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0)
아기 요정은 악당-40화(40/200)
“…….”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정적 속에서 쌍둥이는 서로를 힐끔거렸다.
항상 쌍둥이에게 안겨 다니던 체샤도 간만에 땅 위에서 발붙이고 서 있었다.
꼬마 둘과 아기 하나 앞에는 냉랭한 표정의 벨제온이 앉아 있었다.
벨제온은 차갑다 못해 한기가 철철 흘러내리는 얼굴이었다.
뒷세계에 갔다가 집으로 귀가하니, 벨제온이 와 있었다.
오늘 내내 외출했다가 다음 날 아침에나 온다고 했건만.
아마도 소식을 들은 건지, 일찍 귀가한 것이다.
벨제온은 집에 오자마자 곧장 자신의 집무실로 세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가만히 세워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중이었다.
쌍둥이가 눈치를 살피느라 바쁜 사이.
체샤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한이 쌍둥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으나 불가능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에서 물음표만 늘어났다.
그때 벨제온이 나직이 이름을 불렀다.
“카르하, 이슈엘.”
호명이 떨어지자마자, 쌍둥이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답했다.
“네.”
“네, 형님.”
벨제온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짧은 질문이 떨어졌다.
“무슨 생각이었지?”
이슈엘이 얼른 대답했다.
“그게, 연회 때 입을 옷이랑 모자를 산다고…….”
“그렇다고 저 조그만 애를 데려가?”
카르하가 팔꿈치로 이슈엘을 툭 쳤다.
그러더니 눈치를 보면서 슬쩍 대꾸했다.
“지킬 자신이 있어서 데려간 건데요.”
“그 문제가 아니잖아.”
벨제온이 피곤한 한숨을 재차 내쉬었다.
그는 쌍둥이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평범한 아이다. 조심했어야지.”
온통 붉은 눈동자인 소년들이 홀로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아기를 바라보았다.
체샤는 오도카니 서서 눈을 깜빡였다.
벨제온이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바실리안이 아니니까.”
그의 말이 떨어지자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쌍둥이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 있었다.
벨제온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곤 전혀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체샤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벨제온이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알고 있는데도 조금 그랬다.
나름 약간의 정을 주었고, 서로 꽤 챙겨 주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결코 가족은 아니었다.
확실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은 어중간한 관계.
복잡미묘한 기분에 빠져서 벨제온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한 찰나.
‘…아.’
체샤는 깨달았다.
‘연회 전에 나 내보낼 생각이구나.’
벨제온은 체샤를 바깥으로 내보낼 것이다.
바실리안 가문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었다.
“…….”
벨제온을 바라보던 시선은 점점 아래로 떨어져서 어느새 바닥을 향했다.
체샤는 작은 발부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성인 손바닥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는 조그만 발.
이제는 제 발로 걷지 않고 다른 이의 품에 안겨 다니는 게 훨씬 익숙했다.
애새끼로 살아가는 일에 언제 이렇게 적응해 버린 걸까.
체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뒤통수에 떨어지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쌍둥이와 벨제온이 저를 쳐다보는 듯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발치만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했다.
체샤도 언제까지나 천년만년 바실리안 백작가에 머무를 수 없다.
원래도 소성인 기도회 전에는 나갈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왜 당연히 연회까지 함께 참석하려고 했지?’
진짜 바실리안이라도 된 듯이 굴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되돌아보니, 여태까지 했던 일들이 너무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요녀로서 루딘 백작을 찾아가 환역을 펼친 것도.
연회장에 바실리안들이 입고 갈 의상과 모자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도…….
체샤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여러 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나 무엇을 떠올리든.
그것이 핑계일 뿐이란 사실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진짜 가족 놀이에 빠지기라도 한 건가.’
심지어 정황상 지금 바실리안은 요정으로 실험했을 가능성이 높기도 했다.
뻔히 다 알면서도 왜 이런 말랑말랑한 생각만 잔뜩 해 대는지.
제 사고 흐름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체샤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소성인 기도회 전에 너를 바실리안가에서 내보낼 거다.”
“그러니 함부로 정붙이지 말도록.”
과거 벨제온이 그리 말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정붙이는 쪽은 벨제온인 듯하다며 대수롭잖게 넘겼다.
그런데 막상 여기까지 오고 나니.
벨제온은 여전히 냉철하게 판단하고 있었고, 체샤는 바보처럼 굴고 있었다.
‘꼬맹이만도 못하다니 반성해야겠어.’
연회 전까지 바실리안 백작가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그리고 벨제온이 내보내 줄 때, 하타랑 같이 슬쩍 사라지면 될 것 같았다.
그게 제일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법이었다.
***
“에휴.”
침실로 돌아온 체샤는 유아용 발 받침대를 기어 올라가서 침대에 풀썩 누웠다.
짧은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운 채로 천장만 보았다.
쌍둥이가 바래다주겠다는 것도 거절하고, 사용인의 도움을 받아 침실로 돌아왔다.
하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방이 조용했다.
고요한 방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 있던 체샤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계속 기분이 별로였다.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다시 일어났다.
잠이 오질 않아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 창가로 타박타박 걸어가던 때였다.
“…!”
체샤는 눈을 크게 떴다.
발밑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울룩불룩하게 꿈틀대던 그림자는 확 치솟아 올랐다.
체샤는 솟아나는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둠을 가르고 남자가 나타났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가 긴 눈매를 접으며 샐쭉한 웃음을 지었다.
“체샤.”
키에른이 팔을 뻗어 체샤를 단번에 안아 들었다.
한 품에 쏙 안으며 다정히 물었다.
“내 딸, 뭐 하고 있었어요?”
나른한 붉은 눈이 체샤를 담았다.
체샤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키에른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가 체샤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표정이 왜 이래. 오라버니한테 많이 혼났어?”
무엇 때문에 혼났는진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체샤는 얼른 대답했다.
“아니애요.”
“그러면 오늘 나들이가 재미없었나?”
“그거두 아니애요.”
“흐음.”
키에른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가 체샤를 안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걸친 코트 자락이 펄럭였다.
키에른에게서 묻어나는 바깥 냄새에는 오늘도 옅은 피 내음이 섞여 있었다.
밖에서 누굴 죽이고 왔을지 모르는 남자는 체샤 앞에서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
“혼내는 건 오라버니가 했으니, 나는 달래는 역할을 해 볼까.”
키에른이 싱긋 웃으며 속삭였다.
“아빠랑 꽃구경 갈래요?”
대답도 듣기 전에, 그는 곧바로 체샤를 데리고 이동했다.
어둠이 솟구치며 눈앞이 완전히 새까맣게 물들었다.
다시 시야가 밝아졌을 때.
체샤의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장미 정원이었다.
온갖 품종의 장미가 수만 송이나 식재된 정원에서는 짙은 장미 향기가 진동했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장미 향기가 배어들 듯했다.
꽃잎과 모양이 죄다 다른 장미 품종들을 이만큼 한곳에 모아 두려면, 수십의 정원사들이 일 년 열두 달 내내 달라붙어 전정을 해 가며 관리해야 할 터였다.
일반적인 귀족 가문이 소유할 수 있는 정원이 아니었다.
금을 깔아 놓은 것보다 더욱 값비쌀 장미 정원을 보여 주며, 키에른은 그럴듯한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물었다.
“괜찮지?”
체샤는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여기 오디애요……?”
“아아.”
그리고 뒤이은 키에른의 대답에 기절할 뻔했다.
“황궁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