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9)
아기 요정은 악당-159화(159/200)
순간 체샤는 제가 일 년이 아니라, 최소 오 년은 훌쩍 넘기고 돌아왔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생겨야 이렇게 된단 말인가.
장성한 카르하를 보고 놀라서 굳어 버린 사이, 카르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빗물을 손등으로 대강 훔치며, 체샤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만 크게 뜨고 있던 체샤는 문득 카르하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첫 만남은 아니지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통성명했던 그날도 지금과 비슷했다.
카르하는 짐승 같은 감각으로 모습을 감춘 체샤를 인지했다.
꽃 냄새가 난다며 체샤를 한참 쫓아온 탓에, 지하 감옥을 빙글빙글 돌면서 추격전을 벌였었다.
지금도 카르하는 체샤에게서 꽃향기를 맡은 듯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체샤는 금세 그에게 붙잡혔으리라.
“꽃 냄새.”
그날처럼 작게 중얼거리며, 카르하가 손을 뻗어 왔다.
느리게 다가오는 손길이 허공을 갈랐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빗물에 흠씬 젖은 손만 바라보던 때였다.
“카르하 님.”
낮은 목소리가 쏟아지는 비를 뚫고 들려왔다.
복잡한 문양이 들어간 천으로 눈을 가린 남자가 가볍게 땅으로 착지했다.
마스터의 직속 수하인 자한이었다.
“벨제온 님께서 부르십니다.”
“나중에 갈게.”
“체샤 님에 관한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할 듯하던 카르하는 그 한마디에 곧장 몸을 돌렸다.
체샤가 미처 잡기도 전에 빗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다가, 뒤늦게 파드득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닌데!’
체샤는 급하게 이마에 붙은 꽃을 떼어 내려다가 멈칫했다.
“…….”
작은 이로 아랫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갑자기 변해 버려서…. 너무 놀라진 않겠지?’
고작 1년의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아기에서 어린이로 자라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라진 자신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었다.
분명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체샤는 속으로 우물우물 변명했다.
‘물론 꼭 반응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이것저것 상황 파악을 해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
바실리안이 비정상임을 잘 아는 하타조차 근래 삼 형제가 이상하다고 언급했다.
가족이니까, 체샤도 그들의 상황이 궁금했다.
하지만 바실리안들은 절대 체샤에게 솔직히 이야기해 주지 않을 터였다.
키에른도, 삼 형제도, 나쁜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하며 항상 감추기만 했다.
지금 카르하가 어른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체샤가 실종된 사이에 벌어진 일들도…….
죄다 아무 설명 없이 묻어 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 기회에 도대체 그간 다들 무슨 짓을 했을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떼어 내려던 꽃을 다시 붙이고, 체샤는 멀어지는 자한에게 잽싸게 표식을 남겼다.
“…?”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자한은 살짝 이상함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비 내리는 골목길은 텅 비어 있었다.
자한은 이내 시선을 거두곤, 벨제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자한은 본래 무난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굳이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조상이 머나먼 동쪽 대륙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동방의 언어로 지은 독특한 이름만 제외하면 따분할 정도로 평범했다.
그러나 안온하던 자한의 삶은 하루아침에 망가졌다.
보아선 안 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한은 그 대가로 저주받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홍옥처럼 붉은 눈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낡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린 자한을 보고도 징그럽다고 피하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다가와 질문할 뿐이었다.
“무엇을 보았지?”
자한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요정의 죽음입니다.”
요정이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
썩어 가는 숲과 들판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미친 요정 때문에 그리되었다는 말에 호기심을 품고 찾아가 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요정이 죽은 자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진 시꺼먼 숲.
오직 요정이 죽은 자리만이 찬란한 빛으로 반짝였다.
빛이 부서져 내리고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은 동화처럼 아름다웠으나, 그 주변을 둘러싼 음침한 풍경 때문에 일견 잔혹해 보이기도 했다.
신비한 광경에 취해 있던 자한은 뒤늦게 격통을 느꼈다.
눈알이 뽑히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피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다가 겨우 정신 차렸을 때.
자한의 눈은 망가져 있었다.
흰자와 검은자위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녹색 눈동자가 가득 차지했다.
