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
아기 요정은 악당-21화(21/200)
체샤는 조금 당황한 눈으로 키에른을 쳐다보았다.
아, 하고 작게 소리 낸 그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쩨샤아, 귀여운 내 쩨샤. 과자 줄까요?”
느긋하게 뒤적거린 끝에, 뭔가 조그만 걸 하나 꺼냈다.
“이거 좋아하잖아.”
어느 제과점에서 충동 구매한 듯한 쿠키였다.
예쁜 포장지에 싸인 쿠키는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다.
체샤의 손에 쿠키를 쥐여 준 키에른은 무척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체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취했군.’
생각해 보면 아까 루딘 백작저에서부터 술 냄새가 났었다.
‘하지만 루딘 백작 앞에선 취한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평소보다 약간 나른해 보였을 뿐, 키에른은 명료하게 행동했다.
비아냥거리며 루딘 백작의 정신을 조종하고, 또한 그가 제 손으로 목에 밧줄을 걸도록 만들기까지.
뒷세계에서 온갖 잔인무도한 광경을 다 보았던 체샤조차도 감탄할 정도로 잔혹한 방식이었다.
피 한 방울 보지 않고 자살로 처리한 덕분에, 키에른이 범인으로 몰릴 일도 없었다.
‘난 기껏해야 식인 꽃 먹이로 주려고 했는데.’
덕분에 깔끔하게 처리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취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바짝 날 세우고 있다가,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는 집에 도착하면서 느슨히 풀어진 걸지도 몰랐다.
‘술이 약한 것 같지는 않은데.’
루딘 백작을 죽이기 전에 무얼 하다 왔을까.
최근 그가 밤마다 나다니는 이유와 관계가 있을 터였다.
나름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체샤는 쿠키 봉지를 바스락바스락 만졌다.
키에른의 손에 들려 있을 땐 쿠키 봉지가 쪼그맸는데, 체샤의 손에 들리니 조금 컸다.
그에게 뒤늦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쿠키 쪼아해요.”
“그치? 아빠가 체샤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키득키득 웃는 키에른은 즐거워 보였다.
키에른이 루딘 백작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집에 어린 딸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라.”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도 딸이라고 말하면서 챙길 줄은 몰랐다.
심지어 술 취한 상태로 쿠키를 챙겨 오기까지.
루딘 백작에겐 끔찍한 처형자였던 이가 체샤 앞에선 그저 말랑하게만 굴었다.
그의 태도에 체샤는 또다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서재에서 벨제온을 달래 주고 나왔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심장 안쪽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체샤가 좋아해서 다행이야.”
느슨한 미소를 머금은 키에른이 술 내음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 피곤하네…….”
오늘 일이 너무 많았다며, 그는 새벽까지 근무하고 온 가장처럼 굴어 댔다.
‘뭐어…. 일을 하긴 했지.’
사람 죽이는 일이 확실히 피곤하긴 했다.
솔직히 그가 직접 루딘 백작을 죽이러 올 줄은 몰랐다.
죽은 부인 되살리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바실리안 백작가의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아닌 척하면서 챙기긴 하는 건가.’
아이들이 모욕을 당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루딘 백작의 목숨을 뎅겅 날려 버린 걸 보니 그럴듯했다.
‘아무튼 고생했으니까.’
체샤는 그의 팔뚝에 토닥토닥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얼른 쭈무새요.”
“으응, 자자.”
키에른이 하품하며 체샤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느릿느릿 침의로 갈아입었다.
그사이 체샤는 선물받은 쿠키를 베개 옆에 잘 놓아두었다.
내일 아침 식사 후 티타임 때 쌍둥이랑 같이 먹으면 좋을 듯했다.
이내 키에른이 침대에 들어왔다.
침대에 몸을 길게 누인 그가 체샤를 답삭 집어다 제 가슴팍 위에 올려놓았다.
체샤는 조그만 식빵 덩이처럼 키에른 위에 얹어졌다.
납작하게 달라붙은 모양새가 우스웠던지, 키에른이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려 웃었다.
피곤하다더니 금방 잘 생각은 없는지, 손가락으로 체샤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장난을 쳐 댔다.
그러다 가만가만 속눈썹까지 만져 왔다.
간지러워서 눈을 찡그리자 그가 설핏 웃었다.
