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3)
아기 요정은 악당-163화(163/200)
대답은 즉각 떨어졌다.
“좋다.”
“…응?”
“그러도록 하지.”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니, 되레 요녀가 바실리안가를 챙겨 주었다.
“조금 고민 안 해 봐도 돼?”
“무엇을?”
“아니, 그러니까…. 요정들 풀어 주는 거.”
이렇게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느냐고, 정말 괜찮냐고 물어보는 말에 벨제온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일자로 다물려 있던 입술이 엷게 비틀려 올라갔다.
벨제온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고민할 값어치가 없는 일이다.”
삼 형제가 외양을 성인으로 바꾸어 뒷세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바실리안이 요정들을 붙잡아 두었단 것도, 죄다 엄중한 기밀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요녀는 훤히 알고 있었다.
만일 뒷세계 마스터의 수하로서, 그리고 바실리안으로서 행동했다면.
이미 진즉부터 쌍둥이가 장막을 찢어 버리고 요녀와 전투를 시작했을 터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녀를 제압해, 어떻게 기밀을 알아냈는지 실토할 때까지 잔인하게 심문했으리라.
필요하다면 키에른이 정신 조종을 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삼 형제는 인내했다.
요녀가 이제는 이단 심문관이 아닌, 신성 제국의 반역자 하일론의 연인이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체샤의 어머니이기에 참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붉은 장막을 찢어발기고, 그래서 체샤는 어디 있냐고 다그치고픈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가족을 구하는 일이니까.”
잠시 요녀는 말이 없었다.
두텁게 쌓이는 침묵을 헤치며, 카르하가 장막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왜 버렸어?”
벨제온과 이슈엘이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카르하는 천 너머에 있을 요정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보육원에 버렸잖아. 그렇게 귀여운 애를…….”
으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끝이 뾰족한 눈매에 담긴 눈동자가 피처럼 새빨갰다.
“그래 놓고서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이 하고 싶은 건 아닐 테고.”
송곳니를 혀로 한 번 훑으며, 카르하가 재차 따져 물었다.
“계속 안 나타나다가, 요정들 구하려고 아기 데려가서, 이따위 제안이나 하는 거 아니냐고!”
언성이 높아지자 이슈엘이 카르하를 붙잡았다.
그러나 카르하는 곧장 이슈엘의 손을 뿌리쳤다.
“잘 들어 요녀. 우리는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왜 갑자기 잠적했는지 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카르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원하는 대로 줄게. 요정이든, 돈이든, 누군가의 목숨이든, 뭐든 다 줄 테니.”
이번에는 이슈엘도, 벨제온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카르하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아기는, 체샤는… 바실리안으로 살도록 내버려 둬. 그 아이는 요녀의 딸이 아닌, 체샤 바실리안으로 살게 해.”
분명 위협하듯 내뱉는 말이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꼭 간절한 애원처럼 들리기도 했다.
“너는 체샤가 없어도 괜찮잖아.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을 마친 카르하가 숨을 씨근덕거렸다.
장막 너머는 오래도록 고요했다.
성질 급한 카르하가 참지 못하고 손으로 젖혀 버리기 직전에야, 요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그녀는 마치 수백 년을 넘나들어 본 이처럼 말했다.
“원하지 않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어서.”
그러자 여태껏 구석에 박혀서 얌전히 듣고만 있던 하타가 갑자기 훌쩍거렸다.
삼 형제는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하타에게 흘긋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장막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어디에 머무를지,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 말해 주자면.”
요녀는 숨기지 못한 애정을 담아 속삭였다.
“체샤도… 바실리안을 많이 좋아해.”
***
요정들은 하일론이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이미 짐작했던 바이긴 했다.
단죄의 사슬 정도 되어야 그 많은 요정들을 구속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벨제온은 하일론 측에 곧장 연락을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일론이 반역자로 숨어 지내는 처지인지라 바실리안과도 연락이 수월하게 되진 않았다.
마침 연락하기로 미리 정한 날짜가 일주일 후였다.
