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
아기 요정은 악당-35화(35/200)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려고 했다.
하지만 이슈엘의 사연을 듣고 나니, 제가 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감히 내 걸 빼앗은 놈들이잖아!’
하타가 만든 모자도 들고 갔으니 더욱 가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느 가문인진 모르겠지만, 무조건 그놈들보다 더 멋진 옷을 입어서 콧대를 눌러 줘야 했다.
이미 그놈들이 입었을 옷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말이다.
‘연회장에서 옷 훔쳐 간 놈들 만나면 가만 안 둬야지.’
비단 감정적인 이유 때문에 내린 결정만은 아니었다.
‘쌍둥이랑 뒷세계에 같이 가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야.’
모자 가게와 의상실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쌍둥이와 함께 뒷세계에 가 본다면.
바실리안이 뒷세계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여 다음 날, 체샤는 쌍둥이를 제 발로 먼저 찾아갔다.
“뭐야, 아기 왔네?”
“동생이 먼저 찾아왔잖아?”
카르하와 이슈엘은 낯선 상황에 어색해했다.
맨날 쌍둥이가 먼저 체샤를 찾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체샤를 괴롭히러 아침부터 침실에 출근하곤 했다.
체샤는 쌍둥이 앞에서 한쪽 손을 들고 말했다.
“쩌두 갈래요.”
“어딜?”
“오늘 오라버니들 가는 곳애요.”
“어…. 뒷세계? 아기도 간다고? 거기 위험한데.”
카르하가 팔꿈치로 이슈엘을 툭 쳤다.
네가 말려 보라는 뜻이었다.
이슈엘이 진지하게 체샤를 설득했다.
“안 돼. 너처럼 조그만 애는 순식간에 큰일 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야.”
그 위험한 곳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요녀가 바로 체샤였다.
체샤는 시침 뚝 떼고 말했다.
“하지만 오라버니들이 지켜 줄 고잖아요.”
과장은 절대 아니었다.
체샤는 이미 카르하와 이슈엘의 실력을 보았다.
쌍둥이 둘이라면 뒷세계에서 웬만한 시비가 붙어도 거뜬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간단하게 정리하고 벗어날 정도는 충분히 되는 것이다.
쌍둥이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뭐어, 그건 그렇지만.”
카르하와 이슈엘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쌍둥이가 망설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체샤는 한껏 불쌍한 척 눈매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입술을 쫑긋 내밀며 슬픈 목소리를 지어냈다.
“징짜 가고 시포요…. 쩌두 오라버니들이랑 가치 나드리 갈래요…….”
“…으으.”
오라버니들과 나들이를 가고 싶다는 체샤의 불쌍 공격을 맞은 카르하가 끙끙거렸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데려가자!”
“미쳤어?”
이슈엘이 기겁하자 카르하가 열심히 설득했다.
“뭐 어때. 생각해 보니까 아기 데리고 제대로 외출한 적도 없잖아.”
“첫 외출이 뒷세계라니…….”
“바실리안다운 일이지 않냐?”
“하아.”
이슈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질색하긴 하지만, 막 적극적으로 말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은근히 이슈엘도 체샤랑 같이 외출하고픈 마음이 큰 듯했다.
“직접 모자를 씌워 보는 게 좋으니까.”
아버지나 형님 모자는 여러 번 주문해 봤으니 잘 알지만, 동생은 첫 주문이라서 감이 아직 안 온다는 이유였다.
이슈엘이 체샤를 데려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사이.
카르하가 휘적휘적 체샤의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
“근데 동생.”
“네!”
“개는 어디 갔어?”
강아지는 가게 문을 열러 갔다.
아마 지금쯤 열심히 모자를 준비해 두는 중일 터였다.
체샤는 방싯 웃으며 거짓말했다.
“강아지는 잠깐 놀라고 내보내써요!”
“그래?”
카르하는 기왕 내보낸 것, 아주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은근하게 내비쳤다.
체샤 때문에 키우자고는 했지만, 하타한테 앞발로 한 대 맞은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길에서 데려온 강아지니까 저택 안에만 있기엔 답답하겠지.”
이슈엘이 나름대로 하타의 외출에 대한 분석을 덧붙였다.
체샤는 이슈엘의 논리에 열렬한 동의를 표했다.
개의 심리에는 관심 없는 카르하가 하품을 하다가 헛 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근데 아기 데리고 뒷세계 가는 거, 벨제온이 엄청 뭐라고 하겠지?”
“…아, 형님이 혼내겠다.”
쌍둥이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씨익 웃었다.
똑 닮은 말썽쟁이 미소를 지으며, 둘은 음흉하게 외쳤다.
“안 걸리면 되지!”
***
때마침 오늘은 벨제온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었다.
