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
아기 요정은 악당-48화(48/200)
벨제온과 함께하는 도주생활은 쾌적했다.
그는 굉장히 철저하게 준비를 갖춰 왔다.
고작 하타 하나만 가방에 달랑 챙겨 온 체샤와는 하늘과 땅만큼 비교되는 준비성이었다.
삯마차를 타고 벨제온이 도착한 곳은 버려진 집이었다.
그곳에 숨겨 둔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갈아입었다.
체샤도 벨제온의 도움을 받아 옷을 완전히 바꿔 입었다.
하타를 담은 가방까지도 말이다.
허름한 평민 아이의 옷으로 입었으나 얼굴이 귀족이라서, 낡은 후드 로브를 덮어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삯마차를 잡아타고 광장으로 향했다.
수도 밖이 아닌, 중심지로 더욱 들어가는 뜬금없는 선택이었다.
“백작이라면 분명히 빠르게 추적해 올 테니. 우린 오히려 늦게 움직이는 게 더 혼란스러울 거다.”
체샤와 벨제온하고 체격이 비슷한 소년과 아기가 삯마차를 타고 열심히 수도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그쪽을 추적하도록 유도해 놓고, 진짜 체샤와 벨제온은 수도 중심지에 잠시 숨어 있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너무 무리한 일정을 잡으면 네가 힘들 테니까.”
가장 마지막에 붙인 말이지만 벨제온이 중요하게 고려했을 부분이란 것쯤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벨제온은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걸어갔다.
아침 햇살이 깃드는 수도의 광장은 드넓었다.
팔렌 대제국의 상징물인 태양 문장이 새겨진 붉은 깃발이 곳곳에서 휘날리는 가운데, 탁 트인 광장 너머로 웅장한 황궁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제국민은 물론, 수도에 놀러 온 외국인도 팔렌 황실에 경외심을 품도록 정교한 계산을 거쳐 설계된 장소였다.
체샤가 둘러보고 있으니 벨제온이 나직이 물었다.
“구경하고 싶은 건가?”
그의 로브 안에 숨어서 얼굴만 내밀고 있던 체샤는 고개를 내저었다.
고아원 출신 2살 아기는 수도 광장이 처음이겠지만, 요녀 리체시아는 수도 없이 와 봤던 곳이었다.
‘저기 건물 뒤편에 있는 티 하우스가 되게 잘하는데.’
체샤는 쩝, 하고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자연스럽게 광장 게시판도 지나게 되었다.
커다란 게시판 중앙,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는 요녀 리체시아의 현상 수배지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수배지에 적힌 흉악, 극악, 뛰어난 용모 따위의 문구를 읽던 체샤는 눈매를 찡그렸다.
‘왜 이렇게 못생기게 그려 놨어!’
실물의 손톱만큼도 못 따라가는 그림이었다.
수배지 초상화를 그린 화가를 찾아내 머리를 한 대 콱 쥐어박아 주고 싶었다.
그 와중에 수배지에는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강조된 경고문도 함께 적혀 있었다.
[본 수배지를 훼손하거나 철거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요녀 리체시아가 유명하다 보니, 저런 현상 수배지도 뜯어 가서 모으는 이들이 있는 탓이었다.
뒷세계에는 아무도 안 주워 가서 수배지가 넘쳐나는데, 이상하게 바깥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하긴…. 뒷세계 주민들은 내 실물을 자주 보니까 그런가?’
벨제온은 수배지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을 가졌다.
“호외요, 호외!”
신문팔이 소년이 떠드는 소리였다.
“오늘 새벽에 수도에서 일어난 거대 폭발! 바실리안 백작저가 폭삭 무너졌다는 충격적인 소식!”
자극적인 기사가 실린 덕분인지, 신문은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었다.
벨제온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끼어 동전 한 닢을 주고 신문을 샀다.
그의 로브에 싸여 있던 체샤는 옷자락에 매달린 채로 입을 열었다.
“저기, 또련님.”
“오라버니라고 부르도록.”
“앗, 네.”
도망치는 중인데, 아기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튈 것 같았다.
도주하는 동안에는 오라버니라고 호칭하는 게 옳으리라.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벨제온이 무심히 스치듯 말했다.
“계속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다.”
“…?”
“꼭 친남매여야만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건 아니지 않나.”
