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6)
아기 요정은 악당-146화(146/200)
체샤는 귀를 의심했다.
미안하다고?
상상해 본 적조차 없는 말이었다.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듣는 이 없는 사과를 고장 난 오르골처럼 되풀이했다.
“미안해, 미안해…….”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거운 돌로 꽉 누르듯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체샤는 하염없이 사과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속삭였다.
“괜차나요.”
그녀가 제게 미안할 것이 무어 있겠는가.
오히려 정말 미안해야 할 이는…….
“미아네요.”
체샤였다.
체샤만 없었다면, 분명히 그녀는 최소한 이보단 더 나은 삶을 살았을 테니까.
새로운 생명은 엄마에게 무거운 족쇄였을 것이다.
족쇄가 없었다면 엄마는 미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무도 없는 들판을 혼자서 외롭게 헤매는 꼴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행복한 결말을 찾아냈을 수도 있었다.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그녀가 듣지 못할 맹세를 속으로 말했다.
‘엄마 그렇게 만든 인간들, 내가 꼭 전부 죽일게요.’
그녀가 겪었던 비참함을 몇 배로 되갚아 주겠다고 조용히 약속했다.
배를 끌어안고 웅크린 여자는 무의미한 사과를 되풀이하다가, 어느 순간 입술을 달싹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목소리의 노래는 광기에 취해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체샤가 유일하게 간직한 엄마의 흔적.
자장가였다.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온 귀한 시간 동안, 그녀는 배 속의 아기를 위해 자장가를 불렀다.
울음 섞인 노래는 흐느낌에 가까웠으나, 그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자신이 느끼는 슬픔이 아기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듯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느다란 노래가 이어졌다.
그러자 시들었던 꽃이 그녀 주변에서부터 다시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꽃이 생명을 얻어 되살아나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웬만큼 강한 요정이라 하여도, 어설픈 흉내조차 내지 못할 대단한 힘이었다.
그녀는, 체샤의 엄마는… 정말로 여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여왕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체샤는 천천히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이 보고 싶었다.
진흙과 핏물이 엉겼어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금색 머리카락은 체샤와 똑같은 색이었다.
제 분홍색 눈동자 또한 엄마한테 물려받은 것인지 궁금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를 들여다보려던 때였다.
눈앞의 세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체샤는 토끼 굴 같은 통로로 돌아와 있었다.
“…아.”
짧은 탄식을 내뱉고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결국 엄마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언젠가 다시 볼 기회가 있으리라는, 분명한 직감이 들었다.
느릿하게 아래로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손을 확인했다.
엄마의 기억을 보기 전에 집어 들었던 회중시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체샤의 손에는 웬 인형이 들려 있었다.
“토끼?”
단추로 눈을 달고, 검은 정장에 빨간색 리본을 목에 맨 토끼 인형이었다.
분홍색 천으로 만든 인형은 폭신폭신하고 몰랑말랑했다.
손바닥으로 꾸욱 인형을 누르며 생각했다.
‘이건 내 기억에 없는 물건인데.’
환역은 요정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환역의 물건들은 체샤가 한 번이라도 눈에 담은 것들이었다.
기억 어딘가에 자리한 물건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인형이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어쩌면…….
체샤의 환역에 스며든 엄마의 기억이 남긴 물건일지도 몰랐다.
체샤는 환역을 능숙히 다루지만, 그 전부를 알진 못했다.
환역이 요정 왕국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많겠지.’
기왕 요정 왕국으로 가게 된 김에, 그곳 요정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 인형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체샤는 불쑥 어색함을 느꼈다.
이질감의 원인은 달라진 몸이었다.
“…앗?”
발음이 분명해진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조금 길어진 팔다리도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체샤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 어린이 됐잖아?”
딱 어린이라고 불릴 만한 크기로 몸이 자라난 것이다.
어른은 아니지만, 아기에서 벗어났다.
특히 영원히 아기로 있을까 봐 걱정했던 체샤로서는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옷차림새도 덩달아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난데없이 어린이가 되며 함께 바뀐 옷은 특이했다.
