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
아기 요정은 악당-41화(41/200)
“…….”
진짜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 걸까.
체샤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키에른은 ‘진짜’였다.
아기한테 꽃구경시켜 준답시고 황궁 정원에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도대체 팔렌 대제국의 황실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이딴 식으로 구는지 모를 일이었다.
‘…늙은 돼지 새끼였나.’
키에른이 황제를 호칭했던 말이 뒤늦게 생각났다.
그걸 떠올리고 나니 그냥 다 이해되는 듯했다.
체샤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장미 정원을 바라보았다.
키에른은 황궁 정원에 무단 침입해도 괜찮은 이유를 한가로이 설명해 주었다.
“별궁인데 지금은 비어 있어서. 마음대로 구경해도 괜찮아요.”
그가 분홍색 장미 덤불 앞에 체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꽃 좋아하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모든 꽃을 다 좋아하지만, 장미는 체샤가 특히 좋아하는 꽃이었다.
체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꽃향기를 맡으니 축 늘어졌던 기분이 단숨에 좋아졌다.
달밤의 장미 정원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더욱 마음이 보들보들하게 풀어졌다.
키에른이 왜 굳이 남의 집 정원에 무단 침입까지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곳이면 나도 무단 침입하고 싶을 거 같단 말이지.’
체샤가 후웁 하면서 장미 냄새를 맡는 동안, 키에른은 꽃을 한 송이 꺾었다.
동글동글한 연분홍 꽃잎이 둥그런 원형을 그리는 장미꽃이었다.
키에른은 체샤에게 꽃을 대보며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꽃송이가 조금 작아서 체샤에게 크기가 딱 맞았다.
장미 크기를 확인한 키에른이 체샤의 앞에 다리를 굽히고 앉았다.
쭈그리고 앉더니,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장미 가시를 뚝뚝 떼어 내기 시작했다.
다듬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저러다 다치겠다 싶었는데, 결국 가시에 살갗이 긁혔다.
검지에 금방 핏물이 발갛게 배어났다.
“앗……!”
체샤가 화들짝 놀라니, 키에른이 손가락의 긁힌 상처를 할짝대며 웃었다.
“놀랐어?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요.”
정말 그래 보여서 걱정을 관두었다.
그러자 키에른이 투덜거렸다.
“그래도 걱정해 줘. 아빠 호 해 줄까요, 이런 거 해 줘야지, 체샤.”
“…….”
하나만 해라, 하나만.
체샤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호 해 주까요?”
“으응.”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키에른은 이미 피도 멎고 분홍색 실금만 그어진 상처를 체샤 앞에 디밀었다.
콱 깨물어 버리고픈 충동이 들었으나, 순순하게 입김을 불어 주었다.
입술을 모으고 호오호오 열심히 입김을 불어 주니, 엄살쟁이가 키득키득 웃어 댔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쌍둥이랑 하는 짓이 똑같았다.
‘나이가 몇인데 유치하게.’
체샤는 속으로 으이구 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저 또한 열과 성을 다해서 ‘상처에 입김 불기’ 임무를 수행 완료했다.
체샤에게 치료를 받은 키에른은 다시 장미 가시 다듬기에 열중했다.
손가락이 다치긴 했지만, 키에른은 제법 꽃 다듬는 일에 익숙해 보였다.
누군가에게 직접 꽃을 다듬어 선물해 준 적이 있는 듯했다.
꽤 그럴듯하게 다듬어 가고 있는데도 키에른의 눈에는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가 잎사귀를 비틀어 뜯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잘 안 되네…….”
잎을 다듬고, 가시를 하나씩 일일이 떼어내고, 마지막으로 줄기를 손으로 스윽 쓸어 보며 미처 제거하지 못한 거스러미가 있는지 확인했다.
꼼꼼하게 두세 번이나 확인한 다음, 체샤가 단 머리 리본에 장미꽃을 장식해 주었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예뻐.”
“깜사해요.”
정원을 환히 비추던 달이 구름에 반쯤 가리었다.
훤하던 사방이 조금 어두워졌다.
체샤는 짙게 음영 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키에른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오라버니한테 혼나서 시무룩했어?”
“…….”
“하지만 위험한 곳에 가면 혼나야지.”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체샤는 그런 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쁜 사람들이 많거든.”
