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sassin Monarch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저벅저벅.
가브가 자리에서 일어나 털보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손가락 관절을 풀며 가브를 내려다보았다.
“이기면 내가 소대장-.”
그때 가브의 시선이 그의 뒤로 옮겨졌다.
콱! 찌지직!
“아아악!”
괴력에 눌려 겁먹은 줄만 알았던 흉터 사내가 그의 등에 올라타 귀를 물어뜯었다. 털보는 흉터 사내의 옷자락을 잡아 아래로 내치고, 발로 얼굴을 찼다.
퍽!
흉터 사내는 그사이 두 손으로 얼굴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나 다시 털보에게 덤벼들었다.
둘의 주먹이 서로 교차하는 순간, 가브가 끼어들었다.
쾅!
가브는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둘의 주먹을 한 번에 저지시키고는 두 손으로 둘의 목을 움켜쥐고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콰직!
방금 전 털보가 흉터 사내를 내리꽂을 때와는 울림이 다르다. 그러나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쾅! 쾅!
가브의 무지막지한 교육이 멈추자, 바닥의 핏물이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두 사내는 이미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축 처져 있었다.
가브는 피 묻은 손을 그들의 옷에 닦고는 돌아서서 린을 보았다.
“오크 회복제 하나씩 뿌려 줘.”
“예, 옙! 대장.”
다른 신입 대원 둘은 어느새 구석에 가서 무릎을 꿇고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가브는 숙소 건물 지붕에 올라가 굴뚝에 등을 기대앉았다. 혼자 조용히 있을 곳을 찾다가 알아낸 장소다.
눈을 감고 있으니 저절로 마나의 흐름에 의식이 따라갔다.
‘마나핵이 중심…….’
마나는 발가락 끝, 손가락 끝, 정수리까지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 모든 마나는 단전에 있는 마나핵을 거친다.
그런데 마나핵은 크기가 매우 작고 단단하다. 절대 커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마법사 펜릴은 마나핵의 크기만큼만 마법을 즉시 시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고, 나머지는 대기에서 마나를 모으고 술식을 만들어 마법을 시전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나핵은 쥐꼬리만큼 작지만 마나는 그곳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
‘즉시 시전을 못해…….’
그렇다고 몸 안에 있는 마나로 마법을 즉시 시전 가능한 것도 아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대기 중에 떠도는 반경 1미터 내에 있는 마나는 몸 안의 마나처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속성 중에 화 속성만 한 군데에 모아 작은 불을 피워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제대로 마법을 부릴 줄은 모른다.
‘나중에.’
후에 마법에 관한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생기면 그때 알아본다.
가브는 가만히 마나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조금 더 빠르게 돌렸다.
‘음…….’
엄청난 것을 본 것 같다. 마나가 몸을 한 바퀴 돌 때 오른팔에 담겨 있는 위협적인 마기가 아주 미세하게 그 물살에 딸려 왔다. 그것이 마나와 엉켜 불안정하지만 마나핵을 지나가니 완전한 마나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마기는 줄어들고 마나는 많아진다. 마기를 마나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지금 담고 있는 마나의 그릇을 키우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른팔에 담긴 마기를 전부 마나로 변환하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이…….’
가브는 의식적으로 마기를 마나의 흐름에 더 섞어 마나핵을 통과시켰다.
“흡, 우읍.”
찌직-.
그 순간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가브는 그 자리에서 내부에 충격을 받고 피를 토했다. 가브의 눈동자가 순간 붉어지고 오른손의 손톱이 제 마음대로 장갑을 뚫고 튀어나왔다.
가브는 다시 그것이 마나핵을 통과하기 전에 재빨리 마나와 분리하여 구석에 두었다.
“무리하면 안 되겠군.”
눈을 뜨고 피 묻은 입가를 닦을 때, 아래 창문에서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브 형님! 형님 계세요? 신입들 깨어났어요!”
“알았다.”
가브는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다시 2소대 숙소로 향했다.
털보와 흉터는 얼굴에 헝겊을 하나씩 대고 있었다. 가브가 도착하자 털보 사내는 자세를 바로잡았고, 흉터는 눈에 불을 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이 개……새…….”
턱-.
흉터는 무릎이 반쯤 접힌 애매한 자세로 멈춰 섰다. 가브가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잡고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이다.
두 다리를 부들거리며 힘을 주어도 점점 더 내려간다. 흉터는 머리가 터질 듯한 힘을 한껏 느끼며 다시 자리에 앉아 손을 두 무릎 위에 공손히 올렸다.
가브는 그제야 그들을 지나쳐 가운데 복도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 후 전초기지로 간다. 찾아다니게만 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신입들은 이곳에 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군기가 바짝 잡혔다. 그들의 대답은 숙소 밖에까지 들렸다.
* * *
장벽 너머 얼음 숲, 눈꽃을 담은 나뭇가지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스윽.
하얀 털가죽을 뒤집어쓴 오크가 몸을 드러냈다. 진녹색 울긋불긋한 근육에, 귀까지 올라온 어금니가 위협적이다.
까드드드득.
오크의 활은 종족 특성의 발달된 근육만큼이나 단단하고 질기다. 더 멀리, 더 파괴적인 화살을 쏠 수 있다.
팅-.
화살이 시위를 벗어났다. 얼음장 같은 한기를 찢으며 장벽 위로 솟아올라 간다.
푹!
화살이 경계 대원의 눈알을 꿰뚫고 뒤통수로 촉이 튀어나왔다. 그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장벽 아래로 떨어졌다.
“습격이다! 습격이야! 오크의 습격이다!”