팔렌 황실이 주최하는 탄신연 즈음이니, 그때 연락을 넣어 요정들을 풀어 주겠다고 약조했다.
바실리안이 약속을 어기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분명히 체샤를 위해 약속을 지켜 줄 터였다.
“…그래서.”
모든 합의가 끝나고, 이슈엘이 초조하게 질문했다.
“내 동생은 어디에 있지?”
체샤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처음 이걸 계획하고, 자한에게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엄마한테 도와 달라고 할 거예요.”
체샤의 ‘엄마’가 누구인지 잘 아는 자한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체샤에게 순순히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체샤가 시키는 대로, 요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하타의 모자 가게를 먼저 찾아갔다.
몰래 샤샤샥 미리 가서 수인으로 변해 있던 하타는 점잖게 체샤와 자한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꾸며 낸 것이다.
목표대로 요정도 구출했으니, 이제 마지막 감동의 재회만이 남았다.
체샤는 목에 붙인 꽃을 만지작거렸다.
‘리체시아’의 목소리로 변조하기 위해 붙여 놓은 꽃이었다.
붉은색 천 너머로 삼 형제를 바라보았다.
성인 남자의 모습을 한 그들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싫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겉모습이 어떻든, 삼 형제가 체샤의 오라버니라는 사실은 불변이었다.
“여기 가게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어.”
체샤는 슬쩍 뒤쪽에 세워진 서랍장을 쳐다보았다.
“그럼 나는 떠날 테니까…. 잘 부탁할게.”
리체시아로서 마지막 말을 남긴 후, 재빠르게 꽃을 떼고 하타의 실험실로 뛰어 들어갔다.
인내심이 바닥난 삼 형제가 가게를 부수기 전에, 하타가 얼른 그들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하타가 문을 열어 줄게요.”
긴장한 하타는 다리 사이로 꼬리가 쏙 말린 상태였다.
장막을 걷어 내고, 서랍장에 손을 얹었다.
쿠쿵, 소리를 내며 서랍장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숨겨진 나무 문이 드러났다.
문은 삼 형제에게 많이 작아서, 들어가려면 한참 허리를 숙여야 했다.
제일 체구가 작은 이슈엘이 앞장서서 거침없이 청동 문고리를 붙잡았다.
철컥.
철컥철컥.
“…어.”
문을 잡아당기던 이슈엘이 당황해서 벨제온과 카르하를 돌아보았다.
“문 잠겼는데……?”
카르하가 곧장 검부터 뽑으려 했다.
문짝을 박살 내기 직전, 벨제온이 동생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에 노크했다.
“체샤.”
삼 형제는 숨죽이고 고요히 기다렸다.
억겁 같은 기다림 끝에,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들.”
또랑또랑한 발음이었다.
짧은 혀로 힘들게 말하던 체샤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어린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삼 형제는 잠시 굳어졌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벨제온이었다.
벨제온은 잽싸게 나무 문 앞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체샤, 체샤 맞지?”
뒤이어서 쌍둥이도 양옆으로 쪼그려 앉아선 귀를 쫑긋 세우고 답을 기다렸다.
“네. 그런데…….”
잔뜩 기운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커 버렸어요. 이제 아기 아니고, 어린이가 됐어요.”
체샤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이상하죠.”
닫힌 문 너머.
체샤는 나무 문에 가만히 달라붙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삼 형제들에게 자신이 바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그럴듯하게 둘러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게 갑자기 모습이 바뀌고 힘도 사라져서 엄마를 찾아갔다는 핑계였다.
불꽃 연기를 펼쳐 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말하면 말할수록, 조금씩 마음이 오묘해졌다.
“체샤 혼자만 이상하니까.”
나무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을 느끼고 있노라니, 이상한 감정들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꼭 연기가 아니라 진짜 속마음이라도 쏟아 내는 것처럼…….
미쳐 버린 요정의 딸.
모두가 두려워하고 피하던, 인간이 아닌 존재.
체샤는 저도 모르게 불쑥 내뱉어 버렸다.
“괴물이 된 거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