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6)
아기 요정은 악당-126화(126/200)
남자는 곧장 납작 엎드렸다.
번쩍이는 도끼날 앞에서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는 거, 모르는 거, 죄다 술술 털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뒷세계 사람들이 제일 건드리고 싶지 않은 존재가 둘 있으니.
바로 마스터와 요녀였다.
계속 살아 있고 싶으면 그냥 자연재해처럼 여기며 피해야 했다.
마스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요녀 또한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그녀를 잘못 건드렸다가 도끼질당한 사람들의 목록을 나열하면 뒷세계를 한 바퀴 휘감을 수도 있었다.
특히 요녀는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를 결코 잊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추기경에게 협력하여 재물을 얻어 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재물을 쓰려면 일단 살아 있어야 했다.
목숨을 잃으면 끝이니, 사내로서는 당연히 생존을 택한 것이다.
애초부터 요녀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리라.
잘못된 길을 선택한 사내는 벌벌 떨면서 열심히 정보를 뱉어 냈으나.
역시 사내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뒷세계에서 적당히 나쁜 짓 하고 살다가, 밀리오드 추기경한테 걸려서 이단 심판을 받는 대신 협력하기로 하고 이딴 짓을 꾸미게 된 것이다.
굳이 그를 끌어들인 이유는 나름 체샤와 엇비슷하게 생겼기 때문도 있지만, 흑마법사라는 이유가 컸다.
체샤 바실리안이 소성인 기도회에 절대 참가하지 못할, 완벽한 흠집을 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정도야 체샤도 익히 짐작했던 것들이었다.
‘그냥 도끼로 썰어 버릴걸.’
영 쓸모가 없었다.
체샤는 못마땅한 눈으로 사내를 흘겨보았다.
짧은 사이에 탈탈 털린 사내가 말라비틀어진 표정으로 입을 뻐금거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체샤를 살폈다.
“요녀에게 아이가 있었다니.”
체샤는 팔짱을 낀 채로 한쪽 눈썹만 까딱여 주었다.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니잖아?’
어쨌든 관련이 있는 인물이지 않은가.
딸은 아니고 본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이 요상한 신분을 또 써먹어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저어…….”
아까부터 계속 눈치를 살피며 기회만 노리던 사내가 슬그머니 입을 뗐다.
“저기, 저도 하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게 아닙니다…. 부디 어머님께 말씀 좀 잘 부탁드리고…. 혹시 아기님께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게 있으시면 이야기해 주시고…….”
팔랑거리는 나비와 꽃, 그리고 화려한 도끼를 흘깃거리며 아기에게 공손히 존대어를 쓰는 사내의 눈에는 호기심이 넘실거렸다.
요녀의 딸이 바실리안 백작가의 입양아라는 사실만 해도 충분히 놀라웠다.
그런데 무려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 중이라니!
그로서는 속사정이 궁금해서 미쳐 버릴 지경일 터였다.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던 체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을 좀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조씨 고짓말 잘하죠?”
“예? 예에……?”
사내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흑마법사이긴 하나, 실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다.
부족한 실력을 사기 치는 연기력으로 메우면서 살아온 자였다.
‘이번 건은 밀리오드 추기경 혼자서 벌인 일이 아니야.’
분명히 뒤에 성왕까지 엮여 있다.
이걸 잘만 이용해 먹으면 성왕을 역으로 파헤칠 수 있을 듯했다.
요런조런 계산을 끝마친 체샤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요녀와 똑 닮은 미소에 사내가 히이익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아조씨…. 내 아빠 할래요?”
***
체샤가 흉계를 꾸미는 사이.
밀리오드 추기경은 하일론과 키에른을 앉혀 놓고 일장 연설을 펼치는 중이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 않나. 이건 내 직접 뒷세계의 마스터에게 신원 확인을 의뢰한 일이네.”
그러니 결코 틀릴 수가 없다며, 밀리오드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하일론이 뒷세계 마스터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키에른은 짜증을 감추기 위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입매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성인 기도회는 그만 포기하게. 하일론 경을 봐서라도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맞지 않겠나.”
여기서 더 고집을 부리면 바실리안 백작가를 지지해 준 하일론에게도 피해가 갈 거라는 소리였다.
“지금은 내 선에서 묵인할 수 있으나…. 소성인 기도회에 끝까지 참가한다고 하면 성왕께 보고를 드릴 수밖에 없네.”