“감히 바실리안을 모욕하다니. 너무 쉽게 죽였어.”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체샤는 그것이 루딘 백작을 칭하는 말임을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키득거리다 말고, 키에른이 갑자기 긴 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빠가 좀 이상하지…. 미안해. 술을 적당히 마셨어야 하는데. 집에 오니까 취기가 올라서.”
체샤는 그를 쳐다보았다.
어둑한 침실, 은근한 달빛만이 서로를 어슴푸레 비추는 공간.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새벽의 어둠 속에서 홀로 선명한 붉은 눈.
바실리안가의 특징인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는 적안은 함부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도록 만들곤 했다.
오만한 악의로 빛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눈이었다.
그러나 체샤는 그와 똑같은 눈을 한 소년이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어떤 일도 꿋꿋이 버텨낸 소년이었다.
매사에 냉랭하게 굴던 소년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건넨 위로 한 조각에 무너졌다.
은방울꽃을 쥐고 뚝뚝 울던 소년의 붉은 눈이…….
지금 체샤의 앞에 놓인 눈과 비슷하게 보인다면 너무 심한 착각일까.
정말이지 너무나 이상하게도, 그 또한 울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한참 체샤와 시선을 마주하던 키에른이 입을 열었다.
“체샤.”
얇은 입술이 느른히 움직였다.
“체샤 바실리안.”
체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듯한 부름이었다.
피식 웃은 그가 체샤의 이마에 입술을 묻었다.
지긋하게 눌렀다 떼어내는 움직임은 어울리지 않게도 경건했다.
키에른이 자조 어린 웃음을 흘렸다.
“어쩌지. 체샤만 보면 자꾸 생각나.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좋은데…….”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려는 시도였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술에 취해 느슨해진 입술이 쓸쓸한 중얼거림을 뱉었다.
“보고 싶어…….”
언뜻 드러난 깊은 속마음에 체샤는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다.
숨 쉬는 것도 잊고 굳어 있던 때였다.
키에른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잠에 빠진 것이다.
깊게 잠든 이를 보자마자 체샤는 휴우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놀래라.’
의심 많은 남자는 아직 체샤에게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체샤에게 속내를 드러내며 기대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괴로웠던 것이리라.
그가 보고 싶다고 말한 이가 누구인지는 추측해 볼 필요도 없었다.
죽은 백작 부인이었다.
바실리안 백작가에는 죽은 백작 부인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초상화나 유품이 없는 건 물론이고, 고용인들은 죽은 백작 부인에 대해 입 하나 벙긋하지 않았다.
마치 금기시된 존재처럼 치부되었다.
삼 형제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키에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체샤에게만큼은.
아주 가끔 백작 부인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저번에 황궁 꽃나무 아래에서도 그렇고.’
체샤는 흥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닮으면 뭐가 얼마나 닮았길래.’
그래도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그가 저를 체샤 바실리안이라 불러주었을 때는, 뭔가 약간…….
‘정말로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체샤는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요새 하도 바실리안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임시직이란 사실을 자꾸 잊어 먹는 듯했다.
체샤는 제 손가락으로 뺨을 꼬집었다.
쭈우욱 잡아당겼다 놓으니, 불필요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키에른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체샤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 아래로 조용히 내려갔다.
오늘 밤은 그가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체샤는 살며시 힘을 일으켰다.
꽃과 나비가 몸을 감싸고, 키에른의 서재로 이동했다.
평소에도 들락날락하는 곳이라, 뭐가 어디에 있는지는 훤히 꿰고 있었다.
‘책상은 이미 뒤져 보았고.’
뱀의 성에서도, 그리고 타운하우스에서도.
그럴싸한 곳은 이미 다 살펴보았다.
체샤는 진지한 표정으로 책장을 응시했다.
전부터 키에른이 유독 서재에서 오래 머무는 듯해서 의심했는데,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양손을 모았다가 옆으로 펼쳤다.
수백 마리의 나비가 단박에 생겨나 집무실 가득 날갯짓했다.
나비들은 책장에 꽂힌 책에 서너 마리씩 달라붙었다.
그리고 책 수백 권의 책장을 동시에 차르륵 넘기며 살피기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나비가 체샤에게 책 한 권을 가져다주었다.
가죽 표지를 단 장서 안에는 몇 장의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책은 바닥에 던져 놓고, 체샤는 종이를 붙잡고 읽었다.
“…!”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내 얘기잖아?!’
요녀 리체시아에 대한 보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