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
아기 요정은 악당-49화(49/200)
체샤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혼자 고개를 내저었다.
앞으로 바실리안 백작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또다시 참견을 하려 들고 있었다.
“검은 숲은 걱정할 필요 없다. 한번 정리해 놓으면 한동안은 잠잠하니까.”
이번에 수도로 올라오기 전에도 키에른이 한 차례 검은 숲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백작이 그 정도의 책임감은 가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체샤를 달래 주던 그가 살짝 눈매를 찌푸렸다.
벨제온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별 얘기를 다 했군.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아까 마검 얘기도 사실 아기한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다.
의자에서 일어난 벨제온은 침대 머리맡에 검을 기대어 세워 놓았다.
“그만 자자.”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작은 침대에 벨제온과 나란히 베개를 나눠 베고 누웠다.
하타가 슬쩍 벨제온과 체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둘이 붙어 있는 게 질투 나는 모양이었다.
진짜 강아지라도 되는 것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고 누운 하타가 입을 짝 벌리며 하품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일찍 자도록.”
체샤 쪽으로 돌아누운 벨제온이 계획표를 알려 주다 말고 혼잣말했다.
“…아기는 원래 일찍 자던가?”
체샤도 잘 몰라서 그냥 눈만 동글동글하게 떴다.
벨제온은 이내 이불을 끌어당겨 체샤를 폭 덮어 주었다.
체샤는 졸린 척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스르르 잠든 시늉을 했다.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자니,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잘 자.”
바스락, 이불을 그러쥐는 소리가 뒤이었다.
잘 자라는 인사를 해 놓곤, 정작 벨제온은 잠들지 못하는 듯했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참 후에 벨제온이 더욱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내 동생이어도 좋았을 텐데.”
체샤는 뒷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다음은 없었다.
살짝 눈을 뜨니, 세상모르고 잠든 소년이 보였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 듯했지만, 결국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든 것이었다.
벨제온의 인생에도 이런 일은 처음일 테니 당연한 일이리라.
체샤는 벨제온이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벨제온이 저를 구경했듯이.
오늘 그는 바실리안 백작저를 터뜨리고, 키에른의 추적을 피해 체샤를 데리고 도망쳤다.
엄청난 대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어른도 감히 엄두를 못 낼 과감한 행위를 저질렀으나.
곤히 잠든 얼굴은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잔뜩 지쳐 기절하듯 잠든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벨제온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마음을 스쳤다.
‘아닌 척하면서 나 챙겨 줘서 그런가.’
체샤도 은근히 벨제온이 신경 쓰였다.
자신은 떠나더라도, 벨제온은 앞으로도 계속 바실리안으로서 살아가야 함을 알아서 더더욱.
‘키에른한테 너무 혼나지 않았으면.’
걱정하고 있자 하타가 감긴 눈을 반짝 떴다.
질투 많은 강아지는 눈매를 뾰족하게 만들더니, 소리 없이 망 하고 짖는 시늉을 했다.
체샤도 하타를 따라 소리 없이 웃었다.
조심조심 손을 뻗어 하타를 만져 주던 때였다.
“…!”
벨제온과 체샤가 누운 침대 위의 천장에 보랏빛 원이 그려졌다.
이지러짐 없이 완벽한 원 안에 복잡한 선이 거침없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하타가 저도 모르게 사람 말을 외쳤다.
“힉, 추적 마법진이에요……!”
체샤는 인상을 쓰며 마법진을 쳐다보았다.
정순한 기운이나 마력의 색으로 추측하건대 키에른의 마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교한 추적 마법이라니.’
대단한 실력을 지닌, 선명한 보랏빛의 마력을 소유한 마법사.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브로이엘 공작이었다.
그녀는 대륙을 통틀어서 손꼽히는 실력을 지닌 마법사였다.
이브로이엘 공작가를 가장 빛나는 영광의 순간으로 이끈 영웅이기도 했다.
그녀 정도면 이런 마법을 펼칠 만했다.
‘근데 이브로이엘 공작이 왜?’
설마 키에른의 부탁을 받고 마법을 써 주는 것일까.
공작씩이나 되어서 고작 남의 집 도망간 애 찾는 데 마법을 써 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붙잡혀선 안 될 상황이었다.
어차피 백작가에서 도망친 처지.
체샤는 뒷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힘을 사용하기로 했다.
‘공작한테 요정 맛 좀 보여 줘야겠군.’
마법사들은 요정의 힘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
멸종에 가까워 만나기가 어렵기도 하고.
요정은 공격 성향이 없어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본래 요정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방어적으로만 힘을 사용했다.
하지만 체샤는 다르다.
탄생부터 어긋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
도끼를 휘두르고 식인 꽃을 키우는 요정은 환역마저 기묘한 모양새로 일그러졌다.
당연히 남을 공격하는 일에도 거침없었다.
“…….”
체샤는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재스민 꽃을 손 안에서 퐁 하고 만들어, 벨제온의 가슴팍 위에 얹어 놓았다.
수면을 유도하는 가벼운 마법을 걸어 놓았으니, 약간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도 깨어나지 않고 푹 잠들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힘을 끌어올렸다.
체샤의 발치에서 색색의 꽃이 피어났다.
팔락팔락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허공에서 모여들었다.
체샤는 무리 지은 나비 속으로 손을 뻗어 도끼를 꺼냈다.
“아이코.”
리체시아일 때 쓰던 도끼라서, 아기인 체샤한테는 너무 무거웠다.
도끼를 들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끄응…….”
나비의 도움을 받아 도끼를 들었다.
다부지게 도끼를 든 채 천장에 그려지는 마법진을 노려보았다.
거침없이 그어지던 선이 마법진을 완성한 순간.
체샤는 폴짝 뛰어올랐다.
나비와 꽃이 체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가볍게 날아간 체샤는 마법진에 도끼를 내려찍었다.
쨍그랑!
마법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법진은 조각조각 부스러졌다.
눈부신 빛의 파편이 사방을 환히 밝혔다.
벨제온에게 혹시나 조각이 튀지 않도록, 꽃과 나비가 부서진 마법의 흔적을 전부 삼키도록 했다.
하타도 깡충깡충 뛰어서 마법 조각을 삼켰다.
“히유우.”
바닥에 내려선 체샤는 도끼를 다시 환역에 집어넣고 숨을 내쉬었다.
일단 추적 마법은 부쉈지만…….
‘이러다 금방 잡히겠는데.’
체샤는 잠든 벨제온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분명 효과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바실리안 백작가’를 막을 계획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키에른이 뒷세계의 수하도 아닌, 제3세력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리라곤 짐작치 못했을 터였다.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고.’
뭘 어떻게 했는진 모르겠지만, 무려 이브로이엘 공작을 움직여 마법을 쓰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정말로 금방 잡힐 터였다.
하타가 체샤의 옆으로 짤랑짤랑 다가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할까요?”
“아마두…….”
“하타가 백작저에 가서 다시 불을 지르면 어떨까요?”
“…….”
벨제온이 폭탄 터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저도 해 보고픈 모양이었다.
체샤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타를 단속했다.
‘역시 나도 제3세력을 끌어들여서 방패로 삼는 게 제일 좋은데.’
키에른이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면서.
이브로이엘 공작처럼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추고 있고, 강한 힘도 가지고 있는.
그리하여 체샤와 벨제온을 보호해 줄 만한…….
체샤는 손으로 이마를 탁 짚었다.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흐에에…….”
이 상황에 완벽하게 적합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이였다.
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이 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바로 신성 제국 힐데르드의 이단 심문관.
하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