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4)
아기 요정은 악당-164화(164/200)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말을 꺼내 놓고서 체샤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오래도록 해 왔던 생각이기도 했다.
아기였을 때는 영원히 자라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처음 어린이가 되었을 때는 크게 안심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차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몇 년을 훌쩍 뛰어넘어서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렇게 성인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연 순조로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지 의문이었다.
아직 요정들에게 자신의 이상 상태에 대해 물어보진 못했으나, 이미 속으로 대강 직감한 바가 있었다.
요정 왕국에서 만난 요정들 중에서 어린 요정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과 혼혈인 요정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이 요정수를 통해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졌음을 깨달은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바실리안들과 서로를 가족으로서 아끼더라도, 결국 다른 종족이었다.
인간과 요정의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벌어지리라.
귀애하는 마음은 언제까지 영원할 것인가.
당장 지금만 해도, 아기에서 어린이로 훌쩍 자라난 자신을 보고 어찌 반응할지…….
바실리안의 사랑을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신했다.
‘나 키에른이랑 똑같은 생각 하고 있네.’
그 와중에 의심 많은 키에른이 떠올라서, 체샤는 저도 모르게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같이 지내며 이런 점만 닮아 버린 모양이었다.
피도 이어지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오라버니들이 보면 놀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습도 바뀌고, 힘도 많이 사라지고. 그래서 바실리안으로 못 돌아간 거예요.”
체샤는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저라도 괜찮으면…….”
하던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지만, 그냥 스르륵 입을 닫았다.
어차피 뜻은 다 전해졌을 테니 상관없을 것이다.
힘이 다 빠져서 몸이 추욱 처졌다.
들려올 대답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 체샤는 멍하니 생각했다.
‘밝고 쾌활한 아이를 좋아할 텐데.’
계획했던 불꽃 연기 대신, 우울한 진심을 털어놓아 버렸다.
바실리안은 자신들을 웃게 해 주고 즐겁게 만들어 줬던, 귀여운 아기를 좋아했을 터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보육원 시절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 버렸다.
부잣집에 입양되었으나 귀엽게 굴지 못해서 파양되었던 오래된 과거.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척하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할 걸 그랬나?’
잘못된 방법을 선택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후회하던 순간이었다.
“체샤 바실리안.”
벨제온이 냉랭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뒤로 물러나.”
어깨를 꼼찔 떤 체샤는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엉겁결에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잠시 후.
쾅!
벨제온이 주먹으로 나무 문을 부숴 버렸다.
나무 파편이 쏟아지며 바깥에서 빛이 흘러 들어왔다.
불을 제대로 켜 놓지 않아 어둑하던 실험실이 밝아졌다.
벨제온은 손에 휘감았던 천을 풀어내며 체샤를 바라보았다.
이슈엘이 금빛 마력으로 체샤의 몸을 휘감아 밖으로 끌어냈다.
카르하는 허공에서 체샤를 받아다,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 주었다.
체샤는 세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정확히 체샤를 향했다.
붉은 눈동자들과 맞부딪치는 순간, 화살을 맞은 듯 가슴이 뜨끔했다.
마치 바실리안가의 삼 형제를 처음 보았던 과거의 어느 날처럼…….
곧고 날카로운 눈빛이 갈고리같이 체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어째서인지 숨을 쉬기가 조금 어려워서, 체샤는 입술을 벌렸다.
한참 서로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빤히 체샤를 바라보던 그들이 마침내 한숨을 내쉬었다.
“예뻐.”
짧게 중얼거린 카르하가 체샤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이제는 아기 아니니까…. 체샤라고 불러야겠네.”
그는 체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슈엘이 질세라 얼른 체샤의 손을 만졌다.
“우리도 이상하지 않아? 엄청 커졌잖아. 어른이야, 어른.”
그들의 손길을 받으며, 체샤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벨제온이 체샤를 안아 들었다.
아기일 때와 비교하면 많이 커졌지만, 그들 또한 성인의 몸인지라 오히려 더욱 가뿐하게 체샤를 들어 올렸다.
