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1)
아기 요정은 악당-191화(191/200)
하늘은 이제 원래의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질 듯 가라앉은 모습은 기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하늘에선 이따금 알 수 없는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괴음이 멸망을 예고했다.
요정인 체샤는 곧장 눈치챌 수 있었다.
‘오늘이구나.’
로즈가 죽은 날이자, 요정 여왕이 시간을 다시 넘어간 날.
오늘 떠나지 않는다면, 로즈는 동부를 생명이 싹트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로즈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몸을 일으킬 힘도 없어서,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을 걷은 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날씨 좋지? 하늘도 맑고.”
과거의 키에른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키에른이 말하는 맑은 하늘을, 로즈는 볼 수 없었다.
로즈의 눈에는 오직 멸망의 징조만이 보일 뿐이었으니.
그렇지만 로즈는 키에른을 따라 웃으며 답했다.
“응. 날씨 좋다.”
과거의 키에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그는 천천히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맞닿는 시선에는 애틋한 사랑이 가득했다.
차오르는 감정을 버티지 못하고, 과거의 키에른은 쏟아 내듯 고백했다.
“사랑해, 로즈.”
“나도 사랑해.”
“…그럼 떠나지 마.”
그가 로즈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고서, 충혈된 눈으로 로즈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제발…. 내 옆에서 죽어 줘, 응?”
“…….”
“나는, 로즈… 네 시체라도 좋으니까 함께 있고 싶어…….”
그가 로즈의 손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양손으로 붙잡고서 신에게 기도하듯 그리 간청했다.
“나한테 뭐라도 남겨 줘야지. 이렇게 그냥 떠나 버리면, 난…….”
듣는 이의 심장이 아릿할 만큼 애처로운 애원이었다.
하지만 로즈는 끝끝내 아무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침실에는 이내 정적이 내려앉았다.
체샤는 불안한 눈으로 키에른을 살폈다.
제정신으로 버티는 쪽이 더 이상할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키에른은 침착했다.
더없이 차분하고 고요한 눈으로 과거의 자신을, 그리고 로즈를 지켜볼 뿐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니, 옆에서 하일론이 손으로 꾹 눌러 왔다.
기다란 손가락이 누르는 힘에 자연스럽게 체샤는 입술을 다시 벌리게 되었다.
하일론은 말없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체샤도 조용히 입술을 괴롭히길 멈추고 다시금 로즈와 키에른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로즈가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 키에른.”
“…이유라도 말해.”
키에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목소리에 희미한 분노가 어렸다.
“내가 받아들일 만한 이유라도 주면 되잖아.”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냥 내가, 정말 나쁜 거니까…….”
로즈는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못했다.
체샤는 그녀가 모든 걸 감추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로즈가 미친 요정이 되어 떠도는 모습을 보았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아마 다른 걱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가까이서 지낸 만큼, 로즈는 키에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를 찾아올까 봐 걱정했겠지.’
시간을 거슬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텐데, 혹여나 키에른이 그곳까지 쫓아온다면.
키에른은 맞지 않는 시간대에서 고통받다가, 로즈와 다를 바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키에른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이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힘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로즈가 죽은 후, 그녀를 되살리겠다고 키에른이 벌인 짓들을 생각하면 로즈의 걱정은 전혀 기우가 아니었다.
“미안해. 나 많이 밉지?”
“…….”
“원망하고 미워해 줘.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물론 어렵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그는 로즈의 손을 꽉 움켜쥔 채로 소리 질렀다.
“벨제온도, 쌍둥이도 너 없인 못 사는 거 알잖아. 배 속에 있는 아기도 생각해야지. 왜 이렇게 쉽게 포기하려고 해? 어떻게든 같이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로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욕심 부리는 순간, 사랑하는 모든 것이 망가질 테니까.
지키고 싶다면 떠나야 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키에른을 바라보기만 하던 때였다.
우우웅.
거대한 괴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도.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기어이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붕괴하는 하늘과 함께, 로즈의 정신도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신의 붕괴에 그녀의 몸이 잘게 떨렸다.
이변을 직감한 과거의 키에른이 차갑게 말했다.
“가지 마. 아니, 못 가.”
그에게서 새빨간 마력이 피어올랐다.
붉은 마력은 사슬 모양으로 변해 로즈를 구속했다.
키에른이 타오르는 눈으로 로즈를 노려보았다.
“네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로즈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키에른, 미안해. 할 수 있는 말이 이거뿐이라서, 미안해…….”
힘없이 말을 잇다 말고, 로즈가 짧은 신음을 내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의 몸에 불길한 검은빛이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사방이 물감처럼 흘러내리며, 요정의 환역으로 바뀌었다.
키에른은 눈을 크게 떴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환역은 비정상적이었다.
키에른이 난생처음 겪는 환역에 당황하는 사이, 로즈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키에른!”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폭주하려는 자신의 힘을 억지로 눌렀다.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마지막 발악을 하듯 힘을 내리누른 덕분에, 잠시 환역이 걷혔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로즈는 빠르게 키에른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미안해, 사랑해, 키에른.”
“로즈!”
과거의 키에른이 그녀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품에 안지 못했다.
로즈는 꽃으로 화하여 부스러졌다.
방금까지 그녀가 누워 있던 자리에는 말라비틀어진 꽃잎만이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로즈.”
허망한 얼굴의 키에른 뒤로, 하늘이 다시금 본모습을 되찾아 갔다.
키에른이 말한 대로 정말이지 맑고 깨끗한, 푸르디푸른 하늘이었다.
넋이 나간 채 굳어 있는 과거의 자신을, 키에른은 어떠한 감흥도 없이 지켜보았다.
냉랭한 눈으로 그저 새로운 과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또다시 세계가 무너지고 이번에는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오자, 길게 돋은 풀잎과 꽃들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한 들판에 로즈가 추락했다.
“아윽……!”
그녀가 나뒹구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나고, 다시 말라비틀어지기를 반복했다.
로즈는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레 비명 질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다시금 로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
그녀의 눈에서는 완전히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로즈가 느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웃음을 흘리며 그녀는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로즈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시들어 갔다.
모든 것을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광경을 지켜보던 키에른이 처음으로 미소했다.
그가 더없이 기쁘게 속삭였다.
“여기로 갔구나, 로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