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
아기 요정은 악당-4화(4/200)
뱀의 성.
동부 바실리안령에 위치한 바실리안 백작가의 성을 일컫는 별칭이었다.
뱀의 성은 바실리안 백작 가문만큼이나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검은 숲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낮에도 제대로 햇빛이 들지 않는 검은 숲은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로 유명했다.
기분 나쁜 소문이 흘러넘치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검은 숲 근처로 다가가질 않았다.
물건을 배달하는 상인이나 잡부를 제외하면, 외부인이 성에 드나들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실제로 뱀의 성을 보게 된 체샤는 단 한마디로 소감을 정리했다.
‘와, 진짜 음침하다.’
누가 봐도 사악한 악당이 살 법한 분위기가 팍팍 풍겼다.
성만 봤는데 벌써 백작이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내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체샤는 헉하고 놀랐다.
천장이 까마득하게 높은 성은 사람을 짓누른다는 인상을 주었다.
가구나 장식물 또한 전부 서늘하고 어두운 색상이어서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왜 이런 데서 사는지 모르겠네.’
거주지로 쓰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이었다.
여기서 며칠만 살아도 성격 나빠질 것 같았다.
그리고 체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뱀의 성에 온 지 일주일째.
체샤는 실시간으로 성격이 나빠지는 중이었다.
“아빠한테 오세요, 체샤.”
나긋한 목소리가 간지럽게 날아왔다.
체샤는 짤따란 다리로 열심히 아장아장 걸어갔다.
다리가 짧으니 얼마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장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있던 키에른이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상큼한 레몬색 천에 풍성한 레이스와 프릴로 장식하고, 초록색 리본을 단 조그만 아기용 드레스를 입은 체샤는 아기 천사처럼 깜찍했다.
그러나 온통 칙칙한 분위기의 성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꼴이었다.
느긋하게 기다리던 그는 체샤가 장의자 바로 앞에 다다르자, 딱 소리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발밑에서 그림자가 쑤욱 솟아나 체샤를 밀어 올렸다.
“읏차.”
키에른이 허공에 떠오른 체샤를 가볍게 품에 안아 들었다.
몇 번 안겼다고 벌써 그의 품이 좀 익숙하게 느껴졌다.
꼬물꼬물 더 편한 자세를 찾아 고치자 키에른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체샤의 이마에 쪽 하고 뽀뽀한 그가 싱글거리며 약 올리듯 말했다.
“오늘 밤에도 아빠하고 같이 자자?”
아오, 미치겠네.
체샤는 속으로 부들거리면서도 겉으로는 방싯방싯 웃었다.
“네에에.”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바실리안 백작가를 파헤치기는커녕 아직 성 내부 탐사조차 하지 못했다.
키에른이 온종일 제 옆에 붙여 놓고 감시 아닌 감시를 해 댄 덕분이었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잘 때까지.
아주 떨어질 줄을 몰랐다.
후딱후딱 백작가를 조사해서 하루빨리 애새끼 노릇을 때려치우고픈 체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가끔씩 떨어질 기회가 생기면 후다닥 성 내부를 조사했지만, 너무 짧은 시간인지라 제대로 된 뭔가를 얻지 못했다.
한번은 키에른이 잠든 사이에 몰래 성을 돌아보려고 했다.
얌전히 그의 옆구리에 누워 있다가, 슬며시 눈을 뜨고 빠져나가려는 순간.
“음, 체샤….”
잠기운에 젖은 나른한 목소리가 곧장 들려왔다.
느슨한 눈매 사이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설핏 미소 지은 그는 체샤를 홀랑 집어다가 제 배 위에 올려놓곤 도닥거렸다.
“왜 일어났어요? 아직 새벽인데…. 얼른 다시 자자.”
그러면서 자장자장, 어설픈 자장가까지 불러 주는 게 아닌가.
꼼짝없이 붙들린 체샤는 결국 다시 잠들어야만 했다.
더욱 열받는 점은 키에른이 부르는 말도 안 되는 자장가를 들으며 아주 달게 잠들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으아아!’
몸뚱이가 어려졌다고 정신까지 유치해지고 있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 새끼 설마 다 알고 이러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방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체샤가 속으로 방방거릴 때마다 은근히 재밌어하는 티가 나서 더욱 의심스러웠다.
지금도 키에른은 재밌어 죽는 표정이었다.
그가 키득키득 웃으며 체샤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슬슬 일하러 가 볼까.”
