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
아기 요정은 악당-26화(26/200)
체샤는 제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남자의 눈 위로 언뜻 동요가 드러났다.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럴 만했다.
뒷세계에서 마스터를 언급했을 때, 얌전해지지 않는 이가 없었을 테니.
체샤도 웬만하면 한발 물러나 줄 생각이었다.
“건방지네.”
이따위로 부른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요녀의 등장에 황급히 도망간 뒷세계 주민들은 이미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지금 이 광경을 구경 중이었다.
오랜만에 리체시아가 귀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심지어 마스터가 요녀를 찾는다니!
자극적인 오락거리에 미쳐 있는 뒷세계 주민들로서는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구경해야 할 순간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이니 나약한 모습을 드러낼 순 없었다.
여기서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
곧장 체샤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약한 자는 잡아먹히는 세계였다.
허세를 부려서라도 강하게 보여야만 했다.
요정인 체샤가 굳이 도끼를 무기로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최대한 잔인하게 굴지 않으면 얕보일 테니까.
하타가 누구한테 잡혀갔는지도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얕보여선 안 됐다.
체샤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부른다고 해서 내가 가야 하나?”
남자가 까닥 고갯짓했다.
그러자 가게 옥상 위마다 검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남자와 똑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휘감은 그들은 수십에 달했는데, 전부 손에 석궁을 들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석궁의 화살촉이 모두 체샤를 겨누었다.
남자가 건조하게 선언했다.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데려가겠다.”
“강제로…….”
체샤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나한테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최근엔 아무도 없었거든.”
남자에게 살풋 미소 지으며 질문했다.
“왠 줄 알아?”
남자가 느릿하게 뒷걸음질 쳤다.
본인이 의식하기도 전에 이뤄진 행동이었다.
체샤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어느새 꽃송이 사이로 자라난 가시덤불이 남자의 발목을 옭아맸다.
남자가 흠칫거리며 발을 빼려고 했으나, 이미 사로잡힌 뒤였다.
사방을 날아다니던 나비들이 남자의 어깨와 머리 위에 몇 마리 내려앉았다.
그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체샤를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의 바로 앞에 멈춰 선 체샤는 도끼를 아래로 늘어뜨리곤, 그의 가슴팍에 가만히 손을 짚었다.
그리고 생긋 웃으며 속삭였다.
“다 죽였으니까.”
남자가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죽음을 직감한 이가 비명을 지르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하늘에서 매끈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떨어졌다.
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채찍을 휘둘러 가시덤불을 끊어냈다.
덤불에 엉켜 있던 이가 허겁지겁 도망쳤다.
체샤는 삐딱한 눈으로 새롭게 등장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휘리릭 채찍을 거둬들인 남자는 특이한 생김새였다.
늘씬한 체격의 그는 회색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하나로 묶고, 복잡한 문양이 들어간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 보이긴 하는 듯했다.
남자는 정확히 체샤를 쳐다보며 사과했다.
“수하의 무례를 대신 사죄드립니다. 명령이 잘못 전달되어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체샤는 말없이 웃었다.
명령이 잘못 전달되었을 리가.
기선 제압 삼아서 한번 찔러 봤는데 쉽게 처리되지 않을 듯하니 빠르게 수습하는 것일 터였다.
다 안다는 눈으로 가만히 있으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는 자한이라 합니다.”
“…!”
이름을 들은 체샤는 조금 놀랐다.
자한이라면 체샤도 알고 있었다.
마스터의 직속수하였다.
인형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는 뒷세계에서 불행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자한을 만난 이들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인 듯했다.
자한은 체샤에게 정중하게 청했다.
“마스터께서 리체시아 님을 모셔 오라 명하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내 강아지를 잃어버렸어. 강아지를 찾는 게 우선이야.”
“그것과도 연관된 일입니다.”
하타의 실종과 관계있다고?
무시하려던 체샤는 자한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자한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다시금 청해 왔다.
“사안이 중하여 마스터께서도 이례적으로 직접 만나 뵙길 청하셨습니다. 부디 응해 주시길.”
