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9)
아기 요정은 악당-149화(149/200)
로안트는 고귀한 팔렌 황족이었다.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가장 귀하고 좋은 말만 들으며 자라 왔다.
그런 자신에게 ‘돼지 새끼’라니.
난생 처음 듣는 폭언에 일순 머리가 멍해졌다.
뒤이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황족을 모욕하다니!”
로안트는 노성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제아무리 바실리안이라 하여도 이는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바깥의 기사들을 불러 당장 끌어내라고 명령하려던 로안트는 멈칫했다.
바실리안 백작이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였다.
눈동자만 움직여 위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짧은 웃음에서 불길함이 밀려왔다.
로안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었다.
가늘게 몸을 떠는 로안트를 보며 백작이 눈매를 둥글게 휘었다.
“황족은 무슨 황족.”
그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으며 웃었다.
“마구간지기 아들 주제에.”
***
선황후는 승마를 매우 즐겼다.
그녀는 자신의 말들을 몹시 아껴서 개인 마구간을 따로 두었다.
틈만 나면 마구간을 찾아 말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실은 전부 자신의 정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정부를 마구간지기로 두고 들락날락했던 것이다.
로안트는 바로 그 마구간지기의 핏줄이었다.
진실을 아는 자는 극소수이건만, 바실리안 백작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실리안 백작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황실에 충성을 바치던 귀족이 큰 부를 이루자 질투하여 남몰래 암살한 일.
황태자에게 마음에 드는 영애를 짝지어 주기 위해, 혼담을 나누던 가문에 누명을 씌워 몰락시킨 일…….
로안트가 여태껏 저질러 온 갖가지 악행들을 죄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었다.
뒷세계의 마스터이니 별별 정보를 쥐고 있으리라고는 익히 짐작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는 로안트를 나락으로 보낼 수 있었다.
약점이 잡힌 로안트는 그때부터 바실리안 백작에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본색을 드러낸 백작은 로안트를 자신이 말한 그대로 ‘돼지 새끼’처럼 다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즈 바실리안이 죽은 후에는 아예 미친놈이 되었다.
흑마법사로 타락하여 로안트를 더욱 가차 없이 괴롭혀 댔다.
제 비위를 조금만 거스르면 흑마법으로 로안트를 고통에 처박았다.
오랫동안 핍박당한 끝에, 로안트는 바실리안 백작의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게 되었다.
그렇게 백작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지금 이 순간에까지 이른 것이다.
‘신성 제국과 전쟁이라니!’
로안트는 이가 딱딱 맞부딪칠 정도로 오들오들 떨었다.
이건 도저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안 된다고 거절하기엔 바실리안 백작이 너무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던 때였다.
“하아.”
키에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이 싸늘했다.
하등한 생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절로 주눅이 들었다.
키에른은 그때껏 만지작거리던 시계를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황제 폐하.”
“…….”
“신성 제국하고 전쟁하는 건 무섭지?”
“…아무래도 그런 면이 조금 있기는 하여서, 가, 가능하다면 평화롭게 해결을.”
언제 손가락을 튕길지 모르니,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키에른이 허리를 숙였다.
그는 로안트의 뒤통수를 붙들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과호흡이 올 것처럼 헐떡이는 로안트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전쟁 대신 다른 방법 있으면 그걸로 할래?”
“당연히……!”
무엇이든 하겠다고, 열정적으로 답하려던 로안트가 멈칫했다.
키에른이 사냥감을 낚아챈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성왕을 만들 거야.”
눈앞이 캄캄해졌다.
현 성왕을 내쫓고 새 성왕을 세우겠다니.
충격으로 얼어붙은 로안트의 뺨을 손등으로 툭 치며, 키에른은 싸늘하게 웃었다.
“황제 폐하가 열심히 도와주면 좋겠네?”
***
요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었다.
만나기조차 어려운 존재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꽃을 좋아한다거나 환역을 다룬다는 등의 얄팍한 정보 몇 가지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정보도 요정을 붙잡아 파느라 제일 가까이서 접하는 노예 사냥꾼이 알아낸 것들이었다.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정보인 것이다.
