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Fairy i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7)
아기 요정은 악당-57화(57/200)
체샤는 너무 깜짝 놀라서 으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체샤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브로이엘 공작의 선언을 명백하게 들었다.
신전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
바실리안 백작가의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도 신전에도 퍼져 있었다.
그런데 하일론이 덜렁 주워 온 아기가 그 유명한 입양아였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하일론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표정한 하일론을 보며 공작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를 돌봐 주어서 고맙군. 이제 그만 데려가도록 하겠네.”
그녀가 당당하게 체샤를 데려가겠다고 선포했다.
“예, 예에! 어서 데려가십시오.”
신전을 총괄하는 주교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대답했다.
신분이 넘치도록 확실하게 보장된 대모였다.
공작 각하께서 자신의 대녀를 데려간다는데 반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일론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여전히 체샤를 안은 채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브로이엘 공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거기 자네.”
그녀는 정확히 하일론을 지목하며 말했다.
“귀가 먼 게 아니라면 내게 대녀를 모셔다 주지 그러나.”
하일론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각하의 대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호오?”
이브로이엘 공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런 대답이 되돌아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다른 신성 기사와 신성 사제들도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주교는 곧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일론이 느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누구도 이 아이에게 뜻을 강제할 수 없으니.”
그가 공작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치며 통보했다.
“아이가 원한다면 각하를 따라갈 것이고, 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일론이 말을 끝맺는 순간.
이브로이엘 공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신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커다랗게 웃었다.
광소를 터트린 끝에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그거 참 재밌는 소리로군. 내 이 나이가 되도록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야.”
하하, 웃으며 말하였으나.
곧이어 웃음이 사라진 얼굴은 싸늘했다.
지고한 대제국의 공작은 자신을 향한 모욕을 넘기지 않았다.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지껄이는 자네는 누군가?”
하일론은 전혀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서 한 말과 다를 바 없이 차분하게 답할 뿐이었다.
“호위 기사입니다.”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이, 그저 한마디만 툭 떨어진 말이었다.
그러나 의외롭게도 그 한마디가 공작의 분노를 식혀 주었다.
“내 대녀가 그새 엄청난 호위를 두었군.”
체샤의 기사라 하니, 방금까지 사납게 일렁이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심지어 약간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의 의견이 중요하긴 하지.”
이브로이엘 공작이 다혈질이고 감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확실히 그런 듯했다.
하일론과 이브로이엘 공작 사이에 뭔가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물론 이브로이엘 공작 혼자 일방적으로 두르는 분위기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공작은 하일론을 신전에서 빼내 체샤의 개인 호위 기사로 두는 상상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상상력이 뛰어난 공작이잖아.’
하일론은 신전에서 나올 생각도 없을 텐데 말이다.
약간 어이없어하는데, 딱, 지팡이가 신전 석재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가운데 울려 퍼진 소리는 유난히 선명했다.
여태껏 물러서 있던 키에른이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체샤는 저에게 다가오는 키에른을 보았다.
안 본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그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서 헐벗다시피 가운이나 걸친 모습만 보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쑥하게 정장과 코트를 갖춰 입은 차림으로 마주한 탓일지도 몰랐다.
긴 코트 자락이 그의 발걸음에 맞춰 가벼이 휘날렸다.
“체샤.”
그가 다정하게 체샤를 향해 말했다.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간지러운 어조에 이브로이엘 공작이 인상을 썼다.
그러나 키에른은 아랑곳하지 않고 체샤만을 바라보았다.
“벨제온 때문에 놀랐지? 이제 집에 가요.”
키에른이 체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체샤는 바실리안이야.”
낙인을 찍듯이 속삭이는 말에 심장이 따끔했다.
체샤는 제게 뻗어진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붙잡지 않았다.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키에른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체샤.”
인내심을 가지고 끈덕지게 기다리며, 재차 이름을 불러 왔다.
조심스럽게 부르는 목소리에 이상하게 가슴 안쪽이 자꾸 당기듯 아파 왔다.
그가 필요에 의해 자신을 되찾으러 왔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키에른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아기가 체샤니까.
그러니 뱀처럼 교활하게 살살거리며, 체샤의 마음속 여린 부분을 건드려서 제가 원하는 바를 이뤄 내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 아는데도 체샤는 그가 신경 쓰였다.
괜히 얼굴을 보러 나와서 더 그런 듯했다.
눈앞에 키에른을 두고 있으니 단호하게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나오지 말고 그냥 방 안에 있겠다고 할걸.’
그랬다면 최소한 지금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체샤는 뒤늦게 후회하며 그에게 조용히 답했다.
“데송해요……”
말에 맛이 있었던가.
체샤는 입 안이 씁쓸해졌다.
사탕이라도 한 알 물고픈 심정이었다.
“…….”
키에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였다.
체샤는 고개를 돌렸다.
하일론은 말없이 체샤를 고쳐 안았다.
키에른의 시선에서 가리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을 지켜본 키에른이 짧게 헛웃음을 뱉었다.
“…이런.”
그가 느릿느릿, 짓씹어 뱉듯이 말했다.
“우리 체샤가 아빠한테 죄송할 일이 뭐가 있지.”
그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타올랐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기사와 사제들이 분명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키에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어떤 존재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저 평범해야 할 바실리안 백작에게서…….
어떤 섬뜩한 감각을 느낀 탓이었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시작을 목격하는 듯한 위압감과 불길함이었다.
신성 기사들이 언제든지 검을 발도할 수 있도록 검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신전 안의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
여태 무표정하던 하일론의 눈매가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허리춤의 성검에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등불 빛을 머금은 푸른 눈동자가 기묘하게 일렁였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과 같은 눈이었다.
체샤는 곧바로 하일론의 생각을 알아챘다.
‘지금 허튼짓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키에른이 한 발짝만 더 안으로 들어오기를.
하여 도망치지 못할 덫에 물리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키에른이 신전 안에서 흑마법 쓰는 시늉이라도 하는 순간.
하일론은 곧바로 이단 심문관으로서 그를 단죄할 터였다.
수많은 이들이 키에른을 주시했다.
키에른 또한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눈치 빠른 남자는 뻔히 모든 걸 알면서도.
당장 스스로를 놔 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굴었다.
“이젠 아빠한테 대답도 안 해 주네…….”
키에른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체샤는 신전의 그림자들이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체샤만 보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분명 다른 이들도 눈치챌 터였다.
‘키에른 왜 이래!’
뺨이라도 한 대 쳐 줘야 하나 고민하는 체샤에게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제온이 끌고 간 게 아니라.”
키에른이 무표정하게 물었다.
“체샤가 아빠를 떠난 거였어요?”