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8)
아기 요정은 악당-168화(168/200)
쿵, 쿵, 쿵.
귓가에서 무언가 세차게 울렸다.
체샤는 그것이 제 심장 뛰는 소리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왜?
어째서?
왜 엄마 그림이 여기에 걸려 있는 거지?
당황스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기만 했다.
체샤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 직전에 하타가 잡아 주었다.
“…….”
체샤를 단단히 붙잡은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체샤를 바라보았다.
하타도 체샤와 다를 바 없이 충격에 휩싸인 상태였다.
체샤는 얼마간 하타와 마주 보다가, 다시 초상화로 고개를 돌렸다.
달콤하게 인사하던 키에른의 목소리가 귓가에 떠돌았다.
“다녀왔어, 로즈.”
초상화 속 여인은 죽은 바실리안 백작 부인일 터였다.
세상에 이렇게 얼굴이 똑같은 사람, 아니, 요정이 둘 이상 존재할 리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딱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바실리안 백작 부인이 선대 요정 여왕이자, 내 엄마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엔 아무것도 들어맞는 게 없었다.
리체시아는 아기 때 보육원에 버려졌고, 요정으로 발현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보육원이 불타서 사라진 후로는 노예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 다녔고, 그러다가 성년이 되었다.
성인으로 자라날 때까지의 모든 기억이 선명했다.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리체시아의 성장을 지켜본 하일론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실리안가의 삼 형제보다 더 먼저 태어났어.’
그러나 바실리안 백작 부인은 죽기 직전에 막내를 임신하고 있었다.
체샤가 바실리안가의 막내여야 순서가 옳았다.
완전히 어긋난 시간대.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이 속에서 어지럽게 날뛰었다.
옅은 현기증과 더불어 구역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하타에게 나가자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기어코 따라왔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샤와 하타는 동시에 옆을 돌아보았다.
코트와 재킷을 벗고, 셔츠만 갖춰 입은 키에른이 계단 위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선 그는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푼 느슨한 차림새였다.
말끔하게 넘겼던 앞머리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피식,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가 질문했다.
“예쁘지?”
체샤와 하타는 여전히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키에른은 체샤와 하타의 위치를 가늠하여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 아내야.”
말 아래 은근히 깔린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대륙 전체에 자랑하고 싶다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그리 뿌듯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초상화 쪽으론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시야에 걸릴까 봐 무섭다는 듯, 고개조차 함부로 기울이지 않고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우아한 긴 손가락이 춤추듯 움직였다.
액자 밑에서 솟아난 그림자가 천을 덥석 물어서 아래로 내렸다.
바실리안 백작 부인의 초상화는 다시 하얀 천에 가려졌다.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곳이 없었거든. 최근엔 말이지…….”
나른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그제야 깨달았다.
키에른이 왜 뒤쫓는 이들을 내버려 뒀는지 말이다.
아내 자랑을 하고 싶어서였다.
고작 그것 때문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을 저택 안까지 들이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몹시 키에른답기도 했다.
무슨 짓을 하든 제압할 자신이 있으니 따라오도록 했으리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혹 감당하지 못할 존재여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겠지.’
항상 그런 눈빛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키에른을 향한 동정심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튼 슬슬 나타나 보실까.”
그가 천천히 체샤 쪽을 향해 다가왔다.
“어떻게 모습을 감췄는진 모르겠지만…….”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딱, 딱, 소리 내어 튕길 때마다 저택이 흔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물이 아니라, 저택을 뒤덮은 어둠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키에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죽으면 보이겠지?”
아까 골목길에서는 나름 봐줬던 거였다.
검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그림자에 체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물론 체샤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키에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림자를 싹 걷어 낼 것이다.
감격의 재회를 하며 기뻐하겠지만.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다른 어느 때여도 좋았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키에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엉망으로 뒤엉킨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해일처럼 어둠이 덮쳐 왔다.
째깍거리는 환청이 희미하게 귀를 스쳤다.
이 다급한 순간에, 환역에서 보았던 키에른의 회중시계가 생각났다.
회중시계 뚜껑에 새겨져 있던 글자.
‘엄마의 이름이 로즈였던 걸까?’
불쑥 솟아오른 궁금증을 억누르며,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 보려는 찰나.
하타가 갑자기 이마에 붙은 꽃을 떼어 냈다.
“자, 잘못했어요!”
모습을 드러낸 하타의 외침에 우뚝, 달려들던 그림자가 멈췄다.
키에른도, 체샤도 놀란 눈으로 하타를 바라보았다.
하타는 긴장과 공포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억지로 말을 이어 갔다.
“하타가, 수, 수인 물약, 궁금해서…. 그래서 따라왔어요.”
하타 또한 바실리안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보았다.
오랫동안 함께한 만큼, 하타는 누구보다 체샤의 기분을 민감하게 알아챘다.
체샤가 혼란스러운 상태이고, 지금은 키에른을 피하고 싶어 한단 사실을 눈치채고서 일부러 제가 나선 것이다.
화가 난 키에른에게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체샤의 강아지는 용맹했다.
제 목숨보다도 체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지켜 주고자 했다.
“…요녀의 개.”
짧게 중얼거린 키에른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네가 이 정도 실력이었나. 수인 물약은 어떻게 알았지?”
“미야의 의상실에서 우연히 물약 냄새를 맡았어요…….”
“아하. 같은 수인에다가 물약을 만드니 그럴 수도 있겠군.”
미야를 싫어하는 하타는 그녀의 의상실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지만, 몇 번 들른 적이 있기는 하니 그럴듯한 거짓말이었다.
“오늘 본 것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하타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키에른이 가만가만 손으로 제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죽이거나, 기억을 지우거나 해야 하는데…….”
중얼거리는 말이 한 마디씩 떨어질 때마다 하타의 어깨가 움찔, 움찔, 튀어 올랐다.
“내 딸의 친모에게 그래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니, 넘어가 주도록 하지.”
어차피 그녀도 내 정체를 알아야 하긴 하니까 말이야, 하며 키에른은 답지 않게 너그러운 면모를 보였다.
여차하면 키에른 앞에 나서려던 체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 조건이 있어.”
물론 공짜로 살려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딸을 잃어버렸거든. 혹시 요녀라면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으려나…….”
느릿느릿 말을 이으며, 키에른은 재단하듯 하타를 위아래로 천천히 살폈다.
“요녀를 만나고 싶으니, 팔렌 황제의 탄신연이 끝나고 그다음 주 첫째 날에 이곳으로 그녀를 데려와.”
체샤가 일 년간 사라졌으니, 당연히 그간 리체시아도 똑같이 행방불명이었다.
누구도 찾지 못한 요녀이나, 키에른은 몹시 당연하다는 듯 하타에게 만남을 요구했다.
그의 눈이 새빨갛게 번뜩였다.
못하겠다는 대답은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은 질문이 떨어졌다.
“그 정돈 할 수 있지, 멍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