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3)
아기 요정은 악당-183화(183/200)
바실리안 백작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이브로이엘 공작 아래에서 오랫동안 수학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키에른은 마법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동부 검은 숲 바깥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 이였다.
하여 여태껏 누구도 가지지 않았던 의문을 시아노르가 꺼낸 것이다.
시아노르의 의도를 눈치챈 체샤와 세레아는 얼굴이 굳어졌다.
흑마법사가 된 이후, 키에른은 공개적으로 마법을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사실을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집어낸 이유는 하나뿐일 터였다.
성왕 또한 키에른의 비밀을 알아낸 것이리라.
하지만 긴장감에 굳어지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키에른은 눈을 살짝 치뜨기만 했다.
“아니, 그런 걸 왜 궁금해하시는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라는 듯, 놀란 기색을 내보이며 되물었다.
“저한테 관심 있으십니까?”
“…….”
시아노르가 황당한 눈으로 키에른을 쳐다보았다.
세레아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제자 같으니라고…….”
낮게 중얼거리는 세레아의 말에 체샤 또한 깊이 공감했다.
“묻는 말에 답하도록 하게.”
시아노르가 재차 추궁하니, 키에른은 대놓고 눈매를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여기서 마법 놀음이라도 보여 드려야 하는 겁니까. 제가 광대도 아니고.”
성왕을 향한 한 톨의 존경도 담겨 있지 않은 무례한 대꾸였다.
그러나 시아노르는 분노하지 않았다.
“바실리안 백작은 흑마법사이지 않은가.”
성왕의 입으로 직접 공표된 이단 선언에 사방이 얼어붙었다.
숨도 크게 쉬질 못하는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키에른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맞받아치기만 했다.
“그러는 성왕께서는 요정으로 실험을 하셨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성왕이 신의 이름으로 끔찍한 행위를 저질러, 이단 심문관의 수장이 반역을 일으켰다고 하던데…….”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걷어 낸 키에른이 차갑게 되물었다.
“이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시아노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길게 탄식한 끝에 애석한 눈으로 키에른을 바라보았다.
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를 구제하려는 성왕의 눈빛이었다.
“나는 검은 숲의 마물을 퇴치할 방법을 찾고 있었네.”
신성 제국에 마물이 나타난 사건 이후, 대륙 전체에 검은 숲과 마물의 비밀이 알려졌다.
당시 체샤가 마물을 요정의 힘으로 정화하여서, 바실리안 가문이 단박에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붙잡은 마물을 이용해 퇴치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으니. 바실리안가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워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본디 신성 제국의 책무이기도 하고. 요정을 실험했다고 착각하다니 어처구니없군.”
시아노르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짧은 정적은 사람들을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조사하다 보니 내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네. 여태까지는 바실리안가의 충정을 의심하는 일이 될까 봐 함구했네만.”
그는 진중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질문했다.
“신성 제국의 성왕, 시아노르 힐데르드로서 묻겠네. 바실리안 백작가가 마물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키에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시아노르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힐데르드에서 갑작스럽게 마물이 나타난 이유. 그 또한 바실리안가가 마물을 소환한 것이라 하면 전부 맞아떨어지지.”
“…….”
“오직 바실리안만이 마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가…. 애초에 말도 안 되지 않나.”
시아노르가 지그시 키에른을 응시했다.
“나는 반역자 하일론을 징벌하고, 끔찍한 이단 행각을 벌인 바실리안 백작으로부터 어린 요정을 구하고자 하네.”
그의 시선이 체샤를 향했다.
체샤는 저를 향해 내미는 손을 보았다.
시아노르가 다정한 목소리로 체샤를 불렀다.
“이리 오거라. 늦어서 미안하구나. 지금이라도 구해 주도록 하마.”
체샤는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미친 소리야?’
마음 같아서는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참았다.
지금은 멋대로 행동할 때가 아니었다.
체샤는 키에른의 답을 기다렸다.
키에른도 이번에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얼마간 시아노르를 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하하…….”
이번에야말로 정말 미쳐 버렸다는 듯, 신나게 광소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누구도 함부로 그의 웃음을 끊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기세에 압도되어 짓눌리듯 침묵할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의도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정신없이 웃던 키에른이 눈물마저 맺힌 눈가를 훔쳐 냈다.
그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일말의 섬뜩함과 함께 체샤는 문득 깨달았다.
하일론이 불빛을 죄다 날려 버린 탓에, 연회장은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있음을.
사방에 깔린 어둠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처음 접한 기묘한 광경에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그토록 원하시니 응당 보여 드려야지요.”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제가 마법 쓰는 모습을.”
그림자가 치솟았다.
뻗어 나가는 어둠에 뒤이어 하일론이 단죄의 사슬을 휘둘렀다.
사방을 뒤덮는 사슬과 그림자에 시아노르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단을 징벌하라! 반드시 이자들을 죽여야 한다!”
“성왕 전하를 보필하라!”
황제도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외쳤다.
연회장을 지키던 황실 기사들이 전부 검을 뽑았다.
기사 몇몇이 바깥에도 지원 요청을 넣으려 했지만, 연회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도망치려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종전까지 잘만 여닫히던 연회장 문이 꿈쩍하질 않았다.
창문 또한 마치 투명한 무언가로 가로막힌 것처럼 통과할 수가 없었다.
“벨제온과 쌍둥이가 일을 잘하고 있나 보군.”
세레아가 한 손으로는 마법진을, 다른 손으로는 체샤를 잡아끌며 한탄했다.
“꼭 이렇게 반역자를 하셔야 직성이 풀리는지…….”
짐짓 장난스러운 어투였으나, 복잡한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체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되면 바실리안과 하일론은 낙인이 찍혀 버리잖아.’
이곳에서 성왕을 죽이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였다.
전 대륙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게 될 터였다.
기사들의 검을 막아 내는 세레아 뒤편에서 체샤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나?’
체샤가 고민하는 사이, 전투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키에른과 하일론 둘뿐이지만, 역시나 수십 명에 달하는 사제와 기사들이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이것도 이상해.’
무력으로는 절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 텐데도 성왕이 본격적인 전면전을 벌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뭔가가 더 있을 텐데.’
승패가 뻔한 싸움에 시아노르가 달려들진 않았을 터였다.
자신의 죽음으로 키에른과 하일론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다고 하여도 말이다.
그의 목적은 영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어떤 직감이 체샤를 스쳤다.
“…!”
그와 동시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체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음산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건드리는 두려운 소리였다.
천둥처럼 우르릉 울리는 굉음과 함께 하늘이 갈라졌다.
쩍 벌어진 검은 틈새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우글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