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0)
아기 요정은 악당-140화(140/200)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와중.
소성인 기도회는 어느덧 마지막 기도 날을 맞이했다.
이제 거의 막바지로 접어든 시점이나, 우승자는 아직 모호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바실리안 백작가가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바실리안은 신성 제국을 떠나진 않았으나, 기도회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유력 후보인 헤바톤의 왕자가 남아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레밀 왕자는 그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밀리오드 추기경이 그토록 입이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던 엄청난 신성력을 소성인 기도회 내내 한 번도 선보이질 못한 것이다.
신성력을 빼고 나면,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추기경과 신성 사제들은 레밀을 향해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중이나, 신성 기사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오히려 신성 기사들은 호쾌한 성격을 가진 스카야 왕국의 공주를 조금 더 눈여겨보는 듯했다.
여러 후보에게 표가 갈리다 보니, 이러다 의외의 인물이 왕관을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다들 암암리에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마지막 기도는 첫 번째 기도 날처럼 대신전에서 하게 되었다.
다만 성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승자를 치하할 때만 나타나, 직접 왕관을 수여할 예정이라 했다.
오늘 기도를 주관하는 이는 밀리오드 추기경이었다.
마지막 기도를 위해 모든 참가자가 대신전에 모였다.
최종 과제는 신에게 올릴 기도를 각자 준비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을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준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혼란에 빠진 소성인 기도회가 어찌 끝맺어질지.
바실리안 백작가가 정말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는 것인지.
체샤 바실리안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다들 각자 아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서 난리였다.
소란하던 이들은 추기경과 신성 사제들이 나타난 후에도 얼마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커흠.”
어수선한 참가자들을 보며 밀리오드 추기경은 못마땅하게 헛기침했다.
그러나 헛기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좌중을 둘러보며 그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불참 선언에 밀리오드 추기경이 부리나케 키에른을 찾아갔다는 소문은 이미 신성 제국 내에 쫙 퍼진 후였다.
이단이라며 감옥에 집어넣더니 막상 마물 정화하는 능력이 아쉬워서 저러냐고, 요정의 꽃비가 아니면 앞으로 어찌할 거냐고 비웃는 말들이 힐데르드에 흘러넘치는 중이었다.
밀리오드 추기경도 그런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신성 제국의 권위가 자꾸만 떨어져 가니, 분위기를 반전할 묘수가 필요했다.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밀리오드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 모인 분들에게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드물게 제법 공손한 어투로 말한 그는 한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커다란 벨벳 받침대를 양쪽에서 나눠 든 신성 사제 둘이 조심스럽게 그에게로 다가왔다.
받침대 위에 놓인 유리 상자에는 꽃으로 만든 화관이 들어 있었다.
요정 여왕의 왕관이었다.
왕관에는 흰색 사슬이 뒤엉켜 있었다.
꽃 사이에 단단히 얽힌 사슬은 결코 풀어지지 않을 듯했다.
사슬에 결박되어 있음에도, 왕관은 고고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은은한 빛을 흩뿌리는 모습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듯한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참가자들이 단박에 집중하여 넋 놓고 왕관을 구경하자, 밀리오드 추기경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흥밋거리 하나 던져 주니, 곧장 바실리안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는 멍청한 꼴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최대한 참가자들의 관심사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목표였다.
“직접 왕관을 보았으니 알겠지만, 이는 전부 신께서…….”
신을 찬양하는 간단한 설교를 하며, 본격적으로 기도회를 시작하려던 때였다.
쾅!
굳게 닫혔던 대신전의 문이 거친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거대한 대리석 조각을 덧붙인 대신전의 문은 깜짝 놀랄 만큼 무거웠다.
성인 남자 하나가 잔뜩 힘을 줘야만 간신히 한쪽 문을 조금 밀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문이 낡은 짚을 엮어 만든 것처럼 거침없이 양쪽으로 휙 젖혀진 것이다.
문 너머로 나타난 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모두 놀라서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렸다.
멍한 눈으로 쳐다보던 이들 중 하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바실리안……?”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바실리안 백작, 키에른은 품에 체샤 바실리안을 안고 있었다.
조그만 아기 요정은 연분홍색 리본과 함께 하얀 꽃을 머리 장식으로 달고 있었다.
작고 하얀 꽃은 그날 밤 아기 요정이 만들어 냈던 꽃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켰다.
백작의 양옆으로는 소백작과 쌍둥이 형제도 함께 자리했다.
대신전 출입 시에는 비무장이 원칙이건만, 삼 형제의 허리춤에는 진검이 당당히 매달려 있었다.
난데없이 온 가족을 다 이끌고 나타난 바실리안 백작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모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 무슨 재밌는 가십거리가 떨어질지 기대하며 눈을 반들거렸다.
“…….”
반역이라도 일으킬 듯이 요란했던 등장과는 달리.
키에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처음 대신전에 들어설 때부터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요정 여왕의 왕관이었다.
가라앉은 붉은 눈이 물끄러미 왕관을 응시했다.
일견 고요하게 느껴지는 눈이었으나.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 아래에는 검은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키에른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성스러운 대신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남자는 자신의 음습함을 감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바실리안 백작.”
밀리오드 추기경이 눈을 벌겋게 치뜨고 외쳤다.
“지금 무엇 하는 짓인가? 성스러운 기도회 중에……!”
그는 대신전을 경호하는 신성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백작을 끌어내라!”
벼락같은 노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
불길한 고요에 밀리오드 추기경의 눈꺼풀이 짧게 떨리던 찰나였다.
키에른이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추기경의 바로 앞까지 걸어갈 뿐이었다.
키에른이 질문했다.
“어찌하여 그러셨습니까?”
슬픔을 억누른 목소리였다.
교활한 백작의 가증스러운 행태에 밀리오드 추기경은 흠칫 놀랐다.
비아냥거리고 비웃으면 모를까.
음울한 감정을 실은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진정 슬픔을 느끼는 것일 리가 없었다.
감정을 교묘히 흉내 내는 꼴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바실리안 백작의 함정에 빠졌음을.
“그리도 바실리안 백작가를 소성인 기도회에서 쫓아내고 싶으셨습니까.”
키에른이 품 안의 아이를 소중히 안으며 물었다.
“흑마법의 힘을 빌릴 만큼?”
밀리오드 추기경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열려던 때였다.
규칙적인 행군 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명이 일제히 걷는 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뒤를 이어 나타난 이들은 새하얀 제복을 입은 신성 기사들이었다.
아니, 신성 기사들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기사들의 가장 앞.
그곳에는 이단 심문관의 제복을 입은 자들이 서 있었다.
항시 정체를 감추어, 신성 제국 내에서도 최고위직 몇몇을 제하곤 그 진짜 신분을 모른다는 힐데르드의 이단 심문관.
얼굴 전체를 덮는 검은색 가면을 착용한 이단 심문관은 세 명이었다.
귀하디귀한 이단 심문관이 무려 셋이나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단 심문관을 확인한 그때부터 밀리오드 추기경은 말 그대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왜, 왜, 어째서…….”
“밀리오드 추기경.”
차르륵!
흰색 사슬이 쏘아져 밀리오드 추기경의 사지를 구속했다.
가장 앞에 선 이단 심문관에게서 뻗어 나간 사슬이었다.
그가 천천히 검은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 대신전 내의 참가자들 전부가 헛숨을 들이켰다.
하일론이 덤덤한 목소리로 통보했다.
“이단을 숭배한 죄를 확인하였으니, 오늘부로 추기경 직위를 박탈하고 구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