둥글어야 할 동공은 마치 파충류처럼 세로로 뾰족해졌다.
심지어 몸에는 뱀 비늘이 군데군데 돋아났다.
요정이 죽으면서 발산한 힘에 영향을 받아, 이종족화가 일부 진행된 것이다.
수인도 인간도 아니게 되어 버린 자한은 절망했다.
징그럽게 변한 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마을로 되돌아갔으나, 괴물이라며 돌팔매질을 당했다.
간신히 도망친 자한은 천을 찢어 미라처럼 얼굴을 둘둘 감아 눈을 가렸다.
그렇게 이곳저곳 떠돌던 와중,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자한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제법 강한 요정이었나. 인간을 수인화시킬 정도이니…….”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 끝으로 자한의 턱 밑을 받쳐 올렸다.
흉측한 눈을 감추기 위해 바닥만 내려다보던 자한은 남자와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눈가에 작게 돋아난 뱀 비늘과 흰자위 없이 가득 들어찬 초록색 눈을 보면서도, 남자는 역겨워하는 기색이라곤 일절 없었다.
새빨간 눈동자는 오직 흥미와 재미로만 가득했다.
“뱀 수인이어서 마음에 들어.”
남자는 얄궂게 눈웃음치며 속삭였다.
“내 밑에서 일해 볼래?”
그렇게 자한은 뒷세계의 주인, 키에른 바실리안의 수하가 되었다.
반쪽짜리 수인이 되어 버린 처지는 절망스러웠으나, 장점도 있었다.
비인간적인 힘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온갖 괴기한 자들이 모여드는 뒷세계였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뒷세계의 존재들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자한은 제 장점을 여과 없이 발휘하여, 마스터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자한 혼자서 모든 일을 소화해 낼 수는 없는지라, 키에른은 자신의 아들들을 데려와 함께 수하로 부렸다.
장남인 벨제온은 각종 서류 업무를 담당했다.
쌍둥이 형제는 ‘처형자’로서 자한과 함께 뒷세계의 질서를 유지했다.
다만 바실리안이라는 신상을 들켜서는 안 되니, 삼 형제는 겉모습을 바꾸었다.
수인의 힘으로 만든 물약을 마셔서 성인의 육체로 변한 것이다.
물약을 제조할 수 있는 수인은 극히 드물었다.
현재는 전 대륙을 통틀어 단둘뿐이었다.
키에른이 데리고 있는 수인, 그리고 요녀의 개.
하지만 요녀의 개는 간단한 수준의 물약만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졌다.
‘처음 체샤 님을 데려왔을 때 물약을 먹였었지.’
혹시나 수인의 물약으로 모습을 바꾼 것일까 봐, 마력 제어구에 이어서 음식에 몰래 해제 물약을 섞어 먹여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어른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아기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 키에른은 조금씩 체샤에게 마음을 주었다.
작은 아기는 어느새 바실리안 백작가의 커다란 기둥이 되었다.
‘체샤 님께선 어디 계신 걸까.’
자한은 반짝이는 분홍색 눈동자를 생각했다.
체샤 님이 계셨다면 분명히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근래 바실리안가는 완전히 이상해졌다.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있으나,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체샤 님이 알게 된다면 싫어할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자한은 차마 만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미 미쳐 가는 이들이었다.
괜히 말렸다가는 더 나쁜 방향으로 튀어 버릴지 몰랐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을 제어할 수 있는 이는 체샤 님뿐이었으니.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자한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키며 제 앞에서 대화 중인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스카야 왕실에 있다고요?”
벨제온의 이야기를 들은 카르하가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왜요?”
약간 흥분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연히 우릴, 바실리안을 제일 먼저 찾아와야 하는데.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요정 힘으로 공간 이동도 할 줄 알면서…….”
매끈한 마호가니 책상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던 남자가 피식 웃었다.
어른의 몸을 취한 벨제온은 아버지인 키에른과 많이 닮았으나, 그보다 차갑고 냉랭한 느낌이 강했다.
싸늘한 눈매를 한 벨제온이 입가에 설핏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게.”
그는 얼어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우리 같은 놈들은 지긋지긋해진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