그리곤 체샤를 빵 덩이처럼 팔뚝에 얹고서 집무실로 향했다.
체샤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집무실을 그냥 가운 입고 가 버리네.’
느슨하게 벌어진 가운 자락 사이로 가슴팍이 훤히 보이는데, 그걸 입고 그냥 휙휙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체샤만 민망해하고, 사용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이런 일이 허다한 모양이었다.
“자아, 체샤. 여기서 놀고 있어요. 아빠는 일할 테니까.”
집무실에 도착한 키에른은 널찍한 책상 한편에 체샤를 앉혔다.
그곳에는 삭막한 뱀의 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인형과 장난감, 동화책 따위가 쌓여 있었다.
전부 키에른이 체샤를 위해 손수 사들인 물건이었다.
체샤는 어설프게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늉을 하며 흘금흘금 그를 살폈다.
‘얘는 대체 뭐 하는 놈일까?’
요새 계속 붙어 지낸 덕분에, 바실리안 백작의 하루 일과를 훤히 꿰게 되었다.
그는 백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한가로운 일상을 보냈다.
우선 해가 환하게 뜬 후에야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그런 다음에는 옆에서 굴러다니는 체샤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얼마간 괴롭히는 시간을 가진 후, 함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실내복 차림으로 장의자에 늘어져서 책이나 서신, 간단한 서류 따위를 읽곤 했다.
그때마다 체샤는 그가 읽는 글들을 훔쳐보았는데, 정말이지 쓸데없는 것뿐이었다.
어린 영애와 영식들이나 좋아할 법한 유치한 연애 소설.
이번만큼은 꼭 와 주십사 간청하는 연회 초대장.
검은 숲에서 새롭게 발견된 식물에 대한 보고서 등등.
체샤가 원하는 바실리안 백작가의 거대한 흉계나 범죄에 관한 건, 조그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집무실에서 보는 서류도 영지 관리를 위한 사무적인 내용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있긴 할 텐데.’
키에른은 흑마법사다.
그것도 정신 조종을 다룰 줄 아는 최상급의 실력자.
흑마법사는 신의 뜻에 어긋나 금지된 힘을 사용하기에, 존재를 발각당하는 순간 즉결 처형되었다.
이단 심문관들의 눈은 날카롭다.
그들이 바실리안 백작 정도 되는 귀족을 살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키에른은 여태껏 자신의 힘을 들키지 않고 잘 감춰 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몇 년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틀어박혀 있다가, 갑자기 입양할 아기를 구한 것도 엄청나게 수상하지.’
처음에는 흑마법에 쓸 산 제물로 아기를 데려온 건가 추측해 보았지만…….
그런 것치곤 키에른은 아빠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날 정말 딸처럼 만들고 싶어 한단 말이야.’
왜 그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애꿎은 곰 인형의 귀를 잡아당기며 생각을 하나씩 이어 나가던 때였다.
깃펜으로 사각사각 글씨를 써 내려가던 키에른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
“…….”
그와 동시에 체샤도 똑같이 반짝 고개를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키에른이 체샤를 안고 창가로 향했다.
그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바람이 시원하게 쏟아지며, 유리에 가로막혔던 소음이 들려왔다.
언제나 고요하던 뱀의 성이 시끌시끌했다.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 사람들이 고함치고 웃는 소리가 왁자했다.
검은 제복과 경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단이 성 안으로 다각다각 말을 몰아 들어오고 있었다.
기사단을 맞이하기 위해 사용인들이 황급히 달려 나갔다.
특이하게도 기사단을 이끄는 이는 어린 소년들이었다.
가장 앞에 자리한 세 명의 소년은 멀리서도 시선을 확 사로잡을 만큼 독특했다.
특히 한 소년은 웬 넓은 여성용 챙모자를 쓰고 있어서 더욱 눈에 띄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소년이 킥킥 웃으며 팔뚝을 툭 쳤다.
짓궂은 웃음을 지은 소년은 턱 끝을 까딱이더니 손가락을 뻗었다.
곧게 뻗은 손가락 끝이 키에른과 체샤가 서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소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의 시선이 정확히 체샤를 향했다.
“……!”
붉은 눈동자들과 맞부딪치는 순간.
체샤는 가슴이 뜨끔했다.
마치 심장에 화살을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키에른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들이 왔구나, 체샤.”
바실리안가의 삼 형제가 귀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