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
아기 요정은 악당-22화(22/200)
뒷세계는 아주 오래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그곳은 본래 팔렌 대제국령에 속한 작은 영지였다.
울창한 숲과 들판, 아름다운 개울을 가진 영지는 평화로웠다.
목동들이 양을 치느라 고함지르는 일이 가장 소란스러운 사건이었으니.
저주는 단 한순간에 닥쳐왔다.
어느 날 갑자기 검은 꽃과 가시덤불이 순식간에 자라나 사방을 뒤덮은 것이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다행스럽게도 검은 꽃과 가시덤불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푸른 나무도, 초록빛 들판도, 반짝이던 개울물도.
남은 건 오직 모래와 돌뿐이었다.
그곳에선 생명이 자라지 못했다.
그 어떤 식물도 싹을 틔우지 못하는 황무지에는 메마른 모래바람만이 불었으니.
모두가 저주받았다 두려워하며 떠났다.
하여 버려진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불모지에 쓰레기들이 깃들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평범한 세계에 섞여 살 수 없는 자들이 하나둘씩 터를 잡았다.
그들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우고,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었다.
쓰레기들이 점차 모여드니, 어느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들이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대륙의 국가들은 버려진 땅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범죄와 부정에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중립 지대이자 무법 지대.
사람들은 이곳을 ‘뒷세계’라 칭하기 시작했다.
“이런 곳이었군요.”
부관인 다렌의 말에 하일론은 무심히 시선을 옮겼다.
뒷세계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 훤했다.
불야성을 이룬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오히려 훤한 대낮에 고요해졌다.
그러다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 다시 하나둘씩 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뒷세계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거리에는 온갖 기괴하고 기묘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널려 있었다.
건물이 전부 석재로 지어져 있어 분위기가 더욱 독특했는데, 행인들 또한 평범치 않았다.
얼굴이나 몸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건 기본이었다.
괴상한 장식을 달거나, 흉측한 가면을 쓰거나, 처음 보는 모양의 무기를 차고 다니는 등.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하일론과 수하들이 가장 무던한 차림이었다.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으나, 와 본 일은 처음인지라 신기합니다.”
다렌은 다소 수다스럽게 뒷세계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았다.
생소한 볼거리에 신기해하는 다렌과 달리, 하일론은 익숙하게 거리를 걸었다.
신성 제국은 뒷세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제거해 봤자 다른 악으로 분산될 뿐이기에, 굳이 구정물에 손을 담글 필요가 없다는 게 암묵적 원칙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일론은 최초의 예외를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자그마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푸른 눈동자가 낡았지만 단정한 간판에 적힌 글씨를 훑었다.
<하타의 모자 가게>
가게 앞 입간판에는 모자, 강아지, 그리고 꽃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일론은 꽃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쇄골 위에도 자리하고 있는 문양이니.
의식하기도 전에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가 요녀의 개라는 티를 내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었다.
입간판 옆에는 작은 꽃 화분도 하나 놓여 있었다.
생명이 자라지 않는 땅이기에, 푸른 식물이 많을수록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로 화분은 사치품이라 할 수 있었다.
시선은 널찍한 창문 너머의 진열장으로 향했다.
유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자들은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했다.
팔렌 제도 번화가의 고급 의상실에 가져다 놓아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
옆에서 다렌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유리라니, 확실히 요녀의 악명이 대단한가 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감탄이 배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험악한 뒷세계에서 쇠창살 하나 두르지 않은 말간 유리 창문을 해 뒀다는 건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따위로 가게를 차려 놓아도 강도가 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요녀 리체시아의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뒷세계 주민들은 절대로 그녀의 사냥감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용기와 어리석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은 이미 리체시아에게 도끼질을 당해 본보기가 되었으니.
“대기하도록.”
“예.”
부관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후, 하일론은 혼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유리문 위에 달린 종이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옅은 꽃향기가 가장 먼저 감각을 자극했다.
