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75
75화
킁킁.
소년은 달콤한 냄새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사방이 돌로 막혀 있는 작은 방, 꿈에서 본 것만 같다.
전에는 돌이 파란색이었는데 지금은 그 색이 많이 옅어졌다.
철컹.
손을 들어 올리려고 했는데 무언가 걸린다.
양팔에 두꺼운 족쇄가 채워져 있고,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아.”
족쇄에서 손을 빼내려다가 뼈까지 드러났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다행히 살이 다 붙어 있다.
“흐읍.”
철컹!
족쇄는 불가능하지만, 쇠사슬은 왠지 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몸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려 팔에 다시 힘을 주었다.
뚜둑!
바닥과 연결되어 있던 쇠사슬의 중간 부분이 툭 끊어졌다.
툭, 뚜둑.
소년은 두 발목을 잇고 있는 쇠사슬도 손으로 잡아 끊어 버리고 돌로 된 침대에서 일어났다.
“……배거파.”
그는 다른 것은 생각할 틈도 없이 달콤한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철퍽, 철퍽.
횃불이 드문드문 걸려 있는 복도를 지나 문이 없는 방 안에 들어섰다.
양쪽 벽에 벌거벗은 남녀가 십자가 모양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분명 사람이건만, 사람인 것을 인지할 수 있건만, 소년의 눈에는 마치 산해진미처럼 맛있게 보였다.
“애 이러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몸은 가장 달콤한 향을 풍기는 여인에게 발을 옮기고 있었다.
여인은 한쪽 눈을 머리로 가리고, 생명의 향을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킁킁.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으니 더욱 자극적이었다.
소년은 어지럼증까지 느끼며 여인 앞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아…… 마시……께따.”
소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여인의 새하얀 목덜미를 물려고 할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멈춰!”
“잡아!”
회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소년에게 우르르 달려왔다.
소년은 가장 달콤한 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확 인상을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팔을 뒤로 휘둘렀다.
퍽, 퍼억!
소년의 팔에 맞은 사람들이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바앙, 방해…….”
소년이 풍기는 짙은 살기에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가장 먼저 소리쳤던 여인이 소년에게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신도님, 신도님.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을 먹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살인마가…….”
“으아!”
소년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포효하며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 여인의 얼굴을 내려치기 직전, 여인의 어깨 너머로 팔 하나가 튀어나와 소년의 팔을 잡았다.
턱.
“시, 신관님!”
그는 붉은 로브를 입고 검은 가면을 쓴 사내였다.
그는 소년의 팔을 잡은 상태에서 가면을 벗고 인자한 어조로 말했다.
“신도님, 여기를 보십시오.”
신관은 소년의 눈 바로 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바닥에 둥글게 혈선이 생기더니 붉은 눈알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괴롭고 분노가 인다.
“으으…….”
소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신관의 손을 쳐 냈다.
소년의 반응에 신관의 미간이 확 찌푸려진다.
“분명 열여섯이랬는데…… 참 안 통하네. 정신력 특훈이라도 받았나.”
신관이 어느새 붉은 눈알이 사라진 손바닥을 뻗자 소년이 그 팔을 잡아챘다.
“나…… 떠 재으려고?”
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퍽.
신관의 손바닥이 소년의 머리에 닿는 순간 파란 빛이 번쩍였고, 소년은 그대로 줄 끊어진 연처럼 풀썩 쓰러졌다.
“세뇌 전에 힘을 제대로 활용하게 되면 골치 아픈데…….”
회색 로브를 입은 사제들은 신관 뒤에 서서 불안에 떨고 있다.
소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벌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신관은 일어나 뒤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천선실로 데려가라, 족쇄는 미스틸로.”
“예! 신관님.”
“예, 신관님.”
신관은 한 발자국 옮겼다가 멈추고는 다시 돌아서서 검지를 들어 올렸다.
“아, 그리고.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사제님들도 여기에 매달릴 거야.”
“며, 명심하겠습니다…….”
신관은 두려움에 떠는 사제들의 눈동자를 보고는 흡족해하며 발을 떼었다.
* * *
아이드 성.
성주의 집무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예? 잔금을?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서요? 갑옷 팔았어요?”
이엘은 가브의 말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견적만 내고 아직 시작하지 못한 테라 마을 재건 비용을 가브가 한 달 만에 구해 왔다는 폭탄 발언 때문이다.
가브는 이엘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대답했다.
“구했다.”
“그러니까 어디서요? 이것도 비밀?”
가브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래요, 기적적으로 돈을 구했다고 칠게요. 저에게는 오라버니 자체가 기적이니까, 그런데 세실리아 씨는 왜 안 보여요, 두 달은 된 것 같은데? 설마 어디 팔아먹은 건 아니죠?”
이엘은 가끔 이렇게 생각지 못한 때에 허를 찌른다.
가브는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특수 임무를 맡겼다.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특수 임무……. 참 궁금한데 참을게요. 그럼 그 잔금은 언제 치르기로 할까요?”
“아마…….”
똑똑.
가브는 때마침 울리는 노크에 몸을 일으켜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문 너머에 있던 집사는 화들짝 놀랐다가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묵례했다.
“영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이드 성 응접실, 가브는 자신의 성에 두 번째 찾아온 귀족을 맞이했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다행히 계셨군요.”
“죄송한 표정은 아니군.”
진한 회색의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내, 그레이 남작이었다.
그는 배당금 2만 골드를 직접 들고 와서 가브에게 넘겼다.
“언제 찾아와도 환대할 만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 이건가.”