요정인 체샤도 알지 못하는 비밀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 내가 요정 여왕이라고?’
체샤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요정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체샤의 발치에 꽃을 깔고, 머리 위로 꽃잎을 흩뿌렸다.
체샤의 머리 위에 앉은 토끼 인형은 노래에 맞춰 까딱까딱 고개를 흔들며 즐거워했다.
거기에 온통 향긋한 꽃내음까지 쏟아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체샤는 요정들이 이끄는 대로 휩쓸리다가 어느새 거대한 나무 앞까지 와 버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는데, 눈앞에 해바라기 꽃이 내밀어졌다.
“돌아오셔서 너무 기뻐요.”
수줍게 속삭이며 해바라기를 내민 요정은 아는 얼굴이었다.
신성 제국에 입국하기 전, 체샤가 노예 사냥꾼들로부터 구해 줬던 요정이었다.
그녀는 체샤의 손등에 요정의 문양을 새겼었다.
요정 왕국으로 이어지는 나비 문양이었다.
그 문양 덕분에 왕관은 체샤를 요정 왕국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왕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키에른한테 갖다줘야 하는데, 왕국에서 나가기 전에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체샤는 이 대형 사태를 빚어낸 원인 중 하나인 요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는 이름조차 말씀드리지 못했지요.”
그녀는 말갛게 웃으며 체샤에게 해바라기 꽃을 건넸다.
“리아입니다.”
리아가 내민 꽃을 받아 든 체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를 둘러싼 요정들은 다들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모두 오래도록 여왕님을 기다렸어요.”
리아는 체샤의 앞에 무릎을 꿇고서 간절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저희를 떠나지 않으시는 거죠?”
“어…….”
체샤는 아주 오랜만에 몹시 곤란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고심한 끝에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일단 나는 계속 여기 있을 순 없어.”
요정들은 일제히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심지어 몇몇은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말 한마디가 불러온 파장에 체샤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망설이면서 조심스럽게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여왕이라는 것도 아직 믿기지 않는데…….”
체샤가 말하다 말고 악 하고 소리를 냈다.
토끼 인형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탓이었다.
“어리석도다!”
쪼그만 주제에 토끼 인형은 머리 위에서 팔팔 날뛰며 화를 냈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 강대한 힘의 계승, 영혼과 정신으로 이어지는 사명.”
“여왕은 여왕이로다!”
솔직히 토끼 인형 주제에 자기가 뭘 안다고 훈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샤는 일단 달래 주는 시늉을 했다.
안 그랬다간 머리가 다 뽑힐 지경이었다.
“그래, 그러면 일단 내가 여왕이라고 하고.”
“일단이라는 말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도다!”
“알았어, 내가 여왕인데.”
말이 안 통할 분위기였다.
우선 필요한 정보부터 빠르게 얻고 나서, 요정들을 설득하든 몰래 도망치든 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그래도 나쁘게 대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었다면 체샤는 말없이 도끼 휘두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을 터였다.
하지만 요정들에게는 자꾸 마음이 약해졌다.
체샤는 아직도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토끼 인형을 떼 내어 품에 안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요정들에게 보드라운 목소리로 살며시 물었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서. 혹시 알려 줄 수 있을까?”
“…무엇이든지요.”
리아가 울적하게 말했다.
“하오나 그 전에 여왕님을 위한 연회를 열고 싶습니다.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를.”
한가롭게 연회를 즐길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싫다고 하는 순간, 다 같이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요정들이 울먹울먹하던 얼굴을 갑자기 매섭게 굳혔다.
그녀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체샤도 따끔한 감각을 느끼며 하늘을 보았다.
새파랗고 깨끗한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요정들의 환역에 먹구름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회색 먹구름에 뒤이어 번개가 번쩍하더니…….
꽝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하늘에서 길게 내뻗어 바닥에 꽂힌 것은 새하얀 사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