“잠깐만요!”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일론은 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벗으며 내부를 훑었다.
전시된 상품 중에서 몇 개는 리체시아가 쓰고 다니던 걸 본 적도 있었다.
그녀가 종종 아끼며 착용하는 모자와 장신구들.
전부 다 ‘하타’라 불리는 개 수인이 만든 것이었다.
존재는 진즉 알고 있었으나, 이곳까지 찾아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하일론은 아직도 소식 한 줌 알 수 없는 이를 떠올렸다.
“어서 오세요!”
마침내 가게 주인이 튀어나왔다.
많아 봐야 열일곱으로 보이는, 소년도 청년도 아닌 남자는 귀여운 생김새의 소유자였다.
밝은 연갈색 머리카락이 구름처럼 몽글했다.
보라색 눈동자는 꼭 유리구슬처럼 깨끗하고 영롱했는데, 눈망울이 큼직하고 눈매 끝이 처져서 약간 울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하일론에겐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외모였다.
신나서 뛰어나온 개 수인이 카운터 앞에서 덜컥 멈췄다.
동글동글 귀엽기만 하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하양 머리?”
요녀 리체시아의 개, 하타였다.
하타는 곧장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바람이 일어나며 가게 안에 진열된 모자들이 엉망으로 휘날렸다.
검은 로브가 길게 펄럭이고, 천 아래에 감춰졌던 이단 심문관의 정복이 드러난 순간.
작은 가게 안에 새하얀 사슬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사슬은 하타를 속박했다.
“끄윽……!”
하타는 발버둥 쳤으나 단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하일론을 노려보았다.
“왜, 뒷세계까지……!”
야윈 기색 하나 없이 통통하기만 한 뺨을 확인한 하일론은 입매를 비틀었다.
만일 리체시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이 비루한 개 수인은 진즉 말라비틀어진 몰골이 되어 가게 문도 닫고 빌빌거렸을 터였다.
하지만 하타는 멀쩡했다.
하일론은 지그시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근래 팔렌 제국의 수도와 뒷세계의 가게를 오간다 하던데.”
“모자를 팔아야 하니까!”
눈을 치뜨고 변명을 나불거렸다.
“하타가 파는 모자는 엄청 인기 있어! 찾는 사람들 많아. 수도에 가게 분점도 있으니까, 그래서 수도에 가는 거야.”
그럴듯한 소리였다.
제도와 뒷세계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차를 타도 넉넉하게 반나절이면 충분히 왕복할 거리였다.
여태껏 웬만한 이들은 저 말에 그렇구나 납득하며 넘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수많은 자들을 심문해 온 이단 심문관에겐 한없이 어설픈 변명일 뿐이었다.
“예전처럼 배송을 맡기지 않고, 직접?”
“…….”
의기양양해하던 하타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는 변명을 생각해 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요녀 리체시아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천천히 손목의 팔찌를 어루만졌다.
하얀 팔찌 위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자신에게 속한 종복이 그녀 근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주술을 새겨 놓았지. 그리고 반대의 경우 또한 가능하고.”
몇 가지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주술이었다.
그 사실이 항상 거슬렸다.
과거에는 손가락에 찔린 장미 가시 정도였으나, 이제는 가시덤불에 칭칭 휘감긴 듯이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리체시아의 행방을 조금도 알 수 없는 지금은 더더욱.
“나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
아무것도 모른다고 우겨대던 개 수인은 사슬을 마구 흔들며 왕왕 짖어 댔다.
“리체시아 님이 하타 구하러 올 거야! 하양 머리, 네놈, 가만히 안 놔둘 거야!”
“그렇겠지.”
안타깝게도 그것이야말로 하일론이 바라는 바였다.
하일론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지어졌다.
“네 주인이 언제쯤 너를 구하러 올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인지, 하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강아지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음습한 집착으로 거뭇하게 잠겨 있었다.
“같이 기다려 보자고, 요녀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