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8)
아기 요정은 악당-118화(118/200)
한밤중에 급작스럽게 벌어진 재앙이었다.
동원 가능한 병력은 모두 뛰어나와 마물을 상대했다.
흰색 갑주와 푸른 망토를 갖춰 입은 기사들이 성검을 휘둘렀으며, 신성 사제들 또한 신성력을 이용하여 기사단을 보조했다.
신성의 빛이 어둠을 밝히는 광경은 절로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장대하였다.
어떤 사악한 것도 거뜬히 물리칠 듯한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악을 정화하는 신성력은 마물 앞에서 그 위력이 절반으로 꺾였다.
평소보다 훨씬 능력이 먹히지 않는 탓에 정화는커녕, 방어만으로도 급급했다.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도 각기 사병을 데리고 참전했지만, 그들이 보태는 힘 또한 미미했다.
신성 제국 내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수가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탓이었다.
99명의 참가자 전원이 최소한의 호위를 제외한 나머지 사병을 긁어모아도 그 수가 기백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마물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 고전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성인 기도회에 스카야 왕국, 아란 공주의 보호자로서 참석한 사미드 또한 기세 좋게 용병들을 이끌고 마물 퇴치에 나섰으나.
사미드는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만 적나라하게 깨달았다.
마물이라 해 봤자 고작 사나운 짐승 정도이지 않겠냐고 얕잡았던 생각은 완벽한 오만이었다.
사미드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눈앞의 마물들을 바라보았다.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켜서 손발이 굳도록 만들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허둥대면, 마물들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공격했다.
스카야 왕국이 넘쳐나는 부를 아낌없이 투자해 고용한 일류 용병들조차도 난생처음 보는 마물에 허덕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공격하질 못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다가 정신 차리니, 어느새 용병들과 떨어진 상태였다.
마물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사미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검을 든 손이 벌벌거리며 떨렸다.
목구멍에서 공포에 꽉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허억…. 사, 살려 줘…….”
마지막 희망을 담아 신성력이 번뜩이는 쪽으로 눈을 돌렸으나.
그들은 코앞에 닥친 마물을 상대하는 일만으로도 급급했다.
신성 제국조차 악을 물리치지 못하니, 사미드를 구원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한 절망이었다.
사미드는 결국 검을 놓쳤고, 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죽음을 직감한 사미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들이닥칠 끔찍한 고통을 각오하였으나.
어째서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촤아악 하고 얼굴에 뜨끈한 핏물이 뿌려졌다.
마물의 검은 피를 뒤집어쓴 채, 사미드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보았다.
밤을 잘라 만든 듯한 새까만 검이 보였다.
흑도를 휘두르는 검의 주인은… 소름 돋도록 아름다운 이였다.
새빨간 눈을 빛내는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기도회 전에 한 차례 남자의 가문과 엮이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사미드는 남자에 대해 무조건 알게 되었을 터였다.
남자가 신성 제국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순간부터, 모든 사람이 그를 궁금해 했으니까.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 전부가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사미드는 무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키에른 바실리안…….”
그러자 긴 눈매가 샐쭉하게 휘어졌다.
짧은 시선의 맞닿음은 금세 끊어졌다.
바실리안 백작은 가볍게 앞으로 뛰어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사미드도, 용병들도, 그리고 신성 기사와 신성 사제들도 안간힘을 다해 상대했던 마물은 백작의 검 아래에서 장난감처럼 쓸려 나갔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마물들은 처참히 소멸했다.
바실리안 백작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마물의 괴성에 얼어붙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홀린 듯이 백작을 바라보던 사미드는 갑작스럽게 제 앞에 나타난 소년에 흠칫 놀랐다.
“괜찮으십니까.”
짙은 남색 검을 든 소년이 바닥에 주저앉은 사미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장남이었다.
엉겁결에 손을 잡으니, 소년은 한 손으로 사미드를 일으켜 주며 다른 손으로 곧게 검을 내질렀다.
“끼에엑!”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서걱 썰렸다.
능숙하게 마물을 처리한 소년은 사미드에게 냉정히 명령했다.
“물러나 계십시오.”
