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
아기 요정은 악당-45화(45/200)
항상 쌀쌀맞은 태도로 일관하는 벨제온이었다.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어서, 체샤는 조금 놀랐다.
‘근데 진짜로 값비싼 재물은 필요 없는데.’
요정인 체샤는 딱히 물욕이 강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예쁜 옷이나 장신구에 관심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전부 미야와 하타가 넘치도록 만들어 줘서 욕심낼 새는 없었다.
이미 재물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기도 했다.
요녀에게 시비 거는 놈들은 꽤 자주 등장했다.
하여 그놈들을 슥삭 해서 돈과 보석을 모았는데, 그것만 해도 웬만한 귀족가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벨제온은 그 사실을 모르기에 많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체샤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몇 마디 덧붙여 보았다.
“오차피 아무것도 안 가지구 드러왔는 걸요! 진짜루 강아지만 있으면 대요.”
“…….”
“배짝님두, 도려니들두 다들 잘해 주셔서 깜사해씁니다.”
백작님도, 도련님들도 잘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하자 벨제온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얘 왜 이래?’
가족이 아니게 될 예정이니, 아빠랑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안 될 거 같아서 호칭을 고친 거였는데.
어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역효과가 나 버린 것 같았다.
‘좀 더 있다가 호칭 바꿀 걸 그랬나.’
하지만 나간다는 마당에 친근하게 아빠니 오라버니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싶었다.
‘뭐라고 부르지.’
체샤가 혼자 호칭을 놓고 고민하던 때였다.
벨제온이 문득 질문했다.
“…서운하지 않나?”
난데없는 질문에 체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벨제온의 시선은 이제 거의 노려보는 듯했다.
“왜 백작가에 남고 싶다고 청하지 않지? 그동안 바실리안에서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일말의 정이 들었다면 울음이라도 터뜨려야지, 어째서.”
벨제온의 턱이 뻣뻣해졌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다시금 느릿하게 말을 뱉었다.
“…어째서 이렇게 담담하게.”
다른 누구도 아닌 벨제온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뭐야…….’
아닌 척하더니 역시 체샤에게 그도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괜히 마음이 이상해져서 큼큼 헛기침했다.
그리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품 안의 강아지를 꼭 끌어안았다.
체샤는 작게 속삭였다.
“하디만 어쩔 수 없으니깐요. 쩨가 남구 싶다구 해서 남을 수도 업자나요.”
복슬복슬한 털에 얼굴을 반쯤 묻고서 웅얼거렸다.
“갠차나요. 이런 건 익숙해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이 입양되었다가 파양되는 일은 흔했다.
입양이란 명목으로 데려가서 사용인으로 부려 먹으면 오히려 잘된 경우였다.
다시 버려지는 아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체샤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귀엽고 예쁘니 덜컥 딸로 키우겠다고 데려갔다가.
서서히 귀찮아져서 방치하다가.
나중에는…….
체샤가 어릴 적 지냈던 고아원 사람들은 전부 선한 이들이었다.
고아원 원장님 또한 드물게 진정으로 아이들을 아껴 주는 이였다.
다른 고아원은 원에 소속된 아이들을 이곳저곳에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로 넘기곤 했다.
특히 예쁘장한 아이들은 입양을 명목으로 돈 있는 집에 상품처럼 보내 버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도저도 안 되면 나쁜 곳에 팔아 치우기도 했다.
그러다 입양을 보냈던 아이가 파양되어 돌아오면, 골칫덩이 취급을 하며 무섭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체샤의 원장님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체샤가 여덟 살이었을 즈음.
누구나 부러워할 대부호의 집에 입양 갔다가, 고작 몇 개월 만에 파양당해 고아원으로 되돌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어렸을 때지만, 그 순간이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선뜻 들어가질 못하고 고아원의 낡은 철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망설였던 기억도.
하릴없이 맴돌던 체샤를 원장님이 먼저 발견했었다.
그녀는 체샤를 보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마 그때 체샤의 꼴이 조금 엉망이어서 많이 놀랐던 것 같았다.
“왜 진작 돌아오지 않았어……!”
학대받은 흔적으로 가득한 어린 체샤를 끌어안고, 그녀는 커다랗게 소리 내어 울었다.
울지 못하는 체샤를 대신해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때 무어라 답했던가.
아마도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았다.
고아원 살림이 뻔한 거 알고 있으니까.
입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데 파양당해서 미안하다고.
기껏 부잣집에 입양 갔는데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멍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만 조그맣게 되뇌는 체샤에게 원장님은 울면서 화를 냈다.
“원장님이 너 하나 못 먹여 살릴 것 같아?”
상처투성이인 체샤를 치료해 주면서 또 울고, 또 화내고…….
그렇게 체샤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멍이 깨끗하게 사라졌을 때.
원장님은 체샤의 손을 잡고 다정한 말을 건넸다.
“성년이 될 때까지 함께 고아원에 있자. 그러다가 성년이 된 후에도 떠나기 싫으면, 고아원의 선생님이 되어도 좋고.”
그녀는 체샤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네 집이잖아.”
그 말이 체샤에게는 구원이었다.
그제야 체샤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었다.
원장님의 품에 안겨서 집에 돌아오고 싶었다고 울었다.
다들 너무 보고 싶었다고, 이제 떠나기 싫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마구 울면서 어리광을 부렸고, 원장님은 그런 체샤를 달래며 웃었다.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원장님도, 아이들도, 모두 체샤를 진심으로 아껴 주었다.
체샤도 그들에게 온 마음을 다 내어 주었다.
고아원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은 배곯고 힘들어도 온통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날 다들 죽었으니까.’
시뻘건 불길이 날름거리며 집어삼키던 고아원.
죽어 가던 친구들의 비명.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던 원장님의 애원.
노예 사냥꾼들의 웃음소리.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혼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던.
갓 발현하여 어리고 힘없는 요정.
“…….”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 버렸다.
체샤는 하타를 좀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털을 움켜쥐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지니 막혔던 숨이 조금 트였다.
체샤의 상태를 눈치챈 하타가 조용히 망, 하고 짖었다.
덕분에 체샤는 끝없이 가라앉던 기억의 심연 속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징짜 괜차나요.”
스스로에게 말하듯, 체샤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괜찮지 않은 목소리였다.
벨제온은 말이 없었다.
저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진 듯했다.
벨제온도 어쩔 수 없는데, 그에게 괜한 죄책감을 더해 주고 싶지 않았다.
체샤는 고개를 반짝 치켜들곤, 일부러 활짝 웃었다.
“마음의 쭌비는 다 해써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벨제온이 무겁게 한 마디를 꺼내 놓았다.
“그래.”
그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바깥에서도 풍족하게 살도록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체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제온이 세운 계획이라면 믿어 볼 만했다.
‘일단 이렇게 탈출했다가, 나중에 슬쩍 빠지는 거지.’
소성인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그 이후부턴 키에른도 더 이상 저를 찾지 않을 터다.
그때까지만 잘 숨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상황 보고 하타의 물약이 완성되는 대로 곧장 어른으로 변해서 사라져도 될 터였다.
‘무조건 탈출이다!’
하지만 체샤의 장밋빛 미래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다.
벨제온이 짜 놓은 대로 저택을 탈출하는 데까진 물 흐르듯 매끄럽게 성공했으나.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생겨 버린 탓이었다.
“나도 같이 가도록 하겠다.”
벨제온이 체샤를 따라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