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4)
아기 요정은 악당-174화(174/200)
그에게서 흘러나온 이름이 낯설었다.
하일론은 체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에는 ‘체샤 바실리안’이라고 성까지 붙여 부르곤 했다.
낯섦과 동시에, 조그만 심장이 두근두근 기분 좋게 박동했다.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시니, 코끝이 찡해졌다.
체샤는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 하일론이 보고 싶었구나.
요정 왕국까지 쫓아왔던 이였다.
시간을 넘어 과거를 헤매다 1년 뒤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하일론이 저를 찾아와 주길 기대했다.
스스로도 인지하질 못했지만, 내심 그런 바람을 가졌다.
왜냐하면… 항상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찾아와, 무심한 낯을 하고서 막막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신성 제국의 반역자가 된 하일론은 체샤를 찾아오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사실 그가 많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뒤늦게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작은 입술을 앙다문 채, 하일론에게 손을 뻗었다.
영혼이 빠진 듯 석상처럼 서 있던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완전히 무너진 표정을 하고서 서둘러 다가왔다.
어찌나 급한지,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이가 발을 헛디뎌 몸을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아, 하필이면.”
딱 걸려 버렸다며 대놓고 투덜거린 이슈엘이 불만스럽게 콧등을 찌푸렸다.
그래도 안고 있던 체샤를 순순히 내어 주긴 했다.
작은 몸뚱이가 넉넉한 품에 폭 안겼다.
“…….”
하일론은 아무 말 없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체샤의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꽃향기를 한참 동안 폐부에 쏟아 넣은 후에야, 그는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왜.”
체샤를 끌어안은 손이 짧게 경련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하일론이 재차 목소리를 내었으나, 또다시 완성된 문장이 되지 못하고 뚝 잘려 버렸다.
“어쩌다가…….”
체샤는 힘껏 그를 마주 안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자, 하일론은 다시금 침묵했다.
그러다 말없이 가만히 얼굴을 기대어 왔다.
낯선 검은색 머리카락이 사르륵 흘러내리며 체샤의 뺨을 간질였다.
어쩌다 사라졌는지, 왜 이제야 나타났는지.
담아 두었던 질문이 무수했으나, 전부 보고 싶었다는 한마디에 햇볕 아래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하일론은 그저 작게 답했다.
“…나도.”
***
살아가며 그 무엇도 열망한 적 없었다.
오직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던 하일론이 열렬한 감정을 품게 된 건 전부 그녀 때문이었다.
괴로워하는 하일론을 보며,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다렌은 회의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녀의 존재가 하일론 님에게 저주이지 않을지…….”
부관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던진 직언이자 충언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히 리체시아는 하일론의 인생에 있어서 축복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있기에 하일론도 존재했다.
그것은 어떤 말랑하고 연약한 감정 따위가 아닌, 하일론을 구성한 세상의 논리였다.
“…….”
뾰족하게 일어나는 두통에 하일론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이제는 피로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숙면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이 기꺼웠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더욱 견디기가 어려웠을 테니.
육체의 고통으로라도 정신의 괴로움을 잊고 싶었다.
체샤 바실리안이 사라졌다.
소성인 기도회에서 우승한 이가 아이에게 요정 여왕의 왕관을 넘기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하일론은 신성 제국 바깥으로 끌려간 상태였다.
원형 회의장에서 치러진 신성 재판에서 계율 위반과 더불어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었다.
“교황 시아노르 힐데르드는 영생을 얻기 위해 요정으로 잔혹한 실험을 저질러 왔습니다.”
“요정이 이단의 존재라고 하나, 그 또한 신께서 창조하신 생명이니.”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이단 심문관으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니, 저는 규율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하일론의 주장은 어디에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단 심문관의 수장을 축출할 기회였다.
신성 사제들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고, 교황을 고발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낀 일부 신성 기사들도 하일론을 외면했다.
결국 다수결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었고, 하일론은 형벌의 집행을 위해 신성 제국 밖으로 끌려 나갔다.
교황은 소성인 기도회의 우승자를 치하하는 일도 내던지고 직접 따라나섰다.
명목상으로는 하일론이 지닌 성유물을 회수하기 위함이라는 구실이었으나.
사실 교황은 자신의 신성력을 전부 흡수한 하일론을 이대로 죽이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한다면, 최소한 하일론에게 깃든 신성력을 추출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하일론은 신성력을 제어하는 철창에 갇혀, 구속구로 사지가 결박되고 눈까지 가려진 상태로 힐데르드 밖으로 호송되었다.
형 집행을 위해 도착한 곳은 북부의 어느 설원이었다.
이름 모를 그곳은 눈과 얼음으로 가득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교황은 오만한 얼굴로 하일론을 내려다보았다.
하일론은 눈밭에 무릎 꿇려진 채로 묵묵하게 그를 마주 보았다.
“하일론.”
교황이 짐짓 다정한 음성으로 하일론을 꾀려 들었다.
“나는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구나.”
“분명 누구보다 신실했던 아이였건만, 어찌하여 이리된 것인지…….”
그가 안타까워하며 의수로 하일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북부의 한기에 싸늘히 식은 금속의 감촉이 섬뜩했다.
저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교황에게 하일론은 조용히 답했다.
“저 또한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요정들, 어디에 숨겼습니까?”
교황의 뺨이 경련했다.
인자함을 흉내 내던 그가 결국 본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이단의 사상에 깊이 물들었구나. 회개할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교황이 손을 내뻗어 명령했다.
“형을 집행하라!”
교황의 명령에 따라 신성 기사들이 다가왔다.
보통 고위급 인물의 형벌은 이단 심문관이 집행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례적으로 기사 단장들이 형 집행에 나섰다.
이단 심문관은 전부 하일론의 사람들이니, 교황이 일부러 그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믿을 만한 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거기에 교황청의 보고를 전부 털어, 가장 강력한 구속구까지 가져왔다.
성유물급으로 강한 구속구이니 제아무리 하일론이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교황의 오판이었다.
다가오는 신성 기사들을 응시하던 하일론은 다시금 교황을 바라보았다.
“제가 육신과 영혼을 바친 이는 당신이 아닙니다, 시아노르.”
눈바람을 따라 은색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교황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으니 모든 이들이 일순 당황했다.
일순간 찾아든 정적은 뒤이은 말에 부서졌다.
“또한 제 모든 행동은 신께서 내려주신 규율에서 어긋나지 않으니.”
“저는 모든 부정한 것을 단죄할 뿐입니다.”
쨍!
섬뜩한 파열음이 설원 위로 퍼졌다.
날카로운 소리가 연이었다.
하일론을 구속한 사슬이, 족쇄가, 수갑이, 그리고 모든 것이 깨어지는 소리였다.
눈처럼 새하얀 신성 사슬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온통 순백으로 뒤덮인 눈의 세상에서, 오직 시리도록 선명한 푸른 눈만이 사납게 번뜩였다.
“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단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