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76
76화
“허억!”
리콜은 카난에 필적하는 덩치를 보고는 곰이라도 튀어나온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덩치의 사내는 나무에 박힌 카난을 검지로 가리키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주군! 이놈 형광 가루 묻어 있는…….”
쾅!
그때 카난이 금세 날아와 덩치 사내를 밀쳤다. 사내는 카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 멀리 날아가 수십 바퀴를 굴렀다.
콰광! 쾅! 트드드드-.
-카흐아!
카난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이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리콜은 날아간 덩치 사내가 움직이지 않자 다시금 두려움에 빠졌다.
‘역시, 아무도 카난을…….’
그때 하늘에서 은빛이 번쩍이더니 아래로 꽂혔다.
쩌정!
은빛은 가공할 속도로 내려오며 카난과 정면으로 부딪혔고, 강력한 파동이 일며 주변에 풍압이 생겼다.
리콜은 그제야 은빛의 정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온몸을 두르는 백은갑옷에 길고 넓적한 검을 쥔 자, 가브였다.
카난의 한쪽 팔은 가브의 중검으로 인해 절반이 뭉개진 상태였다.
-끼하악!
카난은 소름 끼치는 고음을 내뱉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위케리스와 특무대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주군! 저놈 튀는데요!”
위케리스가 바로 뒤쫓으려고 하자, 가브가 그를 제지하며 카난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기다려. 카난은 쉽게 도망가지 않는다. 흩어져.”
“예, 주군. 산개!”
“산개!”
위케리스의 명령에 특무대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중갑옷을 입고 몸통만 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대원들은 2인 1조로 등을 맞대고 다른 조와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대형을 만들었다. 위케리스도 주 무기인 장검이 아니라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었다.
가브만이 방패가 아닌 무기를 들고 어둠을 주시했다.
“으으, 진짜 괴물이구만…….”
고목에 박혀 있던 발튼도 일어나 어깨를 돌리며 한 손에는 도끼를, 한 손에는 방패를 들었다. 다른 한 짝은 등에 메고 있었다.
가브의 토벌대 역시 어둠을 밝히는 횃불은 가져오지 않았다. 이미 죽은 토벌대의 대장 말이 절반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카난은 청각, 후각, 시각, 모두 뛰어나지만 동체 시력이 가장 뛰어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움직일 때 많은 부분을 눈에 의존한다. 그러나 야행성동물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밤에는 낮보다 움직임이 둔해진다.
하지만 밤에 둔해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지, 어둠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보다는 훨씬 더 잘 보고 잘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이 있다.
사박, 사박, 사박.
금세 적막해진 숲속, 가브의 발소리만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가브는 첫 환상성의 사건을 해결하고 받은 능력으로 인해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도 낮처럼 눈이 밝다.
그는 매와 같은 눈으로 카난의 흔적을 찾았다.
스슥.
“오른쪽!”
가브의 외침에 오른쪽에 있는 대원들이 방패를 꽉 쥐며 집중했다. 곧이어 형광 가루가 묻은 카난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콰앙!
“크악!”
놈이 보임과 동시에 대원 둘이 날아갔다. 대원들은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육두마차에 부딪힌 것만 같았다. 그들은 하늘 높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처적, 척.
다른 대원들이 무방비 상태의 대원들을 앞뒤로 둘러쌌다. 카난의 연이은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다.
타다다다닥!
가브는 카난이 달리는 시점부터 놈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외형은 판금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움직임은 가죽갑옷 하나 걸치지 않은 듯이 빨랐다.
그는 카난이 대원들과 몸통 박치기를 하고 난 뒤에 아주 잠시 느려진 순간을 노리며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캬하.
다른 표적을 향해 달리려던 카난이 멈칫하더니 가브에게 몸을 틀었다. 놈의 눈은 눈동자와 흰자를 구분할 수 없이 까맣지만,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놈은 이내 발에 힘을 주고 가브에게 달려가며 성한 왼손을 마주 휘둘렀다.
쩌엉!
맨손과 검이 부딪혔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잡혔다!’
가브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자신의 중검 검날이 놈의 손에 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브는 바로 검을 놓고 놈의 팔을 두 손으로 잡아 꺾었다.
끄득-.
놈의 고통이 떨림을 통해 느껴지지만, 팔은 부러지지 않았고 가브의 검을 놓지도 않았다.
“발튼!”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발튼이 달려올 수 있는 시간은 벌었다.
순간적으로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을 깨달은 발튼은 방패를 버리고 도끼를 두 손으로 쥐고 카난의 발목을 향해 힘차게 내리찍었다.
콰직!
-카하악!
놈의 발목은 견고한 가죽 덕에 발튼의 괴력과 날카로운 도끼날에도 단번에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반대로 꺾여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카난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털어 가브와 발튼을 물리치고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발로 오히려 뭉쳐 있는 대원들에게 달려갔다.
타다다닥!
놈은 한 발로 가다가 갑자기 몸을 누여 두 손을 이용하여 대원들에게 빠르게 덤벼들었다.
“조심해!”
쾅! 꽈직!
놈의 몸통 박치기에 여섯 명의 방패막이 우르르 무너지고, 한 명이 바깥으로 툭 튕겨 나갔다. 대원은 몇 바퀴 굴러 가브와 발튼이 있는 곳에 널브러졌다.
“끄으으으…….”
