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5)
아기 요정은 악당-165화(165/200)
찰랑, 유리병에 담긴 물약이 흔들렸다.
하타는 유리병을 봉인한 코르크 마개를 열고 신중하게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한참 물약 냄새를 맡더니, 한 방울만 똑 떨어트려서 맛을 확인하기도 했다.
“에퉤퉤.”
맛은 없는 모양이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하타가 귀를 쫑긋거렸다.
생각에 잠긴 듯 꼬리도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체샤가 힘이 없는 상태인지라, 하타도 반쪽짜리 수인 모습인 상태였다.
덕분에 아까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는 귀와 꼬리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신중하게 물약을 확인하던 하타가 결론 내렸다.
“확실히 수인 물약이에요. 물론 하타가 만드는 물약이 더 대단하지만요!”
체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 형제가 성인의 육체로 변하기 위해 마신다는 수인 물약을 얻어 와서 조사하는 중이었다.
하타는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누가 만들었을까요? 하타가 알기론 물약 만드는 수인이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체샤는 팔짱을 끼고서 삼 형제가 내놓았던 답을 떠올렸다.
“잘 모르겠는데.”
예상은 했지만, 쌍둥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키에른이 하는 일이니, 별로 관심 없어서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믿었던 벨제온도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예전에는 물약을 제조하는 수인이 몇몇 있었다.
반인반수 중에서도 짐승의 본능이 옅고 손재주가 좋은 자들이 물약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물약을 만드는 수인들이 점점 사라졌다.
어차피 수인 물약의 효능은 전부 마법으로 대체 가능한지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
체샤도 하타가 처음 물약을 만들 줄 안다고 했을 때에야 그런 게 있었지, 하며 겨우 떠올렸을 정도였다.
물약을 만드는 수인들이 왜 사라졌는지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키에른이 범인이겠지.’
뒷세계 마스터로서 자신만 수인 물약을 독점하려고 말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타는 왜 내버려 두었을까.
능력을 감추려 조심했지만, 처형자인 카르하에게 하타의 실험실을 들킨 적이 있었다.
죽이거나 세뇌하거나, 둘 중 하나는 했을 법한데.
하타를 가만히 놔둔 게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묘하게 친절했어.’
서로 요녀 리체시아와 뒷세계 마스터로서 독대했을 때도 키에른은 은근히 봐주는 기색이 짙었다.
역시 죽은 백작 부인과 닮아서 그런 걸까.
‘대체 얼마나 닮았길래.’
뱀의 성에도, 제도 타운하우스에도, 백작 부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키에른이 죄다 없애 버린 탓이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이처럼 만들어 놓았으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하타는 체샤 앞에 물약 병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체샤를 위해 새로 만든 ‘어른으로 돌아가는 물약’이었다.
[♥어린이 요정님을 위한 약♥]물약 병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체샤는 허허 웃었다.
소용이 없으리라 짐작하면서도, 만든 정성을 생각해 열심히 마셔 주었다.
역시나 물약은 효과가 없었다.
체샤는 어린이 상태 그대로였다.
“…….”
하타의 귀와 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대륙에서 제일 물약 잘 만드는 수인이라며 자신만만해하던 강아지는 다시 자존감을 잃어버렸다.
혹시 몰라서 다른 수인이 만든, 삼 형제가 마시는 어른이 되는 물약도 마셔 봤지만, 똑같이 소용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계속 자라나고 있잖아.”
체샤는 열심히 하타를 위로해 주었다.
체샤의 위로에 하타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정말 탄신연에 참석하실 거예요?”
“해야지…….”
체샤는 약간 자신 없는 말투로 답했다.
삼 형제의 계획은 체샤와 키에른이 탄신연에서 재회하는 것이었다.
체샤가 사라진 동안, 키에른이 제 아들들을 쥐 잡듯이 부려 먹은 모양이었다.
정신 이상자처럼 굴어 대서 그 뒷수습만으로도 죽는 줄 알았다고, 벨제온은 무표정하게 키에른을 향한 독설을 쏟아 냈다.
