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3)
아기 요정은 악당-23화(23/200)
아침 식사 자리에 바실리안가의 남자들이 전부 모였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본래 키에른은 항상 느지막하게 일어나거나, 아예 귀가하질 않아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아침 식사 자리에 나타나니 다들 의아한 눈치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확히 예법을 지켜 가며 식사하던 벨제온도.
서로의 접시에 먹기 싫은 채소를 옮겨 담던 쌍둥이도 움직임을 멈췄다.
키에른은 저를 쳐다보는 삼 형제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그는 품에 안은 체샤를 자연스럽게 제 옆의 아기용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냅킨으로 턱받이를 만들어 주었다.
집사가 키에른 앞에 음식과 차를 내오며 신문도 같이 내려놓았다.
빵과 소시지, 베이컨, 삶은 콩, 구운 토마토와 버섯, 달걀 요리까지.
접시 위에는 갖가지 음식이 푸짐했지만, 키에른은 그쪽엔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홍차만 홀짝이며, 체샤의 식사를 틈틈이 챙겨 주었다.
“이거도 먹어 보렴, 체샤.”
“네!”
“골고루 먹어야지. 혹시 버섯은 싫어해요?”
“…….”
눈치가 너무 빨라서 얄미웠다.
결국 버섯 조각을 삼키게 된 체샤는 질린 표정을 하고 서둘러 꿀 넣은 우유로 입가심했다.
어느 정도 체샤가 식사한 걸 확인한 후, 키에른은 홍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펼쳤다.
체샤는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잼을 바른 빵을 먹으며 신문을 쳐다보았다.
신문 1면에 커다란 글씨로 적힌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키에른이 한가로운 목소리로 그것을 읽어 주었다.
“루딘 백작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구나.”
‘심장마비?’
목매달고 죽는 꼴을 뻔히 보았는데, 엉뚱한 사인으로 발표하다니.
귀족가에서 자살은 불명예라고 여겨지는지라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타살이라 주장하기에는 증거가 없지.’
남은 유가족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리라.
설마 키에른이 이런 것까지 계산해서 행동한 것일까, 궁금해하던 때였다.
쨍!
깨질 듯이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벨제온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은제 식기가 접시에 부딪혀서 난 소리였다.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였으나,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쌍둥이는 식탁 밑에서 상대를 걷어차던 발차기를 관두었다.
체샤도 왐냐왐냐 맹렬하게 먹어 치우던 빵을 갑자기 느릿하게 씹었다.
두 소년과 아기 하나가 눈동자를 굴리는 가운데, 벨제온은 냅킨으로 가볍게 입술을 닦아냈다.
가지런히 식탁 한쪽에 냅킨을 내려놓은 후에 말문을 열었다.
“왜 죽이셨습니까?”
벨제온은 곧게 시선을 보내왔다.
“제가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백작님께서 나서지 않았더라도, 바실리안의 이름에 어울리게 잘 해결해냈을 겁니다.”
그는 이미 키에른이 죽였다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날 선 목소리가 힐난하듯 질문을 내던졌다.
“갑자기 가문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생기셔서 루딘 백작을 죽인 겁니까.”
“아니?”
그리고 키에른은 몹시 단출하게 대꾸했다.
벨제온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당장이라도 키에른에게 커트러리를 순서대로 하나씩 집어던질 기세였다.
키에른이 웃음을 터뜨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팔꿈치를 식탁에 얹고선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냥 죽였는데.”
“…….”
벨제온이 입술을 꾹 누르듯 다물었다.
그는 키에른을 한참 노려보다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뒤처리는 제대로 하신 겁니까.”
“물론. 그런데 몰래 죽여서 아쉬웠어. 광장에 걸어놓고 목을 잘랐어야 했는데 말이지.”
키에른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당하는 기분이 별로더라고.”
한가로이 말하고 있으나, 선명한 서늘함이 담긴 말이었다.
긴 손가락이 톡, 톡, 식탁 위를 두드렸다.
“귀여운 막내도 새로 생겼으니, 네 말처럼 물 위로 올라와 권력을 가져볼까 싶은데…….”
키에른이 미소 지었다.
씨익 웃으며 올라가는 입매가 시원했다.
“어때, 벨제온?”
벨제온이 약간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깊게 숨을 들이마시곤, 이내 침착하게 답했다.
“바라던 바입니다.”
오고 가는 대화를 듣던 체샤는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아무도 키에른이 루딘 백작을 죽였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충격받지 않았다.
카르하와 이슈엘이 속닥거리는 말이 들렸다.
“야, 내가 그래서 어제 죽이러 가자고 했잖아. 선수 뺏겼네.”
“형님한테 혼날까 봐 겁내던 쫄보가 누구더라.”
“…나.”