다른 경계 대원이 동료의 죽음을 보고 기겁하며 봉화를 피웠다.
초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은 물론 전초기지에서도 지원을 나왔지만 공격했던 오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크들은 가브의 백인대가 지키는 7, 8, 9초소에만 한 달 동안 반복적으로 이와 같은 행동을 일삼아 대원들의 피로를 누적시키고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방패를 들고 경계를 서도, 용변을 볼 때나 교대할 때 귀신같이 알고 화살을 쐈다.
이로 인해 한 달간 죽은 대원만 스물이 넘었다.
백인대장은 버티기 힘들어 아하리트 요새로 돌아가 지휘관 할트 백작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다들 피곤에 절어 있습니다. 저도 일주일째 잠을 제대로 못 잤고요. 아무래도 대대적인 수색을…….”
퍼억!
할트 백작의 대답은 재떨이였다. 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야, 이 쓰레기 새끼야! 네가 뭔데 대대적인 수색이니 뭐니 하고 지랄이야! 네가 니네 백인대 데리고 나가서 처리해! 오크 한 마리라도 못 잡아 오면 내 손에 뒈질 줄 알아라.”
“예, 예. 알겠습니다.”
백인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지휘관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백인대장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똥 씹은 표정으로 전초기지에 돌아온 백인대장은 대기 중인 대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탐색 준비해! 오크 사냥 나간다! 2, 3중대 다 나간다!”
“예? 지원 없습니까?”
“우리끼리? 딱 봐도 수상한데?”
“뭔 말이 많아, 씨팔! 빨리 준비해!”
대원들은 백인대장의 이마에 굳어 있는 피를 보고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그리고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식량과 무기를 챙겨 들었다.
“가브는? 가브, 초소에 있나?”
“아니, 걔 3중대잖아. 같이 나간다.”
“다행이구만. 난 가브 옆에 딱 붙어 다니련다.”
가브는 말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살얼음판과도 같은 장벽 생활에서 그를 돛단배처럼 느끼는 것이다.
가브는 백인대장과 함께 가장 선두에서 탐색을 진행했다. 백인대장은 눈으로 뒤덮인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웠어. 꼬리를 달고 움직이는군.”
꼬리는 얇은 나뭇가지를 여러 개 엮어 줄을 연결하여 허리에 묶는 것을 말한다.
꼬리를 달고 움직이면 발자국을 한 번 쓸어서, 이와 같은 눈밭이나 모래가 많은 곳에서 흔적을 없애는 데 주로 이용한다.
백인대장의 말에 가브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오크가 아무리 마물 중에서 지능이 높은 편이라고 해도, 반복적인 기습으로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꼬리로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인간이 관련되었거나, 오크들 중에 특출한 놈이 있는 것이다.
가브는 감각을 더욱 키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 이러니까 더 찝찝하네. 시팔.”
백인대장은 꽂혀 있는 붉은 깃발을 매만지며 욕을 내뱉었다.
탐색 범위까지 뒤져 봐도 오크를 한 마리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더 넘어서까지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아무도 원치 않았다.
“갑시다, 대장.”
“가자-! 다른 초소로 넘어갔나 보지, 뭐.”
백인대장과 대원들은 찝찝함을 애써 지우며 장벽으로 귀환했다.
며칠 후, 가브가 소속된 3중대의 경계 근무 차례가 되었다. 가브가 소대장으로 있는 2소대는 근무자가 총 여섯 명밖에 되지 않아 한 명씩만 근무를 서게 했다.
가브는 초소에서 경계 근무 대원과 함께 근무를 섰다. 이곳에서도 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두 개의 봉화대와 대원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함께 근무를 서는 흉터 대원이 다리를 떨다가 말을 꺼냈다.
“어, 그, 대장……님은 어디서 싸움을 배우셨소?”
가브는 양쪽 봉화대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방패 들어. 앞에 봐.”
흉터 대원은 혀로 아랫잇몸을 한번 쓸고는 조금 감정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아니, 뭐 어려운 질문 한…….”
쐐애애액- 턱!
흉터 대원은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그의 눈알 바로 앞에 날카로운 화살촉이 멈춰 있기 때문이다.
“봉화 피우지 마.”
“어, 어디 가십……!”
가브는 잡아챈 화살을 그에게 주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 * *
아이드성에서 최북 전선으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는 제국의 수도이자 판테르 대륙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대도시 카르마가 있다.
카르마를 처음 와 본 헤딘은 온갖 희한한 물건들과 먹거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이거, 이거 먹어 보자요.”
“헤딘…… 어차피 먹어도 금방 토하잖아.”
이엘의 말에 헤딘은 코를 벌름거리며 대답했다.
“먹어도, 먹어도 토한다고 나 무시하는 거예요? 돈도, 돈도 많으면서. 나도 맛 느낄 수 있어, 있어요. 맛이 좀 없어졌을 뿐이지. 저거 맛 궁금해.”
이엘은 자신이 차고 있던 장신구를 팔아서 가브에게 가는 경비를 마련했다. 그것을 팔 때 옆에 있었던 헤딘은 ‘돈도 많으면서.’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먹자, 먹어.”
헤딘은 금세 히죽거리며 메고 있던 보따리를 옆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우와아.”
헤딘은 회오리처럼 깎아서 튀긴 감자를 받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크게 한입을 먹고 두 번째 먹으려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아래를 보았다. 보따리가 없어졌다.
“가져갔다! 강도다!”
헤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오리감자를 한입에 쑤셔 넣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뭐가? 어디 가!”
이엘은 다급히 계산을 치르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