체샤는 몹시 익숙하게 안겼다.
바실리안가의 남자들과 있는 내내 발이 땅에 닿을 새도 없이 안겨 다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잘 봐.”
벨제온이 한 손으로 체샤의 뺨을 가볍게 쥐었다.
붕어처럼 입술이 삐죽하게 튀어나오도록 볼을 누르고서 질문했다.
“우리가 정상으로 보여?”
체샤는 삼 형제와 하나씩 눈을 마주쳤다.
채도가 높아 선명한 붉은 눈동자는 섬뜩했다.
인간적이라고는 빈말로라도 하기 어려운 눈이었다.
벨제온은 낮지만 단호하게 말을 이어 갔다.
“세상 모두가 너를 괴물이라 손가락질해도, 우리는 아니다. 너랑 똑같이 비정상이니.”
스스로를 어긋난 존재라 칭하는 말에는 단 한 점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널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겠지. 우리를 이질적으로 여기듯이.”
이슈엘이 등 뒤에서 체샤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벨제온에게 안겨 있는 덕분에 높이가 얼추 맞았다.
이슈엘은 나긋하고 보드라운 목소리로 체샤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바실리안뿐이야.”
너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춘 인간은.
“네가 괴물이면 뭐 어때. 우리도 더 이상한 놈이 되어 버릴게. 같이 괴물 하면 되잖아.”
이슈엘이 체샤의 머리카락에 쪽 소리 나게 입 맞췄다.
“오라버니들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동생.”
카르하가 바짝 옆에 다가와 서며 대수롭잖게 이슈엘의 말을 받았다.
“혹시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지? 말해라. 죽여 줄게.”
셋이서 태연자약하게 늘어놓는 말을 듣던 체샤는 손을 꼭 움켜쥐었다.
벨제온의 옷이 구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를 괴물이라 칭하며, 남들은 다 정상이니 비정상인 우리만 너한테 어울린다고 설득하다니,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체샤는 다정한 협박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그들 말대로 비정상이라서 이런 게 좋은 걸지도 몰랐다.
찡하게 아려 오는 조그만 코끝을 씰룩이며 웅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조그만 속삭임을 뱉어 내자마자, 삼 형제가 체샤를 와락 끌어안았다.
“끄앙!”
커다란 남정네 셋이 사방에서 안아 오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체샤는 행복하게 웃었다.
커다랗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웃었을까.
이슈엘이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너무 보고 싶었어…….”
소년 시절에도 아름다웠던 미모는 성인이 되니 위험할 정도였다.
속눈썹을 흠뻑 적시며 우는 모습은 청초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슈엘이 훌쩍이자, 카르하랑 벨제온도 콧등을 마구 찡그렸다.
둘 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울음을 참는 듯했다.
“우린 진짜 너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이슈엘이 칭얼거리며 연신 체샤의 뺨에 뽀뽀했다.
체샤는 작은 손으로 제 소맷자락을 끌어다 이슈엘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어찌어찌 잘 마무리가 된 듯했다.
삼 형제와는 감동의 재회를 나누었으니, 이제 한 명만 남았다.
‘키에른.’
가장 걱정했던 이를 떠올리며 물어보았다.
“근데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아.”
짧은 소리를 낸 벨제온은 쌍둥이를 쳐다보았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후에야 그가 답해 주었다.
“제도에 있다. 곧 팔렌 황제의 탄신연인지라.”
“그러면 저 왔다고 연락 먼저 하고, 지금 바로 제도로 가면…….”
“글쎄.”
체샤의 말을 부드럽게 끊은 벨제온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백작님한테는 조금 늦게 말할까?”
“어…. 왜요?”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마법이라도 써서 제도로 날아가고 싶은 체샤였다.
그런데 누구보다 키에른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을 벨제온이 이리 반대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그야 당연히.”
갑자기 삼 형제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요정도 아닌데, 주위에 꽃이 피어나나 싶을 만큼 해사한 웃음이었다.
삼 형제가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가운데, 첫째인 벨제온이 대표로 이유를 발언했다.
“좀 당해 봤으면 좋겠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