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1)
아기 요정은 악당-131화(131/200)
와들와들.
와들와들와들.
체샤는 거친 진동을 느꼈다.
저를 안고 있는 노먼이 발발 떠느라 느껴지는 진동이었다.
체샤는 공포에 질린 노먼이 아주 마음 깊이 이해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키에른이…….
‘나도 무서운데……?’
노먼을 노려보고 있었다.
입술은 웃고 있으나, 그 위의 붉은 눈동자는 동공이 잔뜩 좁아진 채였다.
뱀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눈이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오들오들 떠는 노먼은 당장이라도 실금하기 직전이었다.
성왕과 추기경한테 시달리다가 겨우 탈출했는데, 이제는 바실리안 백작이라니.
노먼에게 불쌍한 마음이 아주 조금 들었다.
‘그러게 왜 이런 일에 끼어들어선.’
체샤는 노먼을 톡톡 두드렸다.
바들거리던 노먼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체샤는 그의 품에서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발아래에 부드러운 잔디의 감촉이 닿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도도도, 작은 발소리가 다다른 곳은 당연히 키에른 앞이었다.
“아빠!”
체샤는 그에게 양팔을 활짝 벌렸다.
안아 달라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냉큼 안아 주는 대신, 키에른은 체샤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사락, 옷자락이 잔디밭 위에 늘어졌다.
눈높이를 맞춰 앉은 그가 체샤를 가만히 보며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끄냥 이야기요.”
“…아아.”
긴 손가락이 체샤의 손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정확히 노먼의 나뭇잎을 털어 줬던 손이었다.
키에른은 조그만 손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손 위에 얹어진 작은 손은 언뜻 인형이나 장난감처럼 보였다.
키에른이 유독 손가락이 길쭉하면서도 손이 큰 편인지라 더욱 그러했다.
얼마간 그리 바라보던 키에른이 다른 쪽 손으로 체샤의 손 위를 덮었다.
폭, 하고 키에른의 양손에 체샤의 손이 갇혀 버렸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나비를 잡아 둔 것처럼 두 손을 포갠 키에른이 입술을 열었다.
“벌써 친해진 거 같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낮은 목소리가 은근하게 내리깔렸다.
설핏 눈매를 찌푸리고서 중얼거렸다.
“역시 친아빠라서 그런가…….”
아닌 거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굳이굳이 이런 식으로 말해 댔다.
‘애 키우는 기분이야.’
나 삐졌으니까 얼른 달래 주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얼른 키에른을 어르고 달래려던 찰나였다.
그가 음울하게 가라앉은 혼잣말을 뱉었다.
“나는… 가짜 아빠고……?”
체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말을 해도 무슨!’
사람 쓰레기로 만드는 발언이었다.
깜짝 놀란 체샤는 입을 짝 벌렸다가, 후다닥 발밑부터 확인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길다 싶었던 그림자가 이제는 슬슬 찌그러지려고 하고 있었다.
얼른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체샤는 키에른의 손바닥 사이에 갇힌 손을 마구 꼼지락거렸다.
하도 꼼질대니 키에른이 못마땅해하면서도 위아래로 누르던 손을 슬쩍 벌렸다.
벌어진 틈새로 뿅, 작은 분홍색 꽃송이가 나타났다.
소담한 꽃을 본 키에른이 꽃 이름을 속삭였다.
“…장미.”
“선물이애요!”
살며시 붙잡힌 손을 빼낸 체샤가 꽃을 모아 쥔 키에른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순수한 분홍색 꽃과 요사한 붉은 눈의 남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희한하게 잘 어우러졌다.
“가짜 아빠 아니애요. 쩨샤 아빠자나요.”
그쵸오, 하면서 체샤는 한껏 귀여운 시늉을 해 보였다.
키에른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으응.”
분홍색 장미를 소중하게 앞주머니에 꽂은 키에른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체샤를 답삭 집어다 품에 안은 그가 노먼을 응시했다.
바짝 얼어 있던 노먼이 빽 소리쳤다.
“추, 출소 축하드립니다!”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를 해 뒀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키에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멍멍이 같은 소리를 했다.
키에른이 사르륵 눈웃음쳤다.
그는 체샤를 안은 채로 노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요염한 눈웃음을 띠고서 다가오는 절세미남에 노먼이 기절하고픈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노, 노, 노먼입니다…….”
