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9)
아기 요정은 악당-119화(119/200)
이슈엘과 체샤는 놀란 눈으로 작고 하얀 꽃을 보았다.
꽃은 은은한 빛을 흩뿌리며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반짝이는 꽃을 보다가, 동시에 휙 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둘 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쌍둥이는 나 요정인 거 모를 텐데!’
본래 비밀이란 많은 사람들이 알수록 비밀이 아니게 되는 법이었다.
키에른은 바실리안 백작가의 후계자인 벨제온에게만 체샤의 비밀을 말해 주었다.
영원히 함구할 건 아니고, 후에 쌍둥이에게도 분명 알려 주었을 터였다.
다만 지금은 신성 제국 내에서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하는 중이니, 기밀 유지를 위해 우선 최소한의 인원만 진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여 이슈엘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동생 몸이 빛나면서 꽃이 퐁 하고 피어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
놀라서 잠깐 굳어졌던 이슈엘이 황급히 체샤를 끌어안았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체샤가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음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이슈엘의 작은 몸으로는 체샤를 전부 가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하타가 왕 하고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답삭, 꽃을 물어선 꼴깍 삼켜 버렸다.
빛나던 꽃이 사라지니, 주위는 다시 캄캄해졌다.
체샤도, 이슈엘도 어이없는 눈으로 하타를 쳐다보았다.
“먕!”
하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새침한 강아지 표정을 지으며 모른 척 짖었다.
불행히도 꽃을 먹은 보람은 없었다.
곧장 보란 듯이 퐁퐁퐁 하고 다시금 꽃송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번에는 무려 세 송이였다.
힐데르드의 신성 사제와 신성 기사들이 사용하는 신성력만큼이나 새하얀 꽃이었다.
마물의 독한 기운을 뚫고 향긋한 꽃내음이 번졌다.
갓 피어난 듯 생기가 넘쳐흐르는 꽃은 손으로 만지면 물기가 배어날 듯했다.
싱그러운 꽃송이를 보던 이슈엘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때도 네가 만든 꽃이었구나.”
연회장에서 이슈엘의 옷이 주스 얼룩으로 뒤덮였을 때.
체샤는 꽃을 만들어 내 그의 연회복에 물든 얼룩을 가려 주었다.
덕분에 이슈엘은 오히려 연회장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지난 일에 얽힌 진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이슈엘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백금색의 긴 속눈썹이 움직이는 눈꺼풀을 따라 하느작거렸다.
떨리는 입술이 작은 속삭임을 내뱉었다.
“요정이었어.”
“멍청하게 뭐 하냐! 밤새도록 여기 있으려고?”
카르하가 벌컥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
찾으라는 키에른은 안 찾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마물의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들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오던 카르하는 눈이 둥그레졌다.
“뭐, 뭐야…. 꽃?”
카르하를 뒤쫓아 온 테오도 마찬가지로 눈을 큼직하게 떴다.
이슈엘이 그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해 줄 새가 없었다.
뒤이어 연달아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체샤는 어느새 품에 하얀 꽃을 한 아름 끌어안게 되었다.
꽃에 파묻힌 하타가 앞발을 허우적거렸다.
카르하가 하타에게서 꽃을 대충 걷어 내며 다급히 물었다.
“꽃 뭐야. 이거 다 아기가 만든 거야?”
체샤도 얼떨떨해서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했다.
요정의 힘을 쓰지 않았는데 저절로 생겨난 꽃이 당혹스러웠다.
그때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날뛰던 마물이 모두 동시에 행동을 멈췄다.
고막을 찌르던 괴성도 뚝 끊어졌다.
기이한 정적 속에서 마물들이 일제히 체샤를 바라보았다.
테오가 숨을 헐떡거리며 황망하게 두리번거렸다.
“마물들이…. 이럴 수가…….”
연신 혼잣말을 뱉어 대는 그와 달리 쌍둥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굳어진 얼굴로 체샤를 바라볼 뿐이었다.
“…….”
반짝이는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 체샤는 저를 응시하는 마물들을 마주 보았다.
