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5)
아기 요정은 악당-155화(155/200)
진짜 미친놈.
체샤는 욕을 가득 담은 눈으로 이타르를 바라봐 주었다.
그러나 이타르는 개의치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이단 심문실에 갇히기까지 해 놓고서 아직도 이러고 있다니.’
정신 교육이 덜 된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이타르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모습이 많이 바뀌었구나?”
체샤는 허공에 달랑달랑 들린 채 그와 마주 보았다.
이타르는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히며 체샤를 구석구석 훑었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었군. 옷도 특이하고. 역시 요정의 딸인가…….”
그러면서 살살 흔들어 보기까지 했다.
체샤는 토끼 인형과 함께 짤짤 흔들렸다.
“오라버니!”
참다못한 아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작은 손으로 식탁을 탕, 내리치며 매섭게 이타르를 쏘아보았다.
“체샤 내려놔요.”
“읏차.”
이타르는 싱글싱글 웃으며 체샤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아란은 냉큼 체샤의 손을 낚아채선 제 뒤에 숨겼다.
“내 손님이니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어린 동생이 째려보는 눈초리에도 이타르는 그저 웃느라 바빴다.
아란은 체샤를 끌고 나가며 말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히고 오겠어요. 대화는 나중에 해요.”
그러자 이타르는 식탁에 기대어 앉으며 체샤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이번에도 뒷문으로 도망치는 거 아니지?”
일전에 이타르를 두고 튀었던 전적이 있는 체샤는 속으로 움찔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을 땡그랗게 떴다.
“뒷문이요?”
토끼 인형을 끌어안으며 의아히 물으니, 이타르는 잠시 손등으로 입을 꾹 눌렀다.
그가 배 속에서부터 끌어 올린 듯한 발성으로 중얼거렸다.
“귀여워…….”
이타르가 해롱거리는 사이, 체샤는 잽싸게 아란과 함께 탈출했다.
“하아, 정말이지.”
아란이 발을 콩콩 구르며 체샤의 손을 잡고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나랑 체구가 비슷하니 일단 내 옷을 입자.”
아란은 시녀들을 물리고 직접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지금 체샤의 옷차림은 너무 눈에 띄긴 했다.
‘나만 어디 이상한 나라에서 튀어나온 요정 같으니까.’
스카야 왕국의 옷을 받아 입는 편이 좋을 터였다.
아란은 옷을 여러 벌 꺼내며 종알종알 혼잣말했다.
“이것도 어울리겠고, 저것도 훌륭할 것 같고…….”
적당히 아무거나 주면 될 듯한데, 점점 진심이 되어 가는 그녀였다.
결국 옷을 열 벌쯤 꺼낸 후에야 옷 고르기를 멈췄다.
가볍고 시원해 보이는 바지와 치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아란에게 끊겼던 대화를 일깨웠다.
“그런데 왕태자 저하랑 왜 사이가 안 좋아요?”
“…아.”
옷 고르기에 심취하느라 깜빡 잊어버렸던 본론을 떠올린 아란이 체샤를 향해 뒤돌아섰다.
“네가 요녀의 딸이란 걸… 오라버니가 알아 버렸거든.”
어딘가에서 정보를 주워들은 이타르는 곧장 키에른이 잡아 놓은 친부 사칭범한테 손을 뻗으려 시도했다.
당연히 키에른에게 바로 걸렸고, 한 차례 경고를 들었다.
거기서 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후 ‘체샤 바실리안’을 수색하는 데 협조해 달라는 요청이 왕국에 들어왔을 때.
바실리안가의 삼남이 직접 찾아온 앞에서, 이타르는 해서는 안 될 멍청이 소리를 해 버렸다.
“아하, 당연히 협조해야지.”
“그런데 체샤 바실리안을 찾으면 내가 입양해도 되는가? 나는 요녀와 결혼할 몸이니 말이야.”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쪽이 아이 정서에도 좋겠지.”
이타르의 발언은 이슈엘에 의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헛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키에른이 아니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스카야 왕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늘, 사미드가 그나마 희소식을 하나 들고 온 것이다.
조만간 열릴 팔렌 제국 황제의 탄신연에 참석 허락을 얻어 낼 수도 있겠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확실하게 정해진 바는 없었고, 제국까지 찾아가도 국경에서 내쫓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카야 왕국은 불확실하고 희미한 가능성에도 매달려야 할 처지였다.