복수심에 불타는 삼 형제의 등쌀에 떠밀려서 일단은 협조하기로 약속했다만, 계획대로 될지는 의문이었다.
‘뭐 하고 있으려나.’
키에른을 생각하는데, 하타가 불쑥 말했다.
“탄신연 때 입을 의상이요! 미야한테서 받아 올까요?”
미리 지어 놓은 옷들이 있으니, 그걸 수선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키에른한테 들키면 어떡해.”
“비밀로 해 달라고 하타가 미야를 협박할게요.”
하타가 주먹을 쥐고 흔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어차피 일주일 정도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타는 리체시아 님한테 제일 예쁜 옷을 입히고 싶다며 종알거렸다.
스카야 왕국과 수습할 일도 있고 해서, 내일 뒷세계를 떠나기로 한 상황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니, 하타 말대로 미야의 의상실에 잠시 들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잠깐 다녀오자.”
체샤는 하타와 함께 길을 나섰다.
미야의 의상실에서 키에른과 맞닥뜨리게 되리라곤 꿈에도 모른 채.
***
“흐음.”
전서응이 전달한 서신을 읽은 키에른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스카야 왕실이 탄신연에 참석하기 위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체샤를 데리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카르하가 직접 확인에 나섰으나, 그저 외모가 비슷한 아이였다는 내용이었다.
바실리안 백작가와 크게 척을 진 바람에 근래 처지가 영 곤란하니,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발버둥으로 비슷한 아이를 구해 온 모양이었다.
인간으로 요정인 아이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니.
참으로 멍청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래도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니, 연회 참석 정도는 허락해 줄까 싶었다.
[…그리고 탄신연 참석을 위해 제도로 귀환하겠습니다.]쌍둥이와 함께 제도로 귀환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벨제온의 서신은 마무리되었다.
서신을 다 읽은 키에른은 가만히 미소했다.
“수상하잖아, 아들.”
눈치 빠른 키에른의 직감이 알려 주고 있었다.
딱 집어 무어라 말할 순 없으나 뭔가 수상했다.
벨제온이 아닌, 자한에게 상황을 직접 물어야 할 듯했다.
슬슬 물약을 새로 보충해야 하니, 뒷세계에 다녀올 때이기도 했다.
키에른의 발치에서 검은 그림자가 치솟았다.
곧장 뒷세계로 이동한 키에른이 도착한 곳은 마스터의 저택이 아니었다.
그는 잠시 제 앞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미~야의 의상실>
정신 사나운 간판을 보며 설핏 웃었다가,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라냥!”
고양이 귀 머리띠를 쓴 미야가 카운터에서 방싯방싯 웃다 말고 굳어졌다.
“헉, 바실리안 백작님…….”
미야는 얼른 머리띠부터 벗어서 카운터 서랍에 넣었다.
“가, 가, 가게까지 어, 어쩐 일이실까요…? 그냥 부르셔도 됐는데…….”
부르셨으면 냉큼 제도의 타운하우스까지 달려갔을 거라며, 잔뜩 쭈글쭈글해져서 눈치를 살폈다.
키에른은 겁먹은 미야를 보며 웃었다.
수인이 아니면서 수인 흉내를 내는, 뒷세계의 정신 나간 의상실 주인.
“오랜만이지, 미야.”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니 미야는 무척 당황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연회의 인연이 이어져 미야는 여태 바실리안 백작가의 의복을 담당해 왔으나.
전부 이슈엘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 키에른과는 그때 이후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의상실 주인’으로서는 말이다.
키에른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핑거 스냅 소리가 들린 순간.
미야의 눈에서 초점이 흐릿해졌다.
미야가 방싯 웃으며 새로이 인사했다.
“오셨군요!”
그녀의 머리에서 진짜 고양이 귀가 솟아나고, 엉덩이에서도 긴 꼬리가 나타났다.
미야가 유리병이 담긴 가방을 카운터 위에 펼쳐 보였다.
“물약은 전부 만들어 두었습니다, 마스터.”
수인 물약이 담긴 가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