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5)
아기 요정은 악당-105화(105/200)
체샤는 몹시 얼떨떨하게 소녀를 바라보았다.
고양잇과 맹수를 닮은 소녀는 삐죽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아란 스카야. 너는 체샤 바실리안이지?”
아란의 송곳니를 본 체샤는 순간 카르하를 떠올렸다가 뒤늦게 답했다.
“네에…….”
“정말 귀엽구나. 친하게 지내자.”
공주마마답게 하대하는 태도는 일견 오만했다.
하지만 체샤의 손을 붙잡고 붕붕 흔드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였다.
팔짝팔짝 뛰고픈 충동을 참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로 보아, 실제 성격은 말괄량이 아가씨일 듯했다.
‘아니 근데 왜 이러지.’
이타르를 이단 심문실에 보냈는데 고맙다고 난리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란이 흔드는 대로 팔랑팔랑 흔들리던 체샤는 힐끔 벨제온을 올려다보았다.
‘너는 뭐 좀 아냐?’
하지만 벨제온이라고 해서 아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도 겉으론 티 내진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답답한 체샤는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화 안 나쏘요……?”
우물우물 애매한 질문을 던지자, 아란은 찰싹 같이 알아들었다.
아란이 눈매를 뾰족하게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놈은 정신 좀 차려야 해.”
“…….”
그건 체샤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 새끼는 좀 당해야 했다.
“내가 그놈 때문에 어찌나 고생했는지! 마음 같아선 이단 심문실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단 말이지.”
쫑알쫑알 투덜거리던 아란은 갑자기 말을 뚝 멈추고 체샤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란이 못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오라비 말고 너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매일 안고 다니며 둥개둥개 아껴 주었을 거라며 슬퍼했다.
아란의 보호자로 온, 아마도 시녀로 보이는 여자가 곤란한 기색을 드러냈다.
“마마.”
그녀가 조심스럽게 부르는 말에 아란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그만할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체샤가 불쑥 아란에게 질문했다.
“공주마마는 왜 왕과니 피료해요?”
“왕관이 왜 필요하냐고?”
아란은 잠깐 망설이는 듯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비밀로 할 것도 없지.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
그리고 아란의 입에서 예상했던 말이 떨어졌다.
“요녀 때문이야.”
아란의 오라버니이자 스카야의 왕태자인 이타르가 요녀 리체시아에 미쳐 있단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번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한 이유도 요정 여왕의 왕관을 받아서, 요녀 리체시아에게 제대로 청혼하겠다는 이타르의 원대한 목표 때문이었다.
아란 입장에서야 짜증 나고 귀찮은 오라비이지만, 그래도 이타르는 장차 스카야 왕국을 이끌어 나갈 왕태자였다.
아무리 아란이 귀한 공주마마라 하여도, 왕태자가 원하는 바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체샤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회장 안에 들어섰을 때의 분위기로 짐작하건대, 벌써 세력이 나눠진 상태였다.
보호자로 따라온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판을 가르고 있었다.
심지어 애들조차도 어른들의 기세에 휩쓸려, 마음대로 깔깔거리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펴 댔다.
불행히도 바실리안 백작가는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전부 성왕 덕분이었다.
‘어제 성왕이 마중 나오지만 않았어도 이보단 괜찮았을 텐데.’
너무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되어서 오히려 처지가 불리해진 것이다.
아무리 체샤가 날고 기어도, 합법적으로 여왕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혼자선 힘들었다.
참가자들 내에서도 체샤를 지지해 줄 세력이 필요했다.
‘여기서 내 편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란 스카야는 아군으로 삼기에 딱 적절한 인물이었다.
부유한 스카야 왕국이라면 이미 사방팔방 돈을 뿌려 놓았을 것이다.
바실리안 백작가에 부족한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아 놨을 가능성도 높았다.
이런저런 계산을 마친 체샤는 결론을 내렸다.
“공주마마.”
그리고 아란을 폭 끌어안았다.
얼결에 체샤와 포옹하게 된 아란의 눈이 큼직하게 커졌다.
아란이 뒤늦게 반응했다.
“…으, 으응?”