“하하,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별장에서 귀족들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음에도 그의 표정과 웃음소리는 선한 사람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그레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눈빛을 바꾸었다. 이제 본론을 꺼내려는 것이다.
가브도 그에게 몸을 조금 기울였다.
“제가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이까짓 골드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열 승급?”
가브의 말에 그레이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본래 그녀가 챔피언이 된 후에야 승급 시험을 치를 자격을 드리려고 했는데, 상황도 잘 맞아떨어졌고…… 얼른 로열층에서 자작님을 뵙고 싶어 이번에만 특별히 조기에 자격을 드리려고 합니다.”
“말해 보시오.”
“그레이 남작령 서쪽, 잉기스의 숲에 카난이 출몰했습니다. 피해는 커져만 가고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죠.”
“영주는 뭘 하고 있고?”
“기사 둘에 무장한 병사 스물을 보냈지만……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저와 같은 변방의 남작은 이 이상의 병력도 없고, 감당하기에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브가 새까만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자, 그레이는 시선을 내리깔며 입꼬리를 올렸다.
“대외적으로는.”
“기한은?”
“주민들의 고통과 신음이 지금도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의 가식적인 대답에 가브는 냉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출발하지.”
* * *
잉기스 숲은 나무가 크고 울창하기로 유명하다. 숲이 우거지면 낮에도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 사람들은 피하고, 마물들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마물이나 동물의 소리로 가득해야 할 숲이, 지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대, 대장, 괜찮을까요?”
“아, 진짜. 리콜, 너 쫄았어? 쫄면 끝이라니까.”
“아니, 아닙니다. 카난 따위…….”
이제 열일곱 되는 리콜은 1년 차 마물 사냥꾼이다. 그는 처음으로 카난 사냥을 나섰다.
대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앞장서서 수풀을 헤치며 다시 나아갔다.
“마물의 왕? 그딴 타이틀에 쫄지 마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야, 내가 카난 전문가야. 잡아 봤다고 했지?”
“네, 네. 그 전에 있던 토벌대에서…….”
“그래, 진짜 별거 아니야. 다들 카난 보기 힘들어서 지들이 잡으려고 소문을 부풀린 거라고, 한 마리에 얼마라고?”
“삼천…….”
대장은 뒤돌아서 리콜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삼천오백! 인생 역전하는 거야,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그, 그런데 오우거보다 강하다고 했는데 정말 우리끼리 될까요?”
리콜이 속한 토벌대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의 말에 대장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내가 말했지? 카난은 밤에는 병신이야. 놈한테 이 형광 가루만 뿌리면 사냥 끝이야, 뿌리고 방패만 들고 있다가 공격해 오면 그사이에 뒤에서 창으로 찌…….”
꾸룩.
스산한 소리, 리콜은 대장의 배를 뚫고 나온 커다란 손을 발견했다.
“이, 이게 뭐……! 사, 살려……!”
촤악!
대장의 배가 체인갑옷과 함께 찢어진다. 리콜 뒤에 있던 대원들은 경악하며 무기를 들었다.
“뭐, 뭐야!”
“카난인가!”
대장의 잔해가 바닥에 널브러지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코볼트 소리도 못 들었는데!”
“침착해. 대장이 밤에는…….”
츄악-.
그때 또 한 명이 당했다. 리콜 바로 옆에 있던 대원의 머리통 절반이 잘려 나간 것이다. 다섯 개의 날카로운 상흔, 마물의 왕 카난이 분명하다.
대장의 말만 믿고 어둠을 이용하기 위해 횃불도 들고 오지 않아 사방이 깜깜하다. 일찌감치 어둠에 적응했지만 카난으로 짐작되는 실루엣을 잡아낼 수가 없다.
대장이 죽기 전에 떨어트린 형광 가루만이 유일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스걱, 푹!
“끄아악!”
“사, 살려…….”
여기저기서 보이지 않는 절규가 울려 퍼진다. 카난은 어둠에서 활동하지 못한다는 말은 개소리였다. 오히려 야행성처럼 어둠에 숨어서 토벌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사냥꾼은 토벌대가 아니라 카난이었다.
리콜은 덜덜 떨면서 몸을 숙여 형광 가루를 한 움큼 쥐었다.
‘형광 가루만…… 형광 가루만…….’
리콜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도 못하는 카난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무의미했다.
후우웅-.
적막이 찾아왔다. 짙은 피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한다. 작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천둥처럼 들려올 뿐.
리콜은 이제 자신의 차례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슥-.
측면에서 검은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온다. 리콜은 형광 가루를 뿌리며 뒤로 나자빠졌다.
촤악!
-크허엉!
카난은 마법으로 착각했는지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자 낮게 울며 리콜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크르르…….
턱, 턱, 턱.
리콜은 발로 바닥을 밀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카난의 얼굴이 급격히 가까워진다.
짙은 파란색의 비늘이 촘촘히 덮여 있는 가죽, 흑요석을 박아 넣은 듯이 새까만 눈과 마주하자 절로 몸이 굳었다.
즈즈즉.
카난의 손톱이 천천히 리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의 심장을 그대로 뽑을 심산인 것이다.
“아, 아…….”
리콜은 어떠한 발악도 할 수 없었다. 마비 독인지, 공포가 뇌를 점령했는지 손가락 하나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리콜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때, 카난이 돌연 고개를 휙 돌렸다.
“하아앗!”
콰아앙!
달빛을 받은 은색 도끼와 카난이 충돌했고, 카난은 저 멀리 날아가 아름드리나무에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