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7)
아기 요정은 악당-157화(157/200)
체샤의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상대로 이타르는 요녀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홀딱 넘어왔다.
체샤를 스카야 왕국에 붙잡아 두려던 그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팔렌 제국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스카야 왕족이 둘이나 포함된 행렬이지만, 인원은 최대한 간소하게 꾸렸다.
또한 겉으로 보아선 스카야 왕실의 행렬인지를 모르도록 했다.
전부 체샤의 부탁이었다.
‘몰래 가야지.’
혹여나 도중에 ‘체샤 바실리안’이 스카야 왕실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들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졌다.
물론 키에른과 삼 형제, 혹은 하일론이 찾아와 주면 좋을 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쓸데없는 놈들이 꼬일 가능성이 컸다.
‘자칫하다간 온 대륙에 피바람 부는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현재 체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스카야 왕실도 억울하게 휘말려서 처단당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도와주는 아란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체샤!”
아란이 팔랑거리며 뛰어왔다.
말괄량이 공주님을 뒤쫓아 온 사미드가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오늘이로구나. 너와 같이 여행을 떠난다니 마음이 설렌다.”
아란은 잔뜩 신이 났다.
소성인 기도회 때는 마차 여행이 지겨워 죽는 줄 알았는데, 체샤랑 함께라면 하나도 안 지루할 것 같다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체샤는 기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아란에게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며 마차를 타러 갔다.
제국으로 몰래 향하는 행렬인 만큼, 왕궁 정문이 아닌 후문에서 왕실 문장이 없는 마차로 갈아탈 예정이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두건으로 얼굴 반절을 가린 이타르가 말에 올라타 있었다.
평복에 경갑옷을 걸친 용병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체샤와 아란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
아란의 눈매가 금세 샐쭉해졌다.
“체샤 바실리안.”
아란이 맞잡은 체샤의 손을 꼭 힘주어 붙들며 속삭였다.
“내가 너를 꼭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걱정 말거라.”
그보다는 스카야 왕태자의 미래를 걱정하는 게 좋겠지만, 체샤는 모르는 척 방싯 웃었다.
마차는 총 다섯 대였다.
이타르, 아란, 체샤의 마차가 각 하나씩, 그리고 나머지 둘은 바실리안가와 팔렌 황실에 바칠 선물을 실은 짐마차였다.
체샤가 제 몫으로 배정받은 마차에 타려던 때였다.
주변을 호위하던 왕실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웬 개새끼가 있지?”
“얼마 전부터 계속 왕궁 근처만 맴돌던데.”
“어, 맞아. 귀엽게 생겼는데 성질이 사납더라. 애들이 먹이도 챙겨 줘 봤는데 아예 안 먹더라고. 게다가 얼마나 짖어 대는지.”
“저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누가 버렸나 몰라.”
“몹쓸 주인 같으니.”
가만히 듣고 있던 체샤는 느릿하게 몸을 뒤로 돌렸다.
저편에서 병사에게 쫓겨나는 작은 강아지가 보였다.
온통 꼬질꼬질한 강아지였다.
본래 털 색깔조차 못 알아볼 만큼 더러운 강아지는 바짝 말라서 갈비뼈가 보였다.
어디 다치기라도 했는지, 다리도 절뚝거렸다.
“훠이! 저리 가!”
병사는 바닥에 쿵 하고 발을 굴러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평범한 떠돌이 동물은 쏜살같이 도망갈 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물러나지 않았다.
“망…! 망망……!”
다 쉬어 빠진 목청으로 계속 짖어 댈 뿐이었다.
얼마나 짖은 건지, 울음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어휴, 불쌍해라.”
남자 병사 옆에서 여자 병사가 쪼그리고 앉아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병사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치더니, 발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이쪽으로 달려오려 했다.
“아이고, 안 돼!”
자칫 잘못해서 왕족의 귀한 몸에 상처라도 입힌다면, 곧장 살처분이었다.
혹여나 강아지가 애꿎은 목숨을 잃게 될까 봐 기겁한 병사가 녀석을 얼른 붙잡았다.
필사적으로 내달렸으나, 워낙 힘이 없어 금방 붙잡혀 버린 강아지가 몸부림을 쳤다.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는 강아지의 눈동자는 보라색이었다.
“…하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체샤는 마구 뛰어갔다.
