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3)
아기 요정은 악당-43화(43/200)
평범한 사람들은 중요한 무언가가 생긴다면.
품속에 지니고 다니거나, 집 안 깊숙한 곳에 설치한 금고에다 숨겨 두는 게 일반적일 터였다.
아니면 은행에 맡기거나 말이다.
하지만 뒷세계의 주민들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품에 든 것은 가져가면 끝이고, 집에 숨겨 둔 금고는 부수면 끝이었다.
뒷세계에 정식 은행이 있을 리도 없었다.
하여 자신이 죽어도 빼앗기기 싫은 귀한 무언가가 있다면.
뒷세계의 주민들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체샤가 쓰는 방법은 뒷세계에서도 제법 쉽고 직관적인 경우였다.
남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요정의 환역에 중요한 것들을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
성유물인 루베우스의 창을 보관해 둔 장소도 환역이었다.
하타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물약을 부어서 모습을 변형시켰다.
그래서 체샤도 하타가 물약으로 변형시켰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뭘 어디에 어떻게 숨겨 놨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미야는 언뜻 듣기론 가게 지붕 위에 올려놓은 마차가 자신의 비밀 장소와 연관이 있다고 했었다.
술 마시다가 실수로 체샤한테 말해 버린지라, 아마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본인과 연관이 있으면서도, 타인이 결코 쉽게 접근하지 못할 장소에 숨기는 게 뒷세계의 기본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저택이랑 성만 열심히 뒤졌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비밀 공간 같은 것도 없어 보이고, 숨겨 놓은 뭔가도 딱히 없었다.
기껏 유의미하게 찾아낸 게 요녀 리체시아에 대한 보고서뿐이었으니.
사실 그것도 크게 중요한 서류는 아닌 느낌이었다.
그냥 키에른이 잠깐 읽다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숨겨 둔 정도인 듯했다.
‘가장 중요한 건 분명히 검은 숲에 숨겨 놓았을 거야.’
검은 숲은 오직 바실리안 백작가만이 자유로이 출입하는 곳이었다.
흉흉한 소문이 그득하니 일반 사람들은 애초에 접근도 하지 않았고, 가끔 드나드는 이들도 정해진 길로만 다닐 뿐이었다.
키에른이 무언가를 숨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체샤는 하타를 끌어안고 검은 숲으로 이동했다.
어두컴컴한 숲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꽃과 나비가 흩뿌려졌다.
반짝거리는 빛이 반딧불처럼 주위를 비추었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검은 숲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숲은 대낮인데도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아 어두웠다.
축축하고 음침한 숲의 분위기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음울하게 만들었다.
온통 시커먼 숲에서 홀로 금빛 머리카락을 반짝이는 체샤는 무척 이질적인 존재였다.
“기분 나쁜 숲이네요…….”
하타가 체샤의 품에서 꿍얼거렸다.
“그러게. 시간두 업으니까 얼른 조사하고 나가짜.”
체샤는 하타를 발치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양팔을 한껏 펼치자,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한꺼번에 피어올랐다.
검은 숲에 반짝이는 나비가 가득 채워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마 검은 숲이 생겨난 이래.
단 한 번도 이토록 눈부시게 빛났던 적이 없으리라.
수백의 나비들은 곳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체샤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비들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은은한 빛이 생겨났다.
그리고 옅은 빛이 어둠을 밀어낸 곳에서 체샤는 괴이한 것들을 발견했다.
하타가 먼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히익 소리와 함께 강아지의 털이 곤두섰다.
“검은 숲에 산다는 괴물인가 봐요!”
흉측하게 일그러진 검은 형체들이 숲의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사람을 찢어 놓을 것처럼 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체샤와 하타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나 풀을 대하듯, 느릿느릿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체샤는 제 옆을 지나가는 괴물을 유심히 관찰했다.
키에른이 기사단을 이끌고 검은 숲에 간 이유가 아마 이것들을 사냥하기 위함인 듯했다.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서 저런 징그러운 것들을 죽이고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 이상해지겠는데.’
어쩐지 검은 숲에 다녀온 키에른의 상태가 이상하더라니.
