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0)
아기 요정은 악당-200화 (완결)(200/200)
200화 (완결)
요녀 리체시아가 체샤 바실리안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뒷세계 사람들은 또다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쩐지 그간 조용했다느니, 이번에도 요녀가 엄청난 사고를 쳤다느니 하며 즐거워했다.
대륙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요녀가 바실리안가를 한바탕 골탕 먹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리체시아와 바실리안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으며, 진정한 가족이 되었음을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리체시아가 바실리안의 핏줄임을 밝힐 수도 없었다.
요정 여왕이 시간을 넘나들어 꼬여 버린 가족이 탄생했다는 걸 대체 누가 믿어 주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우스갯거리로나 소비될 터였다.
설혹 요정과 마법에 관해 잘 아는 이가 진상을 파악한다고 해도, 실험하고 싶다는 흥미나 가질 게 뻔하니.
체샤는 공식적으론 계속 바실리안가의 입양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체샤도, 바실리안도 딱히 남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앞으로 함께하리라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흠.”
체샤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새로운 왕관을 만든 이후부터, 요정 여왕에게 대대로 이어지던 지식이 체샤에게도 조금씩 전달되기 시작했다.
체샤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요정과 여왕에 관한 비밀을 많이 습득하게 되었다.
요정은 정신체이기 때문에 육체의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마음대로 겉모습을 변형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다만 모든 요정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특별히 강한 힘을 지닌 요정이나 여왕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체샤가 그간 아기 모습에서 성장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쑥 자라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니 요정 여왕으로서 완전히 자각한 지금이라면 마음대로 겉모습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되네.’
리체시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는 아직 무리였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모양이었다.
거울 속의 분홍색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체샤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 놓인 서신을 집어 들었다.
뒷세계에서 가져다준 정보였다.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이단 심문관 하일론이 새로운 성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푸른 연기가 뻗어 나갔으니, 곧 대륙 곳곳에 이 사실이 전해질 겁니다.
또한 봉쇄되었던 신성 제국도 근시일 내로 개방되리라 예상합니다.]
신성 제국 힐데르드는 한 달이 넘도록 문을 닫아걸고 국경을 폐쇄했다.
그러다 드디어 성왕이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체샤는 서신에 적힌 하일론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매만졌다.
‘이제는 하일론 힐데르드가 되었구나.’
신성 제국의 문이 열렸으니, 곧 저에게도 연락이 올 터였다.
하일론을 생각하며 혼자 미소하던 체샤는 삼 형제를 떠올렸다.
셋 다 체샤가 리체시아임을 알게 된 후로, 하일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체샤 앞에서 신성 제국을 언급하는 일조차 없었다.
그 행동만 봐도 삼 형제가 하일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 만했다.
‘하일론에게 청혼받았다는 얘기를 아직 못했는데.’
말하는 순간 난리 나겠구나 싶었다.
겁나서 입을 다문 건 아니고, 키에른한테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옳을 듯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키에른을 떠올리자마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묵직한 돌로 누르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에 체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걱정되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만일 그렇다면 키에른에게 단죄의 사슬을 준 하일론이 곧장 상황을 파악했을 터였다.
성왕을 선출하는 중이라고 해도 말이다.
“체샤.”
저를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다 사라졌다.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체샤는 힘을 사용했다.
사방에 반짝이가 뿌려지며 꽃이 피어났다.
화려한 꽃을 통해 도착한 곳은 검은 숲이었다.
이제는 검은 숲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파릇한 생명으로 가득 찬 숲.
과거와 완전히 달라져 버렸지만, 지명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신성 제국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마물이 사라져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된 검은 숲에는 유일한 출입 금지 구역이 있었다.
체샤와 하일론, 키에른이 소생 마법을 펼쳤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아직도 로즈의 텅 빈 관이 놓여 있었다.
검은 숲을 전면 개방했지만, 이곳만큼은 이슈엘이 마법을 이용하여 감춰 버렸다.
체샤는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관 옆으로 다가갔다.
꽃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관에다 등을 기댔다.
체샤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가만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폐부에 들어차는 꽃향기를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하늘에 석양이 드리웠다.
사방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불꽃에 타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바실리안 백작과 체샤로 처음 만났던 날.
석양을 등지고 보육원에 찾아온 키에른을 보고 엄청난 미남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과거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서, 체샤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웃던 체샤는 점차 시무룩해졌다.
웃음소리는 힘없이 줄어들다가, 이내 뚝 끊어졌다.
무릎에 얼굴을 묻으니 눈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한 달이 훨씬 지났어요.”
체샤는 어둠 속에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제 올 때도 됐잖아요.”
치미는 감정을 누르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나랑 약속했으면서…….”
결국 영원히 환상 속에서 살아가길 택하는 건 아닐까.
체샤는 마음 한구석에 들러붙은 일말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물기 어린 숨을 삼켰다.
얼마나 혼자 그러고 있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던 해가 완전히 산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붉은빛을 가장 강하게 드리우던 때.
“…!”
체샤는 바람을 느꼈다.
강한 바람이 관을 중심으로 둥글게 휘몰아쳤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체샤는 강풍에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버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 위에 갑자기 꽃이 피어났다.
무수히 피었던 꽃이 사라지더니, 그 뒤로 문이 나타났다.
커다란 문에 적힌 이름을 본 체샤는 눈을 크게 떴다.
얼어붙어 호흡마저 멈춘 채 문을 바라보았다.
억겁 같은 찰나 끝에, 문고리에서 찰칵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뱀의 비늘처럼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과 불꽃처럼 새빨간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맵시 좋은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는 느릿하게 숨을 뱉었다.
그가 문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문은 스르륵, 빛의 파편으로 부스러졌다.
빛이 반짝이며 흩날리는 가운데, 남자가 천천히 체샤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이 오롯이 체샤를 담아냈다.
그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체샤.”
키에른이 달콤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미안해.”
허공에서 느리게 내려온 그가 꽃밭 위에 살며시 내려섰다.
그리고 체샤를 안아 주며 속삭였다.
“아빠 왔어요.”
체샤는 그의 품에 안겨 있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너무 늦었잖아요…….”
쩨샤 삐졌냐고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이를 와락 힘주어 끌어안았다.
체샤는 그를 올려다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어서 와요, 아빠.”
그러자 잠시 말을 잃어버렸던 키에른이 체샤를 뒤따라 미소했다.
어둠을 덜어 내고 빛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체샤에게 화답했다.
“…응. 돌아왔어, 체샤.”
체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에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드디어 온전한 가족이었다.
<아기 요정은 악당,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