강아지도 병사의 손아귀에서 쏙 빠져나왔다.
“어엇!”
놀란 병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체샤와 강아지는 서로를 향해 달렸다.
있는 힘껏 폴짝 뛰어오른 강아지가 체샤의 품에 안겼다.
체샤는 강아지를 끌어안으며 이름을 불렀다.
“하타!”
“끼웅…….”
하타는 낑낑 소리를 내며 체샤에게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냐?”
아란이 놀라서 다가왔다.
마차를 타려다 말고 갑자기 웬 강아지를 주웠으니, 놀랄 만도 했다.
“제 강아지예요.”
그 말을 하는 제 표정이 어땠던 걸까.
체샤의 얼굴을 본 아란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기억이 나는 것 같구나.”
소성인 기도회 때도 데리고 있었으니 얼추 알아본 듯했다.
아란의 허락을 얻어, 체샤는 하타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급히 얻어 온 물과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천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그러고 나니 겨우 체샤가 아는 하타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야!”
속상해서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당연히 바실리안가에서 지내고 있을 줄 알았다.
이런 꼴로 길바닥에서 마주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바실리안 삼 형제가 하타를 제법 좋아했으니 내쫓았을 리도 없다.
분명 제 발로 뛰쳐나왔을 텐데.
수인 상태에서는 귀와 꼬리를 감출 수가 없으니, 강아지 모습으로 스카야 왕국까지 찾아온 듯했다.
이렇게나 작은 발로 말이다.
말랑말랑하던 발바닥이 상처투성이에 돌처럼 딱딱해졌다.
속상해하는 체샤를 보며 하타가 귀를 축 늘어뜨렸다.
“하타 나쁜 강아지예요?”
차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타가 앞발로 체샤를 톡, 두드렸다.
“리체시아 님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오랫동안 체샤를 기다렸다.
수명이 기나긴 수인에게 1년은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타에게는 그 1년이 영원과 같았다.
체샤가 요정 왕국을 벗어나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온 순간.
하타는 그동안 끊어졌던 체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하타 불러 주지 않아서.”
당연히 체샤가 소환해 주리라 여겼다.
하타와 체샤는 주종의 계약을 맺어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체샤는 하타를 소환하지 않았다.
“하타, 버려진 걸까, 그런 생각 들어서…….”
체샤가 힘을 대부분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하타로서는 충분히 오해할 만도 했다.
“더는 하타가 필요 없는 걸까,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하, 하타는, 리체시아 님한테 마지막으로 가,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하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동글동글한 눈물방울이 퐁퐁 샘솟았다.
“으, 흐윽, 하, 하타, 계속, 리체시아 님 곁에, 흐으, 이, 있고 싶어요…….”
울먹거리며 겨우겨우 애원한 하타가 결국 와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널 어떻게 버려.”
체샤는 하타를 달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하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하타는 리체시아 님의 강아지인 거죠?”
“너 죽을 때까진 내 거야.”
“죽어서도 리체시아 님의 강아지 할래요.”
“…그래.”
우는 강아지를 겨우 달래 놓고, 그간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체샤의 이야기를 들은 하타는 한쪽 발을 뺨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니까 토끼 인형이 요정 여왕의 왕관인데, 움직이고 말도 해요?”
“응. 제법 귀여운 인형…, 하타!”
토끼 인형을 칭찬하자마자, 하타가 앞발로 토끼 인형을 후려갈겼다.
솜이라서 퍽 소리였지, 아니었으면 뻑 터지는 소리가 났을 정도로 강한 앞발질이었다.
다행히 토끼 인형은 터지진 않고, 그냥 마차 구석으로 날아갔다.
“앗, 실수.”
토끼 인형을 멀리 보내 버린 하타가 헤헤 웃으며 귀엽게 꼬리를 흔들었다.
“하타보다 귀여울까 봐 놀라서 그랬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
하타가 질투 많은 개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토끼 인형을 주워다 저만치 떨어진 의자에 놔두는 동안, 하타가 한쪽 발을 들고 의견을 발표했다.
“팔렌 제국으로 가는 길에요. 뒷세계에 잠깐 들르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하타가 어른 되는 약도 다시 만들었고요. 그리고 바실리안 삼 형제가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하타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덧붙였다.
“상태가 좀 많이 이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