“오라버니는 아직도 요녀와 결혼하겠다는 뜻을 버리지 못한 듯하지만.”
체샤는 아란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러모로 상황이 곤란했다.
일단 힘이 확 줄어들어서, 잔재주만 쓸 수 있는 상태였다.
장거리 이동 같은 건 꿈도 못 꾸니, 아란의 도움을 받아 바실리안가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니까 스카야 왕실 이름으로 연락을 넣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하일론한테 연락을 넣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신성 제국의 반역자.
스카야 왕실이 하일론 측에 접촉을 시도했다간, 같은 반역자로 묶이게 될 터였다.
아란에게 그런 위험한 일을 부탁할 수는 없으니…….
‘결론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다른 연락 수단을 찾기엔 웬만한 연락은 바실리안 백작가에 들어가지도 못할 터였다.
체샤에게 거금의 사례금이 걸린지라, 그간 거짓 제보나 사칭도 수두룩했을 것이다.
신뢰할 만한 발신자가 아닌 이상, 아랫사람 선에서 연락이 걸러질 게 뻔했다.
스카야 왕실이 팔렌 황제의 탄신연에 참석하러 갈 때 같이 따라가는 쪽이 가장 좋을 듯했다.
근데 지금 이타르가 하는 꼴을 보아하니, 도저히 놓아줄 것 같지가 않아서 문제였다.
아란도 그 때문에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말이다.
열심히 고민하던 체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나쁜 짓 하자.
나중에 체샤 데리고 있는 거 걸려서 스카야 왕국이 박살나는 것보단, 지금 체샤가 선의의 악행을 저지르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옷을 다 갈아입은 체샤는 아란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공주마마.”
왜인지 모르게 수줍어하는 아란한테 손가락을 착 세우며 제안했다.
“왕태자 저하가 요녀 만나게 해 줄까요?”
***
불분명한 허밍음이 밤공기 사이로 흩어졌다.
엉망진창으로 자장가를 부르는 이는 귓가에 스치는 환청을 들으며 웃었다.
“이건 자장가야.”
“어디서 배운 노래인지는 몰라. 이름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 노래만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서…….”
“분명히 누군가 날 사랑해서 불러 준 노래라고 생각해.”
“그래서 키에른, 나도 너한테 자장가를 불러 주는 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긴 손가락이 은색 회중시계를 어루만졌다.
시계 뚜껑 안쪽에 새겨진 글자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속삭이는 음성이 점점 크고 분명해졌다.
아득한 환청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말하는 목소리처럼 또렷해졌다.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알지만, 키에른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조금만 더 듣고 싶었다.
“하루 종일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나도 그래, 로즈.”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이거 나 대신이야. 매일매일 들고 다녀야 해?”
“응. 매일매일 가지고 있어.”
“정말?”
“으응…….”
“그런데 왜 아직도 나는 죽어 있어?”
“너무 아파. 괴로워. 네가 보고 싶어. 네 곁에 있고 싶어.”
“살려 줘, 키에른!”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머리가 아찔했으나, 키에른은 귀를 막지 않았다.
고개를 내저어 환청을 떨쳐 내지도 않았다.
로즈가 이런 말을 할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저 얌전하게 들으며 힘없이 답했다.
“미안해.”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탓일까.
환청은 이번엔 다른 목소리를 끌고 왔다.
“아빠!”
키에른은 천천히 미소했다.
그리고 웃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길거리 잡배처럼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입에 담으며 눈을 번뜩였다.
“내 딸은 안 죽었어.”
멀쩡히 살아 있을 아이다.
죽은 이랑 똑같이 환청으로 꾀어내려는 짓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새까만 마검을 휘두르며 검은 숲의 마물을 마구잡이로 베어 내던 때였다.
하늘에서 보랏빛 마력으로 만들어진 날개 달린 일각수가 나타났다.
검은 숲을 밝히는 일각수는 부드럽게 날갯짓해 키에른 앞으로 다가왔다.
키에른은 한숨을 쉬며 손을 가져다 댔다.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수도로 와라, 키에른.”
키에른은 무심하게 핏물을 닦으며 그녀의 전언을 들었다.
“탄신연에는 참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