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6)
아기 요정은 악당-186화(186/200)
이슈엘은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몇몇 부분이 비슷하다고 해서 체샤를 요녀로 착각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논리를 넘어선 직감이었다.
온몸의 감각이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눈앞의 요녀는 체샤 바실리안이라고.
넋이 나가서 그저 바라만 보는 동안, 체샤는 날렵하게 움직이며 도끼를 휘둘렀다.
허공에 피어난 꽃을 디디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자, 드레스 자락이 휘날리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진 토끼 인형의 귀도 같이 팔락였다.
분명 도끼날에 마물이 쪼개지는 섬뜩한 장면이건만, 징그럽거나 끔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끼질을 당하는 마물들이 괴로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물들은 기꺼이 도끼 아래에서 꽃잎으로 화하여 사라졌다.
되레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흘리기도 했다.
도끼가 닿을 때마다 팡, 팡, 경쾌한 소리가 터지며 꽃잎과 반짝이가 휘날리니, 마치 즐거운 축제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마물의 죽음이 축제처럼 느껴지다니.
참으로 기괴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누구든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렇게밖에 묘사하지 못했으리라.
풍선처럼 터지는 마물의 죽음, 성스러우면서도 흥겨운 정화.
유쾌한 장례식이 벌어지는 와중에 슬퍼하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체샤!”
이슈엘은 마물들을 향해 마법을 퍼부었다.
체샤 혼자서 저 모든 짐을 감당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정리하고 밝히는 건, 우선 체샤를 도운 후에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슈엘의 마법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냥 환상처럼 마물을 스르륵 통과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는 수밖엔 없었다.
분기에 차 주먹으로 바로 옆에 있는 체스 말을 내려쳤다.
그러자 체스 말은 솜처럼 말랑해지며 이슈엘의 주먹을 감쌌다.
소중한 이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슈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속삭였다.
“울지 마, 체샤…….”
눈물 한 방울 내비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을 동생에게.
***
환역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겠노라고 결심했을 뿐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굳은 의지가 타오른 순간, 몸속에서 무언가 쑥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탈력감과 함께 펼쳐지는 환역을 보며 깨달았다.
‘이거 내 생명력이구나.’
요정의 힘이 다 떨어졌으니, 이제 남은 힘이라곤 생명력뿐이었다.
왕관이 왜 자신에게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경고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왕관은 다른 무엇보다 체샤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을 테니까.
체샤도 조금, 아주 조금 무섭긴 했다.
이만큼 대규모의 환역을 펼치면서, 마물을 정화하기까지.
요정의 힘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을 때도 마물을 정화하다가 기절했었다.
그렇다면 힘이 없다시피 한 지금은 얼마나 생명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재수 없으면 여기서 죽는 건가.’
그러나 후회스럽진 않았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하여도 똑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환역에 들어온 체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생명력을 펑펑 끌어다 만든 환역은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망가지고 부서졌던 것들은 모두 온전해졌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지평선 너머에서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뱀의 성을 바라보는 체샤에게 왕관이 중얼거렸다.
“정말 똑같구나.”
다시 토끼 인형으로 돌아간 왕관은 체샤의 팔뚝을 타고 올라갔다.
머리 위에 제멋대로 찰파닥 엎어진 토끼 인형이 체샤에게 연신 잔소리했다.
“그녀도 모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도다.”
“그러나 여왕은 남겨질 자들을 잊어선 아니 된다.”
“희생은 행복을 가져오지 않으니.”
선대 여왕인 엄마도 체샤와 비슷한 선택을 했던 모양이었다.
토끼 인형은 체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말했다.
“환역을 오래 유지할수록 너는 불행해지도다.”
생명력 닳으니까 빨리빨리 해치우라는 뜻이었다.
확실히 기존 환역이랑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환역 범위를 황궁 전체로 설정했는데, 같이 끌려왔어야 할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물들만 잔뜩 들끓는 중이었다.
체샤는 도끼를 휘둘렀다.
하늘이 녹아내리며 드러난 마물을 식인 꽃으로 속박하고, 도끼로 정화했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여기서 생명력 다 쓰고 죽을 것 같아서 식인 꽃과 도끼를 이용했다.
도끼질에 정화되어 사라지는 마물을 볼 때마다, 심장에 바늘이 하나씩 박히는 것 같았다.
체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래도 마물까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실험실에 갇혀 지내더라도 최소한 요정으로서 죽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쓸모없는 폐기물처럼 처리되진 않았을 터였다.
‘미안해.’
전할 수 없는 사과를 삼키며 모든 마물을 정화했다.
마지막 마물까지 정화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도끼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지만, 되레 꽉 힘을 주어 붙잡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체샤는 마지막으로 도끼를 휘둘러 허공에 내리쳤다.
환역이 부서졌다.
깨어지는 환역 조각을 응시하던 체샤는 눈을 크게 떴다.
“…!”
홀로 들어온 줄 알았건만, 환역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제야 보였다.
그들 모두 체샤를, 리체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편 사이로 날아드는 시선을 맞으며, 체샤는 현실로 돌아갔다.
***
현실로 돌아오자 토끼 인형은 다시 왕관으로 변하였다.
도끼를 움켜쥔 채, 체샤는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
연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나, 모두가 입술이 달라붙은 듯 침묵했다.
다들 체샤의 환역에 갇혀 정화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체샤는 티 나지 않게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환역을 펼칠 때부터 숨겨 놨던 비밀이 드러나리라는 점은 각오한 바였다.
그러나 하일론과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이 어떤 눈으로 저를 보고 있을지, 당당히 확인할 자신까진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움직여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연회장 바닥에 도끼를 끌며 다가간 곳은 성왕의 앞이었다.
아직도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듯, 멍청한 얼굴을 한 시아노르가 떨리는 눈으로 체샤를 바라보았다.
“성왕 시아노르 힐데르드.”
체샤는 그를 향해 곧게 도끼를 뻗었다.
성왕을 호위해야 할 신성 기사들은 차마 체샤를 제지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체샤 바실리안이 이곳의 모든 이를 구해 냈으니까.
“요정 여왕으로서 신성 제국에 묻겠다.”
비릿하게 차오르는 피 섞인 침을 삼키고서,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지난 수백 년간 요정을 비롯한 환상종들로 실험하고, 그 실패작으로 탄생한 마물을 동부 검은 숲에 내버리는 짓거리를 거듭해 온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는가?”
멍한 눈을 하고 있던 시아노르가 뒤늦게 흠칫 몸을 떨었다.
“요, 요정 여왕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황급히 내뱉는 말에 체샤는 피식 웃었다.
키에른과 똑 닮은 모양새로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리며 비웃었다.
“내가 여왕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어떻게 증명해야 하지?”
“그건!”
“네놈의 신성 제국이 처치하지 못한 마물을 정화하고, 요정 여왕의 왕관을 쓰고 있는데.”
“…….”
시아노르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대답하지 못할 거면 그냥.”
체샤는 도끼를 까닥이며 화사하게 웃었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