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1)
아기 요정은 악당-151화(151/200)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파리하게 질린 체샤의 눈앞에서 여자는 미동조차 없이 늘어져 있었다.
항상 궁금했었다.
엄마가 어떻게 생겼을지, 단 한 번이라도, 찰나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고 싶진 않았어.’
한때 화려한 꽃 왕관을 쓰고, 요정들을 이끄는 우아한 여왕이었을 텐데.
그런 모습은 조금도 상상되지 않을 만큼 엉망이었다.
그녀에게는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롱했을 분홍색 눈동자는 아무런 초점 없이 텅 비어 버린 채였다.
딱딱한 실험대 위에 누워서 그저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볼 뿐이었다.
체샤는 괴로움을 꾹꾹 눌러 삼키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보고 있었을까.
망가진 인형처럼 고요하던 그녀가 문득 속삭였다.
“…자고 싶어.”
바싹 마른 입술로 뱉어 낸 말에 체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왈칵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고 질문했다.
“오랫동안 못 잤어요? 얼마나……?”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짧은 속삭임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그저 다시 인형처럼 누워 있기만 했다.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 주었다.
체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나한테 불러 줬던 자장가, 기억해요?”
“…….”
“꽃도 못 주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
“그러니까.”
아무런 의미 없는, 제 마음이 편해지려고 하는 행동일 뿐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체샤는 노래를 불렀다.
꽃 한 송이조차 건넬 수 없는 엄마에게 닿지 못할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배 속에 있는 자신에게 듣지 못할 자장가를 불러 주었던 엄마처럼.
단순한 착각일까.
엄마의 표정이 아주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고요한 백색 방에서 한참 노래를 부르던 때였다.
실험실의 문이 열렸다.
깨끗한 흰색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여자를 보자마자 감탄했다.
“역시…! 벌써 회복을 끝마치다니.”
“다친 흔적조차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사제 하나가 실험실 벽면에 놓인 진열대에서 커다란 칼을 들고 다가왔다.
성검과 똑같은 백색 광물로 만든 칼이었다.
“오늘은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의미 있는 날이지 않습니까.”
“신성한 아홉의 날이지. 신께서 마지막 하나를 채워 주실 거다.”
저들끼리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실험 도구를 고르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번에도 체샤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낱낱이 눈에 담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끝 모를 고통에서 허우적거릴 엄마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체샤는 절대 들리지 않을 고함을 내질렀다.
“정신 차려요!”
있는 힘껏 소리치며 그녀가 묶인 실험대를 내려쳤다.
실험대를 부숴 보겠답시고 작은 주먹을 마구 휘둘렀으나, 그저 쑥 하고 통과할 뿐이었다.
그러다 내리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체샤는 금방 다시 일어났다.
무력한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999일차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사제가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을 여자에게 가져다 댔다.
살갗에 칼날이 닿기 직전.
몇 번이고 헛손질만 하던 체샤의 주먹이 실험대를 쾅, 내려쳤다.
“……!”
갑작스럽게 터진 소음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사제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살폈다.
“뭐야, 방금 그 소리.”
“네가 부딪친 거 아냐?”
“저는 이쪽에 있었는데요……?”
우왕좌왕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체샤도 깜짝 놀라서 주먹을 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얼른 다시 실험대를 만져 보았지만, 똑같이 다시 휙 하고 통과해 버렸다.
우연하게 벌어진 요행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나.
무언가를 발견한 체샤는 짧게 숨을 삼켰다.
여태껏 흐릿하기만 하던 분홍색 눈동자에 반짝, 초점이 돌아왔다.
인형 같던 그녀는 이제 또렷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실험 도구를 손에 들고 토론 중인 사제들을, 그리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제 몸을 차례대로 확인한 여자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제 하나가 여자를 돌아보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들은 황급히 주사기를 찾았다.
정체 모를 푸른 약물이 든 커다란 주사기를 가져오는 사제들을 보며, 여자는 목소리를 내었다.
“이것이 내 마지막이겠구나.”
오랫동안 말하지 못해 거칠거칠한 목소리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실험실 안의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순간.
그녀가 스륵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체샤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찰나.
거대한 힘이 폭발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았다.
어둠을 닮은 검은 꽃과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한순간에 터져 나갔다.
실험실에 있던 사제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꽃과 덤불에 으스러져 죽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검은 꽃과 가시덤불은 실험실이 위치했던 지역 전체를 뒤덮었다.
몸이 하늘 위로 끌려 올라간 체샤는 그 광경을 전부 생생하게 보았다.
그리고 대지를 휩쓴 검은 꽃과 가시덤불이 사라졌을 때.
그곳에는 모든 생명이 메마른, 오직 모래와 돌만이 존재하는 삭막한 땅만이 남았다.
그 어떤 씨앗도 싹을 틔우지 못하는 황무지.
버려진 땅의 탄생이었다.
더없이 익숙한 그곳에 훗날 무엇이 자리 잡는지, 체샤는 알고 있었다.
‘뒷세계…….’
요녀 리체시아가 유일하게 마음을 두었고, 체샤 바실리안의 아빠가 다스리는 공간.
그곳이 선대 요정 여왕으로 인해 생겨난 장소였던 것이다.
황량한 땅에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장면을 끝으로, 체샤는 새까만 어둠 속으로 되돌아왔다.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는 공간, ‘시간의 틈새’였다.
“…….”
사방이 캄캄한 그곳에 둥실, 토끼 인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대한 달처럼 나타난 토끼 인형을 올려다보았다.
토끼 인형과 체샤는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시선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체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상황에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전부 정해져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별처럼 저를 향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따르기 전에, 체샤는 반드시 알고 싶은 게 있었다.
“…엄마, 살아 있어?”
본래 요정은 자연의 만물이 소생하고 번성하도록 만드는 존재.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자신이 지닌 힘을 역행하여 폭주했다.
검은 꽃과 가시덤불은 모든 생명을 잡아먹고 불모지를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엄마는 실험실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나, 생사는 불분명했다.
순리에 어긋난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대 요정 여왕이 자신의 엄마라고 확신한 지금.
체샤는 그녀가 자연에 역행하는 힘을 사용해 폭주한 그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체샤가 태어났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버티고 있으니, 침묵에 잠겼던 토끼 인형이 말문을 열었다.
“이는 운명이자 숙명.”
“결코 벗어날 수 없을 형벌.”
“너는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도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하니.”
보름달처럼 거대하게 떠 있던 토끼 인형이 서서히 작아졌다.
본래 크기로 줄어든 토끼 인형은 체샤를 향해 뭉뚝한 솜 발을 뻗었다.
“나는 영원히 네 곁에 존재할 것이다.”
“또한 너의 운명을 도울 것이다.”
체샤의 품에 안기며 토끼 인형이 말했다.
“요정 여왕의 왕관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