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
아기 요정은 악당-56화(56/200)
“오라버니!”
하일론에게서 겨우 벗어난 체샤는 벨제온과 감동의 재회를 하게 되었다.
벨제온은 종종종 뛰어오는 체샤를 얼른 안아 들었다.
그는 혹시 체샤에게 어디 상처 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질문했다.
“그 기사가 뭔가 이상한 걸 묻진 않았고?”
벨제온에게 체샤의 친부모에 관해 물었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이상한 거 업어쏘요!”
사실 수두룩했다.
하지만 벨제온한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건넨 체샤는 더 이상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추욱 몸을 늘어뜨렸다.
“피고내요…….”
피곤하다고 진짜 아기처럼 칭얼거리니, 벨제온은 거기에 정신이 완전히 쏠렸다.
덕분에 무사히 난감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벨제온과 함께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간 체샤는 내심 감탄했다.
신전이 꼬마 손님들에게 내어 주기엔 과하게 좋은 방을 내어 준 것이다.
침실과 거실, 그리고 작은 응접실과 욕실이 딸린 손님용 방이었다.
체샤는 신전의 호의 뒤에 하일론이 있음을 어렵잖게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짜식…….’
권력자의 지인이라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방을 쓰게 된 일이 무색하게도.
벨제온은 거의 방에 붙어 있질 못했다.
그는 무척 바빴는데, 여기저기에 뭔가를 알아보러 다니는 듯했다.
그래도 체샤를 안전한 신전에 넣어 둔 덕분에, 그는 안심하고 먼 곳까지 외출하곤 했다.
벨제온은 하루가 꼬박 지나고 새벽에야 돌아올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런 날에는 슬며시 자고 있는 체샤의 곁으로 와선, 꼭 옆에 몸을 붙이고 잠들었다.
부스스 눈뜨니까 벨제온의 품에 안겨 있는 일이 허다했다.
‘이런 건 키에른을 닮았다니까.’
키에른도 종종 잠든 체샤를 찾아와 함께 자곤 했으니 말이다.
핏줄은 못 속이는 모양이었다.
하여 키에른에게 해 주었듯, 체샤는 잠든 벨제온을 자그만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체샤의 손길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몸을 도닥여 주면 인상 쓰고 자던 얼굴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내 고른 호흡을 색색거리며 편히 잠들곤 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바깥을 돌아다니는 건지…….’
잔뜩 피곤에 지쳐 오는 모습을 보면 뭔가 어려운 일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벨제온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동안.
체샤는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괴롭히는 쌍둥이도, 시비 거는 키에른도 없는 쾌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원하는 때에 식사를 하고.
한가롭게 신전 구경하면서 푸릇한 정원을 산책하고,
강아지와 함께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에게 괜히 말 걸어오는 사제와 기사들에게 적당히 대꾸도 좀 해 주고.
그러다 지겨워지면 방으로 돌아와 책도 좀 읽어 주다가, 하타를 끌어안고 낮잠 자고.
참으로 평화로운 일과였다.
그러나 온순한 평화 속에서도 체샤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키에른이 조용해서 찜찜하단 말이지.’
아마 지금쯤 신전에 있는 걸 알아챘을 터였다.
그런데도 아무 반응 없이 조용하기만 하니까 수상했다.
벨제온이 그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테고, 앞선 화재의 뒷수습을 하느라 바쁘겠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추측해 보던 체샤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묘하게 키에른을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 말이다.
요새 일상이 평화로우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체샤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미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샤의 평화는 곧바로 깨졌다.
***
벨제온이 외출한 밤이었다.
하타도 물약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지라, 체샤는 혼자 신전에 남았다.
신전 소속 기사들과 조금 놀아 주다가,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지금은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중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신전은 고요했다.
낮에는 신도들이 드나들고 기도도 하는지라 시끌벅적하지만, 밤에는 서늘하다 싶을 만큼 조용한 편이었다.
요 며칠 신전 구경하는 척하면서 돌아다녀 본 결과.