키에른은 늘 그러하듯 집을 비웠다.
어제 외출한다고 미리 말도 해 뒀던지라, 쌍둥이는 당당히 대문을 나섰다.
사용인들은 난데없이 어린 아가씨를 데려가는 도련님들을 보곤 우왕좌왕했으나 차마 말리진 못했다.
다만 간절한 눈으로 체샤를 바라보긴 했다.
체샤는 그들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기 싫다고 하세요, 아가씨!’
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하늘로 치솟은 체샤는 모르는 척했다.
쌍둥이는 바실리안가 전용 마차가 아닌, 미리 불러 놓은 삯마차를 이용했다.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길에서 삯마차를 타니 마부는 살짝 당황한 티를 내었다.
뒷세계로 가는 마차를 예약한 손님이 작은 소년 둘과 어제 태어난 것처럼 조그만 아기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셋 다 후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체구가 작으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마부는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 눈치로 자꾸 뒤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카르하가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을 보곤 조용히 입 다물고 말을 몰았다.
“여기서 내리면 되오.”
마부는 뒷세계 입구에서 꼬마 손님들을 내려 주었다.
동전을 받아 가면서도 마차를 몰고 떠나는 끝까지 흘긋거렸다.
카르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기가 예뻐서 쳐다보나 봐.”
싱거운 농담이었다.
죄다 후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어떻게 예쁜 걸 안단 말인가.
하지만 체샤만 농담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거 아냐?”
이슈엘은 새삼스럽게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받아쳤다.
그리곤 한 손엔 체샤, 다른 손엔 양산을 들고 걸어갔다.
후드를 썼음에도 양산까지 쓰는 게 왠지 이슈엘다웠다.
카르하는 쫄래쫄래 이슈엘을 뒤따랐다.
뒷세계는 커다란 원형으로 경계 지어진 구역이었다.
누군가 뚝 잘라 그어 놓은 것처럼, 들꽃과 잡초가 이어지던 길이 원형의 구역에 들어서면서 황무지로 바뀌었다.
뒷세계라는 표지판을 따로 세워 놓지 않았으나, 칼같이 나눠진 메마른 흙바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곳이 뒷세계라고.
뒷세계의 가게는 해가 저물 즈음부터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막 노을이 지기 시작한지라, 이제야 길거리에 사람들이 슬슬 모습을 내비쳤다.
가게 주인들도 느지막이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나 따라와.”
카르하는 척척 앞서 나갔다.
체샤는 이슈엘의 품에 안겨 가며, 쌍둥이의 태도를 유심하게 살폈다.
둘 다 익숙한 거리를 걷듯이 침착했다.
뒷세계의 길거리는 처음 오는 이들이라면 놀라고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바깥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기괴, 기묘, 기이.
온갖 수상한 수식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 바로 뒷세계였다.
가게들의 외양 또한 바깥과 다르게 독특했다.
하타의 모자 가게만 빼고 말이다.
모자 가게 앞에 멈춰 선 쌍둥이는 나란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하타의 모자 가게>
하타의 취향에 맞춰 꾸며진 가게는 쇠창살 등으로 흉흉하게 장식한 다른 뒷세계 가게와 다르게, 혼자만 귀여운 분위기였다.
사뭇 이질적인 겉모습에 이슈엘도 조금 당황했는지 속눈썹이 팔랑거릴 정도로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여기야?”
“여긴데.”
이슈엘이 가게 외관을 살피는 동안, 카르하는 퍽 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문 위에 매달린 작은 종이 요란하게 뒤흔들리며 깨질 듯이 딸랑거렸다.
가게 안에 쌍둥이가 들어섰다.
엉망이었던 가게는 다시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가게 안에 진열된 모자를 본 이슈엘의 눈이 커졌다.
“아무도 없나?”
이슈엘이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말하자, 안쪽 문에서 우물쭈물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그러더니 하타가 슬며시 문을 열고 나왔다.
하타를 보자마자 체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멋진 모자 가게 주인처럼 보이려고 턱시도에 나비넥타이, 신사모까지 착용했다.
가슴팍에는 달맞이꽃으로 만든 조그만 부토니에를 꽂고 있었다.
카르하가 워낙 짐승처럼 냄새를 맡아 대니, 꽃향기로 하타의 체취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체샤가 요정의 힘으로 만들어 준 꽃인지라 보통 꽃보다 훨씬 싱싱하고 향기가 짙었다.
냄새를 가리기엔 충분한데도, 하타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걸릴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어?”
카르하는 하타를 보자마자 눈썹을 치켜세웠다.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간 카르하가 하타를 올려다보았다.
덩치도 더 크면서, 하타는 힉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한참 빤히 하타를 보던 카르하가 불쑥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