다. 세뇌 같은 것도 당하지 않았고.”
“후…… 다행입니다. 다행…….”
발튼의 질문에 가브는 세실리아에게 가장 위험한 일을 시켰다는 것을 다시금 통감하며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에 발튼이 당황하여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주군의 말씀을 끊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깊은 밤에 여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발튼을 보며 가브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너, 맞고 싶냐?”
“예? 아, 그, 얼마든…….”
뻑-.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가브의 주먹이 발튼의 얼굴에 꽂혔다.
발튼은 눈깔이 뒤집어지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오, 오우…….”
강철 같은 근육만큼이나 정신력도 강한 괴물 같은 발튼이 단 한 방에 기절했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위케리스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뼉까지 치려다가 간신히 멈췄다.
* * *
사방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을 밝히는 횃불은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코끝을 자극하는 혈향은 점점 더 강해진다.
니메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혹시나 하는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불안한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앞서가는 기사에게 빌었다.
“저, 저 좀 치료해 주세요! 저 다음에도 나갈 수 있어요! 여기 봐요, 여기! 변색도 안 되고 정신도 멀쩡하다니까? 저 투기장에 또 나갈 수 있어요!”
기사는 가만히 있다가 뒤돌아서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러곤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치료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야, 그곳에서 다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중요하지. 귀족들에게 부상을 이겨 내지 못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예?”
니메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들은 치료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부상당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한층 낮아진 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통, 증오, 절망, 공포는 좋은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너에게서 이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 낼 것이야, 더 이상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어때, 재밌겠지?”
기사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끔찍한 일을 당할 것임을.
이자는 희망에 관련된 어떤 단어도 내뱉지 않는다.
“지금 정해. 네 발로 잘 따라올 건지, 나한테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날 건지. 어쩔래?”
니메가 멍한 눈으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기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찮게 구네.”
퍼석-.
그 말을 끝으로 니메는 정신을 잃었다.
혈향, 짙은 혈향이 풍긴다.
“끄으으…….”
“훅, 후욱, 후욱.”
얕은 신음 소리도 들려온다.
니메는 코에 시큰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꽤 넓고 특이한 구조의 방이다.
방문은 따로 없고, 가운데가 원뿔형으로 파여 있고, 그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맞은편에는 한 사내가 벌거벗은 채로 벽에 매달려 있다.
그의 손목과 팔뚝, 목, 허리, 발목에 강철로 된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에, 므스 이, 아…….”
발음이 샌다. 비릿한 피 맛에 혀로 입안을 훑어보니 치아가 전부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살을 방지하는 데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쓴 것이다.
얼굴을 만져 보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도 맞은편의 사내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족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아, 아…….”
그러나 족쇄가 문제가 아니었다.
니메는 자신의 양옆에 묶여 있는 여인들을 보고 생각이 정지되었다.
왼쪽 여인은 양팔이 통구이처럼 구워져 있었고, 오른쪽 여인은 발목에서부터 가슴까지 살 껍질이 얇게 벗겨져 있었다.
“고통, 증오, 절망, 공포는 좋은 밑거름이 된다.”
그 끔찍한 모습에 기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니메는 벌써부터 살아 있는 것이 후회되었다.
목숨을 구해 줬던 세실리아가 원망스러웠다.
철퍽, 철퍽, 철퍽.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니메는 눈을 질끈 감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척했다.
철퍽, 철퍽.
끈적한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이윽고 누군가의 숨결이 살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킁킁.
“아…… 마시……께따.”
어눌한 말투, 아직 앳된 목소리, 니메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눈앞에는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에 연한 녹색 머리칼을 지닌 소년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