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1)
아기 요정은 악당-141화(141/200)
소성인 기도회의 마지막 기도 날은 엉망진창으로 마무리되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신실함을 뽐낼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렸다.
그러나 아쉬워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를 가장 앞자리에서 관람했기 때문이었다.
성유물 ‘단죄의 사슬’을 다루는 신성 기사 하일론이 실은 이단 심문관들의 수장이었으며.
성왕의 신뢰를 한 몸에 받던 밀리오드 추기경이 힐데르드에 마물이 활개 치도록 만든 끔찍한 사건의 배후였고.
이 추악한 내막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이는 체샤 바실리안이었다.
신성하고 아름다운 꽃비로 마물들을 물리친 활약에 더하여, 이번에는 그 배후를 찾아내기까지.
그저 ‘바실리안가의 입양아’라고 불렸던 아기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대륙에 널리 알리고 있었다.
소성인 기도회는 우승자 선정만을 남겨 두었으나.
우승자가 탄생하더라도, 체샤 바실리안보다는 관심을 얻지 못하리라.
그리고 체샤 바실리안을 빛낼 땔감으로 쓰인 밀리오드는 현재 신성 제국의 지하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정확히 키에른 바실리안이 제 딸과 함께 갇혔던 독방이었다.
추기경이란 신분 덕에 우선 이곳에 수감되었지만, 바실리안 백작이 증거를 제출하는 대로 추기경 직위를 박탈당하고 이단 심문실에 끌려갈 예정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밀리오드는 감방 내를 서성이며 상스러운 욕설을 연신 입에 담았다.
입양아의 가짜 친부를 만들어 낼 때까지만 해도, 밀리오드는 자신이 엄청난 계략을 꾸몄다고 여겼다.
모든 이를 체스판 위에서 마음대로 조종했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현실을 맞닥뜨리니,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실리안 백작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내가 마스터니까.”
바실리안 백작이 내뱉었던 말이 아직도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밀리오드는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아냐.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상식적으로 뒷세계 마스터가 이단 심문관하고 손을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제대로 된 증거 없이, 그저 농락하듯 던진 한마디였다.
당연히 거짓으로 치부하는 편이 옳지만…….
바실리안 백작이 마스터라고 가정하면 모든 상황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놈이 불참을 선언한 것도 분명 나를 농락한 게야.’
바실리안 백작가가 소성인 기도회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가짜 마스터를 만든답시고 부리나케 뒷세계에 연락을 넣었다.
백작이 진실로 마스터라면, 밀리오드의 행동을 흑마법사와의 접촉으로 꾸며내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지금 와서 되짚어 보니, 바실리안 백작은 그 모든 과정을 교묘하게 충동질했다.
쩍 벌어진 뱀의 아가리에 제 발로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밀리오드는 혼자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것이다.
‘하일론 경은 그가 마스터임을 알면서도 손을 잡은 건가? 아니면…. 그런데 노먼은 어찌 되었지? 그놈은 성왕께서 직접 축성해 주셨으니, 내게 죄를 덧씌우긴 어려울 텐데.’
머리 터지도록 고민하던 밀리오드는 결국 분을 못 이기고 신음했다.
“으으윽……!”
아무도 없는 감옥 안에 그의 탄식만이 외롭게 울리다 사그라졌다.
마지막 순간, 성왕은 밀리오드를 버렸다.
함께 저지른 죄를 제게 몽땅 덮어씌웠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도를 찾더라도…….
성왕이 직접 자신을 처리할 터였다.
밀리오드의 인생은 이제 끝이었다.
머리를 움켜쥐고 절망하던 때였다.
자박자박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발소리는 두 명의 것이었다.
“…?”
밀리오드는 제 눈을 의심했다.
쇠창살 밖에는 어린 소년 둘이 서 있었다.
밀리오드를 나락으로 처박은 바실리안 백작의 쌍둥이 아들이었다.
간수며 기사들이 버젓이 있을 텐데,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온 것인지.
태연하기 짝이 없는 말간 낯이 비현실적이었다.
쌍둥이는 쇠창살 앞에 서서 밀리오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동물을 구경하는 듯한 치욕스러운 시선이었다.
그러나 밀리오드는 어린 소년들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아저씨.”
삐딱한 자세로 선 소년이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꺼내 줄까요?”
꿀꺽.
밀리오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다른 소년이 살풋 눈썹 사이를 찌푸리며 말했다.
“고문당하다 혓바닥 잘렸어요? 왜 대답을 안 해.”
성별이 헷갈릴 만큼 예쁘게 생긴 소년은 음침한 감옥 내부를 질색하는 눈으로 둘러보았다.
이곳에 잠시라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빨리 결정해요. 시간 없으니까.”