별것 아니란 듯이 툭 하고 던지곤, 냉정한 목소리로 체샤를 챙겨 주었다.
“왜 불렀지?”
“강아지두 고개 내밀어도 대요?”
“…마음대로.”
허락을 얻은 하타가 체샤의 얼굴 밑으로 쏙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덕분에 아기와 강아지로 2층 탑이 세워졌다.
“…….”
어쩐지 벨제온의 입술에 작은 웃음이 스친 듯했다.
금방 사라져서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벨제온이 도착한 곳은 낡은 여관이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체샤와 하타는 다시 로브 안으로 숨었다.
여관 주인에게 숙박비를 치르고, 방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벨제온도 티 내진 않았지만 꽤나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체샤와 하타를 침대 위에 올려 두곤,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길게 내뱉는 숨에는 안도가 선명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고, 내일부터 이동하도록 하지.”
그 와중에 체샤에게 친절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안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도망자답지 않게 한가로운 시간을 가졌다.
벨제온이 잠시 바깥에 다녀오는 동안, 체샤는 하타와 함께 여관 주변에 수상한 자들은 없나 간단히 수색했다.
그리고 벨제온이 들고 온 음식으로 늦은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다.
빵 한 덩이와 물, 그리고 작은 치즈였다.
벨제온은 잼도 없이 마른 빵을 뜯어 먹는 체샤를 보곤 왠지 모르게 얼굴이 어두워졌다.
“…괜찮은가? 먹기 힘들면 다른 걸 구해 오겠다.”
“웅? 마싯는대요!”
잘 먹고 있는데 갑자기 왜 그러나 모를 일이었다.
체샤는 나름 그를 달래 줘 보았다.
“이런 거 자주 머거써요. 옛날애요.”
고아원 출신 아기이니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체샤의 대답에 벨제온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 버렸다.
뭔 말만 하면 자꾸 어둑어둑해져서, 체샤는 그냥 더 말하기를 관두고 남은 빵을 하타와 함께 깨끗이 먹어 치웠다.
식사를 끝낸 후에 벨제온은 다시 외출했고, 해가 진 후에야 저녁거리와 함께 돌아왔다.
저녁은 뜨끈한 스튜였다.
빵빵하게 배부른 체샤와 하타가 침대에 늘어져 있는 사이.
벨제온은 검을 꺼내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호오.’
체샤는 흥미롭게 벨제온을 관찰했다.
그가 검을 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깃펜 쥔 모습만 보았는데…….
검을 다루는 자세나 행동이 능숙했다.
꽤 실력 좋은 검사일 듯했다.
벨제온의 검은 무척 독특했다.
짙은 남청색 검날은 벨제온의 머리 색깔과 같았다.
‘검으로 쓸 만한 남청색 금속이 있던가?’
그러고 보니 키에른의 검도 특이했었다.
그것도 검날이 키에른의 머리카락과 똑같이 새까만 색이었다.
‘바실리안가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검인가?’
궁금해하는 기색을 알아챈 것일까.
등불에 검날을 비춰 보던 벨제온이 무심히 입을 열었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작위를 잇는 후계자는 마검을 만든다.”
마검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주인의 피를 백 일, 종이 각기 다른 생명체의 피를 백 일, 마지막으로는 검은 숲에 사는 마물들의 피를 백 일간 먹이지.”
삼백 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피를 먹인 후, 마지막으로 검은 숲의 흙에 열흘 동안 꽂아 두면.
검날의 색이 변하며 마검이 탄생한다는 것이었다.
“너는 검은 숲 깊은 곳에 가 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검은 숲을 찾아가서 키에른이 숨겨 둔 보물도 보고 온 체샤였다.
하지만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벨제온의 말을 경청했다.
“마검을 소유한다는 건, 그곳에 사는 괴물을 처리하는 의무를 이어받는다는 거다.”
벨제온이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니 관심 가지지 말도록.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나중엔 너도 바실리안에서 벗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할 거다.”
그는 천을 둘러 검집을 감추며 냉정히 선언했다.
“바실리안 백작가는 저주받았으니까.”
나중에도 딱히 별생각 없을 것 같은데.
체샤는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까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걸 얼른 물어보았다.
“까만 숲을 업써지게 하는 건요?”
벨제온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다운 생각이라고 여겨서 웃는 것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야.”
체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요정의 힘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