수긍하는 목소리가 조금 작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엔 억울했던지, 카르하가 포크로 이슈엘의 손등을 콕 찔렀다.
“근데 솔직히 너도 무서웠잖아.”
이슈엘이 눈매를 찡그리며 손을 뒤로 물렸다.
“내 손 건드리지 말아 줄래? 흠집 나면 대륙적 손실이거든?”
“뭐래.”
둘이서 쑥덕대는 모습에 키에른이 설핏 미소 지었다.
그는 체샤의 잔에 우유를 채워 주며 한가로이 말했다.
“이브로이엘 공작가에서 주최하는 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단다. 새 가정교사를 구해 두었으니 다들 수업 열심히 받도록 하고. 의상실은 어찌 되었지, 이슈엘?”
“이번 주 내로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찾아올 거예요.”
연회에 입고 갈 의상은 이슈엘이 전부 담당한 모양이었다.
하긴 평소에 꾸미고 다니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슈엘은 항상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옷과 장신구를 착용했고,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제 미모에 감탄하곤 했다.
양산이며 챙 넓은 모자며 꼬박꼬박 쓰고 다니는 것도 자신의 우윳빛 피부가 상할까 염려되어서였다.
참고로 여기서 ‘우윳빛 피부’라는 표현은 이슈엘 본인이 직접 언급한 것이었다.
“좋아. 그때는 시간을 비워 놔야겠군.”
홍차 잔을 말끔히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난 키에른이 가볍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미 아침 식사 자리에 완벽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집사에게서 모자와 외투, 지팡이 따위를 건네받으며 당부했다.
“다들 말썽 부리지 말고 있으렴. 체샤 잘 돌봐 주고.”
마지막 인사를 남긴 그가 식당을 떠났다.
오늘도 키에른은 외출인 모양이었다.
수도에 오고 나서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 걸까.
체샤는 간밤에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요녀 리체시아에 대한 보고서.
키에른이 서재에 숨겨 놓았던 그것은 무척 구체적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뒷세계에 연줄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고 왜 알아보았을까.
무언가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말이다.
제도 귀족들이야 허세를 떤답시고 일부러 뒷세계를 들락날락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위험을 즐기는 자신의 담대함을 과시한다는 멍청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실리안 가문은 검은 숲에 처박혀 있었다.
그들이 요녀 리체시아에게 흥미를 품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관심을 가진다면 요정이라는 이유밖에 없겠지.’
어쩌면 죽은 백작 부인을 되살릴 수단을 찾다가…….
요정을 가지고 실험했을지도 모른다.
키에른은 흑마법사이고, 뱀의 성은 외진 곳에 있으니 몰래 실험을 벌이기에도 적당했다.
“…….”
체샤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섣부르게 속단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실험과 관련된 자료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키에른이 수도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부터 알아볼 생각이었다.
“잘 머거습니다.”
식사를 끝낸 체샤는 유아용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쌍둥이가 얼른 제 몫의 음식을 입에 와아악 쓸어 넣었다.
뒤쫓아 오려고 저러는 것이었다.
체샤는 재빠르게 경고했다.
“혼자 잇을 고애요.”
“왜!”
히유우, 하고 한숨 내쉰 후에 대답했다.
“마음이 복짭하니까요.”
“…왜?”
체샤는 새침하게 혼자 식당을 타박타박 빠져나갔다.
진짜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던 쌍둥이가 얼른 뒤따라가려고 했지만, 벨제온이 제지했다.
“예법 지켜서 식사하도록. 그리고 괴롭히지 마. 어차피 오후에 다시 보잖아.”
새 가정교사가 오면 수업을 같이 듣고 티타임도 가져야 했다.
카르하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나 오늘 저녁에 나가는데요.”
하지만 꿍얼거리면서도 이슈엘과 함께 물러났다.
벨제온 덕분에 잠깐의 빈 시간을 가지게 된 체샤는 얼른 방으로 돌아가려고 도도도 뛰었다.
그래 봤자 다리가 짧아서 빠른 감은 전혀 없었다.
“방에 데려다조!”
하여 지나가는 사용인에게 냉큼 안겨서 이동했다.
사용인은 얼굴을 붉힌 채 체샤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가 ‘체샤 아가씨를 안다니 가문의 영광이에요!’ 같은 이상한 말을 하기에 대충 손 인사를 던져 주고 내보냈다.
침실에 돌아온 체샤는 얼른 힘을 끌어올렸다.
재빠르게 하타에게 연락을 보낼 생각이었다.
나비를 만들어내서 휘이 날려 보냈으나…….
“웅?”
나비는 창밖으로 날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방향을 찾지 못하는 듯 빙빙 맴돌다가 결국 스르륵 다시 체샤에게로 돌아왔다.
머리 위에 나비를 얹은 채, 체샤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나비가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하따.”
하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체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누가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