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6)
아기 요정은 악당-166화(166/200)
미야는 수인의 피를 이었으나, 자각하지 못할 만큼 옅게 물려받았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물약을 만들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도.
손재주 좋은 미야는 몰래 물약을 제조해 하나둘씩 내다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키에른에게 걸려든 것이다.
그 당시 키에른은 수인 물약에 관심을 가지던 차였다.
여러 수인들이 내놓는 물약을 지켜보다가, 그중에서 미야가 만든 물약이 가장 쓸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여 미야만 남겨 두기로 결정했다.
나머지는 전부 정리하고, 미야에게는 세뇌를 걸어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아예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물약을 만들도록 했다.
오직 마스터만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본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야는 종종 수인 흉내를 냈다.
하지만 뒷세계에는 그보다 더 미친놈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에, 미야는 여태껏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의상실을 운영하며 지낼 수 있었다.
미야를 인간으로 알고 있는 주변인들만 그녀의 행동에 질색할 뿐이었다.
워낙 피가 옅어 겉으로는 티가 나질 않는지라, 같은 수인인 요녀의 개조차도 미야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비밀이었다.
다만 미야가 바실리안가의 의상을 담당하게 될 줄은 그도 미처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미야가 만든 물약을 하나씩 확인하며, 키에른은 한가로이 질문했다.
“뒷세계에선 별일 없었나?”
자한을 비롯하여 삼 형제까지 뒷세계에 데려다 두고 일을 시켰다.
그러나 키에른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그들까지도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았다.
특히 삼 형제는 바실리안의 핏줄이었다.
수틀리면 얼마든지 키에른도 물어뜯을 아이들이기에, 방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여 키에른은 물약을 가지러 올 때마다 미야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넌지시 묻는 말에 미야가 발랄하게 답했다.
“얼마 전 비 오는 날 새벽에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자한 님께서 특정 구역의 사람들을 전부 내쫓으셨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죄다 내쫓아서, 구역 하나를 아예 텅 비웠다는 것이다.
난데없이 쫓겨났던 사람들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 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아.”
키에른은 보고받은 바 없는 사실이었다.
손안에 쥔 유리병을 어루만지며, 키에른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사랑스러운 아들들이 아빠 몰래 사고를 치는 모양이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모르는 척해 줄까.’
키에른 때문에 최근 삼 형제가 많이 고생하긴 했다.
체샤가 떠나고 나서 키에른이 제대로 돌아 버린 덕분이었다.
반역자 하일론을 남들 몰래 후원하고, 요정 왕국 쳐들어가서 요정들 죄다 인질 삼은 일만으로도 해야 할 뒷수습이 산더미건만.
그건 단순히 시작일 뿐이었다.
키에른은 온갖 사건을 일으켰다.
뒷세계 마스터라는 신분만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뿐, 마스터와 바실리안 백작가의 긴밀한 관계를 대놓고 흘려 대며 팔렌 대제국의 정계를 장악해 나갔다.
덕분에 바실리안 백작가는 불과 1년여 만에 제국을 손아귀에 쥐게 되었으나.
급격한 성장에는 그만한 부작용이 있는 법이었다.
키에른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질주만 하였으니, 그간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전부 삼 형제가 맡아서 처리했다.
그러다 가끔 광증이 도지면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럴 때마다 기억이 희미했다.
정신 차려 보면 검은 숲에 일주일 넘게 틀어박혀서 마물을 학살하고 있거나, 전혀 엉뚱한 곳에서 눈을 뜨곤 했다.
대개 로즈와 체샤의 추억이 남겨진 장소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귀환하곤 했다.
물론 키에른이 미쳐서 사라진 공백 또한 삼 형제가 감당했으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벨제온은 진작 키에른의 홍차에 독을 탔으리라.
키에른은 손에 쥔 물약 병을 불빛에 비춰 보았다.
영롱한 빛깔의 액체를 물끄러미 보며 웃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한 번 정도는 당해 줘야겠지.”
그래도 가족이니 말이다.
키에른의 혼잣말에 미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제가 할 일이 있나 싶어서 갸웃갸웃하는 미야에게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수고했어. 다음 물약은 한 달 뒤에 받으러 오도록 하지.”
“예! 마스터.”
방긋 웃는 미야에게 다시 세뇌를 걸려던 때였다.
“…….”
키에른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긴 눈매가 가느스름히 좁아졌다.
뱀과 같이 날카로운 시선이 의상실 안을 천천히 훑었다.
커다란 가구 뒤편, 구석진 귀퉁이, 마네킹에 걸린 화려한 의상 사이사이까지 하나씩 살피던 그는 으음, 하고 짧게 목을 울렸다.
그러고는 다시 미야에게 눈길을 돌렸다.
딱, 핑거 스냅 소리에 방금까지 생글생글 웃던 미야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카운터 뒤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고개를 아래로 푹 떨구었다.
가게를 보다가 잠깐 조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물약 가방을 챙긴 키에른이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키에른은 가게 문을 붙든 채로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얼마간 그렇게 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의상실 문이 느릿하게 닫혔다.
이윽고 완전히 문이 닫히고, 키에른도 떠났을 때.
“…흐아.”
숨을 참느라 얼굴이 잔뜩 새빨개진 체샤와 하타가 의상실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
하타와 함께 모습을 감추고 미야의 의상실을 찾아갔다.
저만치에 의상실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체샤는 흠칫 놀라며 제자리에 우뚝 멈춰 버렸다.
미야의 의상실 앞에 서 있는 키에른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이였다.
그는 변함없이 그대로인 듯하면서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새빨간 장미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가시 돋친 듯 위험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보는 이를 현혹하는 아찔한 미모는 여전했으나, 달라진 점도 두드러졌다.
‘눈빛이 더 이상해졌잖아.’
내일 아침, 아니,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웃으며 순응할 이처럼 보였다.
체샤랑 지낼 때도 많이 불안정했었는데, 이제는 이미 금이 간 유리 인형 같았다.
손대면 바로 조각조각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눈빛을 하고서 키에른은 웃고 있었다.
그의 입술 위로 비뚜름히 걸린 미소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망설이던 체샤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키에른을 따라서 가게 안에 들어왔고…….
모든 것을 봐 버렸다.
‘미야가 수인이었다고!?’
꿈에도 몰랐던 진실이었다.
체샤와 하타는 놀라서 말도 못 하고 서로만 쳐다보았다.
‘와…….’
진짜 거짓말 너무 잘한다.
체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미야가 옷 수선 때문에 바실리안 백작저를 찾아왔을 때, 키에른은 아주 완벽하게 모르는 체를 했었다.
심지어 삼 형제까지 감쪽같이 속였다.
‘역시 뒷세계 마스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으로 얼떨떨하게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야.”
체샤는 얼른 하타와 제 이마에 다시 꽃을 붙였다.
“쫓아가자!”
“네에?”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하타가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키에른이 뒷세계에서 뭘 하는지 알아봐야겠어.”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 걸까.
삼 형제의 뒤를 쫓아서 몇 가지 단서를 얻었으나, 결국 뒷세계의 주인은 키에른이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으니.
체샤가 가장 처음 바실리안 백작가에 입양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그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야말로 속 시원히 파헤쳐 보리라.
그리고, 어쩌면, 키에른을 몰래 뒤따라가면…….
‘백작 부인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알아낼지도 모르니까.’
그녀의 초상화라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