그러면 공개적으로 진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고, 결국 아이가 상처받으리란 게 추기경의 결론이었다.
키에른과 하일론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남자는 아주 오랜만에 한마음 한뜻을 이루었다.
이 새끼 죽여?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눈빛만으로 읽혔다.
이따위 개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니.
당장 추기경 목을 부러뜨려 버리고픈 마음을 꾹꾹 인내하던 때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체샤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체샤!”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키에른이 멈칫했다.
체샤가 친아빠 사칭범과 나란히 손을 잡고 등장한 것이다.
누가 봐도 다정한 부녀의 모습이었다.
밀리오드 추기경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군!”
흐뭇해하는 그와 달리, 키에른과 하일론의 얼굴은 급속도로 차갑게 굳어 갔다.
표정에 살얼음이 서리는 듯할 정도였다.
키에른은 이내 살살 웃으며 물었다.
“체샤…. 심심해서 왔어요? 근데 손은 왜 잡고 있어……?”
“아조씨랑 대화 더 하구 시포요. 깜옥 말구 바께서요.”
“…….”
키에른의 말문이 막힌 사이, 추기경이 얼른 일어나서 끼어들었다.
“그래! 이런 곳에서 어린아이가 오래 머무르긴 힘들지. 마침 내일이 소성인 기도회 두 번째 기도 날이지 않은가. 아이는 이제 그만 나가는 게 좋겠군.”
어차피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선 감옥을 나가야 했다.
부녀끼리 오붓하게 대화할 시간을 가진 후에 바실리안 백작가가 머무르는 숙소로 돌려보내겠다며, 추기경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다.
체샤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요기로 돌아올 거애요.”
그리고 잠깐 친아빠 사칭범의 손을 놓고서 키에른에게 다가왔다.
키에른은 넋이 빠진 채로 제게 걸어오는 체샤를 바라보았다.
체샤는 키에른 앞에 서서 작은 손으로 파닥파닥 손짓했다.
홀린 듯이 귀를 가져다 대는 그에게 한껏 발돋움한 체샤가 소곤소곤 귓속말했다.
“쩌한테 아빠는 하나뿐이애요. 금방 다녀오깨요.”
그러니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그렇게 말했다.
꽃향기를 살살 풍기며 속삭이는 말에 키에른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신 차리니 체샤가 없었다.
밀리오드 추기경과 친아빠 사칭범하고 떠나 버린 것이다.
키에른을 홀로 버려두고.
“…아.”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키에른은 체샤가 남긴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빠가… 하나뿐이라는데.”
그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불쑥 말했다.
“설마 이제 저놈이 아빠가 되는 건가?”
체샤의 속삭임은 누가 들어도 키에른이 유일한 아빠라고 선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고장 난 머리는 제멋대로 최악을 가정하며 말뜻을 바꿔 버렸다.
연약한 정신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치의 그림자가 일그러지기 직전, 하일론이 멱살을 잡았다.
“정신 차리십시오.”
“으응…….”
멱살이 잡힌 채 추욱 늘어지는 키에른에게 싸늘한 추궁이 떨어졌다.
“친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야…. 아닌데, 진짜 아닌데…….”
키에른은 맥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체샤는 친아빠가 그리울 수도 있으니까…. 내가 부족해서 저런 놈팡이를 아빠라고 믿는 걸지도…….”
이미 맛이 가 버린 키에른을 확인한 하일론이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히며 말했다.
“친부가 아니라는 진실만 명확하게 밝히면 해결될 일입니다.”
침착한 척하지만 하일론도 결코 정상은 아니었다.
그가 차분하게 돌아버린 발언을 했다.
“우선 밀리오드 추기경부터 죽입시다.”
“어떻게……?”
키에른은 울상을 하고서 하일론을 올려다보았다.
뇌가 정지되어 버린 키에른을 대신해, 하일론이 미친 의견을 내놓았다.
하일론의 부관인 다렌, 혹은 벨제온이 이곳에 있었다면 바로 이마 짚으며 뒤로 쓰러졌을 의견이었다.
그러나 키에른도, 하일론도 전혀 비상식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상극의 두 남자는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하나로 뜻을 모았고…….
소성인 기도회 두 번째 기도 날.
바실리안 백작가는 기도회 참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