괴물을 죽이는 일이 정신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공기도 좀 탁한 것 같고.’
다행히 체샤는 요정이고 하타는 수인이라 그런지, 냄새만 불쾌하고 멀쩡했다.
하지만 인간이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면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릴 수도 있을 듯했다.
얼마간 괴물을 관찰하는 사이, 나비 한 마리가 체샤에게 포롱포롱 날아왔다.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비에게 어디쯤인지 전해 들은 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루 안 멀어. 따라가자.”
“네! 하타가 안아 드릴까요?”
하타는 의욕적으로 앞발을 번쩍 들었다.
그랬다가 뒤늦게 자신이 아기 체샤보다도 작은 강아지임을 깨달았다.
“…아 참. 하타 지금 강아지였죠.”
하타는 얌전히 체샤를 뒤따랐다.
앞장선 체샤는 나비가 이끄는 대로 종종 따라갔다.
나비를 따라 달려가던 체샤의 걸음이 느려졌다.
검은 숲에서 마주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하타가 눈을 보름달만 하게 뜨며 감탄했다.
“와……!”
아찔할 만큼 수많은 꽃들이 흐드러진 꽃밭이었다.
이곳만큼은 나무가 하늘을 가로막지 않아서, 따스한 햇살이 고스란히 떨어졌다.
햇빛으로 그어진 경계선 너머가 바로 음침한 숲인 게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갖가지 꽃들이 싱그럽게 하늘거리는 꽃밭의 가장 중앙에는…….
텅 빈 관이 놓여 있었다.
“…….”
체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꽃을 밟으며 천천히 관으로 다가갔다.
하타도 체샤의 뒤를 따라왔다.
관은 의아할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바깥에 이렇게 내놓았는데 아무런 오염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마도 마법을 걸어서 유지하는 듯했다.
체샤는 관 안을 들여다보았다.
멀리서 볼 때는 텅 비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붙어서 보니 싱그러운 분홍색 장미 꽃다발과 함께 작은 무언가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반지 한 쌍이었다.
남성용과 여성용 반지 한 쌍은 아마도 결혼반지인 듯했다.
결혼반지를 보고 나니, 이것이 누구의 관인지 알 것 같았다.
죽은 바실리안 백작 부인의 관이리라.
체샤는 물끄러미 반지와 꽃다발을 보았다.
괴물이 들끓는 검은 숲속에서 발견되기에는 무척 낭만적인 물건들이었다.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나비가 날아왔다.
나비는 체샤의 주위를 포르르 맴돌며 자신이 찾아낸 것을 알려 주었다.
꽃밭을 둘러싼 나무에 나비들이 각기 한 마리씩 앉았다.
그리고 나비들이 스르륵 나무에 스며든 순간.
검은 나무줄기 위로 빛으로 쓰인 글자가 떠올랐다.
마법으로 나무에 글을 새겨 넣고 감춘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검은 숲이건만, 여기서 또 한 번 감추다니.
정말이지 뒷세계 사람다운 행동이었다.
“하따, 나눠서 읽짜.”
하타와 함께 구역을 나눠서 읽기 시작했다.
나무에 은은하게 빛나는 글자를 읽은 체샤는 얼굴이 굳어졌다.
결국 요정의 환역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남성체에 요정의 피를 투여해 보았으나 실패.
여성체에 요정의 피를 투여했을 경우 반응을 보이나 일시적인 효과에 그침.
요정은 오직 여성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듯함.
새로운 연구 필요.] [요정의 신체는 불멸. 어찌하여 인간은 요정과 같은 불멸자가 될 수 없는 것인지…….]
전부 요정으로 실험한 결과에 대한 기록이었다.
정신없이 글자를 읽어 나가던 체샤는 작게 신음했다.
“…아.”
나무에 새겨진 자료에 적힌 날짜는 전부 비슷했다.
모두 수백 년 전의 자료들이었다.
체샤가 태어나기도 전.
까마득한 옛날에 이뤄진 요정 실험에 대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요정을 가지고 실험한 자들은…….
[신의 이름으로.]신성 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