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
아기 요정은 악당-16화(16/200)
황명을 받아 급하게 수도로 올라왔으나, 소성인 기도회까지는 아직 석 달이나 넘게 남아 있었다.
하여 바실리안 가문은 그때까지 수도 타운하우스에서 머무르다가 신성 제국으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수도 타운하우스는 훌륭했다.
칙칙한 동부의 성을 익히 봐 왔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웬만한 귀족 가문의 저택보다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인테리어나 장식품, 가구 따위도 전부 최신 유행에 맞춘 것이었다.
체샤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건 정원이었다.
계절에 맞는 꽃으로 가득 채워진 정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체샤는 매일매일 정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정원을 산책할 때마다, 귀찮은 놈들이 달라붙었다.
‘정말 귀찮아.’
체샤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흘금 뒤를 돌아보았다.
아장아장 걸어가는 체샤의 뒤쪽에는 쌍둥이가 졸졸 따라오는 중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불량한 자세의 카르하가 정원에 핀 꽃을 턱짓했다.
“아기, 여기 봐라. 꽃 예쁘다.”
체샤는 관심을 주지 않고 전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슈엘이 말을 붙여 왔다.
“안아 줄까? 발이 그렇게 조그만데. 걷다가 엎어지겠어.”
물론 카르하와 똑같이 대꾸해 주지 않았다.
풀내음과 꽃향기만 열심히 맡으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무시로 일관하는데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쌍둥이는 키득거렸다.
실실 웃으면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체샤에게 속도를 맞춰 뒤따라왔다.
체샤는 괜히 째려본답시고 뒤를 흘깃대다가 그만 발이 엉켰다.
“끄앙!”
찰파닥 엎어지기 직전에 양쪽에서 덥석덥석 붙잡아 왔다.
체샤를 한쪽씩 붙든 쌍둥이가 똑같이 씨익 웃었다.
웃는 꼴이 어찌나 얄밉던지, 할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꿀밤 한 대씩만 딱 때리고 싶었다.
그래도 붙잡아 주긴 했으니 일단 감사 인사는 했다.
“깜사해요.”
“깜사해?”
“깜사하냐?”
쌍둥이는 체샤의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놀려 댔다.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한 체샤가 참지 못하고 성질난 눈을 해 보이니, 둘이서 숨넘어갈 듯이 낄낄댔다.
셋이서 아웅다웅하는 광경에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웃었다.
그들은 소리 내어 웃다 말고,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바실리안가의 사용인들은 무척 조용한 편이었다.
유령처럼 주인의 수발만 들었는데, 최근 체샤 때문에 사용인들이 저도 모르게 웃는 일이 자꾸 늘고 있었다.
백작 부인의 죽음 이후, 오래도록 침묵과 정적만이 맴돌았던 바실리안가였다.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사용인들도 마음 편히 웃어도 되는지 몰라서 어색하게 굴었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아기 주인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모두가 즐거운 상황에서 체샤만 짜증나는 중이었다.
‘에휴.’
체샤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뱀의 성을 떠나 수도 타운하우스까지 왔다.
본래는 곧장 떠나려했으나, 소성인 기도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황궁 입궁하면서 관찰한 키에른이 수상쩍었던지라 조금 더 조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타도 다시 돌려 보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성과가 없다고!’
낮에는 새로운 장난감에 꽂힌 쌍둥이가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저녁에는 그나마 쌍둥이가 번갈아 가며 외출을 했는데, 한 명은 꼭 체샤 곁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키에른이 체샤를 괴롭혀 댔다.
키에른은 수도에 올라온 뒤로 무엇 때문인지 집에 거의 들어오질 않았다.
다만 가끔 귀가할 때면, 꼭 체샤의 방을 찾아왔다.
그리고 체샤를 납치해서 제 침실로 데려갔다.
“혼자 자면 무서워요. 체샤랑 같이 자야지.”
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키에른에게선 항상 희미한 피 냄새가 났다.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조만간 뒤를 밟아 볼까 생각 중이었다.
아무튼 키에른이 언제 찾아올지를 모르니, 밤에도 함부로 길게 돌아다닐 수가 없는 처지였다.
짧게 시간이 날 때마다 집무실의 서류 따위를 훔쳐 읽어 봤지만 의미 있는 정보는 없었다.
‘뱀의 성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뭔가 감추는 게 있는데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귀찮아지기 전에 빨리 백작가를 떠야 하는데.’
체샤는 황궁에서 만났던 이를 떠올렸다.
조금의 이물도 묻지 않은, 순백의 제복을 입은 남자.
여전히 깨끗하고 아름다운 푸른 눈.
‘하일론이 호위 기사라니…….’
그가 힐데르드에서 가진 영향력과 지위, 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소성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아이의 호위 기사로 배정되었다는 건 엄청난 고급 인력 낭비였다.
아니, 일단 이단 심문관이 고작 호위 기사 노릇을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우는 아기도 눈물 뚝 그치게 만든다는 이단 심문관이었다.
