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9)
아기 요정은 악당-199화(199/200)
시아노르의 처형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는 성왕이 아니게 된, 힐데르드라는 성을 박탈당한 시아노르는 신성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미 신성 제국 내부는 하일론의 사람들로 전부 교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정해진 재판인 것이다.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시아노르의 처형은 공개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
성왕이었던 자이니, 예우를 갖추어 소수 인원이 집회한 가운데 처형되었다.
하지만 시아노르가 진실로 처형당했으리라 믿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의 형을 주도한 이가 ‘하일론’이기 때문이었다.
이단 심문관으로서 악명 높은 하일론이었다.
어떤 극악무도한 죄인도 하일론의 손에 들어가면 순한 양처럼 얌전해져서, 모든 기밀을 털어놓았다.
그런 하일론이 아는 것 많은 시아노르를 곱게 죽였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속사정이 어찌 되었건, 대외적으로 시아노르는 조용히 처형되었다.
힐데르드는 새로운 성왕을 선출하기 위해 제국의 문을 걸어 잠갔다.
성왕 선출이 끝나기 전까지, 힐데르드가 외부에 개방되는 일은 없으리라.
신성 제국의 정세가 가쁘게 돌아가는 동안, 팔렌 대제국 또한 평화롭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팔렌의 정계를 틀어쥐었던 바실리안 백작이 실종된 상태였다.
그간 백작이 두려워 숨죽이고 살았던 팔렌의 태양 황제는 은근히 바실리안 가문을 건드리려고 들었다.
물론 바실리안가의 삼 형제가 버티고 있는지라, 황제는 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뒷세계가 바실리안가의 소유임을 알게 된 귀족들은 결코 바실리안의 심기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 세상이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동안.
체샤는 요정 왕국을 찾아갔다.
환역을 통해 찾아간 요정 왕국은 예전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돌아왔다.
요정수에 가득 피어난 꽃,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요정들을 확인한 체샤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요정들은 커다란 기대를 품은 눈을 하고서 체샤를 바라보았다.
몰라보게 자라난 체샤의 모습에 그녀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체샤는 그녀들의 바람을 이뤄 줄 순 없었다.
“나는 요정 왕국에 머무르진 않을 거야.”
체샤의 말에 요정들은 얼굴이 흐려졌다.
“결국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택하신 겁니까.”
조심스러운 질문에 체샤는 싱긋 웃었다.
“아니. 여왕으로서 책임을 포기하겠단 건 아냐.”
저를 바라보는 요정들에게 자신의 포부를 알렸다.
“요정이자 인간으로서, 인간계와 요정 왕국을 오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해.”
체샤의 몸에는 인간의 피도 흐르고 있었다.
바실리안가를, 하일론을, 그리고 다른 인간들을 만나면서 꼭 나쁜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 체샤는 인간과 요정이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저와 바실리안가 또한 기적 같은 운명으로 만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도 이곳에만 갇혀 있을 순 없잖아.”
요정 왕국은 아름답지만, 결국 현실이 아닌 환역이었다.
왕국의 초목은 전부 환상일 뿐이니.
“왕국 밖으로 나가자.”
환상으로 빚어진 자연이 아닌, 진짜 초목이 있는 현실로 요정들을 데려가고 싶었다.
체샤의 말에 요정들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기뻐했다.
그녀들의 감정에 반응한 요정수가 반짝이는 빛을 흩뿌렸다.
체샤는 잠시 허전한 머리를 손으로 살짝 매만졌다.
새로운 여왕은 새로운 왕관을 만들어야 한다.
토끼 인형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가르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눈을 뜨고 세상을 받아들이듯, 여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정수의 도움을 받아 왕관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체샤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요정수로 다가가 가만히 손을 얹었다.
요정들이 체샤와 요정수를 둥글게 둘러싸고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찬가를 들으며, 체샤는 천천히 요정수에 힘을 불어넣었다.
단단한 나무껍질 아래, 심장이 뛰는 듯한 맥동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요정수의 꽃들이 갑자기 후드득 낙화했다.
떨어진 꽃송이들은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 소용돌이치듯 체샤의 주위를 크게 휘돌았다.
갖가지 꽃에 둘러싸인 체샤는 잠시 그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손을 위로 뻗었다.
휘몰아치던 꽃들이 일제히 체샤를 향해 쏟아졌다.
별똥별처럼 떨어진 꽃들은 전부 체샤에게 흡수되었다.
꽃송이가 하나하나 닿을 때마다, 체샤는 제 몸 안이 가득 채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모든 꽃송이가 체샤의 안에 빨려 들어갔을 때.
체샤의 머리 위에 눈부신 빛을 흩뿌리는 화관이 생겨났다.
새로운 요정 여왕의 왕관이었다.
진정한 여왕으로서 자리매김한 체샤를 요정들이 축복해 주었다.
체샤는 새 왕관을 쓴 채 잠시 요정수를 올려다보았다.
“…….”
토끼 인형이 제 모습을 보았다면 칭찬해 주었을 텐데.
그러나 과거의 존재는 과거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체샤는 단추 눈을 떠올리며 새 왕관을 어루만졌다.
***
뒷세계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있던 가게가 새로운 품목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타의 모자 물약 가게>
모자 그림 옆에 물약 그림이 추가된 입간판을 내어놓은 가게는 뒷세계에 어울리지 않게 깔끔했다.
쇠창살이나 가시철망 따위 없이, 훤한 통유리창과 부드러운 색감의 나무 문을 달았다.
강도당하기 딱 좋은 모습이지만 누구도 가게를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이 요녀 리체시아의 수하인 하타의 가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자 진열장 옆에 물약 진열장도 만든 하타는 콧노래를 부르며 물약 병을 뽀득뽀득 닦았다.
“하타는 모자도 잘 만들고, 물약도 잘 만들지요!”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하타는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울리자 황급히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하다 말고 하타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다란 가방을 든 미야는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나 왔다냥!”
본인보다 더 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미야가 휴우, 하며 땀을 닦았다.
“체샤 님, 아니, 리체시아 님이 입을 드레스다냥! 아주아주 엄청난 드레스들이다냥!”
회심의 역작이라며 후냥냥 웃음을 터뜨리는 미야를 모른 체하며, 하타는 마저 물약 병을 닦았다.
미야는 하타의 주변에서 성가시게 기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리체시아 님은 언제 오시냥?”
“나도 잘 몰라.”
하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요새 리체시아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바실리안 백작이 돌아올 기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하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물약 병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시간의 틈새에 만들어진 요정의 환역이었다.
바실리안 백작은 그곳에 스스로 갇혔다.
하일론이 단죄의 사슬을 남겨 두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원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만일 달콤한 환상에 취해 현실을 잊었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바실리안 백작이 죽든 말든 하나도 관심 없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아서 리체시아가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타는 진열장에 늘어놓은 물약 병을 살피다가, 가장 구석에 놓아둔 물약에 물끄러미 시선을 두었다.
[아기가 되는 물약]“…이건 치워야겠다.”
물약 병을 꺼낸 하타는 뒤편의 실험실로 향하며 미야에게 말했다.
“리체시아 님이랑 어울리는 머리 장식 만들었으니까, 옷하고 같이 확인해.”
“알았다냥!”
하타는 물약 병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곳에 감춰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