이번에 새로 들어온 대원 게스기였다. 그의 배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진 와이번 테라의 내갑 정도는 쉽게 찢어 버린 것이다.
카난은 다시 어둠 속으로 도망쳤고, 가브는 게스기와 눈을 마주쳤다.
“어, 어서…… 쫓-.”
타악!
가브는 그의 입이 열리자마자 바닥을 박차며 카난의 뒤를 쫓았다. 후폭풍으로 튄 흙은 게스기의 입안에 한 움큼 들어갔다.
“켁, 케, 퉷.”
그가 흙을 뱉으며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는 동안, 위케리스가 진녹색의 약병을 꺼내어 들며 그에게 달려왔다.
‘헉, 허,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리콜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전투를 보고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자들 같았다.
‘근데 왜……?’
사람들은 대장으로 보이는 백은갑옷 한 명만을 보내고, 따라가기는커녕 아까처럼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리콜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툭-.
백은갑옷의 남자, 가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그는 절단면이 지저분한 카난의 머리통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가브는 아직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위케리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체 챙겨.”
“예! 주군!”
“예! 각하!”
특무대는 그제야 챙겨 뒀던 랜턴에 불을 붙이고 사체를 찾아 나섰다.
카난의 몸은 마치 물고기처럼 비늘로 촘촘하게 뒤덮여 있다. 그래서 가브의 중검이나 발튼의 도끼로도 쉽게 잘리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지만, 카난이 죽고 나면 비늘도 생기가 사라져 푸석푸석해지고 내구성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기름을 먹이면 그 질김이 조금 살아나지만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물의 왕이라는 이름값 덕분에 수천 골드의 값어치는 한다.
카난 토벌이 마무리가 되고 이동하려는 차에, 이전 토벌대의 유일한 생존자 리콜이 멍청하게 보고 있다가 가브에게 달려왔다.
“저, 저기, 나리!”
돌발 행동에 발튼이 인상을 쓰며 한 손으로 그를 제지했다.
“뭐야, 이놈. 아직 안 갔어?”
검신을 닦던 가브는 슥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리콜은 발튼의 말을 무시하고 가브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었다.
“나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존, 존함이라도…….”
발튼은 가브의 얼굴을 한번 살폈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구했는데? 난 발튼이고, 이분은 나의 주군 가츠 아이드 자작님이시다. 잘 기억해 둬.”
“가츠 아이드 자작님……. 평생,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가브는 그를 힐끗 보고는 바로 시선을 거두고 발을 옮겼다.
리콜은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카난의 사체는 대가리만 남기고 모두 팔아 버렸다. 카난의 이빨이나 눈알은 장식용 외에는 쓰이지 않기 때문에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알레트에 위치한 사냥꾼 협회 제국 본부, 그곳에 가브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순간 경직되었다.
“저, 저분은…….”
“허업.”
“빨리 본부장님께 알려!”
창구에 있는 직원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가브를 힐끗거린다.
대부분 숙청되었지만 전의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직원들은 그대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브는 홀로 정예 대원 백쉰 명을 죽인 전설적인 암살자이자 사해의 중추였다.
가브는 모든 창구에 사람들이 있어 대기석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 모습에 직원들이 안절부절못할 때, 한 남자 직원이 용기 있게 창구에서 나와 그에게 다가갔다.
“오, 오셨습니까! 보, 본부장님께 안내해 드릴까요?”
가브는 그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따라 쪽문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1급 해수이자 이곳의 임시 본부장인 배쉬가 급히 내려왔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 우렁찬 외침에 직원들은 물론 그곳에 있던 사냥꾼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가브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배쉬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올라가자.”
“옙!”
배쉬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가브의 뒷모습을 보며 직원들은 작게 속삭였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러게. 본부장님도 저리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의도치 않게 가브에 대한 소문이 더욱 무시무시해지는 협회 본부였다.
본부장 배쉬는 자신의 집무실에 가브를 모셨다. 가브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별일 없나?”
가브의 말에 배쉬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협회원 중에 한 명이 행방불명되었고, 그 이전에 행적이 수상했던 것을 숨겼던 것이다.
그러나 1급 해수는 겉으로 심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배쉬는 살짝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배님 덕분에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잘되십니까?”
“그 때문에 왔다. 비조를 띄워라.”
“비조……. 예, 선배님!”
배쉬는 질문 한번 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사방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어두운 방, 벽에 달린 촛대만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방 한가운데에는 파란 머리칼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뒤로 넘긴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가츠 아이드 자작이 자격시험을 수락했습니다.”
파란 머리칼의 사내, 그레이의 보고에 맞은편에 뒤돌아서 앉아 있는 자의 뒤통수가 살짝 움직였다.
“그래, 계속 지켜봐라. 미행은 절대 붙이지 말고.”
감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톤의 목소리다. 마치 수십 개의 쇠가 부딪히는 것처럼 거북하고 위험한 목소리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자이기에 장로님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무위가 조금 뛰어난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레이의 물음에 장로라고 불린 자의 의자가 돌아갔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장로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그 행동만으로 그레이에게는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그레이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가 봐라.”
“예, 장로님.”
그레이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장로가 천천히 자신의 후드를 벗었다. 선명한 흉터가 그의 목을 두르고 있다. 그곳은 지저분하게 꿰매여 있었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가츠…… 네가 여기에 뭘 하러 왔든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