“흑마법사라 했지. 뒷세계 마스터가 그대와 내 아이가 같은 핏줄임을 보증해 주었고?”
“예에에…….”
물끄러미 노먼을 응시하던 키에른이 갑자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소 발작적인 웃음은 짧고 날카로웠다.
“그래, 노먼.”
키에른은 손수건을 꺼내 노먼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지저분해진 손수건을 쓰레기 버리듯 그에게 휙 던졌다.
손수건에 얻어맞은 노먼이 흐윽 하고 숨을 삼켰다.
키에른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에게 나긋이 속살거렸다.
“아빠끼리 친하게 지내자고.”
체샤는 잠시 ‘친하게 지내다’의 말뜻이 ‘토막 살인하다’ 혹은 ‘사지 절단하다’ 같은 것으로 바뀌었나 고민했다.
살의 그득한 인사를 건넨 후, 키에른은 깔끔하게 뒤돌아섰다.
그가 체샤에게 다정히 말했다.
“집에 가자.”
“네!”
힘차게 대답한 체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질문했다.
“…집이요?”
“우리 집.”
신성 제국 내에 위치한 숙소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진 않을 텐데……?
의아해하는 체샤에게 키에른이 싱긋 웃었다.
“소성인 기도회 그만둘 거예요.”
***
키에른은 미친놈이었다.
아니, 원래도 미친놈이었는데 그새 더 미쳐 버린 게 틀림없었다.
‘으아아아악!’
체샤는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뜬금없이 소성인 기도회를 그만둔다고 하기에, 무슨 숨은 의미가 있나 했는데 말한 그대로였다.
두 번째 기도 날.
바실리안 백작가는 소성인 기도회 참가를 중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기도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문의 갑작스러운 포기 선언에 난리가 났다.
다들 이유를 궁금해했으나, 앞선 마물 사건과 마찬가지로 백작가는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폭탄을 던져 놓은 후, 다른 참가자들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동안.
바실리안 백작가는 신성 제국 떠나겠답시고 착착 짐을 꾸리는 중이었다.
“이건 저쪽에 보내. 그리고…. 아잇, 대체 왜 이런 걸 챙기는 거야? 두고 가!”
이슈엘이 바지런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짐을 싸는 사용인들에게 참견했다.
그러는 동안 체샤는 하타와 함께 소파에 널브러져 멍하니 이 황당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요정 여왕의 왕관은 어쩌고?’
죽은 백작 부인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검은 숲에 관까지 숨겨 놓은 남자였다.
키에른처럼 집요한 이가 쉬이 왕관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분명히 어떤 계략을 꾸며서 지금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 텐데, 그게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신성 제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아직 성왕 머리에 도끼질 한번 못 해 봤는데, 이렇게 떠날 순 없었다.
체샤가 동동거리던 때였다.
어수선한 바실리안가의 숙소에 밀리오드 추기경이 들이닥쳤다.
“지금 이게 뭣 하는 짓인가!”
그는 벌건 얼굴로 수염마저 파들파들 떨어 대며 소리쳤다.
체샤가 요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성왕 시아노르가 직접 체샤를 실험체로 점찍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훌쩍 기도회 불참을 선언하며 떠나 버린다니.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체샤를 요리조리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던 성왕으로선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밀리오드 추기경이 체면도 잊고 허둥지둥 쫓아온 것이다.
사용인들이 꾸려 놓은 짐을 확인하던 키에른은 다급한 밀리오드를 보고 되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하여 이러십니까?”
“기도회 참가를 포기하다니!”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제 아이가 흑마법사와 요정의 핏줄이라는데. 이단의 피를 이었다고 하건만, 어찌 기도회에서 한가로이 기도나 올리겠습니까.”
키에른은 아련한 눈빛을 해 보였다.
“뒷세계 마스터를 직접 찾아가, 아이의 출생에 대해 조금 더 소상히 알아볼 생각입니다. 진실로 친부가 맞는지도 확인해 보고요.”
“뭐, 무슨……!”
추기경은 황당하단 듯이 질문했다.
“백작이 마스터를 무슨 수로 만난단 말인가?”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될 때까지 해 보겠다며, 키에른이 가볍게 미소했다.
진정 미친 짓을 저지르겠다는 티가 물씬 흐르는 미소에 밀리오드가 버럭 외쳤다.
“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밀리오드가 숨을 씩씩거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뒷세계 마스터를 만나게 해 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