어색하게 체샤를 마주 안은 아란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쑥스러워하는 소녀를 꼭 끌어안은 체샤는 낑차 발돋움했다.
작은 발을 한껏 세우고서 아란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쩌랑 거래합씨다.”
몽롱하게 풀려 있던 아란의 눈빛이 거래라는 말에 곧장 날카로워졌다.
체샤는 속닥속닥 그녀에게 제안했다.
“쩨가 요녀 만나게 해 드리깨요.”
“…!”
“대신 왕과눈 쩌 주새요.”
놀란 아란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 전.
시끌시끌하던 회장이 조용해졌다.
고위급 사제로 보이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와 연단에 자리했다.
중년의 남자가 등장하자마자, 회장 안의 신성 사제와 기사들이 일제히 예를 표했다.
지위가 상당히 높아 보이던 사제들마저 예를 갖추는 걸 보고, 체샤는 남자의 신분을 짐작해 냈다.
‘추기경이구나.’
과연 남자의 사제복에는 추기경임을 나타내는 증표가 달려 있었다.
신성 기사들은 하일론의 지시 아래, 바실리안 백작가로 지지를 모으는 중이었다.
하지만 신성 사제들은 다른 아이를 지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 또한 하나로 의견을 모으는 중이라는데, 과연 추기경들이 선택한 아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키가 작아서 잘 안 보이는지라, 얼른 벨제온에게 안아 달라고 해서 위로 올라갔다.
체샤는 추기경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회장 안에 워낙 아이들이 바글거려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저 앞줄에 있는 작고 유약하게 생긴 남자아이를 향하는 듯했다.
체샤는 속으로 헹 하고 코웃음 쳤다.
보니까 아주아주 만만했다.
한 대 쥐어박으면 끝날 것 같은 놈이었다.
‘저 정돈 아기 몸으로도 충분히 이기지.’
도끼 꺼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경쟁자를 확인한 체샤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때 추기경의 시선이 체샤에게 닿았다.
그 또한 체샤를 확인하는 눈이었다.
찬찬하게 관찰하는 시선에 체샤는 순진무구한 아기 미소를 방싯 지어 보였다.
“…….”
미소 공격을 받은 추기경이 움찔 놀라더니 고개를 스윽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놀랐나 하고 체샤가 생각하는 사이, 괜스레 헛기침한 추기경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성 제국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소성인 기도회의 취지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아기들이 꼬박꼬박 졸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소성인 기도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첫 번째 과제를 먼저 내어 드리겠습니다.”
과제라는 말에 다들 정신을 번쩍 차렸다.
“신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바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추기경은 느릿느릿 말을 이어 갔다.
“단,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가 제시한 조건에 어른들의 표정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체샤도 울컥하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거 완전 대놓고 뜯어먹겠다는 소리 아냐?’
성유물이었던 요정 왕관을 그냥 내주기에는 아까우니, 제일 값지고 귀한 걸 뜯어먹겠다는 뜻이지 않은가.
가장 신실한 아이에게 하사하겠다는 취지가 민망할 정도로 세속적이고 치사한 과제였다.
할 말을 마친 추기경은 자못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모임을 매듭지었다.
“소성인 기도회 때 다시 뵙겠습니다.”
해산을 알리는 말에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하나둘씩 회장을 빠져나갔다.
다소 급히 움직이는 자들도 많았다.
소성인 기도회 시작이 코앞이었다.
무엇을 바쳐야 할지 빠르게 의논하려면 한시가 급할 터였다.
“하…….”
벨제온이 나직하게 헛웃음을 뱉어 내던 차였다.
그대로 퇴장할 줄 알았던 추기경이 휘하 사제들을 거느리고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아까 체샤가 보았던 작고 소심한 남자아이도 함께였다.
추기경은 정확히 체샤를 바라보며 다가왔고,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만한 시선이 체샤와 벨제온을 내려다보았다.
“바실리안?”
짤막히 묻는 말에 벨제온이 예를 표했다.
“팔렌 제국의 바실리안 백작가입니다.”
“아아.”
추기경은 잠시 체샤와 벨제온의 얼굴을 훑었다.
“잠깐 시간 내어 주겠나.”
권유하는 척하지만, 강제와 다를 바 없는 제안이 떨어졌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