역시 이곳에는 뭔가 쓸 만한 게 없었다.
‘신성 제국을 가야 하겠지…….’
응접실 소파에 누워 신성 제국에 잠입할 방법을 궁리하던 때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벨제온이라기엔 발소리가 달랐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
하일론이었다.
워낙 바쁜 사람인지라, 신전에 들어온 첫날을 제외하곤 얼굴도 제대로 못 봤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하일론은 차갑게 방 안을 훑었다.
내부에 숨은 이가 없음을 확인하곤 체샤를 덥석 안아 들었다.
난데없는 납치에 눈이 동그래지는데, 하일론이 냉랭히 말했다.
“바실리안 백작이 찾아왔다.”
체샤는 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내 옆에 있어라. 그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자이니.”
키에른을 너무나 정확하게 잘 파악한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하일론의 곁이 제일 안전할 터였다.
체샤는 군말 없이 하일론에게 안겼다.
하일론은 체샤를 안은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밤이 깊고 어둡건만, 이미 신전의 기사와 사제들은 모두 깨어나 밖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하일론의 등장에 바다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갈라섰다.
신전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들이치는 검은 어둠 속.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불청객이 보였다.
코트를 걸치고 한 손에 지팡이를 짚은 늘씬한 남자는 키에른이었다.
‘키에른 옆에는 누구지?’
그의 옆에 선 여자는 처음 보는 이였다.
키가 큰 그녀는 굉장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구불구불한 머리카락부터가 특이했다.
옷은 드레스나 치마가 아닌 바지 정장을 입었는데, 옷 너머로 언뜻 드러나는 근육이 탄탄했다.
검술을 수련한 기사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여인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녀의 손에서 보랏빛이 어른거리며 맴돌았다.
그러자 어둑하던 신전이 환해졌다.
모든 촛대와 등불에 동시에 불이 켜진 것이다.
그녀의 마법을 보고 체샤는 단번에 정체를 깨달았다.
‘이브로이엘 공작……!’
벨제온에게 추적 마법을 걸었던 실력으로 얼추 짐작하긴 했지만, 실제로 만나니 확실히 마력의 기운이 강했다.
어쩌면 체샤의 예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호승심, 그리고 강한 호기심이 뒤섞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브로이엘 공작도 체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일론을 보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체샤를 향했다.
마치 얼른 저를 봐 달라는 듯, 끈질기고 집요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시선이 맞닿자.
이브로이엘 공작은 체샤에게 윙크를 했다.
“…….”
체샤는 반사적으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브로이엘 공작은 더욱 좋아했다.
헤벌쭉 웃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체샤를 날름 집어 갈 기세였다.
아마 하일론의 품에 안겨 있지 않았다면, 진짜 마법이라도 써서 체샤를 낚아채 갔을 태세였다.
사제와 기사들 또한 보랏빛 마법을 사용하는 여인의 정체를 알아본 듯했다.
“이브로이엘 공작 각하가 어째서……?”
신성 사제 하나가 의아히 중얼거렸다.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온 이브로이엘 공작이라니.
아마 키에른만 왔다면 밤이 늦었다며, 내일 다시 오시라고 돌려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황실의 방계이자 팔렌 대제국의 공작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얼떨떨해하기만 하고, 어찌 대응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밤늦게 미안하네.”
이브로이엘 공작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낮고 탁한 목소리는 신전 내부를 우렁차게 울렸다.
“내 대녀가 이곳에 있다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군.”
뒤늦게 의복을 정제하고 나타난 주교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나이 지긋한 주교는 날벼락 같은 상황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안색이었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저희 신전에 각하의 대녀께서 머무르고 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겠지. 아직 대외적으로 공표하진 않은 사실이니까.”
그대들이 지금 최초로 듣는 거라며, 공작은 껄껄 웃었다.
“체샤 바실리안.”
이브로이엘 공작이 체샤를 손가락으로 척 하고 가리켰다.
“저 아이가 내 대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