지금이야말로 뒷세계와 바실리안 백작가의 연결 고리를 캐물어 보기 좋은 순간인 듯했다.
“아빠는요?”
“으응?”
체샤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아빠도 거기 가는 고애요?”
“어디.”
“뛰세계요.”
체샤의 짧은 발음 때문에 잠시 고민하던 그가 확인하듯 물어보았다.
“…뒷세계?”
“네!”
키에른이 굽혀 앉은 무릎 위에 팔을 얹었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눈웃음 지었다.
“그런 게 왜 궁금할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다.
체샤는 미리 생각해 뒀던 대사를 던졌다.
“오라버니들두 가니까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서운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쩨샤만 빼노코 다 가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야. 아빠도, 오라버니들도.”
“왜요……?”
키에른이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는 그의 앞에서 체샤는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말 안 해 조도 갠차나요.”
그리고 잔뜩 불쌍한 척 중얼거렸다.
“쩌는 바실리안이 아니니까.”
“이런, 체샤.”
키에른은 조금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건 체샤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투정 부리는 어조로 말하려고 했는데, 뭔가 너무 진심처럼 말이 나와 버렸다.
그래도 어쨌든 그 덕분에 키에른은 완전히 넘어갔다.
“많이 서운했어요? 어쩌지.”
그는 전전긍긍하며 체샤를 살폈다.
체샤가 괜찮다는 뜻으로 말없이 고개만 도리도리 내젓자 더욱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능글맞게 굴기는 잘해도, 진심으로 달래고 위로하는 일에는 재주가 없는 키에른이었다.
차라리 체샤가 그에게 꼴 보기 싫은 놈들 10명 정도만 골라서 죽여 달라고 했으면 흔쾌히 처리해 줬으리라.
작은 아기를 어찌 달래야 할지 몰라서 끙끙대던 키에른이 결국 입을 열었다.
“체샤.”
그가 체샤의 손을 꼭 붙들며 당부했다.
“이건 체샤만 알고 있어야 해요.”
체샤는 내심 놀랐다.
앞에서야 딸이니 어쩌니 하면서 달콤하게 굴지만, 절대 완전한 신뢰를 주지 않는 남자였다.
‘당연히 이번에도 끝까지 말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능구렁이처럼 슬쩍 넘어가리라 여겼지, 정말 대답해 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바람이 불었다.
정원을 가득 채운 수만 송이의 장미꽃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더욱 짙은 향기를 내뿜었다.
장미 향기가 진동하는 속에서 키에른이 살며시 웃었다.
밤의 어둠과 희미한 달빛, 화려한 장미에 둘러싸인 키에른은 무서우리만큼 요사하게 아름다웠다.
체샤는 가만히 숨죽이고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아빠가 뒷세계에서… 약간, 으음, 어떤 일을 하고 있거든요.”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뱀처럼 귓속을 간질였다.
“그래서 오라버니들도 아빠를 도와주느라 같이 들락거리는 거고. 하지만 별것 아니에요. 위험한 건 아니니까…….”
키에른이 나긋나긋하게 속삭임을 이어 갔다.
그러나 체샤는 이미 그의 말이 귀에서 반쯤 흩어지는 중이었다.
키에른의 고백을 듣는 순간.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촤라락 펼쳐졌다.
요녀 리체시아에 대한 보고서.
보고서는 뒷세계에 속해 있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키에른과 삼 형제가 죄다 저택을 비웠던 날.
그날은 하일론 때문에 뒷세계에 비상사태가 벌어진 때였다.
심지어 카르하는 하타의 모자 가게에 찾아오기도 했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뒷세계의 거리에 익숙해 보였던 쌍둥이, 그리고 쌍둥이에게 묘한 정중함을 비치던 자한.
하일론이 요녀의 문양을 지니고 있음을 알던 마스터.
그 외에도 온갖 수상했던 기억 조각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퍼즐처럼 차곡차곡 맞춰졌다.
결론은 하나밖에 내려지지 않았다.
‘설마…….’
체샤는 입 안의 살을 세게 깨물었다.
사방을 뒤덮은 어둠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죄다 드러났을 테니까.
‘키에른이 마스터야?!’
완전히, 진짜, 제대로, 큰일 났다.
‘망했다.’
살살 웃는 키에른을 바라보는 체샤의 머리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당장 도망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