돕는다고 얼쩡거리는 게 오히려 방해이니, 뒤로 빠져 있으라는 뜻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사미드는 저도 모르게 공손히 존대를 갖추어 소년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소년은 사미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마물 사이로 사라졌다.
사미드와 비슷하게 만용을 부렸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 몇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았다.
신성 제국이 하지 못한 일을 바실리안 백작가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미드는 뒤늦게나마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란 공주마마께서 숨어 계신, 비교적 안전한 후방을 찾아가려던 때였다.
“…?”
갑자기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괴성을 내지르던 마물들이 뚝 잘리듯 조용해진 탓이었다.
흉포하게 날뛰며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마물들은 누군가 시간을 멈춘 것처럼 그대로 굳었다.
그러더니 일제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신성력에 몸이 잘리고, 칼날에 살갗이 베여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런 반응 없이 인간들의 공격을 그저 고스란히 맞기만 했다.
사미드는 마물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주춤주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덩치가 커다란 남자와 두 소년이 서 있었다.
그리고 예쁘장한 소년의 품에 안긴 아기…….
마물이 바라보는 곳은 바실리안가의 입양아.
체샤 바실리안이었다.
***
체샤의 말에 쌍둥이는 꼼짝하지 못했다.
마치 피할 수 없는 화살에 맞아 버린 것처럼 삐걱거렸다.
결국 쌍둥이는 체샤와 함께 마물이 날뛰는 전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약간의 호승심도 섞인 결정이었다.
바실리안으로서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마물을 상대했다.
마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빠삭한 데다가, 최근 둘 다 실력을 갈고 닦는 맹훈련을 해 왔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동생 하나 정돈 지킬 수 있잖아.”
“뭐…. 그야 그런데.”
“게다가 테오 경도 있고.”
체샤의 가족 발언에 감동받은 이슈엘이 잔뜩 의욕적으로 나서서 카르하를 설득했다.
평소에는 곰 인형 취급하며 무시하던 테오까지 한 편으로 끼워 주며 열변했고, 하여 용감하게 전장의 한복판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상황은 체샤가 예상했던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성 제국은 마물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하일론이 신성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심지어 단죄의 사슬까지 사용하고 있기에 그나마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 힐데르드의 성소는 마물들로 뒤덮였을 터였다.
‘하일론은 최전방에 있을 테고. 키에른하고 벨제온은 어디 있지?’
체샤는 이슈엘의 품에 안긴 채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래 봤자 사방이 마물투성이라서 보이는 게 없었다.
기척을 알아챈 마물이 끄륵거리며 이쪽을 보았다.
카르하가 검 두 자루를 일시에 뽑아 들며 짧게 내뱉었다.
“온다.”
전투태세를 갖추는 카르하를 따라, 끌려온 테오도 검을 뽑았다.
카르하는 잔뜩 긴장해 덜덜 떠는 테오를 흘긋 눈짓하며 말했다.
“치안대장. 나 보조해 줘요.”
그리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검날이 교차하며 달빛 아래에 번뜩이니, 달려들던 마물은 그대로 토막 났다.
일격에 마물을 소멸시킨 카르하는 재빠르게 몸을 굴려 바로 근처의 마물도 함께 처리했다.
체샤는 잠시 상황도 잊고 감탄했다.
예전 뒷세계에서 노예 사냥꾼들을 상대할 때보다 월등하게 향상된 실력이었다.
테오도 날뛰는 카르하에게 맞춰서 훌륭한 보조 역할을 해냈다.
“야! 키에른이랑 벨제온 어딨는지 찾아봐!”
카르하가 마물을 베어 넘기며 소리쳤다.
백작의 이름을 막 불러 대는 격의 없는 호칭에 테오가 움찔하다가 마물한테 팔이 썰릴 뻔했다.
카르하는 그런 테오에게서 마물을 걷어 내 주었다.
“오라버니가 마법 쓰는 거 구경해, 동생.”
체샤에게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지, 이슈엘이 예고까지 해 가며 마력을 일으켰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마법진을 그려 나가던 때였다.
“…어?”
이슈엘이 당혹스러운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체샤도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체샤에게 은은한 빛이 감돌더니, 허공에 퐁 하고 자그마한 꽃이 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