뒷세계에 굴러다닌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던 존재였다.
사실 뒷세계의 주민 대다수가 죽을 때까지 마스터를 만날 일이 없었다.
요녀 리체시아 또한 똑같았다.
그토록 뒷세계에서 악명을 떨쳐도 마스터의 그림자 한번 본 적이 없었건만.
‘갑자기 왜 나를 부르는 걸까.’
사뭇 의심스러우나 일단 하타를 언급한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되었다.
체샤는 꽃과 나비를 거둬들였다.
흐드러진 꽃으로 가득 찼던 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고, 짙은 꽃향기만이 남았다.
체샤는 도끼 또한 꽃잎으로 흩어 버렸다.
그리고 자한에게 턱 끝을 까닥였다.
“좋아. 안내해 봐.”
***
마스터의 거처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뒷세계 주민들끼리는 마스터의 거주지일 거라고 짐작하는 곳이 하나 있었다.
사시사철 흙먼지만 휘날리는 메마른 땅에서 가장 푸릇한 식물이 많은 곳.
일일이 물을 끌어와 식물을 키우는 쓸데없는 짓을 할 정도로 돈이 썩어 나는 자가 머무르는 저택.
드러내 놓고 경비를 서는 이는 없으나, 일정 거리를 넘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곧장 발치에 어디선가 날아온 석궁 화살이 떨어졌다.
과거 무모한 놈들이 떼거지로 뭉쳐 저택을 털려고 시도했다가,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빼곡하게 꽂혀 죽은 이야기는 유명했다.
뒷세계 주민들은 절대 함부로 얼씬조차 하지 않는 곳이었다.
체샤도 지나가다 봤을 뿐이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이국적으로 꾸며진 정원이 펼쳐졌다.
곳곳에 등불을 단 정원은 몽환적으로 아름다웠으나, 체샤는 내심 소름이 돋았다.
‘이게 다 돈이잖아.’
식물 하나하나를 키우는 데 들어갈 돈을 생각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원에서부터 기가 죽겠구나 싶었다.
“이쪽으로.”
자한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곳은 조용한 방이었다.
방에 놓인 탁자에는 술과 함께 간단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물론 손을 댈 생각은 없었고, 앉을 생각도 없었다.
체샤는 방의 가장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건너편의 사람이 누구인지, 실루엣조차 볼 수 없는 두꺼운 천이었다.
“…….”
고요한 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소리였다.
체샤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내 강아지는 어디 있지?”
그러자 천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을 걸어 변조한 목소리였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도록 변형된 목소리가 체샤의 이름을 불렀다.
“요녀 리체시아.”
체샤는 팔짱을 끼고서 질문했다.
“당신이 마스터야?”
“그래. 덕분에 아주 골치 아프게 되었는데.”
마스터라는 이는 다시금 낮게 웃었다.
“실제로 보니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법하군.”
눈을 가린 자한처럼, 마스터 또한 천 너머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마법을 쓰는 수하를 부리고 있거나.
아니면 본인이 마법을 쓸 줄 아는 듯했다.
마법사는 대륙에 수가 많지 않아 역추적하기 쉬웠다.
‘충분히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듯한데.’
체샤는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뭔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본론이나 빨리 말해.”
체샤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내 강아지 어디 있냐고.”
거짓말로 시간을 끈 것이라면, 마스터고 나발이고 도끼질부터 해 줄 생각이었다.
“진정해. 그것 때문에 부른 것이니.”
“빨리 말해!”
당장이라도 도끼 휘두를 태세인 체샤를 두고도, 그는 느긋하게 서두를 꺼냈다.
“먼저 질문 하나만 하도록 하지.”
이번에도 별 하찮은 소리를 해 대면 진짜 도끼를 꺼낼 것이었다.
눈에 날을 세운 체샤에게 마스터가 성가셔 죽겠다는 어조로 물었다.
“왜 사랑싸움을 뒷세계에서 하는 거지?”
그리고 체샤는 한 박자 늦게, 멍청한 반응을 꺼내 버렸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