정장 재킷 같은 검은색 상의에 하의는 풍성한 푸른색 프릴 치마였는데, 희한하게도 나비 날개가 달려 있었다.
뭔가 토끼 인형과 세트 같은 옷차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자라나고, 옷도 바뀌고…….
‘이것도 왕관이 한 짓인가?’
체샤는 조금 길어진 팔을 뻗어, 머리 위를 더듬어 보았다.
기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찰싹 달라붙어 있던 왕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이가 된 체샤는 좀 더 커진 손으로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왕관이 무슨 짓을 더 해 댈지, 한번 끝까지 가 볼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하던 토끼 굴의 끝이 보였다.
드디어 발을 바닥에 붙인 체샤는 안도의 숨부터 내쉬었다.
“히유.”
위를 올려다보자, 떠다니는 환역의 물건들이 보였다.
하지만 둥실거리는 다른 물건들과 달리, 토끼 인형은 체샤의 손에 들린 채 커다란 귀를 축 늘어뜨릴 뿐이었다.
일단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한 손에 토끼 인형을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허어,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체샤의 앞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문은 섬세한 녹색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큰 나무를 형상화하여, 가지에 꽃이 피어나는 모양새를 묘사한 구불구불한 곡선 문양이었다.
색색의 보석을 박아 표현한 꽃잎을 관찰하던 체샤는 문제를 깨달았다.
“…문 어떻게 열지?”
양쪽으로 여닫아야 하는 문은 손잡이도, 열쇠 구멍도 없었다.
아마도 밀어서 여는 듯했는데, 문짝 하나가 어린이 체샤 10명을 세워 놓아도 부족할 만큼 커다랬다.
끙끙거리며 손으로 문을 밀어 보았으나, 거대한 황금 문은 꿈쩍하지를 않았다.
체샤는 분통을 터뜨렸다.
“멋대로 끌고 왔으면 최소한 문은 열어 줘야 할 거 아냐!”
바락 소리 지른 순간이었다.
“영혼이 있기에 육체가 존재하는 걸까?”
손에 쥔 토끼 인형이 갑자기 꼼틀꼼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면 육체가 있기에 영혼이 존재하는 걸까?”
토끼 인형은 폴짝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곤 춤추듯이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기다란 귀를 팔랑거리며 토끼 인형이 소리쳤다.
“아기가 되고 싶어서 아기가 되었도다!”
“어린이가 되고 싶어서 어린이가 되었도다!”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이 되었도다!”
체샤는 눈을 깜빡이다가 질문했다.
“그럼 토끼가 되고 싶어서 토끼가 된 거야?”
토끼 인형이 뭉툭한 손으로 열렬하게 통통통 손뼉을 쳤다.
“그러하다!”
“…….”
미친 토끼 인형과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한다니.
갑자기 너무너무 탈출하고 싶어졌다.
“…그거 문 여는 힌트야?”
토끼 인형은 열심히 귀만 팔락거리더니,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 댔다.
“요정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요정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요정은 요정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기분 나쁜 토끼 인형을 쳐다보던 체샤는 흠, 하고 다시금 문을 올려다보았다.
‘어쩔 수 없나.’
웬만하면 곱게 입장하고 싶었다.
강제로 끌려오긴 했지만, 요정 왕국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첫인상이 좋으면 서로 좋지 않은가?
하지만 토끼 인형 말대로 ‘요녀 리체시아’로서 생각한 결과.
이곳에서 빠르게 탈출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체샤는 옆으로 손을 내뻗었다.
화려한 꽃이 피어나며, 커다란 도끼가 생겨났다.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쥔 체샤는 도끼를 뒤로 힘껏 젖혔고…….
콰앙!
그대로 문을 내려찍었다.
굉음이 터지며 황금색 문에 도끼 자국이 났다.
“미친 요정이로다!”
옆에서 토끼 인형이 시끄럽게 소리치길래 한마디 했다.
“너도 도끼질당하고 싶으면 계속 떠들어.”
“…….”
체샤는 아주 조용한 환경에서 쾌적하게 도끼질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