광기 어린 잔혹함으로 이단을 척살하는 자들이 무슨 애새끼들 호위 기사인가.
그런데 하일론은 신분을 숨기고 바실리안 백작가에 접촉했다.
‘이미 수사를 시작한 건가.’
신성 제국의 이단 심문관들은 징그럽게 눈치가 빨랐다.
어쩌면 벌써 증거 수집 다 끝내 놓고, 결정적인 순간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파 놓은 걸지도 몰랐다.
특히 하일론이 직접 나섰다는 건.
이단 심문관들이 바실리안을 주요 수사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뜻이었다.
‘정말 골치 아프단 말이야.’
키에른이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더욱 불안했다.
이단 심문관이 바실리안 가문을 쪼개 놓기 전에, 그리고 소성인 기도회에 참가하기 전에.
얼른 떠나야 했다.
‘오늘은 뭐든 알아내자.’
체샤가 마음을 굳게 다잡던 때였다.
“아가씨!”
사용인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체샤가 쌍둥이에게 양손이 붙잡혀 만세한 모습을 보곤 갑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웃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한 그녀는 점잖은 목소리를 내는 데에 성공했다.
“가정교사께서 오셨습니다.”
오늘부터 체샤에게 예법을 가르칠 가정교사를 붙인다고 했다.
겸사겸사 쌍둥이도 사교계 첫 데뷔 전에 간단히 점검 삼아 예법 교육을 받기로 했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누구도 사교계 데뷔를 하지 않았다.
귀족가 영애, 영식들이라면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얼마 뒤 열릴 이브로이엘 공작가의 연회에서 사교계 첫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
‘예법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귀족인 척 흉내 내며 돌아다닌 적도 많았다.
그 때문에 웬만한 귀족 영애들보다 예법이나 화술이 능숙했다.
‘화술은 의미 없겠군.’
짧은 혓바닥을 능숙하게 놀려 봤자 그냥 쩨쩨한 발음이나 나올 터였다.
어떻게 하면 예법을 처음 배우는 아기처럼 보일지 고심하며, 쌍둥이와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체샤는 응접실에 앉아서 고상하게 차를 마시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진심으로 질색해 버렸다.
‘루딘 백작?!’
루딘 백작이 귀부인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벨제온이 자리해 있었다.
벨제온은 무표정했으나, 붉은 눈에 희미하게 짜증이 어려 있었다.
홍차를 홀짝이던 루딘 백작이 응접실에 들어서는 쌍둥이와 체샤를 보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귀부인이 곧장 드레스 자락을 추스르며 우아하게 일어났다.
“귀여운 도련님과 아가씨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부터 내가 예법을 가르칠 겁니다.”
그녀는 루딘 백작 부인이었다.
‘왜 하필이면!’
수도에 예법 가르칠 선생님들이 많을 텐데 왜 하필 루딘 백작 부인이 가정교사인 것인가.
심지어 남편까지 같이 데려오고 말이다.
루딘 백작이 큼큼 헛기침하며 거만히 말했다.
“내 바실리안 백작가를 각별히 생각하니, 부인을 가정교사로 붙여 준 거요.”
“…….”
벨제온이 비뚠 미소를 지었다.
뭐가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짐작이 갔다.
원래 예정된 가정교사를 쫒아내고 루딘 백작이 제 부인을 끌고 막무가내로 온 것이다.
루딘 백작의 눈알은 부지런히 백작저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유는 명확했다.
‘염탐이 목적이겠지.’
바실리안가 남자들은 전부 사교계 활동을 시작하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거기에 황제와 따로 독대할 정도로 황실의 신임을 받는 가문.
루딘 백작의 입장에선 경쟁자가 되기 전에 미리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을 터였다.
하필이면 키에른이 없을 때를 맞춰서 찾아온 것도 속이 보였다.
어린애들뿐이니까 제멋대로 굴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리라.
“왜 다들 말이 없지요?”
백작 부인이 날카롭게 다그쳤다.
서로를 떠미느라 말이 없던 쌍둥이가 뒤늦게 예에, 하면서 인사를 했다.
체샤도 뒤를 따라 대충 인사했다.
루딘 백작 부인이 먹잇감을 문 여우처럼 눈을 빛냈다.
“그럼 체샤 아가씨부터 시작해 볼까요? 공작가의 연회에 참석하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수업해야 해요.”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고아원 출신이라는 티가 나면 곤란하잖아요.”
체샤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유치한 시비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반응해 줄 가치도 없다고 여겼지만.
“…!”
체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방금까지 제 옆에 있던 카르하가 어느새 루딘 백작부인 앞에 서 있었다.
카르하는 검집째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그가 검 끝으로 백작부인의 턱 밑을 가볍게 툭 치면서 히죽 웃었다.
“거, 말조심하시죠.”
체샤를 안고 있던 이슈엘이 고개를 살풋 기울이며 말을 받아 이었다.
“우리도 그런 소리 들으면 곤란하거든요. 엄청 고민된단 말이에요.”
소년이 여린 미성으로 속삭였다.
“죽일지,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