어째서 자신을 찾아와 꺼내 주겠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바실리안가의 놈들을 믿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단 심문실에서 고문당해 죽는 것보단 낫겠지.’
밀리오드는 쌍둥이에게 간절히 외쳤다.
“꺼내 줘……!”
쌍둥이의 입꼬리가 똑같은 모양으로 씨익 치솟았다.
소년이 손을 뻗어 밀리오드를 붙잡았다.
곧 시야가 일그러졌다.
이동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야가 되돌아왔을 때.
밀리오드의 눈앞에는 바실리안 백작이 서 있었다.
커다란 창문 앞, 달을 등지고 선 그는 은색 회중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째각, 째각,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언뜻 보이는 창밖의 풍경은 신성 제국이 아닌, 평범한 길거리였다.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회중시계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백작이 싱긋 웃었다.
소름 끼치도록 잘생긴 미남을 보며, 밀리오드는 질문했다.
“나를… 죽일 건가?”
“그럴 리가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백작이 이내 사르륵 웃었다.
“얼마나 써먹을 구석이 많은데.”
붉은 눈이 기묘한 빛으로 일렁였다.
백작이 손가락 끝을 이로 살짝 물고, 검은 가죽 장갑을 천천히 벗겨 냈다.
달빛에 희게 드러난 손가락은 길고 곧았다.
바실리안 백작은 멋모르는 아이를 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 잘 듣는 분이시잖아요, 그렇죠?”
쌍둥이 형제가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밀리오드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 억지로 고정해 놓은 듯, 바실리안 백작에게 시선이 붙박였다.
딱, 손가락이 맞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핑거 스냅을 들은 밀리오드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주인 앞에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예, 백작님.”
***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이 전부 자리를 비웠다.
밀리오드 추기경을 이단으로 고발하는 대사건을 일으켰으니, 정신없이 바쁜 탓이었다.
체샤는 그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외출했다.
일전에 말없이 외출했다가 하일론의 품에 안겨 돌아와서 한바탕 난리 난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불법 외출이 아니고, 합법 외출이었다.
테오를 데리고 아란 공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키에른한테 친구 만나러 간다고 미리 허락도 다 받아 놨으니까!’
물론 공짜 허락은 아니었고, 대신 ‘나중에 아빠랑 하루 종일 놀아 주기’ 약속과 더불어 뽀뽀도 좀 해 주긴 했다.
야무지게 짐을 챙긴 체샤는 테오의 어깨 위에 올라앉았다.
“깝시다!”
“예, 체샤 님.”
지시를 받은 곰돌이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드넓은 어깨에 편하게 앉아서 목적지를 향해 가던 체샤는 흘긋 테오를 살폈다.
“…….”
평소 같으면 먼저 이런저런 말을 붙여 왔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테오는 입을 다물고 묵묵하게 걷기만 했다.
‘곰돌이 이상한데.’
왜 이러나 싶어서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니, 눈썹이 축 처진 게 시무룩한 티가 났다.
‘누가 괴롭혔나?’
또 누가 곰돌이를 구박했나 싶어서 눈에 힘을 주던 때였다.
“아기님!”
지나가던 신성 기사 무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하일론을 찾아갔다가 연무장에서 봤던 신성 기사들이었다.
체샤는 아는 체를 해 주었다.
“아뇽하새요!”
“으윽.”
인사를 받은 신성 기사는 제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체샤를 둘러싸고 저한테도 인사를 해 달라며 난리를 부렸다.
“오늘은 꽃 없는데…. 아기님, 이거 먹을래요?”
그러다 주머니에서 쿠키 봉지를 꺼내서 바치기도 했다.
체샤는 흡족한 마음으로 상납을 받아 챙겼다.
“잘 머그깨요.”
그들과 잠시 어울려 준 후.
다시 테오와 둘만 남게 된 체샤는 쿠키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쿠키 하나를 꺼내 테오의 뺨에 콕 하고 눌렀다.
앞만 보며 걸어가던 테오가 파드득 놀랐다.
커다란 몸이 흔들리는 바람에 체샤는 미끄러질 뻔했다.
그가 두 번 놀라며 황급히 체샤를 고쳐 안았다.
“…체샤 님?”
너른 어깨에서 내려와 두툼한 팔뚝에 앉게 된 체샤는 그에게 다시 쿠키를 내밀었다.
“가치 머거요.”
테오는 쿠키를 멀거니 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마구 찌그러트렸다.
그가 뭔가를 참는 것처럼 콧등을 잔뜩 구기고서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체샤 님. 팔렌 제국으로 돌아가면…….”
큽, 하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테오가 말을 이었다.
“혹시 네메아 후작가에 방문해 주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