쏟아지는 마물의 시선은 누구라도 두려워할 만큼 섬뜩했다.
그러나 체샤는 무섭지 않았다.
그 눈빛들이 살의를 품었다기보단, 도와 달라는 간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넓은 신성 제국에서 체샤만이 마물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마물은 인간을 죽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죽음의 안식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떤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 댔다.
자신이 마물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니,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이것은 의무였다.
체샤가 해야만 하는 의무.
오직 체샤만이 할 수 있는 의무.
“마물…….”
체샤는 의식하기도 전에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
“마물 업애야 해요.”
입 밖으로 흘러 나간 말은 모양이 선명해졌다.
머뭇거리던 목소리가 확신을 품었다.
“쩨샤가 해야 하는 일이애요.”
하지만 쌍둥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실리안의 붉은 눈에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꼭 너여야만 해?”
나직한 질문을 던진 이슈엘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핏기가 가셔서 새하얘지도록 꼭 깨물었다가 재차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되잖아. 아버지랑 형님이 마물 죽이고 있고, 신성 제국의 사제하고 기사들도 마물을 상대하고 있는데.”
이슈엘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원망스럽게 질문했다.
“왜 하필이면 너야?”
아마 쌍둥이는 본능적으로 직감했으리라.
지금 체샤는 변화의 기로 앞에 섰으며, 선택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으리란 것을.
“이슈엘.”
카르하가 나직이 이슈엘을 불렀다.
하지만 이슈엘은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이슈엘이 체샤를 조금 더 힘주어 끌어안으며 혼잣말했다.
“동생도 엄마처럼 사라지면 어떡해.”
“그럴 리가 없잖아. 가족인데.”
“하지만, 요정이고, 이런 힘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이슈엘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과호흡이 오려는 것이었다.
카르하가 검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곤 손으로 이슈엘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이슈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숨을 골랐다.
가쁘게 들썩이던 가슴팍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상태를 확인한 카르하가 짧게 타박했다.
“하여간 약해 빠져선.”
다행히 금세 상태를 회복한 이슈엘이 카르하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걷어 낸 카르하는 다시 체샤와 눈을 마주했다.
카르하가 잠시 입술을 삐죽였다.
세모 모양으로 입매를 구기다가 한숨을 푹 뱉었다.
“아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뭐, 키에른하고 벨제온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난 아기가 뭘 하든 지켜 줄 거야.”
소년은 어린 동생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는 너를 위해 검을 들었으니까.”
작은 아기를 담아낸 눈은 진지했다.
이내 카르하는 제 쌍둥이 형제를 흘긋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슈엘도……. 널 위해 마법을 배웠고.”
오라버니로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카르하가 농담조로 말했다.
“사실 뭘 하든 키에른이 막아 줄걸? 아버지가 그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맞아.”
듣기만 하던 이슈엘이 조그맣게 한마디 거들었다.
카르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체샤를 응시하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떠나지 않는다고만 약속해.”
체샤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말을 해 버릴 것 같았다.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하는 말없이 미소 짓고선,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체샤는 가만히 한쪽 손을 뻗었다.
품 안에 가득하던 하얀 꽃이 한밤중의 반딧불처럼 퍼져 나갔다.
체샤에게서 꽃송이들이 마구 피어나며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꽃을 밟고 선 체샤의 주위에서 나비가 하늘하늘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어둠을 가르고 요정의 힘이 번져 나갔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바실리안가의 입양아가 요정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리라.
그러나 체샤 또한 각오한 바였다.
체샤는 작게 속삭였다.
“쩨샤도 가족들 지킬 거애요.”
소성인 기도회에서 쫓겨나고, 바실리안이 신성 제국을 등지게 된다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키에른에게 요정 여왕의 왕관을 가져다줄 것이다.
요정으로서 리체시아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겠지만.
막내이자 가족으로서 체샤 바실리안이 해야 할 의무 또한 다할 것이다.
체샤는 가진 힘을 폭발하듯 터뜨렸다.
수천 송이의 새하얀 꽃송이가 밤하늘에 나타났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